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각 나팔 소리가 불리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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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6:1–21 NKRV
1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6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11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12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13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14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15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하니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그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21 그 성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 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M1 : 본문의 사건을 전개하라

1.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1절)
여리고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여리고 성은 폭이 약 200m, 길이가 약 100m 정도 되는 성이었다. 당시 수준으로는 중간 규모의 도시국가였다.
당시 성들은 적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보다 고지대에 성을 쌓았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여리고 성을 함락시켜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다. 여리고가 굳게 닫혔다. 굳게 닫혔다는 말은 곧 성문을 틀어막고, 방어 태세를 갖췄다는 것이다.
문이 굳게 닫히면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가? 적의 정보를 알 수가 없고, 그곳을 침략하기 위해서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문을 굳게 닫은 여리고성을 침략하기 위해선 성벽을 넘어가건, 문을 부숴야한다.
그러나 문에는 이미 여리고성의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었을 것이고, 성벽을 넘는 것은 많은 인력, 시간,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어떤 피해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왜 여리고성 사람들은 문을 굳게 닫았는가?
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이었다.
여호수아 2:9–10 NKRV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직후 홍해에서 애굽 군대가 사장되었던 것과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 오기 직전 있었던 두 나라를 전멸시켰던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2. 하나님의 여리고성 정복 방식
하나님의 여리고 정복 방식은 상당히 특이했다.
우리의 상식에서 어떤 견고한 성을 특히 지금 “굳게 닫힌” 성을 정복하려면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공격해야겠는가?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어느 정도는 아실텐데, 장교로 다녀온 찬민 형제는 아마 군사학교에서 잘 배워서 이해가 빠를텐데.
보통 보병 일반 전투가 일어나면 공격하는 쪽이 유리할까? 수비하는 쪽이 유리할까?
수비하는 쪽이 유리하다.
그러면 몇 대 몇 정도로 유리할까?
보병 전투에서는 대략 한개 소대 규모 vs 한개 분대 규모 정도로 방어 작전을 가정한다.
한개 소대는 세개 분대가 한 소대를 이룬다.
그러면 대략 1:3 정도의 병력의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장거리 전투 무기가 있는 총이나, 박격포가 있을 때 이런 전투가 가능한 것이지 고대의 성을 공격한다고 했을 때는 더 많은 병력이 있어야 공격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여리고성 전투는 성공 확률이 극소희박한 전투이다.
그래서 우리가 상식적으로는 이 성을 점령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뭔가 비장의 무기가 등장해야만 확률상 승리할 수 있는 전투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여리고성 정복 방식은 어땠나?
하나님의 방식은 터무니없어 유머이신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비상식적인 방식이었다.
여호수아 6:2–5 NKRV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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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앞에 무장한 군사들이 앞서고, 그 뒤로는 일곱 명의 제사장들이 각각 양각 나팔을 잡고, 그 뒤에는 언약궤를 둡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제 나머지 군사들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매일 6일 동안 하루 한 바퀴씩 도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7일째 됐을 때 7번을 돌고 다 돌고난 후 나팔을 불고, 군사들은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리고 성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6:5 (NKRV)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무너져 내리리니” 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저절로 무너져 내린다”라는 것이죠. 어떠한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도 않았는데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M2 : 본문의 위기를 보여주라

1. 말도 안되는 (비상식적인) 명령과 순종
신앙의 눈을 떼고 한번 이 명령을 바라본다면, 이 명령은 어떤가?
이 명령은 비합리적입니다. 왜냐하면 확률상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폭이 200m, 길이가 100m 정도 되는 성이 일주일 내내 하루에 한번씩 돌고, 마지막 날에 일곱번 도는 것, 그리고 나팔을 불고 소리치는 것.
여러분 할 수는 있습니다. 이 방법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죠.
그러나 이 방법을 했을 때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우리는 확률상 거의 불가능한 것을 비합리적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비합리적인 일을 하는 것을 비상식적이라고 표현하죠.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일은 무슨 일입니까? 비합리적인 일이고,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 설교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라는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즉 절대 존재이시다라는 것과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즉 모든 신들이라고 불리는 것들 중에 오직 유일한 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걸 알았죠.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며, “유일한”하나님 입니다.
그런데 지금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그 일을 명령하신 분이 바로 여호와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명령을 들은 여호수와 이스라엘에게 예상되는 반응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 중 하나겠죠? 그말을 듣거나, 그 말을 듣지 않거나.
그 말을 듣는다면 그들의 전제에는 이 명령을 한 하나님의 존재가 여호와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전제가 있겠죠. 그분의 존재를 믿으니 그 명령, 말씀을 믿는겁니다.
만약에 그 말을 듣지 않는다면 무엇이 전제에 있겠습니까? 여호와 유일한 하나님이신 것은 알겠는데, 확률상 극히 희박한 명령을 듣고 그 희박한 확률을 여호와 유일한 하나님보다 더 믿는 믿음으로 그 말을 듣지 않는 것이겠죠.
이스라엘에게는 두 믿음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명령의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들에게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할 것인가?
혹은 확률을 믿고 그들이 이길 수 있는 그들의 방법을 찾아 확률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들의 방법으로 여리고성을 공격할 것인가?
이 두 가지의 대립 구도이죠.
확률적으로 여리고성을 공략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군사들을 최대한 대동하고, 성을 침략할 전략을 세우고, 그 전략에 맞게 작전을 수립하고, 그 작전대로 훈련하고 공격하는 것 이런 것이지 않겠습니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 동원해서 시행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입니다. 그게 합리적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상당히 실존적인 질문 하나를 찾게 됩니다.
“가장 합리적인 것이 옳은 것인가?”

