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8 씩스 투 세븐의 정신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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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8 6 to 7(six to seven)의 정신을 기억하라(삼하6:12-14)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면서 과거에 보았던 짐 월리스가 쓴 책 가운데 가치란 무엇인가를 다시 좀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짐 월리스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현재의 시장경제가 처한 위기가 무엇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다시금 붙들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지적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특히 이 책에 서두 보다보면, 인도의 간디가 제시했던 7가지 사회적인 대죄에 대한 경고가 있는데, 참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1. 원칙 없는 정치, 2. 노동 없는 부, 3. 도덕 없는 상업, 4. 양심 없는 쾌락, 5. 인격 없는 교육, 6. 인간애 없는 과학, 7. 희생 없는 예배. 한 주간 다시 이 부분을 보면서, 하나 하나 현시대를 보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희생이 없는 예배, 우리 크리스천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시리즈 8번째 시간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궤(자료화면, 언약궤)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법궤를 단순히 승리를 가져다주는 마스코트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기게 됩니다. 하지만 법궤가 블레셋에 재앙과 저주를 내리게 되자, 블레셋은 이 법궤를 이스라엘도 다시 돌려보내게 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법궤는 수도로 모셔 와야 하는데,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의 왕되심과 통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왕권/존재감을 과시하는데만 급급했습니다. 이제 이런 사울이 죽고 이제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이 법궤를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변방에 70년간 방치되었던 법궤를, 수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속에,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니 우리가 다시 붙들어야 하는가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다윗을 통해서 배워야 할 신앙의 레슨 무엇일까요? 1 하나(one thing)에 대한 열망을 가져라.
여러분, 다윗은 뭐에 대한 가장 강한 열망이 있었을까요? 다윗은 원띵,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열망, 그 상징인 법궤에 강한 열망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법궤에 대한 마음이 있었는가? 그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오는데 다윗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십시오. 삼하6:1-2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자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오려고 군대를 얼마나 모읍니까? 3만명... 제가 숫자를 다시 보았슴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다윗이 법궤에 대한 열정을 아주 단적으로 보여지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그렇다면 다윗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왜냐하면, 다윗이 포지션(지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노인팅)기름 부으심이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울을 통해 보았습니다. 왕의 지위(자리,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름 부으심(어노인팅이 있는가), 이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기업 성공 신화를 쓴 게리 켈러가 쓴 원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래 이 사람은 처음 회사를 했을 때는 거의 제대로 되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3년 뒤, 연성장률 40%에 육박하는 놀라운 회사를 일구게 됩니다. 그 스토리를 기록한 게 원씽입니다.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그가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 헛된 믿음 중의 하나는, 모든 일은 나름대로 중요하다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하나하나를 적어서 그것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매일 할 일은 계속 늘어났고 시간도 늘어났지만, 결과는 절대 나아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악순환의 반복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딱 하나 정말 중요한 일, 그 한 가지만 파보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난 3년 뒤 이야길합니다. 성공은 누가 더 많은 걸 때려잡느냐하는 두더지 게임이 아니라 누가 단 하나를 넘어뜨릴 수 있느냐하는 도미노 게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 번 넘어지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도미노처럼 성공도 순차적으로 일어났다.
여러분, 두더지 게임/도미노 게임 아시지요(자료화면). 전 신앙/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많이 잡는 것이 아니라 딱 하나 먼저 잡아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윗은 이 한 가지를 정확히 알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딱 하나를 잡아야 인생을 잡을 수 있다. 그 하나에(원띵)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실제 그럴까요? 시27: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One thing I ask of the LORD,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레슨이 뭘까요? 인생은 두더기 게임이 아니라 도미노 게임과 같다는 것입니다. 딱 하나, 원띵, 예배를 잘 세우고, 잘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인생은 포지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름 부으심/어노인팅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떤 자리/위치도 참 중요하지만, 지금 내 사역에 기름 부으심이 있는가? 주님의 임재가 있는가? 이번 주 말씀준비하면서 제가 교회개척하면서 가장 열심히 한 일이 뭔가 생각해보니, 전 그게 예배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설교자가 누구든 상관없이 제 예배를 세우는 일이 일순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사역자들에게 잘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예배는 이야길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좋은 문화가 되었습니다. 예배시작 되면, 하던 일 다 내려놓고 예배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한 가지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 저는 여러분 무엇보다 이 예배에서 승리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에 대한 열망에서 승리하는 한 해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름 부으심이 중요한 줄로 믿습니다. 그 기름 부으심은 예배(엎드림)를 통해서, 오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도 여러분이 이 예배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 예배에서 잘 승리하는 인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6 to 7(six to seven)의 정신을 학습하라.
