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후에 또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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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벽설교>
예레미야 44:1-14
“멸망 후에 또 멸망”
2024. 2. 19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멸망 후에 또 멸망”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금 남유다는 이미 멸망을 해서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수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간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소수의 백성들이 모여서 살 길을 찾아 애굽으로 떠났습니다. 애굽에 가면 우리가 보호도 받고 뭔가 먹고 살 방도가 있으리라고 기대를 한 것이죠.
하나님께서 분명히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그 말씀을 거역하고 기어이 가고 맙니다. 그런데 애굽에 가면서 예레미야를 데리고 갔어요. 성경에는 예레미야를 거느리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거느리다” 라는 말의 히브리어 뜻이 본래 “잡아가다, 끌고가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억지로 끌고간 거예요.
끌고 간 이유는 애굽에 가서도 예언을 듣기 위해서 끌고 간 거겠죠. 예언을 믿지도 않으면서 그래도 예언을 듣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애굽까지 끌고 갔는데,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예레미야가 예언을 또 한번 했어요. 어떤 예언을 했습니까? 뭐 똑같은 예언이죠. 너희가 애굽에 들어가면 죽는다.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와서 너희들을 다 죽이고, 또 애굽에 있는 우상들도 다 깨버릴 것이다. 이런 예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을 듣고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을 했을까요?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저도 모릅니다. 성경에 안 나오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알 수 있죠. 백성들이 귓등으로도 안 들었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오늘 본문을 보면 알 수 있죠. 오늘 본문 1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에 임합니까? 애굽 땅에 사는 유다 백성들에게 임하잖아요. 유다 백성들이 애굽 땅에 살아요.
1절에 보니까,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결국에 백성들이 예레미야가 한 예언을 무시하고 그냥 애굽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겁니다. 아마도 애굽에 들어와서 산지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아요. 애굽 땅에 들어와서 한 곳에서 안 살고 여러 곳으로 흩어져서 살고 있잖아요. 믹돌, 다바네스, 놉, 바드로스, 여러 곳으로 자기들 눈에 보기 좋은 곳으로 각자 흩어진 겁니다.
그런데 그 모든 유다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 말씀이 14절까지 쭉 이어지는데요. 내용이 길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말씀입니다. “너희가 나를 진노하게 만들어서 멸망을 하였는데, 너희가 또 나를 진노하게 만들어서 멸망을 당할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처럼, 멸망 후에 또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들어서.
자, 오늘 본문 2절을 봐 볼까요?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난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사는 사람이 없나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모든 유다 성읍에 재난을 내리셨습니다. 남유다가 멸망을 한 거죠. 그리고 그것을 애굽에 있는 백성들이 봤어요. 뭐 보기만 했겠습니까? 보고, 듣고, 몸으로 겪었죠. 그런데 그 재난이 왜 온 겁니까? 3절에 그 이유가 나와요. 3절에 보니까,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음이라.”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노여움으로 재난을 내려 심판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똑같은 짓을 지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밑에 7절로 가서 봐 볼까요? 7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하려느냐.”
하나님께서 화가 나면서 또 너무 안타까워서 지금 하소연을 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서 또 멸절을 당하려고 하느냐? 하나님께서 탄식을 하셔요.
우상숭배와 불순종 때문에 멸망하는 것을 직접 겪어놓고도 왜 똑같은 짓을 반복할까?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한 일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안타까운 것이고, 잘못했으면 또 벌을 받아야죠. 오늘 본문 11절부터 14절까지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 번 심판 당했지만, 또 받아야지 어쩌겠습니까? 11절에 보면, 11절 끝에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온 유다를 끊어버릴 것이며.”
또 12절에 보면,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13절에는요.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할 것이고, 마지막 14절에서는,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긴 말씀이지만 결국에 결론은 뭐예요? 너희가 다 죽는다는 말이죠. 애굽 땅에 있으면 다 죽는다. 14절에 보면 유일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애굽 밖으로 도망치는 자들은 살아요.
유다 백성들은 살기 위해서 애굽으로 왔거든요. 그런데 애굽 밖으로 도망쳐야 산다는 겁니다. 이것을 백성들이 받아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애굽에 와서 몇 년 동안 이렇게 잘 정착하고 살면서 아무 탈이 없었는데, 애굽으로 나가라고 하면 누가 듣겠어요? 애굽이 살기도 좋고 풍족하고, 재미도 있고, 모든 것이 다 좋거든요. 아무도 나가려고 하지를 않아요.
여러분, 사람은 역사를 통해 배우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를 왜 배웁니까?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보다 발전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애굽에 있는 백성들은 배운 것이 없어요.
자기들 몸으로 직접 겪어놓고도 다 잊어버리고, 또 똑같은 멸망의 길을 갑니다. 이것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여러분, 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아요. 반복됩니다. 똑같은 죄를 반복하고 반복해요.
죄가 처음에만 어렵지, 계속되면 습관이 돼버립니다. 죄책감이 사라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죄를 짓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벌을 받고 나서도 또 반복됩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우리는 이 죄의 사슬을 끊어야 돼요. 우리 발목에 채워진 죄의 사슬을 끊고, 밖으로 도망쳐야 됩니다. 욕심과 교만과 탐심과 질투로부터 도망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에게 반복되는 나쁜 습관들이 있거든 오늘 이 시간부로 끊어버리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끊어버려야 돼요.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에 대해서 로마서 1장에 기록을 했습니다. 로마서 1장 29절부터 31절 말씀입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야가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들입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여러분이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이 있거든 다 끊어버리시를 바랍니다. 특히 수군수군하지 마세요. 공동체를 무너트리는 첫번째가 수군수군하는 겁니다. 뒤에서 수군수군, 뒷담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이것이 교회를 무너트리는 독입니다. 절대로 수군수군해서는 안 돼요.
사랑으로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셨어요.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이웃들을 돌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고, 나쁜 습관들을 끊어버리고, 서로를 사랑으로 돌보며 정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