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32:36-42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2023. 9. 15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응답해주신 말씀의 내용입니다. 앞에 26절부터 35절까지 먼저 유다가 왜 멸망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고, 이어서 36절부터 44절까지, 멸망한 유다가 회복되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은 바로 이 회복에 대한 말씀인데요.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역사의 주관자시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일을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요. 모든 행사의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37절부터 42절까지 보면, “내가” 라는 말이 총 다섯 번 나오거든요. 회복을 이루는 자가 바로 나다, 라는 것이죠. “내가” 이 일을 행하는 주관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앞에 29절부터 32절까지 말씀에는 하나님의 분노에 대한 표현이 다섯 번 나왔었는데요. 격노, 노여움, 분, 이런 말이 다섯 번 나왔어요. 그만큼 하나님께서 크게 분노하셨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뭐가 다섯 번 나와요? “내가” 나 하나님이 모든 분노를 가라앉히고 너희를 회복시키는 주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가, 내가. 너희를 살릴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36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말하는 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긴 바 되었다 하는 이 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지금 이 말씀의 시작에 어떤 말씀이 나옵니까?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 본문 앞에는 유다가 왜 멸망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말씀이 나와요. 유다가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다. 그래서 멸망당해 마땅하다. 이것이 35절까지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바로 뒤에 “그러나”가 나오는 겁니다. 유다가 멸망당해 마땅하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회복시킬 것이다. 이런 말이죠.
그래서 이 “그러나” 라는 말을 기점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마치 딴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분위기며 어조가 완전히 달라져요.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분명히 같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계신데, 두 단락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37절 말씀을 봐 볼까요? “보라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자, 여기서 첫번째 “내가”가 나오죠. 하나님이 행하실 첫번째 회복의 역사입니다. “내가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들여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여 안전히 살게 할 것이라.”
이 말씀 안에서 핵심은 “돌아오게” 라는 말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었는데요. 이 말이 히브리어로 “슈브”라는 말이에요. 돌아오다, 돌아가다. 이런 뜻인데요. 예레미야서에서 회복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잡혀간 백성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복의 핵심이죠. 하나님께서 지금 그것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쫓아 보냈던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실 첫번째 회복의 역사입니다. 이때 돌아온 백성들이 어떻게 살게 됩니까? 안전히 살게 됩니다. 또 밑에 38절에 보면, 새언약을 다시 말씀하시는데요. 38절에,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시는 것에는 단순히 고향에 돌아오는 것만을 말하지 않아요. 돌아와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고향으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거예요. 이것이 슈브입니다.
그리고 밑에 39절을 보면, 두 번째 행하시는 일이 나옵니다. 39절을 봐 볼까요?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아멘.
하나님게서 두 번째로 무슨 일을 행하십니까? 백성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십니다. 한 마음과 한 길은 지금까지 백성들이 갖고 있던 마음과 완전히 다른 마음과 길입니다. 지금까지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 하고 죄악으로 가득한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가는 길도 사악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마음을 주셔요.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는 마음을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마음으로 선한 길을 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선한 길을 가게 하시는 목적은 그들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우리에게서 뭔가 자유를 빼앗는다거나 우리 삶을 통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우리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특별히 39절에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에게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백성들과 그 후손이 복을 얻어요.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복을 위하여. 그러니까 결국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까지.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경외할 수록 복을 받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복 받으려고 경외해서는 안 되겠죠. 그러면 순서가 잘못 된 거예요.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때 복을 주시는 것이지, 복을 받기 위해서 경외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외할 때에 그 중심을 보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한 마음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순전한 경외, 순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백성들을 회복해 주십니다. 이것이 두 번째 회복의 역사입니다.
이어서 세 번째는요, 40절입니다. 4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세 번째 회복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백성들을 떠나지 않겠다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으리라는 영원한 언약.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말이죠. 이 언약은 나중에 성취됩니다. 언제 성취됩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써 성취되죠. 예수님의 또다른 이름이 뭐예요? 임마누엘이죠.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임마누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서 이 언약이 성취돼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며 한 마음으로 주를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히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세 번째 회복입니다.
네 번째도 보겠는데요. 41절에 보니까,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이 땅에 심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땅에 심으리라. 심는다는 것은 백성들을 다시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셔서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시겠다는 표현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일을 행하실 때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여러분, 이 말씀을 본다면 하나님께서 마치 이 일을 하기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모습이 연상이 되실 겁니다. 정성을 다하신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정성”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애쓰는 모습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 정성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네페쉬”라는 단어인데요. 네페쉬는 “생명” 혹은 “영혼”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네페쉬는 그 사람의 전부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시편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라는 구절들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 영혼이 바로 네페쉬입니다. 내 영혼, 내 모든 것이 온전히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영혼을 다하여 백성들을 심으시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죠. 독생자를 희생의 제물로 바치셨잖아요. 자기 자신을 바치신 겁니다. 백성들을 위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네 번째 회복의 역사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42절입니다. 4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백성에게 이 큰 재앙을 내린 것 같이 허락한 모든 복을 그들에게 내리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분노하셨을 때 행하신 일과 새롭게 회복하시는 일을 대조해서 말씀하시는데요. 분노하셨을 때는 백성에게 큰 재앙을 내리셨죠. 37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노여움과 분함과 큰 분노로 백성들을 쫓아보내셨어요.
하지만 이제는 모든 분노가 사라지고, 백성들에게 모든 복을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모든 복. 여기서 복은 히브리어로 “토브”라는 말입니다. 토브는 “좋다, 선하다” 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선하고 좋은 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복이나 형통의 복이나 평강의 복, 이러한 것을 포함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좋은 것을 주셔요. 아니,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어서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것들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셨어요.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사망 권세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하며 모든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어요. 내가, 내가, 내가.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우리를 위하여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외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선하고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도 온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우리 생명을 다하여서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