자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옵니다. 자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고 오는데 잘 보면 그가 했던 것이 있습니다. 우선 3 만명의 무리와 함께 갔습니다. 그 다음 법칙이 뭘까요? 삼하6:13-14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를 제사로 드리고. 여러분 이 장면이 모이십니까? 여섯 걸음, 걷고 제사 드리고, 다시 여섯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여러분, 이것도 대단한데 대상15장에 보니까. 다윗이 드린 소와 양의 제사의 양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수송아지 7, 숫양 7마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문제는 오벧에돔에서 예루살렘까지 거리가 21킬로 정도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섯 걸음 하나 제사... 여러분, 얼마나 걸렸을까요? 아니 이게 지금 오늘 우리들에게 뭘 말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원띵, 임재, 기름 부으심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왜 하필이면 여섯 걸음일까? 의미가 뭘까? 원유경 목사님이 쓰신 여섯 걸음이라는 책에 보니 “six to seven” : 히브리 숫자 6은 인간의 수다. 숫자 7(쉐바)은 하나님의 수로 완성과 안식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6은 수고와 노동을 의미한다. 즉 다윗이 여섯 걸음을 걷고 살진 소를 잡아 제사했다는 것은 그가 최선을 다해 수고한 후, 하나님의 완성을 기대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최선을 다한 후, 하나님의 임재가 온다는 것입니다. six to seven (씩스 투 세븐).그렇다면 여러분, 왜 다윗이 씩스 투 세 번의 진정한 의미가 뭘까요?) 6다음은 7이다. 4 다음에 5나 6정도는 건너뛰고 7이 될 순 없다. 생략 불가다. 이처럼 다윗은 인간의 요행 뒤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지 않았다. 인간의 최선 뒤에 하나님의 완성을 기대했다. 예배는 언제나 영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업 경영이 고객 만족을 위해 계속 영점을 맞추듯이 우리는 유일한 예배의 대상이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계속 영점을 맞춰야 한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군대 갖다 오신 분들은 영점 조정이란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영점이란 원하는 사거리에서 조준선과 탄도가 교차하는 점을 말한다. 한국군은 100미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100미터에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맞추도록 조준간을 맞추는 것이 영점 조정입니다. 무슨 이야기일가요? 씩스 투 세븐, 우리가 6일을 살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 삶의 영점 조정을 하는 순간, 전 그게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여러분, 예배가 뭘까요? 사격의 영점 조준과 같은 것입니다. 매주일 우리는 이 예배앞에서 우리의 영적인 조준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말씀, 기도앞에 초점(주님께)을 맞추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안되면, 아무리 총을 쏘아도 목표물(타켓)을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흐트러진 영적인 영점 잘 조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를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 내가 무엇을 붙들고 싸워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적인 조준점을 통해 여러분의 목표(타켓)를 맞추어 승리하는 한 주간 되길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예베에서 6to 7정신으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팅에 집중하라. 식스투 세븐 정신을 학습하라) 3. 신앙의 편의/편리주의를 경계하라.
