누구의 목에 고랑을 채울까?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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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29:24-32
“누구의 목에 고랑을 채울까?”
2023. 6. 13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누구의 목에 고랑을 채울까?”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바벨론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 스마야라고 하는 한 거짓 선지자가 예레미야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편지를 통해서 바벨론 포로들에게 ‘너희가 돌아오지 말고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쭉 머물러 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이 말은 바벨론에서 활동하던 거짓 선지자들이 선포하는 거짓 예언과 상충되는 말이었어요. 거짓 선지자들은 ‘우리가 금방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고 선포했거든요. 우리는 고향에 금방 돌아갈 거라고 말하는데, 예레미야는 70년이 지나야 돌아올 수 있다고 하니까, 서로 말이 안 맞죠.
그래서 거짓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인 스마야가 예루살렘으로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보면, 이 사람을 “느헬람 사람 스마야”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느헬람 사람 스마야. 그런데 느헬람이 무얼 뜻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문의 이름인지, 아니면 어느 지역의 이름인지, 정체를 알 수가 없어요. 성경에 느헬람이라는 말이 오직 오늘 본문에만 나옵니다. 다른 데는 안 나와요. 그래서 느헬람이 과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스마야”라는 이름은 성경에 많이 나오죠.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들으신다”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이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주로 레위지파 제사장들이 이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추측을 해보기로는, 아마도 레위지파 제사장 가문 중에 느헬람 가문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을 합니다. 가문의 힘이 별로 크지 않아서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느헬람이라는 가문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추측일 뿐이에요. 정확한 사실은 알 수가 없어요.
어쨌거나 느헬람 사람 스마야가 바벨론에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예레미야가 편지를 보내서 ‘너희가 바벨론에 눌러 살라’는 말을 하니까 화가 난 거예요. 자기가 선포하는 거짓 예언하고 완전히 다른 예언을 하니까 백성들이 술렁술렁하면서 의심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예루살렘으로 편지를 써서 보낸 겁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누구에게 보냈는가 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보냈어요. 25절에 기록되어 있죠.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특별히 여기에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스마야는 이 편지를 누구보다도 스바냐가 봐 주기를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스바냐가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래요.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는 이때 당시에 부제사장이었습니다. 부제사장은 대제사장 바로 다음 서열의 제사장을 가리켜요. 그러니까 굉장히 높은 사람이죠. 성전의 넘버툽니다. 이 부제사장을 다른 이름으로 성전감독자, 혹은 성전총감독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20장에서 또다른 성전총감독을 봤었죠. 예레미야 20장 1절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어요.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의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 이 사람이 여호야김 왕 때 성전총감독이었습니다. 부제사장이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지금은 부제사장이 누구예요?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가 지금 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언제 부제사장이 바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마도 시드기야가 왕이 되면서 부제사장도 바뀌지 않았을까 추정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부제사장인 스바냐가 시드기야 왕의 오른팔이거든요. 종교적으로도 넘버투지만,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왕의 총애를 받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만큼 높은 사람이다보니까 특별히 스바냐의 이름이 오늘 본문에 기록이 된 겁니다. 거짓 선지자인 스마야가 모든 백성과 모든 제사장을 향해서 편지를 보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스바냐가 이 편지를 봐주기를 바랬던 거예요. 그만큼 영향력이 큰 사람이니까.
그래서 26절에 보면, 스마야가 스바냐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말이 쓰여 있습니다. 스바냐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가, 26절과 27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26절, 27절 시작, “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스마야가 스바냐에게 하는 말이에요. 여호와께서 스바냐 너를 성전 감독자로 세우신 것은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의 목에 고랑을 채우라고 세우신 건데, 왜 너는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않고 가만히 있느냐? 이런 말이죠. 성전 감독자면 성전 감독자답게, 예레미야를 좀 벌을 주라는 거예요.
성전 감독자가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영적으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을 잡아다가 목에 멍에를 씌우는 일. 과거에 예레미야가 한번 목에 멍에를 멘 적이 있죠. 자발적으로 멍에를 멘 것 말고, 성전감독자에게 잡혀서 두드려 맞고 멍에를 멘 적이 있어요. 아까 예레미야 20장 1절을 봤을 때, 제사장 바스훌이 나왔었는데요. 스바냐 전의 전에 감독자가 바로 바스훌이었어요. 이 사람이 예레미야를 때리고 목에 나무 고랑을 채워서 결박을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성전감독자는 다른 사람을 잡아다가 목에 멍에를 채우는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물론 자기 마음대로 아무나 잡을 수는 없고,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겠죠.
