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게 하리라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33:23-26
“돌아오게 하리라”
2023. 10. 20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돌아오게 하리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회복의 책의 마지막 단락입니다. 예레미야 30장부터 33장까지 네 장을 묶어서 회복의 책이라고 하는데요. 회복의 말씀이 집중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이 네 장을 묶어서 회복의 책이라고 부릅니다.
이 회복의 책의 결말부에는 다윗의 왕권과 제사장직이 회복되리라는 약속이 세 번에 걸쳐서 나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은 마지막 세 번째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봐 볼까요? 2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에 두 가계를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하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하지 아니하도다.”
자, 여기 보면 “이 백성”이 나오고 “내 백성”이 나와요. 이 백성은 이방민족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내 백성은 이스라엘이죠. 이방민족이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있는 현실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에 두 가계를 버리셨다고 조롱하고 있다는 겁니다.
두 가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가계를 하나님이 버리셨다. 이것을 이방민족이 조롱을 해요. 그러면서 두 가계를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나라도 아니라는 거죠. 나라로 인정을 안 해줘요. 그만큼 두 가계가 국제사회에서 조롱당하는 처지가 된 겁니다.
그러나 밑에 25절부터 반전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24절은 이방민족이 조롱하는 말이라면, 25절부터는 회복의 말씀이에요. 25절과 26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아멘.
25절에서 하나님이 주야와 맺은 언약과 천지의 법칙을 말씀하십니다. 주야와 맺은 언약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위에 20절에 있는 언약이죠.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 낮과 밤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자연세계에 대한 언약입니다. 이 땅이 존재하는 한,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 언약을 과거 노아에게 주셨어요. 이 언약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낮과 밤이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어요.
누구도 이 언약을 폐할 수 없고, 누구도 낮과 밤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언약을 두고 다시 한 번 회복의 약속을 주시는 거예요. 어떻게 주십니까? 가정법을 사용해서 주시는데요.
만약에 낮과 밤의 언약이 없다고 한다면, 다윗의 자손 중에서 그 백성을 다스릴 자도 없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낮과 밤의 언약이 없습니까? 있잖아요. 명백하게 낮과 밤의 언약이 지금까지도 존재해요. 그렇기 때문에 다윗의 자손 중에서 그 백성을 다스릴 자도 존재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없으면 저것도 없다. 그러나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도 있다. 아주 심플하죠. 낮과 밤의 언약이 존재하는 한, 다윗의 왕권에 대한 언약도 존재합니다.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가 반드시 택함을 받고 일어납니다.
여러분, 여기서 다스릴 자는 누구겠습니까?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 이게 누구예요?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다스릴 자는 복수형태로 쓰여져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모쉘림” 이라는 말인데요. “통치자들, 다스리는 자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다스리는 자가 한 사람이 아니에요. 여러 명입니다. 실제로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들이 여럿 있었죠. 느헤미야, 에스라, 스룹바벨, 백성들의 리더가 각자 맡은 사명에 따라서 여러 명이었어요.
느헤미야는 무슨 사명을 갖고 있었습니까? 성벽을 재건하는 사명이었죠. 에스라는요? 율법책을 낭독함으로써 영적 회복을 일으키는 사명이었어요. 스룹바벨은요? 성전을 재건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이처럼 각자 맡은 사명을 위해서 택하심을 입은 통치자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뒤에 마지막으로 택하심을 입은 통치자가 오시는데, 그 분이 누구예요? 바로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고 구원하시는 구속의 사명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이 마지막에 오셔요.
앞서 여러 통치자들을 통해서 포로된 자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고, 예배가 회복되고, 성전이 재건되고, 성벽이 재건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그 후에 마지막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마침내 죄와 사망의 결박에서 그의 백성들을 해방하시고 영원한 평강과 자유를 주십니다.
그래서 26절 맨 끝에를 보면,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어요.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사실 이 26절은 회복의 책이 시작되는 예레미야 30장 3절의 말씀과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예레미야 30장 3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여호와의 말슴이니라 보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아가게 할 날이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니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아멘.
여기에는 포로들을 돌아오게 하고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6절에는 어떻게 말씀하셔요?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돌아오는 건 똑같은데 그 뒤에 붙는 말씀이 다르죠. 30장에서는 “그들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33장에서는 “내가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포로들이 돌아오면, 잃어버렸던 이스라엘 땅을 다시 차지하고 다시 그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됩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회복, 육적인 회복이죠.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온전한 회복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또 뭐가 회복되어야 합니까? 영이 회복돼야 돼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는 말을 히브리어 문자적으로 보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사랑하듯이,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영의 회복이고 진정한 회복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회복이라는 것은 사는 형편이 풀리고 다시 잘 먹고 잘 사는 게 회복이 아니에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이전까지 하나님은 백성들으 내버리셨어요. 나를 거역하고 우상을 따르는 패역한 백성들을 버려 이방민족의 먹잇감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서 이방민족이 조롱한 것처럼, 두 가계를 버리셨어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그들을 버리신 겁니다. 내 자식이 아닌데 돌볼 필요 있습니까? 버려야죠.
그러나 그 끊어졌던 관계가 다시 회복됩니다. 내버린 자식을 다시 데려와서 내 아들로, 내 딸로 받아주시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다시 베풀어주십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이실 정도로 지극하신 사랑으로 사랑해주십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버리면서까지 베푸시는 그 사랑, 그 사랑을 우리가 받은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그 목숨을 십자가에서 버리심으로 우리가 자유를 얻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지, 이방민족이 조롱하고 핍박하고 손가락질해도,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이미 승리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담대하게 승리한 백성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