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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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30:18-22
“완전한 회복”
2023. 6. 27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완전한 회복”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유다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는 단락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위에 17절을 보면, 상처 입은 유다를 하나님께서 고쳐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유다의 상처는 사람의 힘으로는 고칠 수가 없는 심각한 상처입니다. 불치병이에요. 오직 하나님만이 고치실 수가 있습니다. 그 상처를 하나님께서 고쳐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 상처를 내신 것도 하나님이죠. 다른 이방민족을 사용해서 유다에 끔찍한 상처를 내게 하셨어요. 그래서 나라가 멸망을 하고 왕조가 끊어졌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한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들을 회복시키셔서 다시 위대한 나라로 세우시겠다고 약속을 하셔요.
오늘 본문은 바로 그 회복의 약속에 대한 말씀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1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들을 향하여 회복을 약속하고 계신데요.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회복의 메세지의 핵심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돌아오다”라는 단어입니다. 돌아오다. 히브리어로 “슈브” 라고 하는 말인데요. 돌아가다, 라는 뜻입니다. 돌아가다. 여러분, 돌아간다는 말은 하나의 조건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돌아갈 장소가 있어야 되겠죠. 돌아갈 곳이 있어야 돌아갈 수가 있어요.
고향이 있어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고, 집이 있어야 집에 돌아갈 수가 있는 겁니다. 포로에서 풀려나도 돌아갈 곳이 없으면 그냥 떠돌아다니는 거예요. 집도 절도 없이 여관방만 전전하는 겁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들은 돌아갈 곳이 있죠. 꿈에도 그리던 고향, 유다 땅으로 돌아갑니다. 비록 성전도 무너지고, 성벽도 무너지고, 살던 집도 다 무너졌지만,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어요.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께서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며 그 폐허가 된 곳에 다시 성읍을 건축하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땅을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가듯이, 그 땅도 이전과 같은 융성한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슈브, 돌아간다는 말은 단순히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이전의 모습,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땅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그 땅에 살던 주민들의 생활도 마찬가지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19절에 보면,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죠. 1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아멘.
그들에게서 무슨 소리가 나오게 됩니까?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소리가 나와요. 과거에 가장 강력했던 다윗 시대의 그 감사과 기쁨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를 침략하지 못하고, 모든 나라 중에 으뜸이 되어서 태평성대를 누리는 겁니다. 누구 하나 굶어죽는 사람도 없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평강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만 해도 더 바랄 것이 없는 꿈의 나라죠.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에서 끝이 아니에요. 더 놀라운 회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1절을 봐 볼까요? 2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리니 그가 내게 가까이 오리라 참으로 담대한 마음으로 내게 가까이 올 자가 누구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이 말씀은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여기서 영도자는 본래 “존귀한 자”라는 뜻인데요. 일반적으로 “영적인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뒤에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고 말씀하시는데요. 통치자는 “왕”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각각 따로따로가 아니라,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어요. 그러니까 영도자이면서 통치자인 사람이 백성들 중에 나오리라는 것입니다. 영도자이면서 통치자, 그가 누구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죠.
유다 백성들이 고향에 돌아오고,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고, 그들의 삶이 회복되지만, 그러나 진정한 회복은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과연 진정한 회복이 무엇일까요? 생활의 회복, 건강의 회복, 물질의 회복, 감사의 회복. 많은 회복이 있지만,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조건이 다 회복되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것은 회복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아담의 범죄 이후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죠.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안 돼요.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을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주신 거예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우리 앞에 놔주셨어요. 그 길을 따라 걸어가기만 하면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우리의 하나님이 되는 완전한 관계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22절 말씀이에요. 22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멘.
결국에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합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이전의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갈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완전한 회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미 그 회복을 이룬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어요.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들에게 약속하신 그 회복을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주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상황과 형편이 여전히 어렵고 고달픈 환경에 놓여져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가장 귀한 것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아멘.
근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 이 사람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을 누리며,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 자신도 가난하면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사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한 회복을 누리며,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