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않는 자들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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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29:19-23
“듣지 않는 자들아 들으라”
2023. 6. 9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듣지 않는 자들아 들으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계속해서 예레미야가 바벨론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인데요. 이 당시에 포로들은 절망 가운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미혹되어 헛된 꿈만 꾸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이 곧 멸망하고, 우리는 금방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짓 예언을 믿고 하루하루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들에게 그것이 헛된 망상이라는 것을 선언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 바로 위에 17절과 18절에 예레미야가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너희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하는 고향이 이제 곧 멸망한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임해서 초토화될 것이다.’ 이런 말을 했어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고향에 돌아갈 생각을 말라는 것이죠. 돌아가봤자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니까, 돌아갈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바벨론에 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된 70년이 지나면 그 때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생명을 보존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으로 넘어오면, 이제 왜 너희에게 이러한 끔찍한 심판이 임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인데요. 1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지금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온 이유, 그리고 유다 땅이 심판을 당하게 되는 이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너희들”이라고 번역을 하면 안 되고, “그들”이라고 번역을 해야 맞습니다.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이렇게 번역을 해야돼요. 여기서 그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여기서 “너희”는 바로 당대의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과 고향에 남아있는 당대의 백성들을 가리켜요.
그래서 결국에 이 말은 심판이 내리는 것에 대해서 조상들과 당대의 백성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너희 조상들만의 잘못이 아니고, 또 지금 너희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너희 모두가 다 잘못했다.
어느 누구의 책임으로 떠넘길 수가 없어요. 옛날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말을 안 듣습니다.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들에게 꾸준히 보냈으나 너희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느니라.” 제발 좀 들으라고 꾸준히 선지자들을 보내도 꾸준히 아무도 안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렇게나 말을 안 듣는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다시 한 번 들으라고 말씀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20절 시작, “그런즉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아멘.
하나님은 지금도 백성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듣지 않아서 벌을 받은 백성들에게 지금도 꾸준히 말씀하고 계셔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제발 좀 들으라는 것이죠.
자, 그러면 이번에는 과연 무슨 말씀을 들으라고 하실까요? 21절 말씀인데요. 2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아멘.
지금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바벨론에서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는 두 명의 거짓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이죠. 이 두 명의 이름이 뭡니까?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 두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은 오직 여기에서만 등장해요.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는 다른 성경에서는 안 나옵니다. 여기서만 나와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사람들의 이름이 다 왕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의 이름이죠. 그리고 시드기야는 남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아합 왕과 시드기야 왕. 이처럼 왕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선지자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둘 다 가짭니다. 가짜 선지자들이에요.
자기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사기를 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해요. 뭐라고 예언을 했을까요? “바벨론이 곧 멸망하고, 우리는 고향에 돌아간다” 이런 예언을 했겠죠. 그런데 이 사기꾼들이 얌전히 거짓 예언만 말하고 돌아다닌 게 아닙니다. 또 망측한 죄를 지었어요. 23절에 봐 볼까요?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어리석게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함이라 나는 알고 있는 자로서 증인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이 사기꾼들이 간음을 했습니다.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며.” 한편으로는 거짓 예언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간음을 했어요. 오늘날의 이단들하고 똑같죠. 여자 신도들과 간음을 하는 이단 사이비들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JMS며 뭐며, 하는 행태가 어쩌면 그렇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지 모르겠어요. 그러고보면 이단도 참 꾸준합니다. 꾸준히 나타나요. 듣도보도 못한 희한한 이단들이 새로 나타나고, 사람들은 거기에 미혹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시대가 점점 악해져가고 있어요.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하나님도 꾸준히 백성들을 향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말씀을 주셔요. 이단들이 오늘날에도 꾸준히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말씀도 꾸준히 우리들에게 임합니다. 시대가 점점 악해져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소망이 있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 이단들은 결국에 멸망합니다. 징계를 받아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해요. 오늘 본문 22절을 보면, 아합과 시드기야의 최후가 나옵니다. 22절을 우리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바벨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포로가 그들을 저줏거리로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거짓 선지자 아합과 시드기야의 최후가 어떻게 된다고 말씀합니까? 그들이 가진 이름과 똑같은 왕, 아합 왕과 시드기야 왕처럼 끔찍한 최후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죠.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아합 왕의 최후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는데, 아합은 병사의 복장을 하고 전쟁에 참전합니다. 그런데 적군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서 과다출혈로 죽고 말아요. 굉장히 허무한 죽음이죠.
그리고 시드기야 왕은 앞으로 7년 뒤에 죽게 되는데요. 바벨론의 침략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포로로 끌려가서 두 눈이 뽑히고 모진 고문을 받다가 감옥에서 죽게 됩니다.
아합 왕이나 시드기야 왕이나 그 최후가 너무나 허무하고 처참합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인 아합과 시드기야의 최후가 이와 같으리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 이름처럼 죽으리라.
본래 아합이나 시드기야나 이름의 뜻이 좋아요. 아합은 “아버지의 형제”라는 뜻입니다. 형제간에 좋은 우애를 나타내는 이름이에요. 그리고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의”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의로움을 높이는 좋은 이름이에요.
이 거짓 선지자들이 태어날때부터 거짓 선지자들은 아니었겠죠. 태어나면서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줄 때만 해도 이 이름의 뜻처럼 형제간에 우애를 나누면서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고, 또 여호와의 의로움을 높이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합과 시드기야라는 이름을 지어줬을 겁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그 이름의 뜻처럼 살지 못하고, 그 이름을 먼저 가졌던 왕들과 같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들이 육신의 영달을 위해서 살지 않고, 조금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았다면, 그랬다면 정말로 자기 이름처럼 좋은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멸망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이처럼 멸망의 길에 접어들 수 있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 이름에 걸맞는 인생을 살아야 돼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아합과 시드기야의 끔찍한 최후를 통하여 교훈을 삼고, 꾸준히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