M3 : 본문의 사건을 오늘날로 연관하라

우리의 여리고성
지난 주 우리는 가나안 땅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를 유혹하는 이방신, 우상들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자로서 하나님만을 사랑해야하는 과제를 달성해가고 있는 자들이죠.
하나님 나라라는 가나안 땅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며,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고,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그 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여리고성이라는 성이 등장하게 됩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여리고성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게 되면서 맞이하는 여리고성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 생기는 커다란 장벽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장벽이죠.
그 어떤 방법으로도 현실적으로는 부수기 힘들어보이는 바로 그것들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20대 혹은 30대 청년들로서 이 대한민국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자들이죠.
그런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들로서 부딪히는 여리고성이 정말 많습니다.
최근에 청년들하고 같이 얘기하면서 혼자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만 하더라도 물론 저는 일반적인 취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나 동기 형들의 말을 들으면 취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도 또 한 10년이 지난 지금 보면 그 어려움의 단계가 조금 달라졌다고 할까요?
토익을 준비해도 그 점수의 기준이 평균적으로 더 높아졌고, 토익 스피킹을 추가로 준비해야한다던가..
아니 이제는 그게 기본값이 되어버린걸 보게 됩니다.
혹은 자격증들도 사실 자격증의 의미를 보면 그게 있으면 추가적인 스펙이 된다고 해야할까요? 그런 것인데.
이제 자격증을 보면 그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 정도로 여겨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제는 학점, 자격증, 영어 이런 것들은 그냥 취업의 기본 틀이고, 그 위에 뭔가 자신만의 특별한 것이 있지 않으면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아니라던가..
이런 분위기가 되었다는 겁니다.
제가 대학생 때도 힘들었어요. 그 전의 선배들도 힘들었을 거에요.
그런데 지금 뭔가 더 조건이 까다로워진 그런 느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취업을 하면 그런 어려움들이 끝나면 차라리 거기에 목숨이라도 건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취업하고나면 그 어려움이 끝나나요?
그러니까 결혼은 뭔가 먼 얘기인 것 같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의 삶에 집중하는 세대가 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불행인 것은 이것입니다.
이렇게 현실적인 어려움들로 허덕이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삶을 그 허덕임의 연속으로 끝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 현실의 여리고성 앞에, 그 어려움 앞에 하나님 나라는 생각도 못하고 그저 먼 이상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 남겨두고 여리고성을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능력으로 어떻게 뚫어볼 작전을 짜고 있는 것이죠.

M4 : 본문의 위기가 오늘날의 위기임을 느끼게 하라

1. 우리는 확률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을 따를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가운데 여리고성을 맞닥들였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계속해서 우리는 그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나름의 방법을 통해 극복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여리고성을 맞닥뜨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명령에 순종하라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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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우리는 실존적인 질문을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겁니다.
진짜 우리 삶에 중요했던 것은 원래 무엇이지?
진짜 우리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지?
현실적인 어려움들 가운데 바라보아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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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들 가운데 하나님은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을 바라보길 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때 우리에게 그 어려움,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현실적인 방안들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하나님은 “정말 너는 나를 믿고 있니? 정말 너는 나의 말에 순종하려고 하니?”라고 묻고 계신거죠.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겁니다.
“그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너는 나의 명령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니?”
“그 취업의 어려움을 뚫을 방법을 이리저리 너의 지혜로 고민하는동안 너는 나의 명령을 한번 돌아보고 있니?”
“사회가 요구하는 여러가지 요건을 갖추며 생기는 어려움 속에 너는 나를 찾고 있니? 나의 말에 집중하고 있니?”
“너는 그 여리고성 앞에서 나를 유일한 여호와 하나님으로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니?”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M5 : 본문에 나타난 구원자 하나님과 믿음의 반응을 보여주라

