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감동이었어

공동체 성경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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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바까로레아에 대해서 아는지? 거기에 나왔던 시험 문제 중 하나임
음악을 누군가에게 들려줄 때,
음악적인 테크닉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 vs 없다
여러분이 동의를 못할 수도 있지만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음악적인 테크닉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이 문제의 질문이 음악적인 테크닉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 없다? 였다면 저는 없다고 말했을거에요. 그러나 음악적인 테크닉으로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저는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음악을 배워보면 감정을 표현하는 기술들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기술들이 굉장히 정교하게 클래스있게 잘 짜여져 있으면, 잘 짜여진 테크닉 때문에 감동을 받는 사람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감정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잘 짜여진 음악적인 기술보다는 진심어린 음악에 더욱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 분은 김범수씨입니다. 모르는 친구들이 많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4대 보컬 중 한 명으로 뽑히는 사람 중에 한 명이 김범수라는 가수입니다. 어느날 이분이 어느 한 노래를 녹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녹음을 진행하던 음악 감독이 김범수씨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범수야 너 정말 노래 잘한다. 어쩜 이렇게 정교하게 기술을 구사하며 깔끔하게 노래를 소화해내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너의 노래를 통해서 느껴지는 감동이 없다.” 거기에 충격을 받은 김범수는 골똘하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결심한 듯 녹음실을 벗어나서 그때 당시 자신의 여자친구를 찾아갑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헤어지자. 다짜고짜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여자친구의 흘리는 눈물을 뒤로한 채 그 슬픈 마음을 가지고 다시 녹음실로 향해서 여자친구를 보고싶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탄생한 명곡이 ‘보고싶다’라는 곡입니다.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회자되는 명곡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명곡이고, 노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발라드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곡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단순하게 기술이나 특정한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심어린 마음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알아볼 성경인물은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주변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감동을 선사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느헤미야가 어떻게 감동을 선사했는지, 그리고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나눠보겠습니다.

14  나는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에 유다 땅 총독으로 임명을 받아서, 아닥사스다 왕 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있었지만, 나와 나의 친척들은 내가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녹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

15  그런데 나보다 먼저 총독을 지낸 이들은 백성에게 힘겨운 세금을 물리고, 양식과 포도주와 그 밖에 하루에 은 사십 세겔씩을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였다. 총독들 밑에 있는 사람들도 백성을 착취하였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16  나는 성벽 쌓는 일에만 힘을 기울였다. 내 아랫사람들도 뜻을 모아서, 성벽 쌓는 일에만 마음을 썼다. 그렇다고 우리가 밭뙈기를 모은 것도 아니다.

17  나의 식탁에서는, 주변 여러 나라에서 우리에게로 온 이들 밖에도, 유다 사람들과 관리들 백오십 명이 나와 함께 먹어야 했으므로,

18  하루에 황소 한 마리와 기름진 양 여섯 마리, 날짐승도 여러 마리를 잡아야 하였다. 또 열흘에 한 차례씩은, 여러 가지 포도주도 모자라지 않게 마련해야만 하였다. 그런데 내가 총독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녹까지 요구하였다면, 백성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었겠는가!

19  “나의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1. 하나님의 시선 vs 사람의 시선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축하는 사람,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사람으로 알고 계실거에요.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축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바사왕 아닥사스다의 아래에 있었던 유다 땅의 총독이었습니다. 바사는 페르시아라고 하는 그 당시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었던 거대 제국입니다. 그 제국의 왕으로부터 한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총독은 왕에게 그 지역을 다스리라고 권한을 위임받은 권력자입니다. 왕이 자리를 비운다면 그 땅의 대장을 총독인 것이죠. 그런 느헤미야가 얼마나 누릴게 많았겠습니까.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신하들이 알아서 준비할 것이고, 어우 야 여기 쫌 덥다! 라고 하면 누군가가 부채를 들고 와서 하루 종일 부채질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큰 일들은 총독의 권한 아래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5절 말씀 읽어볼까요?

