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용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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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32:16-25
“무슨 소용 있나요?”
2023. 9. 6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무슨 소용 있나요?”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하나멜의 밭을 사고 난 직후에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위대 뜰에 갇힌 채로 부동산 매매계약을 통해서 은을 십칠 세겔을 주고 밭을 샀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보니까, “내가 매매 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매매 증서를 공증인에게 넘겨주자마자 기도를 시작한 겁니다. 자, 뭐라고 기도를 합니까? 밑에 17절을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아멘.
예레미야의 기도가 어떻게 시작을 합니까? 슬프도소이다. 자신의 슬픈 감정을 먼저 쏟아내고 있죠. 제가 전에도 말씀을 드렸었는데, 이 슬프도소이다 라는 말의 히브리어가 “아하흐”라는 말입니다. 아하흐. 이 말은 뜻이 없는 의성어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아이고! 이런 말이에요. 아이고, 아유~ 이렇게 탄식을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웬만해서는 잘 사용을 안 하는 말이에요. 대체적으로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는 말이거든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나, 적군이 포위한 절망적인 상황일 때 이 말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이 말을 했다는 것은, 그만큼 지금 예레미야의 마음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아하흐! 아이고, 주 여호와여! 지금 예레미야가 기도를 시작하는데 너무도 절망적인 심정으로 간절하게 하나님을 부르짖고 있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왜 갑자기 예레미야의 마음이 이토록 절망적이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위에 6절부터 15절까지를 보면, 이 내용이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예레미야가 밭을 산 내용이죠. 전시상황에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밭을 샀어요. 그리고 밭을 사고 나서 내가 밭을 산 것처럼, 백성들도 이 땅에서 다시 집과 밭과 포도원을 사게 되리라고 선포를 했습니다. 이 땅이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되리라는 것이죠.
그런데 예레미야가 이 말을 선포하고나서 갑자기 돌변해서 탄식을 하는 겁니다. 선지자가 회복에 대한 말씀을 선포해놓고 갑자기 절망을 해요. 왜 그럴까?
우리는 그 이유를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25절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25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예레미야가 절망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어차피 이 땅이 다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갈 텐데, 밭을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오늘 제목이 뭐였어요? “무슨 소용 있나요?” 밭을 사는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사봤자 다 뺏기는데 뭐 하러 사라고 합니까?
이것이 예레미야가 절망한 이유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이 밭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대신 빚을 갚아주고 산 거였죠. 그런데 유다 땅은 어떻습니까? 바벨론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속량하시는게 아니라, 아예 그냥 바벨론 손에 넘어가는 거거든요.
이럴 거면 뭐하러 밭을 사라고 했냐 이거예요. 바벨론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해야 의미가 있는 거지, 넘어가버리는데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시키니까 밭을 사긴 샀는데, 사놓고도 기가 막힌 거죠.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같고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한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 소용 없는 것으로 따지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 자체가 소용이 없는 일이죠. 어차피 다 하나님 배신하고 멸망할 건데 뭐하러 건져냅니까? 하나님 마음만 아프게 하고 바벨론에 멸망당할 텐데, 애굽에서 건져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소용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으셔요. 그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건져내셨습니다. 오늘 본문 18절부터 22절까지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일들이 기록되어 있어요.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은혜를 베푸시며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며,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여 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들을 이스라엘에 베풀어 주셨어요. 하나님의 은혜죠. 그런데 그 은혜가 무색하게도,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했어요. 23절이 그 내용입니다.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하나님이 이토록이나 큰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 겁니다. 은혜를 주면 뭐합니까? 배신해버리는데.
마찬가지로, 밭을 사면 뭐 하냐는 거예요. 어차피 뺏기고 말텐데. 지금 밭을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예레미야는 이것을 탄식하는 겁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의미 없는 일은 없습니다. 백성들을 사랑하시니까 애굽에서 건져내신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가장 큰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건져내시고, 사랑하셔서 은혜 주시고, 사랑하셔서 인도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더 무슨 의미가 필요합니까?
사람들은 뭔가를 행하면 그 결과를 바라봐요. 그리고 결과가 별로 안 좋으면 그 일을 한 것 자체를 비난합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안 될 거 뻔히 알면서 뭐하러 했냐? 괜히 힘만 들고 시간만 버리는데, 왜이리 지혜가 없냐?’ 이렇게 결과만 놓고 비난을 해요.
그러나 우리는 결과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열심히 해도 실패할 수 있죠. 어떻게 모든 일을 다 성공하겠습니까? 그런데 시작이 없으면 결과도 없어요. 일단 시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작했으면 끝까지 견고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아요. 여러분, 짐 엘리엇이라는 선교사님을 잘 아실 겁니다. 우리 담임목사님께서 여러번 예화로 드셨던 분이죠.
짐 엘리엇은 미국의 침례교 선교사였습니다. 일생을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을 하고 선교훈련을 받은 뒤에 동역자 4명과 함께 에콰도르 원주민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원주민 부족을 찾아가자마자 원주민들의 창에 찔려 죽고 말았습니다.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죽은 거예요. 그때 나이가 스물여덟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죽었어요.
이 사건을 두고 미국 사람들은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다른 데도 선교할 데가 많은데 왜 그런 험한 데를 가서 목숨을 버리냐? 어리석다. 미련하다. 모든 사람이 결과만 놓고 비난을 했습니다.
그러나 더 나중에 그 원주민 부족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짐 앨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앨리엇이 간호 훈련을 받고 그곳에 가서 의료선교를 했어요. 5년 동안. 그 원주민들은 남자만 죽이고 여자는 죽이지 않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년 동안 그곳에서 선교를 하고 5년 뒤에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날에 추장이 와서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누구길래 여기서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쓰고 수고합니까?” 그래서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5년 전에 당신들이 죽인 남자의 아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저도 여기에 온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원주민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죽였던 장본인은 그 부족의 최초의 목사가 되었고, 그곳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짐 앨리엇이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었지만, 그가 이 위대한 시작을 함으로 말미암아 그 원주민 부족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생 역시도 마찬가지죠. 예수님은 서른세살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그의 결과가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선한 사역을 시작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구원이 임했습니다. 죄에서 영죽을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작을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으로 담대하게 선한 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실패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실패가 두려워서 시작조차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시작했다면,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4절에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아멘.
시작했으면,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결과가 어떠하든지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경주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그리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이 그리 하셨던 것처럼, 짐 앨리엇이 그리 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일이 무엇이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든지, 교회를 섬기는 일이든지, 이웃을 돕는 일이든지, 선한 일을 시작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여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