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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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2:1-5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2024. 2. 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스마엘에게 잡혀가던 백성들이 구출을 받고 애굽으로 도망을 가던 길에 게롯김함에 머물렀다는 내용을 함께 봤는데요.
바벨론 왕이 세운 총독이 죽고, 바벨론 군사들까지 죽었기 때문에 바벨론이 보복을 할까봐 두려워서 애굽으로 도망을 치다가 잠시 정비를 하기 위해서 게롯김함에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지금 머물고 있는 백성들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있어요. 우리 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많은 사람들이 나오죠. 모든 군대의 지휘관들도 있고, 또 요하난과 여사냐도 있고, 또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함께 모여 있습니다. 남녀노소 모든 백성들이 모여 있어요. 군인도 있고, 정치인도 있고, 농부도 있고, 다같이 모여 있어요.
그런데 이 백성들이 갑자기 무엇을 하는가 하면, 예레미야를 찾습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예레미야에게 찾아와서 뭘 합니까? 기도를 부탁하죠. 2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어요. “우리의 탄원을 듣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소서.”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기도를 부탁하면서 중간에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이렇게 불러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나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니라, 예레미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마치 나의 하나님과 당신의 하나님이 따로 있는 것처럼, 선을 긋고 있습니다. 밑에 3절에서도 마찬가지예요. 3절에도 보니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또 5절에서도 그래요. 5절에도 보면,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이처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아요. 계속해서 당신의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 거리를 두고 있죠. 이것은 마치 예레미야 40장에서 바벨론 사령관 느부사라단의 모습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예레미야 40장 2절에 보면,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에게 이런 말을 하거든요.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느부사라단이 뭐라고 하나님을 부릅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 이렇게 불러요. 너의 하나님 여호와. 지금 이 장면은 느부사라단이 여호와의 능력을 인정을 하고 있는 장면이거든요. 우리 바벨론이 유다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이렇게 인정하는 장면이에요.
그러면서도 느부사라단이 하나님을 믿지는 않기 때문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죠.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의 하나님.
또 역대하 9장에도 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요. 역대하 9장에는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와서 어려운 질문으로 시험을 하는 모습이 나와요. 그런데 솔로몬이 막힘이 없이 다 대답을 하니까 스바 여왕이 감탄을 하면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역대하 9장 8절인데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하시고 그 자리에 올리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왕이 되게 하셨도다 당신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려고 당신을 세워 그들의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이방인 스바 여왕도 하나님을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죠. 왜냐하면 내가 믿는 하나님이 아니니까.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선을 긋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게롯김함에 있는 백성들의 모습이 이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 마치 이방인처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그것을 꼬집는 말을 하는데요. 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아멘.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다 말하겠다고 대답을 하죠. 그런데 그 전에 하나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너희 하나님 여호와” 이렇게 부르고 있어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
이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바로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너희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왜 자꾸 너희의 하나님이 아닌 것처럼 말을 하느냐,’ 이런 책망이 담긴 말로 볼 수가 있겠죠.
그래서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을 합니다. 4절에서도 그랬고, 또 20절과 21절에서도 말을 해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
여러분,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 같은 하나님이지, 나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이 따로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셔요.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 이삭이 믿은 하나님, 바울이 믿은 하나님,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 모두가 동일한 한 분이십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해야 돼요.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런데 왜 각각 다른 하나님인 것처럼 거리를 두고 구분하느냐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어쩌면 남유다를 멸망시키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싶어하지 않는 저항심리 때문에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쉽게 말해서, 나에게 복을 주면 나의 하나님, 나에게 재앙을 주면 남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나의 하나님이면, 범사에 복을 주고 잘되게 해야지, 왜 재앙을 주고 멸망을 시키시는가? 아,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서 그렇구나. 이런 식의 논리를 유다 백성들이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제대로 된 신앙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일부러 재앙을 주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영을 더욱 정결케 하기 위해서 때로는 불 시험을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 13절에 이 불 시험에 대해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어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불 시험을 주셔요.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잠깐 이 고난을 당하지만, 반드시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주십니다.
고난이 오면, 우리는 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내가 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더 하나님을 찾고 의지해야 돼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고난이 오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쌩 돌아서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는 정말로 멸망이 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복을 받을 때나 고난을 받을 때나 동일하게 언제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믿는 나의 하나님께 내가 직접 나아가서 구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복 주고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구하여서 크신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