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생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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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한다. 오늘 설교 제목에서 이야기하듯이 여러분의 인생 드라마가 무엇인가? 사전적인 뜻으로 인생에 있어 길이 남을 만큼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되는 텔레비전 극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역대급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인생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표현한다. 인생 사진, 인생 맛집, 인생 네컷 등등 있다. 나에게도 인생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이다. 군대에서 봐서 그런지 드라마를 보면서 파병을 가고 싶은 생각을 엄청나게 들었었다. 그리하여 송중기와 송혜교의 아름다운 연기를 보면서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가슴 뭉클한 마음이 생생하게 들었다. 그러면서 드라마가 끝나고 실제로 그 두 사람은 드라마 뿐만 아니라 실제로 결혼을 한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에서 현실로 진짜 이어지는듯한 모습을 생각하니 더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몇 달 뒤에 그 커플이 실제로 이혼을 하게 되었고, 다시 그 드라마를 보니까 세상 슬픈 드라마가 되어버린 가슴 아픈 드라마가 된 기분이었다. 꽃길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슬픈 장면으로 끝나게 된다면 마음에 잔잔한 여운이 남게 된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이 이야기를 잘못 들으면 큰일나게 되는 것이다. 삼위일체 때문에 수많은 이단으로부터 몇백 년 동안의 회의를 거쳐서 논쟁 끝에 나온 고백이 무엇인가? 우리가 늘 주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이 무엇을 고백하는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세 분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교회가 볼 때, 기독교에서는 이단인 것이다.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 모든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이 나타난다. 그 중에 오늘은 마가복음을 선택했다. 다른 복음서도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마가가 복음서에서 가장 나타내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1장 1절에 이렇게 선포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그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물 밖으로 나오셨다. 그때 하늘이 갈라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께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이 갈라졌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 이제 막 선언될 진리의 지상적 차원을 뛰어 넘는 비전을 가리키기 위해 이 표현을 쓴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영원히 지옥으로 가야할 상황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기를 구약에서 기도한대로 이루어짐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오셨기에 무엇이 시작되었는가? 구약에서 예언된 종말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서 성령이 비둘기 같다고 표현한다. 노아의 홍수 때 나타난 비둘기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저 비둘기는 가장 흔하고 가장 친근한 조류 중 하나로서 단순하게 언급된 것이다. 성령은 헬라어에 바람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바람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비둘기도 우리가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둘기가 낮에 활동을 끝내고 밤에 돌아가는 둥지를 누구도 본 적이 있는가? 누구도 새끼 비둘기, 비둘기알, 둥지를 본 적이 없기에 성령님을 비둘기로 비유하지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마가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 성령의 역할인 사람 위에 머물기 위해 새의 형태로 성령님이 오신 것이다.
그렇게 11절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났다고 한다. 누구의 음성인가? 성부 하나님의 음성인 것이다. 그 하나님이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말씀하신다. 이 하나님의 소리는 무엇을 선포하는 것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마가는 이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하늘에서 난 소리는 예수님이 이제 무엇이 되었는지가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 것인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마가에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 부활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 이미 창세 전부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준비하셨던 일들을 세례 이후에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제 여러분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나누려고 한다. 이 교리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 이단들은 성자 하나님,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렇게 세 분이 각각 따로 세 하나님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의 본체, 세 개의 위격을 가지고 계신다. 이를 잘못 이해해서 구약은 성부 하나님의 시대이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승천할 때까지 성자의 시대, 승천하시고 오순절 이후는 성령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구약시대, 예수님이 오시고 승천하시면서 지금까지 모든 역사 속에 항상 함께 계셨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이단은 하나님은 한 분, 유일신이셔서 상황과 사역에 따라 역할이 바뀌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마치 가정에서 아버지가 집에서는 아버지고, 교회가면 집사님이고, 회사가면 과장님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잘못된 삼위일체의 해석이다. 그러면서 또 에어컨을 생각하면서 더울 땐 냉풍기, 추울 땐 난방기, 환기가 필요할 땐 환풍기로 생각하는 것, 삼위일체를 물은 H2O니까 고체, 액체, 기체로 여기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성경을 읽으면 성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혼자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은 스스로 혼잣말하는 격이 되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나누시는 진정한 대화셨다.
