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가 되다

예레미야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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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1:11-18
“도망자가 되다”
2024. 2. 2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도망자가 되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 총독 그다랴를 죽인 이스마엘이 도망자가 되어 쫓기는 장면을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이고, 또 그와 함께 있던 유다 사람들과 바벨론 군사들까지 다 죽이고, 심지어 순례자들까지 70명을 죽인 것을 함께 봤는데요.
이 이스마엘 한 사람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고 공동체가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이스마엘이 남은 백성들을 사로잡아서 암몬으로 끌고 가려고 그래요. 이 백성들을 끌고 가서 암몬에 팔아넘기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다행히 그 전에 이스마엘이 저지른 일들이 밝혀지게 됩니다. 암몬으로 이제 막 떠났을 때 비밀이 탄로나요. 오늘 본문 11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11절 시작,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을 듣고.”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을 요하난이 들었습니다. 그다랴가 죽은지 이틀 뒤에 알게 된 거죠. 아마도 요하난은 이때 유다 군사들과 함께 다른 곳에 출타중이었던 것 같아요.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까 치안이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이곳저곳 순찰을 다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을 이스마엘이 알고 순찰을 나갔을 때 그다랴를 죽인 것이죠. 방비세력이 없을 때 은밀하게 그다랴를 죽이고 백성들을 사로잡아서 도주를 하는 거예요. 하지만 뒤늦게라도 요하난이 모든 사실을 알아차리고 추격을 시작합니다.
12절에 보니까, “모든 사람을 데리고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싸우러 가다가 기브온 큰 물 가에서 그를 만나매.”
요하난이 이스마엘을 추격하다가 기브온 큰 물 가에서 따라잡게 됩니다. 12절 본문에는 “그를 만나매” 만났다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 만났다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차” 라는 말입니다. 마차. 이 말은 “찾다, 발견하다” 이런 뜻이에요.
이것은 우연히 찾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헤매다가 마침내 그것을 찾아냈다는 의미를 담은 말입니다. 밭에서 땅을 파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금을 발견했다는 게 아니에요. 밭 어딘가에 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온 밭을 뒤집어 엎다가 찾아내는 겁니다.
마치 이와 같이 요하난이 이스마엘을 잡으려고 이 잡듯이 뒤지는 거예요. 그러가닥 마침내 찾아낸 것이죠. 어디서요? “기브온 큰 물 가”에서.
그런데 이것은 상당히 이상한 장면입니다. 본래 이스마엘이 어디로 가려고 했습니까? 암몬으로 가려고 했죠. 암몬은 예루살렘 동편 요단강 건너 동쪽으로 더 쭉 가야 나옵니다. 그런데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어요. 이스마엘이 동쪽으로 도망을 가야 되는데, 오히려 서쪽으로 도망을 간 겁니다. 왜 이스마엘이 암몬으로 곧장 가지 않고 정반대쪽에 있는 기브온으로 도망을 갔을까요?
그 이유는 이스마엘이 죽이지 않고 살려둔 10명의 순례자들이 숨겨놓은 그 재산을 습득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순례자 80명 중에 70명을 죽이고 10명을 살려뒀잖아요. 그 열 명이 밀과 보리와 기름과 꿀을 숨겨놓은 장소를 알려줄 테니까 살려달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열 명을 살려주고 지금 그것들을 가지러 가는 겁니다. 언제 요하난이 눈치채고 쫓아올지 모르는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기브온에서 딱 잡히고 말죠. 기브온 큰 물가에서 잡혔는데, 이 물은 시냇물이 아니고 연못을 뜻하는 말입니다. 고고학자들의 발견에 의하면, 깊이가 약 25미터 정도 되는 큰 연못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스마엘이 잡힌 거예요.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요하난과 군대가 왔을 때 잡혀있던 백성들이 기뻐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잡혀서 암몬에 팔려갈 처지였는데, 구원군이 오니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밑에 14절에, 사로잡혀 있던 백성들이 모두 구출됩니다. 14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이에 미스바에서 이스마엘이 사로잡은 그 모든 백성이 돌이켜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로 돌아가니.”
요하난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이스마엘을 패퇴시키고 잡혀있던 모든 백성을 구출했는데, 이때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백성이 요하난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이스마엘이 백성들 중에 한 사람도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름대로 왕족 출신이고 또 왕의 장관이었는데, 한 명의 백성도 포섭을 못했어요. 그만큼 그가 인망이 없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밑에 15절에 보면, 본래 이스마엘과 같이 있던 열 사람 중에 두 사람이 사라졌어요. 15절에 보니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
여덟 사람. 본래 열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두 명이 사라졌어요. 이 두 명은 어디로 갔을까요? 둘 중에 하나겠죠. 요하난과 싸우다가 두 명이 죽었든지, 아니면 이 두 명도 요하난에게로 돌아갔든지.
