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전하라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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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37:11-21
“그래도 전하라”
2023. 12. 12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그래도 전하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가 시드기야 왕을 만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왕을 만나서 자신에 대해서 변론할 기회가 생긴 거예요. 그것을 우리가 함께 다시 살펴볼 텐데요.
먼저 오늘 본문 11절을 보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바벨론 군대가 떠나게 됩니다. 애굽의 군대가 밑에서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바벨론 군대가 잠깐 물러난 거죠. 그리고 그때 예레미야가 틈을 타서 고향에 가려고 해요. 그게 12절 말씀인데요. 12절에 보니까,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가운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예레미야가 갑자기 예루살렘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분깃을 받으려고. 아마도 자기 고향에서 자기가 받을 분깃이 있어서 그것을 받으려고 가려고 한 것 같아요. 그동안에 바벨론 군대가 포위를 하고 있어서 나갈 수가 없었는데, 지금 물러갔으니까 기회가 생긴 거죠. 그래서 이 틈에 일을 보고 와야 겠다고 생각을 한 겁니다.
예레미야는 지금 바벨론 군대가 잠깐 물러갔다가 다시 올 거라는 걸 알잖아요.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 얼른 가려고 하는 거죠. 그런데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누군가가 갑자기 예레미야를 붙잡아요.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이리야”라고 하는 문지기가 예레미야를 붙잡는데요. 1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우두머리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이르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예레미야가 베냐민 문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붙잡힙니다. 이 베냐민 문은 예루살렘 성문 중에 북쪽에 있는 문이에요. 여기로 나가면 베냐민 지파의 땅이 나오기 때문에 문 이름이 베냐민 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에서 문지기에게 잡혔어요. “이리야”라고 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문지기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러니까 관문장이죠. 이 사람이 예레미야를 딱 알아봤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누구의 손잡니까? 하나냐의 손자죠. 하나냐. 하나냐는 예레미야 28장에 나오는 거짓 선지잡니다. 28장에 보면,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예레미야를 대적하고 조롱을 하죠. 예레미야가 그때 목에 나무 멍에를 메고 예언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냐가 그 멍에를 빼앗아서 꺾어버렸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하나냐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는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냐 네가 금년에, 올해에 죽으리라. 그랬더니 정말로 그 해에 죽었어요. 말씀이 임하고 나서 불과 두 달 뒤에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손자가 예레미야에 대해서 악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예레미야 저 인간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런 앙심을 품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던 차에 자기가 지키고 있는 베냐민 문으로 예레미야가 온 거예요.
옳다쿠나! 때는 이때라, 하고 예레미야를 붙잡아 버립니다. 그리고 누명을 씌워요. 뭐라고 누명을 씌웁니까? 13절에 보니까,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예레미야 네가 몰래 밖으로 나가서 바벨론에 항복하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의 일급기밀들을 들고 가서 누설하려고 하는구나. 나라를 팔아먹고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구나. 이런 누명을 씌우는 겁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악감정을 가지고 일부러 그렇게 누명을 씌우는 거예요. 그래서 14절에 예레미야가 아무리 아니라고 변명을 해도 이리야가 듣지 않죠. 그리고 고관들에게 끌고 가서 고관들이 예레미야를 때리게 하고, 감옥에 가둬버립니다.
그런데 정식 감옥에 가둔 것이 아니고,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뒀어요. 15절에 보니까, “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그러니까 정식으로 재판을 해서 감옥에 가둔 게 아니라, 불법적으로 서기관 요나단의 개인 가정집에다가 가둔 겁니다. 그런데 그것도 방에 가둔 게 아니에요. 밑에 16절을 보면, 어디다 가뒀어요? “뚜껑 씌운 웅덩이”에 가뒀죠. 뚜껑 씌운 웅덩이. 이것은 아마도 우물이었을 겁니다. 깊게 땅을 파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는 그런 우물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예레미야를 가뒀던 것으로 볼 때, 이제는 물이 말라서 사용하지 않는 폐우물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뚜껑을 덮어논 거죠. 안 쓰니까.
물론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긴 한데요. 어떤 사람은 곡식을 저장하는 저장고였다고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물을 저장하는 작은 저수지였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땅을 깊게 파서 사람의 힘으로는 혼자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구덩이였다는 것은 확실해요. 그런 데다가 예레미야를 가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심지어 뚜껑까지 있어요. 뚜껑으로 덮어서 햇빛도 못 보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내가 그냥 고향에 일이 있어서 가던 것 뿐이었는데, 누명을 쓰고 뚜드려 맞고, 구덩이 속에 몇 날을 갇혀 있어요. 천장은 뚜껑을 덮어서 빛도 안 들어옵니다. 그 좁고 어둡고 습한 곳에서 혼자 얼만 무서웠겠습니까? 그런 곳에 있으면 건강한 사람도 병이 들어요. 몸도 병이 들고 정신적으로도 병이 듭니다. 웬만한 사람은 정신병 걸립니다. 아무도 없는데 꼭 누가 있는 것 같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정상적으로 버틸 수가 없어요.
그렇게 극한 상황에 놓여져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뚜껑이 열리더니 빛이 들어오고, 드디어 밖으로 나가게 돼요. 17절에 보니까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를 밖으로 끌어내죠. 며칠 만에 빛을 보고, 그 좁은 우물에서 겨우 빠져나왔어요. 그러면 당연히 자기를 밖으로 빼내준 사람에게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고맙지 않겠어요?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왕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드릴 것은 없고, 대신에 왕을 위해서 기도라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법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레미야가 그런 말을 하지 않죠. 오히려 간땡이가 부었는지, 해서는 안 될 말을 합니다. 17절 끝에 보니까 뭐라고 말을 해요?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왕 당신이 바벨론의 왕에게 패배하고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한 겁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정신이 나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몸도 축나고 정신적으로도 혼란스러워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자기가 어떤 상황에 놓여져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만 했던 겁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였어요? “그래도 전하라” 그래도 전하라. 몇날 며칠을 우물 속에 갇혀 있었다든지, 그것을 시드기야가 빼내줘서 고맙다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간에, 전해야 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야, 네가 갇혀 있어서 무서웠지? 그래도 전해라. 시드기야가 빼내줘서 고맙지? 그래도 전해라. 아무리 무섭고, 아무리 고마워도, 그래도 너는 전해라.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전했어요.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 물론 예레미야라고 해서 왜 무섭지 않았겠어요. 내가 이 말을 왕에게 그대로 전하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죠.
그래서 밑에 18절부터 20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왕에게 통사정을 하죠. 특히 20절에 보면 왕에게 사정사정 해요. 나를 요나단의 집, 그 감옥으로 다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고. 20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 20절 시작, “내 주 왕이여 이제 청하건대 내게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두렵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죽는 게 두렵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나를 감옥으로 돌려보내지 마십시오. 부탁을 해요.
예레미야도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목숨이 소중합니다. 심장이 강철로 된 사람이 아니에요. 똑같이 두렵고 똑같이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 사명을 버릴 수는 없었어요. 내가 살겠다고 전해야 할 말을 거부할 수가 없는 겁니다. 내가 살고 싶은 것은 살고 싶은 거고, 그래도 전할 것은 전해야 되는 거예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내가 할 말을 하는 것, 감옥에 갇히고 빛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완수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랬고, 신약의 사도들이 그랬어요. 그리고 이제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중요한 일이 있어도, 어떤 사정이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죠. 이 두 가지 큰 계명을 그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선시 해야 합니다.
예배와 전도, 봉사와 섬김. 주님을 위해서, 또 이웃을 위해서 세상의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며 충성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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