또 다른 이단은 하나님이 인간 예수에게 신의 성격을 주셔서 세례를 받으실 때 양자로 삼으셨다는 것, 또는 인간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 예수님이 신으로 점점 발전해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님은 이미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오늘 마가복음 1장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 전에 나셨다는 것이다. 영원 전이라는 것은 시간 속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역사, 시간을 넘어서 계시지 않은 때가 없었다.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창세기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창조될 때부터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지으시기 전에 계셨고 하나님과 같이 창조하셨다. 예수님은 피조물과 다르게 시간이 없는 영원하시며 시작이 없으시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창세 전에 나심은 어떠한 표현과 설명이 불가하고 깨달아 알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아퀴나스라고 하는 신학자가 이렇게 정의한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동일한 의지를 가지고 계시지만, 성부 하나님이 자기의 의지를 다른 누군가에게서 영향을 받아 온 것이 아니다. 성부 하나님의 스스로의 의지다. 반면 성자 예수님은 자기의 의지를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가져오신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지, 곧 하나님께로부터 가져온 의지를 자신의 의지로 성취하시며, 성부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 다른 누군가에게서 가져오지 않은 의지를 자신의 의지로 성취하신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와 같이 나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비롯되는 내 뜻을 행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나타나는 삼위일체의 하나의 의지는 무엇인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하시는 의지가 있다. 삼위일체의 단어의 뜻도 삼위는 세 개의 위격, 일체는 하나의 본체의 뜻이다. 위격이라는 뜻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일체의 뜻을 가진 본체는 하나님께 나셨으나 지음 받지 않았고,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세 위격 모두가 같은 의지를 공유하며 실행하시고 그 하나의 의지를 실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각 자신의 임무에 맞는 방식으로 움직이신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을 보내시며, 예수님과 성령님은 보냄을 받으신다.
삼위일체가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에 속한 것으로 실행하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이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으신다. 성부 하나님은 보냄을 받으시지도 십자가에서 죽으시지도 않는다. 이 일을 누가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일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감히 갈 수 없는 하나님과 인간의 끊어진 사이를 회복하시기 위해 기꺼이 이 땅 가운데 육신을 입어 친히 인간으로 사셨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타내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가 감히 넘을 수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높은 벽을 찢어버리셨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 가운데 보내신 이유가 무엇일까? 요일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이 사랑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셔서 우리의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며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주시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내시는 성령님은 사랑의 선물이다. 롬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명한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의 언약과 사랑, 예수님의 순종은 타락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명령과 예수님의 순종, 성령의 도우심에 대한 구원 약속에서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예수님을 보내시며, 예수님은 사랑으로 아버지에게 순종하시고, 성령님은 사랑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완성시키신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는 아무리 좋은 드라마의 행복한 장면들이 나타나도 결말이 슬픈 결말이라면 이전의 모든 행복했던 장면들이 슬프게 보인다. 왜냐하면 슬픈 결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면 모든 행복한 장면도 비극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떠나 사는 악인들이 현재 잘 살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너무 슬프게만 보인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종으로 믿음으로 따라가는 사람을 위한 보증인이 되기로 하늘 아버지와 기꺼이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님은 이 언약에 동의하셔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게 그리스도가 행한 일을 가르치시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 우리에게 구원이 되도록 하시고자 한다. 오늘 하나님이 이 언약의 드라마에 여러분을 부르시고 초대하신다. 그 초대에 여러분도 함께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가지 예수님의 부탁하신 말씀에 목숨을 걸기를 소망한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