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 땅에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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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예레미야 43:1-13
“애굽 땅에 들어가다”
2024. 2. 16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애굽 땅에 들어가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본문에서는 이스마엘에게 사로잡혀 있던 백성들이 요하난에 의해 구출된 이후에, 바벨론의 보복을 피해서 애굽으로 도망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애굽으로 가다가 잠시 정비를 하기 위해 게롯김함에 머물렀어요.
그리고 거기서 백성들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까? 하나님께 기도를 좀 해주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우리가 순종하겠다. 이렇게 다짐을 하면서 기도를 부탁했어요.
그래서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42장 7절을 보면, 그 기도 응답이 십일 후에 와요. 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을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해줬습니다.
그 응답의 내용이 42장 9절부터 22절까지의 내용인데요. 내용이 길지만 사실 간단합니다. 너희가 애굽으로 가지 말고, 유다 땅에 살라는 거예요. ‘여기 유다 땅에 살면 너희가 바벨론을 겁낼 필요 없이 평안하게 잘 살 것이다. 반대로 너희가 애굽에 가면 애굽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이다.’ 이런 응답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응답을 듣고 나서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오늘 본문에 그 반응이 나오죠. 오늘 본문 2절을 봐 볼까요? 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백성들이 반응이 어떻습니까? 예레미야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죠.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도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하면서 믿지 않아요. 분명히 무슨 말씀이든지 순종하겠다고 해놓고, 순종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그런 응답을 주지 않으셨을 거다. 이렇게 거짓말로 치부합니다.
그러면서 밑에 3절에 보면, 이제는 아예 예레미야에게 누명을 씌워요. 3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3절 시작,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유다 백성들이 지금 예레미야에게 누명을 씌웠죠. 예레미야 네가 우리를 갈대아 사람의 손에 죽이려고 애굽에 못 가게 하는구나. 이렇게 누명을 씌워요. 그런데 그 앞에 또 누구를 누명을 씌웁니까?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예레미야를 부추겼다고 누명을 씌우죠. 바룩이 뒤에서 예레미야를 조종해서 거짓 예언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식의 누명입니다.
지금 백성들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여러분, 바룩이 누굽니까? 바룩은 예레미야가 불러준 말씀을 그대로 두루마리 책에 기록해서 성전에 들어가 백성들에게 낭독했던 사람입니다. 또 전에는 예레미야가 하나멜의 밭을 샀을 때 그 매매증서를 보관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바룩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고, 또 자기 밭의 매매증서까지 맡길 정도로 신뢰한 친구이자 동역잡니다.
굳이 우리가 두 사람 사이에 서열을 매기자면 당연히 예레미야가 위에 있고, 바룩이 밑에 있어요. 마치 비서처럼 바룩이 예레미야의 명령을 수행하니까요.
하지만 유다 백성들이 보기에는 반대로 보였다는 것이죠. 바룩이 예레미야를 조종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바룩은 무슨 벼슬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안이 특출나게 명문가문도 아니었거든요. 물론 친동생인 스라야가 왕궁의 시종장이었긴 합니다. 하지만 시종장은 말 그대로 시종들 중에 장이에요. 아무리 뛰어나봐야 시종이죠.
그러니까 바룩도 그렇고 바룩의 집안도 그렇고 별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집안입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백성들이 바룩을 암중에서 예레미야를 조종하는 비선실세로 봤다는 것이죠. 왜 그렇게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백성들이 바룩과 예레미야에게 누명을 씌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그러고나서 이제 백성들이 어떻게 합니까? 애굽으로 떠납니다. 5절을 보면 요하난이 주도적으로 나서죠. 남아 있는 백성들을 다 데리고 가요. 그런데 가면서 예레미야랑 바룩도 같이 데리고 갑니다. 아니, 예레미야랑 바룩은 유다 땅에 살고 싶어하는데, 그냥 두고 가지. 두 사람도 억지로 데리고 가요.
여러분, 왜 굳이 예레미야랑 바룩을 데리고 갔을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겠죠. 하나는 애굽으로 데려가서 다시 예언을 들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짓 예언이라 안 믿는데, 애굽으로 데려가면 진짜 예언을 할 수도 있잖아요. 바룩이 조종을 못하게 멀리 떼어놓고 예레미야가 혼자 온전히 예언을 하게 한다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예레미야와 바룩이 바벨론에게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넘겨줄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굽으로 갔다는 정보를 듣고 쫓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 남겨놓을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두 사람을 같이 데리고 간 겁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8절에 보니까, “다바네스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다바네스는 애굽의 동쪽 경계에 있는 관문입니다. 여기만 넘으면 애굽인 거죠. 애굽을 넘기 직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한 거예요.
