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대가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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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32:26-35
“범죄의 대가”
2023. 9. 12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범죄의 대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응답해주신 말씀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탄식하면서 기도를 했죠.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이 나라가 어차피 멸망할 텐데, 지금 밭을 사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이렇게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라고 하셨거든요. 밭을 사는 행동을 이 땅이 회복되리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신 거죠.
그런데 예레미야는 이것이 불만이었어요. 아니, 하나님, 구해주시려거든 멸망하기 전에 구해주시지, 멸망한 뒤에 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탄식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 26절부터 마지막 44절까지가 그 응답이에요. 이 중에서 오늘은 26절부터 35절까지만 보겠는데요. 26절부터 35절까지는 왜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36절부터 44절까지는 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후에 어떻게 회복될 것인지에 대해서 약속하시는 내용이에요.
오늘은 먼저 왜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먼저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요.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되는데, 어떻게 시작을 합니까? 나는 여호와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 자신의 전능함에 대해서 말씀을 하셔요.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당하게 두시는 것이 능력이 없어서 그냥 두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유다를 구원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구원하지 않으시는 거죠. 하나님이 분명하게 이것을 짚고 넘어가시는 겁니다.
고대근동사회에는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해서 한쪽이 패배를 하면, 그것은 곧 그들이 믿는 신이 패배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이 졌기 때문에 우리가 졌구나. 이런 인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유다가 바벨론에 패배하면 그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을 해요? 여호와가 바벨론의 신에게 패배했구나. 이렇게 해석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그런 오해를 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너희가 바벨론에 패배해도, 그것은 내가 패배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무엇에 대해서 말씀하십니까? 유다가 바벨론에 패배하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자, 밑에 28절과 29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이 성을 갈대아인의 손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길 것인즉 그가 차지할 것이라. 이 성을 치는 갈대아인이 와서 이 성읍에 불을 놓아 성과 집 곧 그 지붕에서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하게 한 집들을 사르리니.”
유다가 갈대아인의 손과 느부갓네살 왕의 손에 넘겨지게 되고, 갈대아인이 와서 불을 지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29절에 보면, 갈대아인이 어디에다가 불을 지릅니까?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려 나를 격노하게 한 집들에다가 불을 지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에 유다가 바벨론에 패배하는 이유가 뭐라는 거예요? 바로 이 우상숭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알에게 분향하며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드린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이 격노하셔서 유다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게 격노하셨는지, 오늘 본문에 격노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는데요. 29절부터 32절까지, 총 다섯 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격노했다는 말을 다섯 번을 반복하시는 건데요. 세 번도 아니고, 네 번도 아니고, 다섯 번이나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극도로 화가 났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먼저 29절에는 “격노”라는 단어가 나와요. 이 말은 히브리어로 “카아쓰” 라는 말입니다. 카아쓰. 이 말은 평온한 마음을 휘저어서 화가 치밀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멀쩡히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려서 화가 치밀어 오르게 하는 거예요. 백성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화가 나게 만든 것이죠.
이 카아쓰라는 말이 29절에서 한번 나오고, 또 30절에서 한번 나와요. 그리고 32절에서 또 한번 나옵니다. 그런데 32절에는 격노라는 말로 안 돼있고, 노여움이라는 말로 돼있는데요. 똑같이 카아쓰입니다. 그러니까 카아쓰가 3번 나온 거죠.
그리고 31절을 보면, ‘노여움’이라는 말과 ‘분’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3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키므로 내가 내 앞에서 그것을 옮기려 하노니.”
백성들이 이 성이 건설된 날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의 노여움과 분을 일으켰어요. 여기서 노여움은 히브리어로 “아프”라는 말입니다. 아프. 이 말은 동물의 코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사람이나 동물이나 화가 나면 호흡이 거칠어지고 콧구멍이 커지죠. 그래서 아프는 코라는 뜻도 있으면서 동시에 분노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세요. 하나님이 화가 나서 코가 벌렁벌렁 하면서 콧김을 내뿜는 모습이 상상이 되십니까? 마치 황소처럼 씩씩거리면서 화를 내는 그런 모습을 우리가 떠올려 볼 수 있을 겁니다.
또 뒤에 “분”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이것은 히브리어로 “헤마”라는 말이에요. 헤마는 “열, 뜨거움” 이런 뜻입니다. 화가 나면 열이 오르잖아요.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서 폭발할 것 같은 그런 분노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보면, 가만히 있는 하나님을 백성들이 건드려서 화가 나셨는데, 얼마나 화가 나셨어요? 콧구멍이 커지고 머리에 열이 오를 정도로 엄청나게 화가 나셨다는 것이죠. 내가 이만큼이나 화가 났다는 것을 총 다섯 번에 걸쳐서 반복하면서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토록이나 화가 나신 이유는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만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우상숭배는 기본이고, 그밖에도 너무나 많은 죄를 지었어요.