대체적으로 후자로 봅니다. 이 두 명이 요하난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싸움을 했다는 기록이 없거든요. 그냥 두 세력이 맞닥뜨리자마자 백성들이 요하난에게로 돌아가고, 이스마엘 편도 여덟 사람으로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아마도 이 두 사람이, 이스마엘과 더 같이 있다가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요하난에게로 간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스마엘은 자기 부하들에게까지 인망을 잃은 사람이죠. 얼마나 사람이 못났으면 자기 부하들도 떠나버려요. 그래서 이스마엘은 여덟 사람만 데리고 암몬으로 도망을 칩니다.
민족의 원수인 바벨론이 세운 총독을 암살하면서 뭔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일한다는 명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에 그는 그냥 잔인한 살인자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서 이방 땅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요하난은 어떻습니까? 그다랴가 안전해야 공동체가 안전하다는 생각으로 우리가 먼저 이스마엘을 죽여야 한다고 그다랴를 설득했었죠. 그리고 이스마엘이 백성들을 사로잡아 갈 때, 요하난은 그 백성들을 구출해냅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총독 그다랴가 죽으면서 구심점이 사라졌었는데, 요하난이라고 하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을 한 거예요. 우리를 구원해준 요하난, 군인 출신에 따르는 군사들도 많으니까 이 격동기에 의지할 만한 능력도 되고. 여러모로 따를만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어요. 오늘 제목이 뭐였습니까? “도망자가 되다” 이스마엘이 도망자가 되어서 암몬으로 도망을 쳤는데요. 문제는 요하난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요하난도 도망자가 되고 말아요. 요하난은 어디로 갑니까? 애굽으로 가요.
오늘 본문 17절과 18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17절, 18절 시작,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이는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바벨론의 왕이 그 땅을 위임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였으므로 그들이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요하난이 애굽으로 가려고 떠났어요. 왜냐하면 갈대아 사람이 두려워서. 갈대아 바벨론 군대가 다시 쳐들어올까봐 도망을 치는 겁니다.
자기 딴에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애굽으로 도망을 쳤겠죠. 총독이 죽어버렸으니까 괜히 유다에 있다가 해꼬지를 당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바벨론을 막아줄 수 있는 애굽으로 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스마엘하고 뭐가 다릅니까? 이스마엘이 암몬을 믿었다면, 요하난은 애굽을 믿은 겁니다. 애굽이라면 우리를 도와주겠지. 우리를 살려주겠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애굽을 향해서 떠났어요. 17절 말씀에 보면, 애굽으로 가던 길에 게롯김함에 머물렀죠. 게롯김함은 “김함의 거주지, 김함의 야영지” 이런 뜻입니다. 과거에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을 칠 때 바르실래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요. 그게 고마워서 나중에 다윗이 바르실래를 왕궁으로 데려가서 벼슬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르실래가 나이가 너무 많아서 그것을 사양하고, 대신에 자기 아들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다윗이 데려다가 대우를 해줬는데, 그 아들이 이름이 바로 김함입니다. 히브리 발음으로 하면, “키므함” 이라는 이름인데요.
그래서 아마도 이 게롯김함이라는 땅은 김함이 다윗에게서 선물로 받은 땅이었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다윗을 도와준 대가로 받은 땅, 그런데 지금 그 땅에 유다 백성들이 애굽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 머물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정비를 하고 다시 애굽으로 떠나려고 하는 거죠.
그러나 여러분, 애굽으로 간다고 선한 것이 있겠습니까? 애굽이 지금은 멀쩡해도 얼마 안 있어서 애굽도 똑같이 멸망을 합니다. 예레미야 2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열방을 향하여 심판을 선포하셨는데, 그때 애굽도 진노의 술잔을 받아 멸망하리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지금 애굽에 가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애굽도 멸망을 하기 때문에. 그러면 그때는 또 어디로 도망을 가겠습니까? 이스마엘처럼 암몬으로 갈까요? 그 어디로 가도 유익이 없어요. 그냥 지금 이 유다 땅에서 머물러 사는 것이 상책입니다.
비록 총독이 죽고 또 바벨론의 보복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이 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곳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셔요. 그래서 오늘 본문 밑에 42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셔요.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아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땅에 눌러 앉아 사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살아라. 떠나지 말아라. 왜냐하면 내가 이미 너희에게 내린 모든 재난을 돌이켰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습니다. 나에게서 떠나지 말라는 거예요. 이 떠난다는 것이 단순히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이 떠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에요.
지금 요하난과 백성들이 애굽으로 떠나는게 단순히 몸만 가는 게 아닙니다. 마음도 같이 가는 거예요. 과거에 애굽에서 종살이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에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처럼, 지금 애굽에 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 말라는 거예요. 다른 것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그곳이 어디든지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임하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도망자가 됩니다. 환난과 역경 앞에서 도망치고, 사람에게서 도망치고, 직장에서 도망치고, 계속해서 도망치는 도망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으로 도망쳐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두렵고 무섭더라도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땅에 머물러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담대하게 맞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의 삶을 살아갈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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