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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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32:1-5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2023. 8. 2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제목을 한번 따라해 볼까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본래 미국의 유명한 야구 감독이 한 말입니다. 자기 팀이 꼴찌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로 한 말인데, 결국에 그 해에 월드시리즈 결승까지 진출을 하게 됩니다. 비록 패배하고 말았지만, 꼴찌팀이 결승까지 진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불굴의 정신으로 정말 놀라운 결과를 이뤄낸 겁니다.
마찬가지로, 유다 백성들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에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지금 정말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어요. 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1절 시작, “유다의 시드기야 왕 열째 해 곧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아멘.
이 말씀에 보면, 지금이 어느 때인지 시간적 배경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시드기야 왕 열째 해라고 말하고 있죠. 시드기야가 왕이 된지 10년이 됐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언제 멸망하는지 아십니까? 시드기야 왕 열한째 해에 멸망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1년 뒤면 나라가 멸망하는 거예요. 1년 밖에 안 남았습니다. 정말로 마지막 때가 다가왔어요. 1년이 지나면 다 끝나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뭘 의미하겠습니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은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말해도 안 듣는데, 마지막 1년 동안 말한다고 듣겠습니까? 들을 리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마지막 1년을 그냥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멸망을 1년 앞둔 시점에 예레미야에게 말씀을 주셨어요. 그래서 예레미야가 그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시드기야 왕이 화가 나서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가둬버립니다. 그것이 2절 말씀인데요. 2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 때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으니.”
예레미야가 말씀을 선포했다가 유다의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언제였는가 하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는 때였어요. 바벨론 군대가 물 샐 틈 없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이 급박한 순간에,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를 가둬버린 겁니다.
지금 시드기야는 살기 위해서 뭘 해야 합니까?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 앞에 엎드려 순종해야 돼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를 가둬버려요.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씀을 주시는데, 그것을 걷어차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2절 말씀을 다시 살펴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우선 바벨론 군대라는 말을 봤을 때, 여기에 단어가 하나 빠졌어요. 왕이라는 글자가 빠졌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아니고, 바벨론 왕의 군대라고 해야 맞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개역개정에는 왕이라는 글자를 빼버렸어요. 이러면 성경이 전달하는 의미를 제대로 알 수가 없거든요. 여러분 혹시 펜을 갖고 계시면, 바벨론 하고 군대 사이에 왕이라는 글자를 써놓으십시오. 반드시 왕이라는 글자가 들어가야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2절 뒤에 유다의 왕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의도적으로 바벨론 왕과 유다 왕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바벨론 왕이라는 말이 앞에 나와야 돼요.
2절을 다시 보시면, 바벨론 왕의 군대가 뭘 에워싸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어요.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해서 가둬놓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뒤에 보면, 유다의 왕은 누구를 가둬놨죠? 예레미야를 가둬놨어요.
이게 큰 의미가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은 적군의 왕에 의해서 갇혔어요. 그런데 예레미야는 같은 민족의 왕에 의해서 갇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적군이 아니라 같은 민족의 왕에 의해서, 그것도 이 급박한 위기 상황 가운데 갇힌 겁니다.
성경은 바로 이러한 대조적인 그림을 통하여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를 핍박하고 힘들게 하는 대적은 밖에 있지 않아요.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어쩌면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 혹은 내 가족이 나의 대적일 수 있어요. 신앙을 거부하고, 내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밀어내고 관계를 단절해버리는 그런 사람이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드기야 왕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대표잡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반드시 가장 먼저 시드기야 왕을 변화시켜야 돼요. 왕이 변화되어야 신하들이 변화되고, 백성들이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왕이 변화되고, 왕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줘도 1년 안에 나라가 변화될까 말깐데, 오히려 왕이 앞장서서 예레미야를 가둬버린 겁니다. 이게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물론 왕의 입장에서도 아무 이유 없이 예레미야를 가둔 것은 아닙니다. 이유가 있어요. 오늘 본문 3절에서 5절에 그 이유가 있는데요. 3절을 보면, 3절부터 5절까지 절 구분이 없죠. 왜 이렇게 해놨냐면, 한글로 번역을 하려다 보니까 이것을 나눠놓기가 애매한 거예요. 그래서 뭉뚱그려서 3절부터 5절을 한데 모아놨어요.
하지만 본래 히브리어 원문에는 정확하게 3절, 4절, 5절이 나눠져 있습니다. 영어성경도 마찬가지고요. 심지어 천주교 공동번역 성경을 봐도 나눠져 있어요. 희한하게 개역개정만 이렇습니다. 개역개정이 참 문제가 많아요.
어쨌거나 3절부터 5절 말씀이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를 가둔 이유인데요. 지금 이 말씀은 시드기야가 하는 말입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한 말씀을 시드기야가 거꾸로 예레미야에게 들려주는 장면이에요.
“야, 예레미야, 내가 너를 가둔 이유는 네가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야.” 라고 하면서 예레미야가 선포한 말씀을 시드기야가 그대로 따라서 읊어주는 겁니다.
자, 시드기야가 뭐라고 읊어줍니까? 3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부터 시드기야가 하는 말인데요.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입이 이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 가리니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갈대아인과 싸울지라도 승리하지 못하리라 하셨다.” 여기까지. 여기까지 시드기야가 말한 겁니다.
시드기야가 이 말을 예레미야에게 읊어주면서도 기가 막혔겠죠. 안 그래도 지금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인데,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바벨론을 이기지 못하고 다 포로가 된다는 말을 하는데, 성질이 안 나겠습니까? 특히나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갈 거라는 말은 너무 심하잖아요. 그래서 시드기야가 예레미야를 가둔 겁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예레미야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 앞에 가서 “나라는 패배하고, 당신은 바벨론에 잡혀갈 겁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기가 쉽지 않겠죠. 저도 못할 것 같아요.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목이 날아갈 수도 있잖아요. 기회를 보면서, 곧이곧대로 하지 말고, 좀 지혜롭게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예레미야는 곧이곧대로, 하라고 하는 그대로 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제 정말 시간이 없기 때문에. 뭔가 다른 방법을 쓸 수가 없어요. 어떻게든 1년 안에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그대로 해야만 됩니다. 주시는 말씀 그대로 선포하는 거예요. 가라고 하면 가고, 서라고 하면 서고.
예레미야라고 목숨이 안 아깝겠습니까?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어요. 죽으면 죽으리라, 목숨을 걸고 선포하는 겁니다. 비록 내가 살리려는 저 사람이 나를 죽이려 한다 할지라도, 달려가는 겁니다.
내 가족이 죽게 생겼는데, 친구가 죽게 생겼는데,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어딨어요? 비록 내가 핍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게 된다 할지라도 내가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면 붙잡혀서 고난을 당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갔어요. 그것이 사명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앞길에 어떤 고난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우리 사명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사명이 무엇입니까? 첫번째는 예배이고, 두번째는 전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에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전도를 통하여 이웃을 구원하는 겁니다.
우리 이웃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요. 어쩌면 1년의 시간이 남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요. 우리 가족들, 우리 이웃들, 남은 시간 안에 살려야죠.
올해 우리나라에 참 비극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서 아까운 목숨이 너무 많이 사라졌어요. 내년이라고 다르겠습니까? 우리가 그 사고 현장에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어요.
우리가 정말로 하루를 일년처럼, 충실하게 보내야 합니다. 언제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하나님께 칭찬 받을 수 있도록, 예배에 충실하고 전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맡은 사명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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