이스라엘은 어떤 방식을 취했나요?
이스라엘은 순종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순종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순종했죠.
그 비합리적인 방식을 택했습니다. 확률을 믿지 않았죠. 그들의 현실적인 방안들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방식들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방식을 택하고, 현실적인 방안들을 마치 보험처럼 준비하는 여지를 두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대로 행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7일이라는 기간 동안 어땠을지.
믿음으로 함께 여리고성을 돌긴 돌겠죠.
첫날 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돌아요.
둘째날 돕니다. 또 믿음으로 돌아요.
셋째날, 넷째날, 다섯째날, 여섯째날까지 돕니다.
여러분 이렇게 도는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까?
이들은 믿음으로 순종했지만, 이들이라고 불안함이 없었겠습니까? 하나님이 과연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실까? 이런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실까?
속으로 생각할지라도 그들은 계속해서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7번을 돌면서 어땠을까요?
끝까지 반신반의 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순종합니다.
7번을 돌고난 후, 그들이 양각 나팔을 불고 큰 소리로 외치는 가운데 여리고성은 무너집니다.
그들의 현실의 어려움이 무너집니다.

M6 : 동일한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의 반응을 제시하

여러분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여리고성들을 마주하였을 때, 막막함과 어려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라고요.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집중해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왜 자꾸 7이라는 숫자를 강조하는 것일까하는 부분입니다.
여호수아 6:4 NKRV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일곱째 날 일곱 번 돌고 나팔을 분다.
계속해서 7이라는 숫자가 반복되는 것은 뭔가를 암시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죠.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희년”을 가리킵니다.
레위기 25:8–10 NKRV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9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레위기에 희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안식년이 7년에 한번 있습니다. 그때는 땅이 쉬는 거룩한 년을 정합니다.
그런데 이 안식년이 7년에 한번 7번 반복되는 49년 이후 50년째 되는 날이 희년이 됩니다.
이때 49년째 7째달 열흘날에는 속죄일이고, 그때 뿔나팔 소리를 크게 부는데 이때 뿔나팔이 “쇼페르” 즉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양각나팔”입니다.
제사장이 부는 양각나팔은 그냥 나팔이 아니고 이 속죄일에 부는 나팔입니다.
희년에는 모든 노예와 종이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고,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갑니다. 빚진 자들을 탕감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의 이야기로 다시 넘어오면 왜 여리고성의 7번째 날이 희년의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계속해서 7이라는 숫자를 반복함으로써 7x7 = 49, 희년을 암시하고, 여리고성의 마지막 날을 희년의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년은 노예와 종이 풀립니다.
여리고성을 맞닥뜨렸던 이스라엘은 현실적인 어려움의 노예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여리고성 앞에 좌절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의 노예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여리고성 앞에서 하나님은 비합리적인 해결 방식을 제시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합리적이었지만, 그들에게 희년을 암시하시면서 현실적 어려움의 노예, 종이었던 이스라엘에게 희년을 약속하십니다.
그 일곱째날이 되는 날은 희년이었습니다. 양각나팔이 울리는 순간 하나님의 희년은 선포됩니다.
우리의 삶의 여리고성 앞에 제사장의 나팔이 불리는 그 희년의 선포가 여러분에게 이미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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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희년의 나팔을 부신 분은 바로 우리의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에게 희년의 선포가 됩니다.
죽음의 노예, 죄의 노예 더 나아가 바로 그 현실적 어려움의 노예가 되어서 그것에 허덕이며 살던 우리에게 희년을 선포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한 어려움, 심지어 그것들이 현실적인 어려움일지라도 그것을 다 십자가에서 지시고, 그 값을 생명으로 지불하십니다.
그순간 모든 현실적 어려움들은 십자가에서 다 끝났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해방됩니다. 죄와, 죽음과, 현실적인 어려움들조차도 그것에서부터 해방됩니다.
여리고성의 마지막 날이 희년의 선포라면, 지금 이 시대의 우리의 여리고성의 마지막 날의 희년은 이천년 전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성을 당도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바로 이것을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미 이천년전 십자가에서 선포된 희년의 나팔 소리와 함께 그리스도로 인한 그 해방을 입술로 외치고 선포하라고요.
여러분의 삶의 여리고성을 맞닥뜨리셨습니까?
학업과 취업과 직장과 가정 생활 속에서 그 어려움을 맞닥뜨리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며 당도하는 여리고성 앞에서 현실적인 계산과 확률 싸움으로 그것들을 이겨나가려고 노력하십니까?
아니요 여러분 더이상 죄의 노예로, 현실적 어려움에 허덕이는 노예로 살아가지 마세요.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서 그것들에 대한 해방을 이천년전에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모든 어려움들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희년의 해방의 선포에 우리를 맡기면 될 뿐입니다.
여러분 당장 눈을 감고 내일이 되면 부딪힐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십니까?
그것을 묵상하시나요? 그 희년의 선포가 여러분의 것임을 믿으십니까?
우리의 여리고성 앞에 필요한 것은 바로 7일째 불렸던 나팔 소리, 십자가에서 불리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선포입니다.
그것의 노예로 허덕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다 선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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