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의 차별대우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39:11-18
“공평하신 하나님의 차별대우”
2024. 1. 1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공평하신 하나님의 차별대우”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에 대해서 기록한 단락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는 시드기야 왕이 받은 대우에 대해서 봤었죠.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에 시드기야가 어떻게 됐습니까? 밤에 몰래 성을 빠져나가서 도망을 치다가 여리고 평원에서 잡혔어요. 그리고 눈앞에서 아들들이 다 죽고, 그 뒤에 두 눈이 뽑힌 채로 결박되어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다가 쓸쓸하게 죽었어요.
한 나라의 왕의 최후라기에는 너무나도 비참하고 초라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아무리 왕이라도 그 최후는 좋을 수가 없어요.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볼 텐데요. 먼저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예레미야에 대한 처우가 나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사령관 느부사라단에게 예레미야를 이러이러하게 대우해라. 명령을 내려요.
자, 뭐라고 명령을 내립니까? 12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느부갓네살이 아주 놀라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예레미야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그가 말하는 대로 다 해줘라. 패망한 나라의 일개 백성에게 너무나도 좋은 대우를 해주죠. 여러분, 느부갓네살이 왜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좋은 대우를 해줄까요?
느부갓네살은 하나님도 모르는 이방인이거든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예레미야를 좋게 대우했을까? 그 이유는 아무도 모릅니다. 성경에도 없고, 역사서에도 그 이유가 안 나와요. 다만 우리가 추측하기로는, 느부갓네살이 아마도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서 들었던 것 같애요. 유대인 포로들에게서 들었겠죠. ‘예루살렘에 예레미야라고 하는 선지자가 있는데, 아 글쎄 바벨론에 항복을 해야 된다고 예언을 하고 다녀서 미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뭐 이런 말을 전해들었겠죠.
그래서 예레미야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좋은 대우를 해준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하는 겁니다. 물론 정확한 이유는 몰라요.
어쨌거나 느부갓네살의 명령으로 인해서 예레미야가 좋은 대우를 받게 됩니다. 밑에 13절을 보면, 예레미야를 위해서 바벨론의 실세들이 다 사람을 보내요. 13절에 보니까, “이에 사령관 느부사라단과 내시장 느부사스반과 궁중 장관 네르갈사레셀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이.”
여기 보면 이름들이 나오죠. 사령관 느부사라단, 내시장 느부사스반, 궁중 장관 네르갈사레셀, 이 사람들이 바벨론의 실세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 왕의 모든 장관도 나오죠. 이 사람들이 전부 왕의 명령을 받고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냈어요. 그만큼 예레미야를 존귀하게 대우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밑에 14절에 보면, 사람을 보내서 어떻게 하는지가 나오는데요.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를 감옥 뜰에서 데리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넘겨서 그를 집으로 데려가게 하매 그가 백성 가운데에 사니라.” 아멘.
바벨론의 실세들이 사람을 보내서 예레미야를 대우를 해주는데, 그런 것 치고는, 사실 별 게 없습니다. 금은보화를 준다거나, 높은 벼슬을 준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감옥에서 데려다가 집으로 보내줬어요.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미 망한 나라의 일개 백성을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베푼 겁니다. 거기다 호위들까지 붙여서 안전하게 집으로 보내주잖아요. 엄청난 사건이에요.
그동안에 예레미야는 감옥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38장 28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날까지 감옥 뜰어 머물렀더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바벨론에 항복해야 된다고 예언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겁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나니까 바벨론 왕이 사람을 보내서 풀어줬어요.
참 희한하죠. 하나님의 선지자를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옥에 가뒀어요. 그리고 그 선지자를 이방인이 풀어줘요. 원래는 거꾸로 돼야 맞죠. 이방인이 감옥에 가둔 것을 하나님의 백성이 풀어줘야 맞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반대로 유다 백성들이 감옥에 가두고, 하나님도 모르는 이방인들이 와서 선지자를 건져줍니다.
지금 유다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타락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을 뿐더러, 하나님의 선지자를 감옥에 가둬요. 이것은 말씀을 더이상 듣기 싫다는 겁니다. 듣기 싫으니까 아예 들리지 않는 데다가 처박아 논 겁니다. 이게 남유다의 현실이었어요.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해요.
그러니 그들의 최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대적하는 자는 멸망 밖에는 길이 없어요.
반면에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요? 하나님이 살 길을 주시고, 그에게 복을 주십니다. 예레미야가 그 복을 받았잖아요.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 해하지 말며 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
또한 오늘 본문 16절에 보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또 한 사람이 등장을 합니다. 바로 구스인 내시 에벳멜렉이에요. 에벳멜렉은 얼마 전에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시드기야 왕을 찾아가서 예레미야를 살려달라고 청원을 했던 사람입니다. 자기 목숨을 걸고 왕에게 가서 청원을 했어요. 그래서 그 청을 듣고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건져내라고 허락을 해줬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잊지 않으시고, 에벳멜렉에게 복을 주십니다. 어떤 복을 주십니까? 오늘 본문 17절, 18절인데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7절, 18절 시작,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아멘.
하나님이 어떤 복을 주셨어요? 구원의 복을 주셨죠. ‘너를 구원하리라.’ 17절과 18절에 자세히 보면, 구원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17절에 “너를 구원하리니” 18절에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하나님께서 구원하겠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하시면서 반드시 구원하겠다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18절에 다시 보면,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는 이유가 나오죠.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에벳멜렉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 이유 없이 예레미야를 위해서 목숨을 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믿었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 예레미야를 살려달라고 간청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예레미야도 살고, 본인도 구원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분명하게 우리의 결과가 차별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요. 우리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십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목사님을 통해서, 이웃을 통해서 복음을 듣게 하셔요.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절대로 공평하지 않습니다. 차별이 있어요. 어떤 차별입니까?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을 당하는 차별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는 자만이,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공평하신 하나님께 차별대우 받지 않도록 범사에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함으로, 존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