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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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31:31-34
“새 언약”
2023. 8. 1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새 언약”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새 언약에 대한 내용입니다. 새 언약,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시는 겁니다. 옛 언약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언약을 이제 하나님께서 맺어주셔요.
옛 언약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과거에 시내산에서 모세와 맺으신 언약인데요. 그래서 보통 ‘모세 언약’ 혹은 ‘시내산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모세 언약은 기본적으로 조건적 언약입니다. 너희가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을 것이고, 안 지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요.
그래서 모세 언약은 철저하게 행위언약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잘 지켜야만 돼요. 율법을 잘 지키는 그 행위로써 구원을 받는 겁니다. 이것이 옛 언약이에요. 그래서 출애굽기 19장 5절과 6절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인데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그런데 조건이 뭡니까?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조건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언약을 맺어주십니다. 그 내용이 이제 오늘 본문인데요. 오늘 본문 3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새 언약의 ‘새’ 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하다솨” 라는 말인데요. 이 말은 완전히 새롭다, 라는 말입니다. 원래 있던 것을 더 좋게 만드는 차원이 아니라,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래서 밑에 3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은 이전에 맺은 언약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맺은 언약을 여기서는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고 나서 시내산에서 맺은, 모세 언약을 가리키고 있어요. 새 언약은 이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뭐가 다른가? 자, 32절 후반절을 다시 보면요.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하나님과 백성들의 관계를 남편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를 하시는데요. 신부가 남편을 배신하고 언약을 깨뜨렸어요.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긴 것이죠. 그래서 언약이 깨졌습니다. 시내산 언약이 깨진 겁니다. 그래서 그 뒤로 엄밀히 따지면 하나님과 백성들은 남남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펴서 혼인관계가 끝났으니까 남남이죠. 그런데 희한하게도 전 남편이 계속 전 부인을 돌봐줘요. 혹시 굶고 살지는 않나, 어디 가서 맞고 살지는 않나, 남몰래 쌀도 갖다 놓고, 옷도 갖다 놓고, 사나운 짐승들도 쫓아주고, 전 부인이 모르게 돌봐줍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그렇게 돌봐주신 거예요. 이미 남남이 됐기 때문에 돌봐줄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몇 백 년을 계속 돌봐준 겁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또다시 하나의 언약을 맺으셨어요. 이 언약은 새 언약은 아니고요. 새 언약을 맺기 전에 다른 언약을 먼저 하나 맺으셨어요. 이 언약은 다윗과 맺은 언약입니다. 그래서 ‘다윗 언약’이라고 그래요.
다윗 언약은 모세 언약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 언약은 언약 대상이 누구인가 하면,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입니다. 모세가 대표로 언약을 맺긴 했지만, 이스라엘 전체가 언약 대상이었어요. 반면에 다윗 언약은 다윗과 그의 자손들이 대상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다윗 왕조가 대상이에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너의 집과 너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약속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여기에도 조건이 있어요. 언약의 당사자들이 신실해야 한다는 것이 그 조건입니다. 다윗의 왕위가 영원하겠지만, 만약에 왕이 신실하지 않다면, 반드시 징계를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사무엘하 7장 14절인데요. 사무엘하 7장 1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아멘.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징계하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신실하다면 영원히 그 나라가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들이 어땠죠? 신실했습니까? 당장 그 아들인 솔로몬부터가 죄를 범했어요. 온갖 나라와 혼인동맹을 맺으면서 온갖 잡신을 들여와서 나라가 우상 천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아들 대에 나라가 둘로 분열이 돼버리잖아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돼버렸어요.
그 나라가 영원하리라는 언약을 다윗과 맺었는데, 다윗의 손자대에 언약이 깨진 겁니다. 그래도 다행히 다윗 언약이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어요. 나라가 분열이 되고, 차례대로 북이스라엘이 망하고 남유다도 망하지만, 다윗의 혈통만은 끊어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했어요. 그리고 이 혈통을 통하여 누가 오십니까? 예수님이 오시죠.