어떤 말씀이 임했습니까? 9절부터 13절까지가 여호와의 말씀인데요. 9절, 10절만 저희가 읽어보겠습니다. 9절, 10절 시작, “너는 유다 사람의 눈 앞에서 네 손으로 큰 돌 여러 개를 가져다가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궁전 대문의 벽돌로 쌓은 축대에 진흙으로 감추라. 그리고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종 바벨론의 누부갓네살 왕을 불러오리니 그가 그의 왕좌를 내가 감추게 한 이 돌들 위에 놓고 또 그 화려한 큰 장막을 그 위에 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표적행위를 명령하셨어요. 행동으로 앞일을 미리 보여주게 하신 건데요. 말로 해서 안 되니까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자, 어떤 행동을 하라고 하십니까? 먼저 예레미야에게 큰 돌을 여러개 가져오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궁전 대문 밑에 묻고 진흙으로 감추라고 하셨어요.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레미야가 가져온 큰 돌들은 유다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을 바로의 궁전 대문에 숨었네요? 이것은 백성들이 애굽의 보호 아래 숨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죠. 밑에 10절에 보니까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왕좌가 이 돌들 위에 놓여지게 돼요. 그리고 또 그 위에는 화려한 큰 장막이 덮이게 됩니다. 이것은 곧 느부갓네살 왕이 애굽까지 쳐들어와서, 애굽에 숨어있는 백성들을 짓밟고 정복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애굽이라도 바벨론의 힘 앞에는 당해낼 수가 없어요. 아무리 애굽에 숨으면 뭘 합니까? 애굽도 망해버리는데. 애굽이 망하면 유다 백성들도 같이 망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일이 정말 실제로 벌어집니다. 실제 역사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그의 통치 37년째 되는 해에 애굽을 침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유다가 멸망한지 19년이 지난 뒤의 시점이죠.
그러니까 백성들이 애굽으로 도망치고 나서 십 수년이 지나고 났을 때 바벨론이 쳐들어온 겁니다. 백성들로서는 십 년이 넘도록 바벨론이 쳐들어올 낌새가 없으니까 안심하고 살았겠죠. 그러나 예상치 못한 때에 멸망이 도적같이 임합니다.
그 시간 동안에 백성들이 얼마나 애굽의 우상들에게 빠져서 지냈는지,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 우상들을 모조리 깨버리도록 하셔요. 오늘 본문 12절과 13절에 보면, 느부갓네살을 통하여 우상들을 다 깨버리도록 하시는데요. 12절과 1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애굽 신들의 신당들을 불지르리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불사르며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요 목자가 그의 몸에 옷을 두름 같이 애굽 땅을 자기 몸에 두르고 평안히 그 곳을 떠날 것이며. 그가 또 애굽 땅 벧세메스의 석상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신당들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아멘.
느부갓네살이 애굽 신들의 신당들을 불지르고, 애굽 땅 벧세메스의 석상들을 깨뜨리고, 또 신당들을 불사르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에 얼마나 크게 진노하셨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애굽 사람들을 치는 내용은 11절 한 구절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우상과 신당들을 치는 내용은 12절과 13절로 두 배 이상 길어요. 사람을 치는 것보다 우상을 치는 것이 하나님께 더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애굽에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애굽에 가면 그곳의 우상들에 빠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죠. 우상만 아니면 애굽에 가서 살아도 문제가 없어요. 거기서 새롭게 터를 잡고 하나님 예배하면서 살면 됩니다.
그러나 애굽은 우상들의 소굴입니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도 애굽에 가면 타락해요. 생각해보세요. 우리 자녀들이 부모 밑에서 살 때는 신앙생활 잘 했는데, 독립해서 유흥가에 자취방 얻고 살면 교회도 안 가고 술집 다니는 것과 똑같습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습니다만, 확률적으로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그런데 애굽은 그런 유흥가와는 차원이 달라요. 세상의 온갖 더러움과 음란함이 가득한 땅이에요. 특히 애굽의 전통 복장을 보면, 복장이 굉장히 개방적입니다. 더운 아프리카 지방이다 보니까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다니고요. 여자들은 몸에 짝 달라붙는 스커트에 가슴이 다 드러는 옷을 입어요. 전통 복장이 그래요.
그런 곳에서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 곳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키고 또 우상들과 음란한 문화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겠어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거예요. 안 봐도 비디오니까. 가면 끝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예방이 중요합니다. 일이 닥쳤을 때 해결하기 보다는 미리 그럴 일이 없도록 막아야 돼요.
애굽에 가서 우상들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애굽을 가지 말아야죠. 그럴 일이 없도록 애초에 싹을 잘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얻어야 하는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미리미리 예방하자. 우리에게 시험이 오고, 환난이 오고, 뭔가 문제가 생길 때에서야 하나님을 찾을 게 아니라, 미리미리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예상치 못한 때에 영적인 함정에 빠지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신앙을 잃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그 함정에 빠지면 다시 돌이키기가 어렵습니다. 한번 애굽에 들어간 백성들이 다시 나오기가 쉽겠습니까? 나가라 해도 안 나가요.
우리들도 자칫 우상에 빠지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 어렵고 멀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원천차단해야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떠나 있는 그곳이 풍요롭고 즐겁고 기분이 좋아도, 그곳에서는 참 평안이 없어요. 그곳을 향하여 멸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애초에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좋든지 안 좋든지를 막론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풍요가 아니라 말씀의 은혜를 구하며, 나의 신앙을 점검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