잘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다윗은 지위가 아니라 기름 부으심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왔습니다. 이런 법궤를 모시고 옮에 있어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 씩스 투 세븐의 법칙을 적용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오늘 본문에 반복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삼하6: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삼하 6:15)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삼하 6: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반복구절? 여호와의 궤를 매고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건 전통적으로 성경 출애굽기에 하나님이 정하신 규정입니다. 출37:4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5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자 그러면, 여러분 왜 꼭 메어오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제사장은 여호와의 궤를 메는 수고와 희생,헌신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오늘 본문 사이에 보면, 이런 하나님의 언약궤를 매는 수고와 헌신을 회피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웃사와 아효입니다. 삼하6:2-4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자 다윗은 처음에 법궤를 메어 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웃사와 아효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수레에 실은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이었던 이들이 새 수레를 택하자, 다윗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당시 제사장이 법궤를 메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20킬로 이상 나가는 법궤를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은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니까 제사장이 이렇게 하니까 다윗이 말을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신앙의 편리주의와 편의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법궤가 흔들리자 웃사가 그 법궤를 잡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장면을 보고, 하나님이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서 웃사가 하나님의 법궤를 붙잡았다고 했을 때, 그때 쓰인 단어가 “아하쯔”(자신의 소유를 붙잡는다), 좀 독특한 단어입니다. 이것은 어떤 물건을 이것이 내 것임을 확정적으로 소유했을 때 쓰이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웃사는 법궤를 내 것(소유)처럼 여겼다는 겁니다. 내가 이 법궤의 주인이다. 여러분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신앙의 편리/편의주의를 조심해라. 진정한 예배에는 법궤를 매는 수고, 희생, 헌신과 노력이 반드시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법궤, 예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코로나가 되면서, 많은 분들이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부득이하게 몸이 아프시거나 부득이한 상황의 경우,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법궤를 메는 정신을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편리/편의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예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란 점입니다.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목사님 (집에서) 온라인을 통해서도 은혜 받고 있습니다. 네 저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예배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내가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받으시느냐는 것입니다. 이 예배가 정말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나의 희생/수고/헌신이 있는 예배인가. 저는 여러분이 너무 쉽게 신앙의 편리/편의주의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저는 여러분이 힘들지만, 매주일, 하나님의 법궤를 메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옷차려입고, 주차, 먼거리 이동 등) 그래서 씩스 투 세븐의 원칙을 지키며, 여러분이 매주일 이 예배를 통해서 삶의 영적인 기준점을 잘 맞추고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주 살 때, 내가 누굴 붙들고 살아야 할지, 내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할지를 이 예배를 통해서 결정하는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의 삶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마무리 반주, 이번 주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내가 내 삶의 씩스 투 세븐의 원칙이 있는가? 정말 나는 내 삶의 씩스 투 세븐의 원칙을 지키며 영적인 기준점을 잘 맞추고 있나? 그런 묵상이 되었습니다. 20-30년 사역을 하다보니 자꾸 매너리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그리고 좀 더 쉽고 편하게 하고, 싶은 신앙의 편리주의와 편의주의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특히 교회건축을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제 삶에 분주함이란 적들이 침공을 해 들어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자꾸 내 힘으로 하려고 하고, 기도하는 일보다 사람에게 위로를 구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근데 최근에 이런 저에게 다시 한 번 큰 도전을 준 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3등입니다. 1등은 하고 싶은 일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일 다하고 해야할 일도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될 때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3등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나는 1등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부르기만 하면 도와주십니다. 내가 괴로울 때는 만사를 제쳐 놓고 달려오십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홀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언제나 1등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1등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만나고 작은 고비 때마다 손을 꼭 붙잡는 내게 1등으로 가까이 계신 하나님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게 1등이신 하나님을 나도 1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언제나 1등이신 하나님이 이제 여러분에게도 1등이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이 주는 레슨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인생을 세우려면, 원띵, 딱 하나 예배를 먼저 잘 세우고,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포지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름 부으심/어노인팅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의 승리자를 위해 예배자의 원칙, 씩스 투 세 번의 원칙을 지켜 나가십시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에 영적인 기준점을 잡고 가십시오. 그래서 이번 주 내가 누굴 바라보아야 할지, 뭘 붙들고 가야할지를 결정하고 나가십시오, 바로 그때 여러분의 인생, 삶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의 편리/편의주의를 경계하십시오.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마땅히 지고 가야할 법궤를 지는 일, 말씀, 기도를 지고 살아가는 일, 그 일을 마다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의 삶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1
1등은 하고 싶은 일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일 다하고 해야할 일도 다 마치고 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나줍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레슨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인생을 세우려면, 원띵, 딱 하나 예배를 먼저 잘 세우고, 붙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포지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름 부으심/어노인팅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의 승리자를 위해 예배자의 원칙, 씩스 투 세 번의 원칙을 지켜 나가십시오.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에 영적인 기준점을 잡고 가십시오. 그래서 이번 주 내가 누굴 바라보아야 할지, 뭘 붙들고 가야할지를 결정하고 나가십시오, 그때 여러분의 인생, 삶위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 주님 내게 1등이신 하나님을 다시금 1등으로 붙드는 한 주간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내가 은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예배가(나의 희생, 헌신, 수고가 있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 그렇습니다. 포지션 위치기 아니라 (나의 일터, 가정, 직장 가운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게 도와 주옵소서.
