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자 하나님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30:12-17
“치료자 하나님”
2023. 6. 23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치료자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불치병에 걸린 시온이 하나님께 치료를 받게 되리라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치료와 회복이 반드시 시온과 백성들에게 임하게 될 것을 계속해서 예언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봤던 것처럼, 회복되는 그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백성들은 멍에를 벗고 오직 주님만을 섬기며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불치병을 치료받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어요. 먼저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눠지는데요. 12절부터 15절까지 한 단락, 그리고 16절부터 17절까지가 한 단락입니다. 12절부터 15절까지는 유다의 상처가 너무나 심각해서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설명하는 단락입니다. 너무 병이 크고 상처가 심해서 고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락은, 그러나 그 상처를 하나님께서 치료하신다는 회복의 메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 찬찬히 한번 살펴보겠는데요.
먼저 오늘 본문 12절을 봐 볼까요? 12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유다의 상처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하고 있죠.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여기서 상처는 히브리어로 “솨바르” 라고 하는데, “깨지다, 부러지다” 이런 뜻입니다. 또 뒤에 부상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막카” 라는 말인데, 이 말은 본래 “때리다” 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명사로 쓰일 때는 “때려서 생긴 상처”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유다를 누가 때려가지고 상처가 난 거예요. 그 상처가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머리가 깨지고 뼈가 부러질 정도로, 그래서 고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의사들을 찾아가도 고칠 방법이 없어요. 이것을 13절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먼저 뒤에 내용을 보면,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말 그대로 불치병이라는 거예요.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앞에 내용을 보면,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다고 말씀하는데요. 이 말은 네가 억울하게 뚜드려 맞아서 고소를 하려고 해도 그것을 받아줄 재판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유다가 누구에게 두드려 맞습니까? 바벨론에 두드려 맞죠. 그런데 그 억울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자가 없어요. 아무도 유다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밑에 14절에 나오는데요.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너무나 많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씀이죠. 유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고난을 주고 잔인한 징계를 내렸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말해서 자업자득이에요. 자기들이 한 그대로 당하는 겁니다.
예레미야 5장 28절, 29절을 보면, 유다 백성들이 지은 죄가 기록되어 있는데요. 예레미야 5장 28절, 29절에 이렇게 써있습니다.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백성들이 자기 이익 때문에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않아요. 뇌물을 주고 로비를 해서 재판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듭니다. 그것도 아주 가난하고 약한 고아들과 빈민들을 대상으로 악랄하게 행동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말씀하시는 거죠.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어찌 벌하지 않겠느냐? 어찌 보복하지 않겠느냐?”
빼앗기고 핍박을 당한 자들을 대신해서 유다에게 보복을 하시는 겁니다. 고아와 빈민들이 자기의 억울함을 고소해도 그것을 받아주는 재판관이 없었던 것처럼, 유다 백성들도 똑같이 그들을 위해서 힘써줄 사람이 없어요.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고, 빼앗으면 빼앗는 대로 뺏기는 겁니다. 그렇다 해서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어요. 자업자득이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유다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 지금 네가 당하는 고통이 사실은 내가 준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요? 네 악행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15절 앞을 보면,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라고 질문을 하셨어요. 이 질문을 하시는 의미는 뭐냐면, 네가 부르짖는 때가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상처를 입기 전에 부르짖었어야 돼요. 심판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어야 합니다. 그랬다면 하나님이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용서해 주셨을 거예요.
하지만 때가 늦었죠. 이미 버스가 떠났어요. 지금은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셔요. 버스가 오기 전에 손을 흔들어야 버스가 서지, 이미 떠났는데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 그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왜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진작에 부르짖었어야지.” 이렇게 책망을 하시는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가 첫 번째 단락입니다. 치료받을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린 유다를 설명한 단락이에요. 그리고 이제 두 번째 단락이 시작됩니다. 불치병에 걸린 유다가 치료를 받게 되리라는 예언입니다.
16절을 봐 볼까요? “그러므로 너를 먹는 모든 자는 잡아먹힐 것이며 네 모든 대적은 사로잡혀 갈 것이고 너에게서 탈취해 간 자는 탈취를 당할 것이며 너에게서 노략질한 모든 자는 노략물이 되리라.”
이 말씀은 유다를 침략한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해 이방 나라들을 사용하셨어요. 특히 바벨론을 징계의 몽둥이로 사용하시죠. 바벨론을 사용해서 유다를 멸망시키십니다.
그런데 유다가 멸망한 뒤에는 그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과 이방나라들 역시도 똑같이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모두 다 멸망시키셔요. 그리고 그 뒤에 유다의 상처를 돌봐주십니다. 오늘 마지막 17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아멘.
먼저 앞에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이 말은 이방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이방인들이 볼 때 유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나라예요. 유다가 멸망을 당하는 것이 쫓겨난 게 아니면 뭐겠느냐? 하나님이 저들을 버린 게 분명하다. 이렇게 이방인들이 생각했다는 겁니다. 또 뭐라고 합니까?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유다가 멸망을 당하고 나니까 아무도 유다를 거들떠도 안 본다는 거죠.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예루살렘을 아무도 안 찾아요. 잊혀진 도시가 돼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말을 뒤집으셔요.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유다가 더이상 쫓겨난 자로 불리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는 황폐한 땅이 아니라, 이제는 그들이 치유를 받고 고침을 받아 회복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과거에 너무나 많은 죄를 범하여서 그 대가를 치렀지만, 그 뒤에는 그들을 치료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치료자 하나님” 입니다. 이전에는 “심판자 하나님” 이셨지만, 이제 치료자가 되셔서 상처를 싸매주시고, 회복시켜주셔서 참된 평안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도 치료해주십니다. 치료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한 심령을 돌보시고, 우리의 아픈 육신을 감싸주십니다. 사람들은 너희가 교회 다닌다면서 왜 그렇게 가난하고 질병에 걸리냐면서 하나님이 너희를 버렸다고 조롱할 수 있어요. 그러나 때가 되면, 반드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게 아니에요. 우리에게 회복의 때를 정하시고 우리를 연단하시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좁고 험한 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때, 반드시 그 끝에서 회복의 역사, 역전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여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