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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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0:1-3
“이방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
2024. 1. 19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이방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풀려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예레미야가 바벨론으로 끌려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위에 39장 14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감옥 뜰에서 풀러났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라마에서 풀려났다고 나와요. 왜 말이 다를까요? 감옥 뜰에서 풀려났다고 하더니 왜 또 끌려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났다고 할까?
이것에 대해서 정확한 이유는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추측을 하기로는 아마도 예레미야가 풀려난 이후에 아히감의 아들 그달랴의 집에서 머물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갔을 때 바벨론 군사들이 일반 백성으로 착각을 하고 예레미야를 붙잡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박되어 라마까지 끌려간 것이죠.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8.5km 떨어진 곳입니다. 바벨론 군사들이 바벨론까지 가기 전에 여기서 한 번 포로들을 분류하기 위해서 멈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때 느부사라단의 눈에 예레미야가 보인 거죠. ‘어, 쟤는 내가 풀어줬는데 왜 여기 있지?’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다시 풀어준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다이렉트로 주어진 것이 아니에요.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됩니다. 누구를 통해서 전달됩니까? 바로 느부사라단을 통해서 전달이 돼요.
밑에 2절을 보면,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요. 이 말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입니다. 이방인 사령관을 통해서 말씀이 선포되는 겁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바로 이 장면을 위해서 예레미야가 다시 잡히게 하신 것 같습니다. 유다가 왜 멸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다른 누구도 아닌, 유다를 멸망시킨 장본인의 입을 통해서 증언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지금 이 만남을 설계하신 겁니다.
자,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사령관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2절과 3절인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절, 3절 시작,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아멘.
사령관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죠.
자업자득, 결국에 너희가 멸망한 것은 너희 죄 때문이다. 우리 바벨론을 원망할 게 아니라, 너희 스스로를 원망해라.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사실 이 말은 본래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유다 백성들에게 외쳤던 말입니다.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멸망이 임할 것이다.’ 이 말을 하루가 멀다 하고 외쳤어요. 하지만 백성들이 듣지 않았죠. 오히려 듣기 싫다고 예레미야를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어요.
그러다가 정말로 멸망을 당하고 난 후에,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겁니다. 그것도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 사령관의 입을 통해서. 일종의 충격요법이죠.
그런데 이게 듣는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질 수 있어요. 생각을 해보세요. 깡패가 갑자기 와서 나를 때려놓고 하는 말이, ‘네가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거야. 돌아가서 반성해.’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나겠습니까?
그러나 이게 현실이에요. 억울하면 깡패보다 힘이 세면 됩니다. 한 대 맞은 거 두 대 때리면 돼요. 하지만 힘이 없기 때문에 맞을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유다가 자초한 거예요. 여러분, 깡패를 보낸 분이 하나님이에요. 가서 손 좀 봐주라고 하나님이 깡패를 보내신 겁니다.
진작에 회개하고 순종했더라면, 입장이 반대가 됐겠죠. 유다가 바벨론을 쳐서 정복시켰을 겁니다. 하지만 회개의 기회를 수도 없이 놓치고, 끝내 불순종한 결과 멸망을 당하게 된 겁니다.
반면에 느부사라단은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의 예언을 허투루 듣지 않았습니다. 그 예언에 귀를 기울이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강대한 바벨론이 허약한 남유다를 멸망시키는 일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만하지 않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증언하고 있어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느부사라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위대한 신 중의 하나로 인정을 한 것 뿐이에요. 오늘 본문 2절에 다시 보면,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부릅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 이렇게 부르잖아요. 네 하나님 여호와. 내 하나님이 아니라 너의 하나님.
느부사라단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아요. 그냥 대단한 능력을 가진 신으로 인정을 하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방인 입에서 하나님을 증언하는 말이 나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작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외면하는데, 이방인이 하나님을 인정해요. 아이러니한 일이죠.
여러분, 이것은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백성일까요? 하나님의 백성도 때로는 실수할 때가 있죠.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할 때도 있고, 범죄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잘못된 길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 역시도 있습니다. 나를 살리려고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순종하는 자는 살 길이 열립니다. 예레미야와 구스인 에벳멜렉이 멸망중에도 죽지 않고 구원함을 얻은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사는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방인 불신자도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하물며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외면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죠. 믿음과 섬김과 구제와 봉사, 어느 방면에서든 불신자들보다 뛰어나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그 분의 일하심을 간증해야 합니다. 남에게서 전해듣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나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을 느끼고 체험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능력과 놀라우신 역사가 임하여 나의 입으로 하나님을 자랑하며 간증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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