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성
Notes
Transcript
사도신경
-사도신경하심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2.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3. 합심기도
월요일: 목사님과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목사님, 언제나 강건하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사명 온전히 감당하게 하옵소서. 목사님의 가정에도 평안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나라의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쓰임받게 하옵소서. 합심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화요일: 지역을 위해서
수요일: 직분자를 위해서 찬양팀, 수요기도회
목요일: 다음세대와 선교사님
- 호주 백준호 선교사님, 요르단 황선국 선교사님, 캄보디아 김수연 선교사님,
네팔 신기도 선교사님, 몽골 최용현 선교사님
금요일: 소그룹을 위해서
토요일: 주일을 위해서
4. 성경봉독
1)이스라엘 왕으로 찬양 받으시는 예수님
1)이스라엘 왕으로 찬양 받으시는 예수님
종려나무 가지는 다른 복음서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오는데요. 종려나무 가지는 초막절에 사용해오던 식물입니다. 그런데 유대 전통에서는 다른 절기에서도 사용 해오곤 했습니다. 이 종려나무는 가지는 어떤 의미냐면 승리를 상징하는 식물이었습니다. 군인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나라에 남은 사람들은 종려나무를 들고 흔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데요.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소리를 지르며 도열을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왕처럼 승리의 왕을 예루살렘 성으로 맞아들이는 의식입니다. 예수께서 자신들의 왕이 되어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실 것을 기대하고 자신들의 삶을 번영시킬 것을 기대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호를 지른 것입니다.
환호를 지를 때는 ‘호산나’라며 불렀습니다. ‘호산나’는 ‘오, 구원해 주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본래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시편 118:25 의 말씀에서 나와있듯이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라는 짧은 기도문이었습니다. ‘호쉬아’는 구원이라는 뜻이고요. ‘나’는 지금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구원하소서’ 이것이 찬양의 외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들의 간절한 바람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담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킨 후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때는 피하셨지만 이제는 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지막 일을 마칠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계획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2) 어린 나귀를 타시는 예수님
2) 어린 나귀를 타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는 이유는 스가랴 9:9
스가랴 9:9 (DKV) 우리말
시온의 딸아, 마음껏 기뻐하여라! 예루살렘의 딸아, 소리쳐라! 보아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다. 그는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시니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
새끼 나귀를 타신 예수께서는 겸손한 왕으로 오셔서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평화를 주십니다. 이러한 메시야의 겸손함과 평화를 주시는 모습은 요한복음에서 보여주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든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는지, 왜 겸손한 모습으로 가시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영광에 이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당시에는 몰랐던 것이죠.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모든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님께서 그들을 깨닫게 하신 겁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야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3) 표적으로 인해 찬양 받으시는 예수님(12:17-19)
3) 표적으로 인해 찬양 받으시는 예수님(12:17-19)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을 행하시고나서 이제 자신이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 잡히시기를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자신이 죽고 살아날 것을 표적으로 보여주시며 이제 마지막 고난과 영광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입성은 고난으로의 입성이자 영광으로 나아가는 입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표적이 가리키는 고난은 보지 못하고, 기적만 바라보았습니다. 죽음은 보지 못하고 나사로의 부활만 봤습니다. 이제 자신들이 잘 살 것만을 기대했습니다. 예수께서 지셔야 했던 인류의 죄는 보지 못하고 자신들이 받을 복만을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이 잘 될 것만 바라고 따라가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으러 가고 계십니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계획대로 진행시키십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따른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도마의 외침처럼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구호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잘 되길 바라면서 살아갑니다. 자신의 자리와 목표와 이익과 입지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기도 합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도 그렇고요. 예수를 죽이려던 종교지도자들도 그렇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19절에 말합니다.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이렇게 푸념하며 절망합니다.
사람들이 종교지도자들인 자신들을 따라와야 하는데 그래야 자신들이 힘도 세지고, 배도 불리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서 그들에겐 이제 큰 염려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가 누구인지는 상관 없습니다. 기적을 행해도 자신에게 이익이 안 된다면 그 기적은 방해만 될 뿐이고 귀신의 일이라고 치부시켜 버립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향해 그렇지는 않나 생각해봅니다. 내 이익이 되면 나의 왕이시고, 내게 손해가 되면 쫓아내고 싶은 분은 아닌지요.
지난 수련회 둘째 날 말씀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미국에서 전학 온 중학생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참 바보같은 친구였다고 합니다. 급식시간에 밥을 먹기 전에 15초를 기도했대요. 15초가 짧은거 같지만 밥 먹기 전에 15초는 굉장한 시간입니다. 특히나 중학생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평소에 식사전에 10초도 안할 겁니다. 밥을 앞에 두고 기도를 오래하기가 일단 인내심이 부족하고요. 둘째로 학교에서는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밥 먹기 전에 15초나 기도를 가만히 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정혁이라는 친구가 제육복음을 뺏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기도를 끝내고 별로 신경쓰지 않고 먹습니다.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뺏기지 말고 너의 것은 잘 챙겨라 라고 말해주시지만 이 친구는 괜찮다고 말하고 축구하러 나가서 놉니다.
축구할 때도 외국에서 사온 장갑을 끼고 골키퍼를 합니다. 보통 골키퍼 하는걸 싫어하거든요. 공격수 하고 싶지. 그런데 이 친구는 친구들에게 다 맞춰줍니다. 그렇게 손해를 보는 친구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친구가 1년 있다가 다시 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전교생이 나와서 이 친구를 안아주며 선생님들도 안아주며 보내주었습니다. 모두가 좋아했던 학생이었던 거죠.
그리고 이 친구를 가장 괴롭혔던 그 친구는 나중에 20살이 되어서 뭐가 되었나 보니까 총신대 신학과를 갔대요. 친구꺼 뺏어먹고 괴롭히던 친구가 신학과를 갔어요. 알고보니까 이 친구가 정혁이를 데리고 교회를 간 거예요. 다른 친구들도 다 데리고 교회를 갔더래요. 이 친구는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자기가 손해보고 친구들에게 다 맞춰주고 그랬던 거예요.
기가막힌 친구죠. 하나님은 이렇게 주를 위해 손해보는 친구를 통해 위대한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너무 내 이익을 챙기지 말고, 다른 사람보다 잘나려고 하고, 세지려고 하지 말고, 주를 위해 새끼 나귀를 타고, 겸손해질 수 있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화려한 백마가 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겸손의 왕이시고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따라 우리도 작은 나귀를 타게 하시고, 겸손하게 하시고, 낮아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7. 찬송가 149장
8. 오늘 말씀 가지고 주여 세 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