30절을 봐 볼까요? 30절에 보니까,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예로부터 내 눈 앞에 악을 행하였을 뿐이라 이스라엘 자손은 그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나를 격노하게 한 것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백성들이 예로부터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했하였는데, 정말 선한 일을 한 것은 없고, 오직 악을 행하기만 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자손은 또 뭘 했어요? 우상을 마들었죠. “그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어요. 백성들이 손으로 우상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또 밑에 32절에서는요. “이는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모든 악을 행하여 내 노여움을 일으켰음이라 그들과 그들의 왕들과 그의 고관들과 그의 제사장들과 그의 선지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다 그러하였느니라.”
백성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저질렀다는 말씀이에요. 왕들뿐만 아니라, 고관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주민들이 다 우상숭배에 동참했어요.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권세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가 다 범죄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찌기 예레미야 5장 1절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었어요? 너희가 만약에 예루살렘 안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었죠. 그런데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없었어요. 정의를 행하는 자가 예루살렘 안에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소돔을 심판하실 때는 의인이 열 명만 있어도 용서하겠다고 하셨어요. 동성애와 온갖 죄악이 가득한 그 흉악한 소돔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의인 열 명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계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그 10분의 1, 고작 한 명에 대한 기대만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소돔보다도 못해요. 어떻게 의인이 한 사람도 없을 수가 있습니까? 차라리 소돔이 더 나아요. 어쩌면 소돔에는 의인이 아홉 명 있었을 수도 있어요. 열 명을 못 채워서 멸망했지만, 어쩌면 아홉 명 있었을 수도 있고, 여덟 명 있었을 수도 있고. 아무리 못해도 예루살렘보다는 많았을 겁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소돔보다 더 가증하고 흉악한 성이에요. 얼마나 가증하고 흉악한지, 오늘 본문 35절에 보면, 인신공양까지 했습니다. 35절을 봐 볼까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여기 보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나오죠. 전에도 몇 번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혹은 힌놈의 골짜기로 부르는 곳인데, 이곳에서 백성들이 이방 제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제사인가 하면, 자기 자녀들을 불에 태우는 인신공양이었어요. 이 인신공양은 암몬 족속이 섬기던 몰렉 신을 믿는 종교의 제사법입니다. 35절에 다시 보면,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고 되어 있죠. 몰렉 신을 섬기는 자들이 자기 자녀들을 불에 태웠어요. 어떻게 자기 자녀를 불에 태울 수가 있습니까? 도저히 인간이 할 짓이 아니죠. 그런데 이런 짓을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화가 나시겠습니까 안 나시겠습니까? 화가 나실 수밖에 없어요. 이런 놈들을 어떻게 그냥 용서해주겠습니까? 만약에 그냥 용서해주면, 과연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회개할까요? 그럴 리가 없죠. 오히려 하나님이 허용해주셨다고 하면서 더 우상숭배에 열심을 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심판을 당해야 합니다. 멸망을 당해야 돼요. 이 나라에 대대적인 수술이 들어가야 돼요. 모든 암세포와 종양을 다 제거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사망해요.
하나님이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죽이려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살리려고 이 백성들을 수술대에 올리시는 겁니다. 물론 그 수술이 과격하죠.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고, 겨우 숨만 붙은 채로 연명하게 만들어요.
성벽은 무너지고, 성읍은 불타고, 백성들은 창칼에 찔려 죽고,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가요. 말 그대로 빈사상태가 됩니다. 식물인간이 되는 거죠.
그러나 그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주 죽이실 수도 있지만, 숨을 붙여두셨어요. 격노하고 또 격노하셨음에도 마지막 순간에는 그들에 대한 긍휼하심으로 완전히 숨통을 끊지 않으시고 살려두신 겁니다.
그리고 훗날 그들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소망을 주십니다. 겨우 눈만 끔뻑끔뻑 하고 있는 유다가 다시 팔이 자라나고, 다리가 자라나고, 건강을 회복하여서 이 땅 가운데 우뚝서게 될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 회복의 약속이 36절부터 이어져요. 이것은 다음 시간에 볼 텐데요. 어쨌거나 하나님은 아무리 격노하고 분노하신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소망의 끈을 내려주십니다. 우리의 범죄와 완악함에 대한 대가로 매섭게 회초리를 치시지만, 그 가운데 회복의 연고를 우리에게 발라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반드시 범죄의 대가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끝이 아니에요. 그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믿음을 지키며, 우리의 삶으로 믿음을 증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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