오늘 본문에 보면, 스마야가 그 명분을 줍니다. 예레미야의 목에 고랑을 채워야 하는 명분을 알려줘요. 그것이 28절 내용인데요. 28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
예레미야가 보낸 편지의 내용을 고발하고 있죠. “예레미야가 편지를 보냈는데, 우리가 바벨론에 오래 지내야 하니까 집을 짓고 밭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는 말을 했다.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 예레미야를 징계해라.” 이런 고발을 한 거예요.
그런데 이런 고발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바벨론 포로들의 영을 흐린다는 이유가 아니죠. 바로 자신의 거짓 선지자 활동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이 그 이윱니다. 내가 여기서 거짓 예언을 하면서 인지도도 높아지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예레미야가 뜬금없이 편지를 보내가지고 분위기를 흐려논 거예요.
더군다나 자기랑 같이 활동하던 다른 거짓 선지자들을 예레미야가 딱 꼬집어서 비난을 했어요. 오늘 본문 위에 21절을 보면,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를 비난했죠. 이 두 사람이 거짓을 예언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 죽을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어요. 그러니까 같은 거짓 선지자 입장으로서 굉장히 기분이 안 좋죠. 꼭 나한테 하는 말 같고, 선지자 노릇 하는데 지장도 생기고.
그래서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낸 거예요. 예레미야가 다시 또 편지를 보낼 수 없게, 예레미야를 좀 가둬놓든지 벌을 좀 줘라. 그런데 이 이 편지를 읽고, 스바냐가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예레미야를 벌을 주는 게 아니라, 이 편지 내용을 예레미야에게 다 알려줬죠. 바벨론에서 편지가 왔는데, 한번 봐봐라. 다 알려줬어요. 이것이 29절 내용인데요. 29절에 보니까,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서 들려 줄 때에.”
스바냐가 편지를 예레미야에게 읽어줬어요. 아마도 스바냐하고 예레미야하고 사이가 좋았던 것 같애요. 전전대 성전감독자였던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때리고 멍에를 채웠는데, 당대의 성전감독자인 스바냐는 예레미야와 사이가 좋아요. 왜 사이가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아마도 예레미야가 정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예레미야와 친하게 지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 어쨌거나 스바냐가 편지를 읽어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어떤 말씀이 임합니까? 저 거짓 선지자 스마야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임하죠. 32절에 그 심판의 말씀이 선포되는데요. 3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하나님의 심판이 스마야에게 선포되는데요. 자세히 보면 스마야에게만 선포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자손에게까지 심판이 선포됐어요.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스마야만 벌을 받는 게 아니라 자손들까지 벌을 받아요. 심지어 벌을 받아서 이 백성 중에 살아남을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볼 때 혹시 한 사람의 죄가 그의 가족들에게 흘러가나? 라고 생각을 해볼 수가 있을 겁니다. 아빠가 잘못했는데 아들도 벌을 받고 손자도 벌을 받고, 온 가족이 다 벌을 받나?
그런 의심을 할 수가 있겠죠. 그러나 성경은 나의 죄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태초에 아담의 죄는 온 인류에게 전염되었지만, 그것은 특별한 예외이고요.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내 아들이 같이 벌을 받는 일은 없어요. 에스겔 18장 20절에 보면, 이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18장 20절인데요.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아멘.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죠. 아들이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죄는 아버지의 죄라는 거예요. 아들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죄를 지으면 죄를 지은 사람만 벌을 받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오늘 본문에서는 스마야만 벌을 받지 않고 자손들까지도 같이 벌을 받는 것일까요? 당연히 자손들도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죠. 스마야가 죄를 지을 때 자손들도 똑같이 죄를 지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같이 벌을 받는 거예요.
이 자손들이 정확히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성경에 안 나오기 때문에. 그런데 아마도 거짓 예언을 하는 것만큼 악한 죄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고,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그런 죄를 지었던 것 같애요.
온 집안 식구가 짝짜꿍이 되어서 죄를 범한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온 집안 식구가 다 벌을 받게 된 것이죠. 그래서 결국에는 예레미야의 목에 고랑을 채우려고 했던 스마야와 그 자손들의 목에 고랑이 채워지게 된 겁니다.
오늘 제목이 뭐였습니까? “누구의 목에 고랑을 채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죄인의 목에 고랑을 채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누명을 씌우고 작당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 속일 수는 없습니다. 죄인은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를 반드시 받습니다.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성전감독자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하십니다. 누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우리가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어요. 우리는 우리 인생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각자의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농사를 하면서 우리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디서 살든지, 어떤 인생을 살든지, 그 인생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날마다 우리 주님과 동행하면서 정직하고 신실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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