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대적자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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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36:20-32
“말씀의 대적자”
2023. 12. 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말씀의 대적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예레미야 36장을 설교하면서 처음 제목은 “말씀의 전달자”였었고, 두번째 제목은 “말씀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말씀의 대적자”
이처럼 말씀에 대하여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이 때에, 그를 대신해서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또 그 말씀 사역에 동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말씀에 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말씀의 대적자가 나와요. 바로 남유다의 열여덟번째 왕인 여호야김 왕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여호야김이 왕이 된지 5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 해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왕이 되었고, 왕이 되자마자 군대를 소집해서 남유다에 쳐들어왔어요. 그리고 많은 백성들을 죽이고, 또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1차 포로 사건인데요. 이때 잡혀간 백성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이처럼 나라가 엄청난 사건을 겪게 되니까 슬픔과 탄식으로 가득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서기관 바룩이 예레미야를 대신해서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고, 그것을 성전에 가져가서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 여후디가 고관들에게 달려가 그 내용을 전달했어요. 고관들은 그것을 듣고 더 큰 환난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나라가 침략을 당해서 백성들이 끌려간 것보다 더 큰 ‘멸망의 환난’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그래서 이 두루마리 책의 내용을 시급하게 왕에게 알려야겠다고 판단을 합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왕이 바룩과 예레미야에게 해꼬지를 할까봐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깁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바로 앞에 19절까지 내용이에요.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데요.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고관들이 왕에게 가서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을 전달합니다. 20절을 봐 볼까요?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을 왕의 귀에 아뢰니.”
고관들이 왕에게 가는데, 가기 전에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갑니다. 고관들이 왕의 성질머리를 잘 알거든요. 이걸 그대로 들고 갔다가는 당장에 찢어버릴 걸 아니까, 방에 두고 간 겁니다.
그런데 바로 밑에 21절에 왕이 어떻게 해요?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시키죠. 21절에 보니까,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여후디를 시켜서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고 낭독하도록 시켰어요. 전에 여후디가 고관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여후디가 그 역할을 한 겁니다. 그런데 똑같이 말씀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반응이 너무나 다릅니다. 고관들은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두려워했죠. 16절에 보면,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놀랐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놀라다라는 말이 본래 “두려워하다” 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파하드”라는 말인데, “두려워하다, 무서워 떨다” 이런 뜻이에요. 고관들은 말씀을 듣고 너무나 무서워서 몸이 떨릴 정도로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왕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23절에 왕의 반응이 나오는데요. 2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왕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말씀을 면도칼로 베어서 화로 불에 태워버렸죠. 말씀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그 말씀을 칼로 자르고 불에 태운 겁니다.
지금 말씀에 보면 면도칼이 나오는데, 이 칼은 아마도 연필을 깎는 칼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까 정말 면도칼처럼 날카로웠겠죠. 그 칼로 두루마리를 베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베다”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카라으” 라는 말이거든요. 이 말은 “찢어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분명히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칼로 부드러운 두루마리 책을 잘랐는데, “자르다” 라고 하지 않고 “찢어버리다”라고 말씀을 했어요.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하면, 왕이 두루마리 책을 마치 찢어버리듯이 갈기갈기 난도질을 했다는 것입니다. 막 난도질을 해서 책이 찢어진 것처럼 너덜너덜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화로 불에 넣어서 태워버렸습니다.
얼마나 말씀을 우습게 여겼으면 말씀을 난도질해서 태워버려요. 그래서 밑에 24절에 보면,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반응이 달라도 너무 다르죠. 고관들은 말씀을 두려워했는데, 왕과 그의 신하들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나라의 지도자들이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라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나라의 지도자들이 말씀 앞에 두려워 떨며 엎드려도 모자랄 판국에, 말씀의 대적자가 되어서 말씀을 불태우고 있으니, 나라가 멸망하는 겁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런데, 비록 대적자에 의해서 말씀이 찢기고 불태워진다 할지라도, 여러분, 말씀은 사라지지 않죠. 사라진 것은 두루마리 책이에요. 그 안에 기록된 말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을 보면, 두루마리 책이 불태워진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자, 어떤 말씀이 임했습니까? 28절에 보니까,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너는 다시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두루마리가 불타버렸으면 다시 기록하면 되는 거예요. 열심히 써서 기록한 두루마리가 없어진 것이 아깝긴 하지만, 그뿐이에요. 다시 기록하면 그만입니다. 두루마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기록된 말씀이 중요한 겁니다.
두루마리를 찢고 불태운다고 해서 말씀이 사라집니까? 말씀은 영원합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두루마리에 기록되고 가죽에 기록되고, 돌에 기록되고, 종이에 기록되고, 어디에 기록되는지 그 종류는 계속해서 바뀌지만 그 내용은 바뀌지 않아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이,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처음 말씀 그대로 영원합니다.
말씀의 대적자가 아무리 찢고 태워도 소용 없어요. 말씀은 반드시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됩니다. 하나님이 다시 기록하라고 하신 것처럼, 새로운 두루마리가 만들어져서 전달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의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외면이나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 정말로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말씀을 보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반응이 다를 수 있어요. 두려워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대적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두려워하거나 대적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무조건 두려워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적하는 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두려워 떠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날로날로 시대가 악해져 가는 이 때에, 우리는 머뭇거릴 여유가 없어요. 두려움으로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해야만이 마지막 때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원하신 주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의 전달자로, 말씀의 동역자로, 복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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