하나님께서 바로 이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될 새로운 언약을 이제 맺으시는데요. 이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옛 언약은 조건이 있었어요.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행위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은요, 조건이 없어요. 내가 뭔가를 지켜야 한다거나 실행해야 한다는 그런 조건이 없어요. 무조건적 언약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면, 조건이 없어요. 오늘 본문 33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이 없죠. 모세 언약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지만, 새 언약은 그런 조건이 없어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백성들의 속에 두시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해주십니다. 백성들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주셔요.
밑에 34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마음에 율법을 기록해주시니까 백성들이 어떻게 됩니까? 힘들게 여호와를 알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여호와를 알게 돼요. 이미 마음속에 율법이 내면화되어서 굳이 알려고 안 해도 하나님을 알고, 어떻게 거룩하고 신실하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다 알아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악행을 사해주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도 않겠다고 하십니다. 뒤끝 없이 한방에 다 용서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 조건 없이, 뒤끝 없이, 모든 백성을 용서해 주시고, 자기 백성 삼아주신다.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정말로 엄청난 언약이죠. 계약으로 따지면 불공정 계약이에요. 백성들한테만 좋고, 하나님한테는 하나도 안 좋은 계약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셔요. 바람나서 떠나버린 전 부인에게 한없이 유리한 새로운 혼인계약서를 들고오셨어요.
그리고 이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되는데, 아직 도장을 안 찍었습니다. 아직 도장을 찍을 때가 안 됐어요.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맺겠다고는 하셨는데, 아직 확실하게 언약을 맺지는 않으셨어요.
여러분, 과연 언제 새 언약을 맺으실까요? 오늘 본문 31절을 다시 봐 보면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날이 이르리니. 날이 이르러야 새 언약을 맺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날이 언제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릅니다. 가장 유력한 견해는 두 가진데요. 하나는 바벨론 포로들이 돌아오는 회복의 때가 그 날이다, 라는 견해이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때가 그 날이다, 라는 견해입니다.
두 견해 다 일리가 있어요. 그런데 이 중에 우리 교단이 믿는 견해는, 두 번째 견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때. 여러분, 새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인하여 맺어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성취되는 것입니다. 언약을 맺음과 동시에 성취되는 거예요. 무엇을 통해서요?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그래서 누가복음 22장 20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아멘.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실 때,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눠주시고 하신 말씀인데요. 무엇으로 새 언약을 새운다고 하십니까? 내 피로, 예수님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써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15절에서는 예수님을 “새 언약의 중보자”라고 표현합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 중보자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죠. 하나님과 백성이 1대1로 직접 언약을 맺으시는 게 아니에요. 중간에서 예수님이 중보자가 되셔서 대신 언약을 맺으시는 겁니다.
사실은 새 언약도 반드시 행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어요.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백성들을 대신해서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백성들을 대신해서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겁니다. 그로 인해서 조건이 충족됐어요. 그래서 백성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새 언약의 수혜를 입게 된 겁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모든 죄가 사해진 것이죠.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 겁니다.
그래서 이 새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에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모든 손해를 감수하시면서까지, 심지어 자기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배신하고 떠난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한 번 신부로 맞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고, 이 은혜를 받기 위하여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거저 주십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종교에도 없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복을 받기 위해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해요. 불교에서는 뭐가 있습니까? 108배가 있죠. 소원을 빌면서 108배를 해요.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될 때까지 108배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세상의 종교는 복을 받기 위한 대가로서 뭔가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이미 모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이미 자기 아들을 대가로 바치셨어요. 그리고 그 아들은 중보자로써 기꺼이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찬양했죠? “날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받은 우리, 어찌 찬양 안 할까.”
어찌 찬양 안 할까. 그 은혜를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은 그 은혜를 날마다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기억하며, 날마다 그 감격을 되새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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