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통한 회복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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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0:4-12
“이방인을 통한 회복”
2024. 1. 22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이방인을 통한 회복”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이방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제목이었는데요. 오늘은 이방인을 통한 회복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방인을 통해서 회복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크게 두 개의 장면으로 나뉘는데요. 먼저는 예레미야가 회복되는 장면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 군사들에게 잡혀서 끌려가다가 라마에서 극적으로 풀려나게 됐죠. 바벨론의 사령관 인 느부사라단이 풀어줬어요.
오늘 본문 4절을 봐 볼까요? 예레미야를 풀어주면서 느부사라단이 하는 말인데요. 4절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당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를 풀어주면서 두 가지의 선택지를 줍니다. 나와 같이 바벨론으로 가든지, 아니면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든지. 둘 중에 선택을 하라고 그래요. 둘 중에 뭘 선택해도 상관없는데, 다만 나와 같이 바벨론으로 간다면 그때는 선대하리라고 말합니다. 선대하리라. 이 말은 히브리어 문자적으로 보면, ‘너의 위에 나의 눈을 둘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너의 위에 나의 눈을 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항상 너를 지켜보겠다는 말이죠. 내가 관심을 가지고 너를 잘 보살펴 주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바벨론의 사령관이면, 권력서열 5위 안에 드는 실세 중의 실셉니다. 그런 권력자가 보살펴주겠다고 하는데, 여러분이면 안 가겠습니까? 어느날 미국에서 국무총리가 날아와서 집도 주고 차도 주고, 내가 잘 대우해주겠다면서 미국 가자고 하면 안 갈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다 가죠. 그야말로 성공이 보장된 길이잖아요.
반면에 고향땅 유다로 가면, 거기에는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죠. 나라가 망해버렸는데 뭐가 있겠어요? 성벽도 무너지고 집도 무너지고 논밭도 쑥대밭이 돼버렸어요. 거기 가봤자 유익이 없습니다. 그냥 바벨론으로 가는게 나아요.
그런데요. 예레미야가 어디를 선택합니까? 자기 고향을 선택하죠. 왜냐하면 그곳이 옳은 곳이기 때문에. 아까 4절 마지막에 느부사라단이 뭐라고 했습니까? 바벨론으로 가든지 아니면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유다로 가는 것이 예레미야에게는 옳은 선택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예레미야가 유다로 가려고 그래요. 그런데 그때 느부사라단이 다시 말을 합니다. 5절인데요. 5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아멘.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에게 그다랴에게로 가라고 말을 하고 있죠.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 이 사람을 바벨론 왕이 유다의 총독으로 세웠어요. 이 사람에게 가라는 겁니다.
본래 예레미야가 라마에 잡혀오기 전에 그다랴의 집에 있었습니다. 감옥 뜰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를 느부사라단이 꺼내서 그다랴의 집으로 보냈었거든요. 그런데 그다랴의 집에 있다가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러 나왔어요. 바로 이때 바벨론 군사들에게 다시 잡힌 겁니다. 누군지 모르고 잡았겠죠. 그냥 일반 백성인 줄 알고 잡아서 라마까지 끌고 갔을 때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를 보고 다시 풀어준 겁니다. 내가 전에 보냈던 그다랴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라.
그런데 이게 강제적인 것은 아니에요. 이번에도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든지.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고 보내줍니다.
그래서 밑에 6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살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방인 사령관을 통해서 회복이 된 거죠. 본래 머물던 그다랴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회복을 얻은 겁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에 기록된 첫번째 회복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회복이 이제 나오는데요. 7절에 보니까, 들에 있는 모든 지휘관과 그 부하들이 바벨론의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그 땅을 맡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잡혀가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게 됩니다. 여기서 들에 있는 지휘관과 부하들은 유다 군인들입니다. 바벨론에게 패배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패잔병들이에요. 이들이 그다랴에 대한 소문을 들었어요. 어떤 소문이에요? 바벨론 왕이 그다랴에게 유다를 다스리도록 맡겼다는 소문이죠.
그 소문을 듣고 병사들이 그다랴에게 모여드는 겁니다. 8절에 보면, 그들 중에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와 그들의 사람들이”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에게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 두 사람이 중요한데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 그리고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 이 두 사람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 중요한지는 다음 시간에 보도록 하고요. 어쨌거나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그다랴에게 몰려왔어요.
그리고 그다랴가 이 사람들에게 맹세를 합니다. 어떤 맹세인가 하면, 너희가 만약에 바벨론의 왕을 섬기면 너희가 유익하리라는 맹세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라는 거예요. 그러면 너희가 대접받고 잘 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밑에 10절에 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유익이 있을 것인지를 말하는데요. 10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10절 시작, “보라 나는 미스바에 살면서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장하고 너희가 얻은 성읍들에 살라 하니라.”
자, 바벨론을 섬기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저장할 수 있는 유익이 있죠. 여기서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은다는 말은 평화를 의미합니다. 이런 것을 전쟁시에는 모을 수가 없죠. 평화로울 때만 가능해요.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포도주를 담그고 과일을 수확하고 있겠어요.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을 수 있는 평화가 온다는 겁니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큰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미스바로 몰려와요. 밑에 11절에 보면, 모압과 암몬 자손 중과 에돔과 모든 지방에 있는 유다 사람들이 소문을 듣게 되죠. 그래서 12절에 보면, 그 모든 유다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12절 같이 읽어볼까요? 12절 시작, “그 모든 유다 사람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으니라.” 아멘.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던 유다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각처에서 돌아와요. 그리고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으게 됩니다. 그다랴가 맹세했던 것처럼, 바벨론을 섬기니까 유익을 얻은 거죠. 더이상 전쟁도 없고 환난도 없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마음껏 포도주를 담그며 여름 과일을 모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것도 조금 모은 게 아니에요. 심히 많이 모으니라. 엄청나게 많이 모았다는 겁니다. 그만큼 유다에 큰 회복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게 다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진 겁니까? 이방인 사령관 한 사람을 통해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어요.
그다랴를 유다의 총독으로 세워지게 하고, 예레미야를 그다랴에게 돌아가게 하고, 각처에서 유다 백성들이 모여들게 만드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한 사람을 이 일의 플레이메이커로 사용하셨어요.
예전에 담임목사님께서 설교중에 예화를 하나 드신 적이 있죠. 미국의 한 교회가 큰 빚을 졌는데, 스님이 한 사람 와서 그 빚을 다 갚아줬다는 이야기를 하셨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스님이 몇 백억이나 되는 빚을 갚아준다는 것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말이 안 되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을 쓰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처럼 이방인 불신자들을 쓰실 때도 있습니다.
느부사라단도 그런 경우예요. 이방인 사령관이지만, 이 사람을 통해서 예레미야와 유다에 회복을 부어주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오는 도움도 마찬가집니다. 나와 같은 신앙의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을 때도 있지만, 불신자에게서 도움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요. 그 뒤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계십니다.
시편 121편 1절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질문을 하죠. 그러면서 2절에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우리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시고,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을 수 있는 평화를 주십니다.
그 분을 신뢰하며 오늘 하루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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