기도제목2: 여러분, 예배가 뭘까요? 사격의 영점 조준과 같은 것입니다. 매주일 우리는 이 예배앞에서 우리의 영적인 조준점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말씀, 기도앞에 초점(주님께)을 맞추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게 안되면, 아무리 총을 쏘아도 목표물(타켓)을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흐트러진 영적인 영점 잘 조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누구를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 내가 무엇을 붙들고 싸워야 하는지 점검하는 시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 주님 오늘 이 에배를 통해서 내 삶의 기준점을 다시 새롭게 하게 도와 주옵소서. 한 주간 내가 누굴 붙들고 살아야 할지, 뭘 붙들고 살아야할지를 분명히 깨닫고 돌아가는 시간되게 도와 주옵소서. 무엇보다 씩스 투 세븐을 기억하며, 내가 최선을 다한 그 자리위에 하나님의 임재, 기름 부으심을 깨닫게 도와 주옵소서. 신앙의 매너리즘, 편의주의 편리주의 싸워 승리하게 도와 주옵소서.
기도: 주님 내게 1등이신 하나님을 다시금 1등으로 붙드는 한 주간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내가 은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예배가(나의 희생, 헌신, 수고가 있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 그렇습니다. 포지션 위치기 아니라 (나의 일터, 가정, 직장 가운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 오늘 이 에배를 통해서 내 삶의 기준점을 다시 새롭게 하게 도와 주옵소서. 한 주간 내가 누굴 붙들고 살아야 할지, 뭘 붙들고 살아야할지를 분명히 깨닫고 돌아가는 시간되게 도와 주옵소서. 무엇보다 씩스 투 세븐을 기억하며, 내가 최선을 다한 그 자리위에 하나님의 임재, 기름 부으심을 깨닫게 도와 주옵소서. 신앙의 매너리즘, 편의주의 편리주의 싸워 승리하게 도와 주옵소서.
기도제목3. 시27:4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주님 이번 한 주간, 이 하나를 구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임재하심, 성령의 충만하심, 이 은혜가 내게 있게 도와 주옵소서. 다시 한번 주님 내 인생에 은혜를 주옵소서. 긍휼, 가정에, 직장에, 산업위에 여호와의 깅휼이 있게 도와 주옵소서.
축도: 주님 오늘 이 에배를 통해서 내 삶의 기준점을 다시 새롭게 하게 도와 주옵소서. 한 주간 내가 누굴 붙들고 살아야 할지, 뭘 붙들고 살아야할지를 분명히 깨닫고 돌아가는 시간되게 도와 주옵소서. 무엇보다 씩스 투 세븐을 기억하며, 내가 최선을 다한 그 자리위에 하나님의 임재, 기름 부으심을 깨닫게 도와 주옵소서. 신앙의 매너리즘, 편의주의 편리주의 싸워 승리하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 이번 한 주간, 이 하나를 구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임재하심, 성령의 충만하심, 이 은혜가 내게 있게 도와 주옵소서. 다시 한번 주님 내 인생에 은혜를 주옵소서. 긍휼, 가정에, 직장에, 산업위에 여호와의 긍휼이 있게 도와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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