15  그런데 나보다 먼저 총독을 지낸 이들은 백성에게 힘겨운 세금을 물리고, 양식과 포도주와 그 밖에 하루에 은 사십 세겔씩을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였다. 총독들 밑에 있는 사람들도 백성을 착취하였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느헤미야 이전에 있던 총독들은 백성들에게 세금으로 억까를 했고, 양식하고 포도주와 그 밖에 하루에 은 사십세겔씩을 백성에게서 거두었데요. 은 1세겔이 지금 돈으로 6달러, 7-8천원정도 합니다. 40세겔이면 28-32만원인거죠. 누가 여러분에게 와서 하루에 30만원씩 내놓으라고 하면 굉장히 어이없고 막막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독들은 백성들에게 그정도 세금을 걷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던 직책이었던 거죠. 그런데 느헤미야는 어떻게 행동했다고 나와 있죠??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라고 말합니다.
느헤미야가 다른 총독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혹은, 타고난 정치꾼이어서 백성들에게 환심을 사려고 일부러 보여주기식 쇼를 하듯이 세금을 적당히 깎아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십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깊게 신경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여러분은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십니까? 혹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얘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이제 새로운 학기를 맞아서 각 학급에서 반장이나 부반장을 선출할건데~
사람은 내가 어느 자리에 서있냐에 따라사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달라지느냐는 여러분이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성벽 쌓는 일에만 힘을 기울였다. 내 아랫사람들도 뜻을 모아서, 성벽 쌓는 일에만 마음을 썼다. 그렇다고 우리가 밭뙈기를 모은 것도 아니다.

16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나는 성벽 쌓는 일에만 힘을 기울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을 따라서 나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에 힘을 기울였다는 것이죠. 즉,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느헤미야였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의 삶

그렇게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 있던지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느헤미야 이전에 있던 총독들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것이고, 느헤미야는 당연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세금을 내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지만, 불필요한 세금을 걷는건 인간의 도리로써 당연하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죠. 그래서 저는 이 15절만 읽었을때, 느헤미야가 전에 있던 총독들보다 상대적으로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생각이 이 말씀을 읽을 때 바뀌었습니다. 14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14  나는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에 유다 땅 총독으로 임명을 받아서, 아닥사스다 왕 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있었지만, 나와 나의 친척들은 내가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녹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

녹은 총독이나 국가에서 한 자리 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월급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화폐가 없었으니 금이나 은, 아니면 곡물, 올리브유, 양, 소와 같은 식재료나 가축으로 녹을 받았겠죠. 그런데 그걸 안 받겠답니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죠? 어찌되었든 총독이 나라를 위해서 힘써 일하고 피터지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이 녹을 받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걸 받지 않겠답니다. 그 이유가 17, 18절에 나와있어요.

나의 식탁에서는, 주변 여러 나라에서 우리에게로 온 이들 밖에도, 유다 사람들과 관리들 백오십 명이 나와 함께 먹어야 했으므로,

18  하루에 황소 한 마리와 기름진 양 여섯 마리, 날짐승도 여러 마리를 잡아야 하였다. 또 열흘에 한 차례씩은, 여러 가지 포도주도 모자라지 않게 마련해야만 하였다. 그런데 내가 총독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녹까지 요구하였다면, 백성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었겠는가!

느헤미야가 자신의 녹을 포기한 이유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를 위해서 백성들이 충분히 수고하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그들에게 불필요한 짐까지 지워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러니까 느헤미야는 그저 상대적으로 감동스러워 보이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로 감동을 주려고 쇼맨십을 보이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죠. 그리고 우리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는 이 두렵다는 단어를 경외라고 표현합니다. 경외는 나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대한 존재 앞에서 하나님께 압도되는 것을 느끼는 걸 경외라고 해요. 피지컬이 굉장히 좋은 사람 앞에서 괜시리 쫄게 되는게 경외가 아닙니다. 그 존재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어서 항상 그 존재를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경외라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이웃을들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세심하게 돌볼 수 있는 섬세한 눈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죠.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센스 때문에 누군가를 세심하게 돌보고 살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고 누군가에겐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면, 놀랍게도 여러분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주변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두 가지의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까?
두 번째 물음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존재 앞에 압도되어 항상 낮은 자세로 삶을 살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충분히 자신에게 유익한 것들을 챙기며 살아갈 수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가운데서 총독이라는 높은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세로 누군가를 섬기고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죠. 여러분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까?

3. Outro

언젠가 율법학자 중 한 명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떤 계명이 가장 위대합니까? 성경 말씀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 “아~ 다른 계명들은 1순위까지는 아니다? 후순위로 밀려도 된다?”라고 충분히 억지를 부릴 수 있는 것이었죠.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복22:37-40 함께 읽어봅시다.
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38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39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40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느헤미야는 율법에만 몰두해있던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그의 온 생각과 정신을 하나님께 집중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감동을 주는 것은 여러분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여러분의 내면에서부터 이 세상으로 흘러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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