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간절히 찾은 두 사람(막 5: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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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다시 갈릴리 바다 서편으로 오셨습니다. 큰 무리가 모여들자 예수님은 4장에서처럼 바닷가에 계셨습니다. 그때 ‘야이로’라 하는 이름의 회당장이 찾아와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간곡하게 부탇합니다. 그래서 그의 딸을 고치러 가던 와중에 12냔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갑자기 끼어듭니다. 야이로와 여인은 여러면에서 대조가 됩니다. 여자와 남자라는 점 외에도 여인은 이름없는 부정한 여인에 불과했지만, 야이로는 회당을 관장하는 회당장이었습니다.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도 두 사람은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여인은 병을 치료하느라 재산도 다 잃었지만, 야이로는 회당장이었기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두 사람의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로 예수님을 간절하게 찾았다는 것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회당장’은 한 마을의 종교지도자로서 회당의 모든 업무를 관할하고 마을 사람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 유대 사회에서 회당장은 높은 지위였으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야이로는 종들을 보내 예수님을 초청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들을 대신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와서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한 마을의 존경받는 종교지도자이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예수님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체면이나 사람들의 시선이 뭐든지 간에 그것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에게는 어린 딸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간청에 예수님은 그와 함께 길을 나섭니다. 그러던 중에 큰 무리가 따라오면서 예수님을 밀어대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혈루증 여인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혈루증이 무슨 병입니까? 여성들의 생리가 멈추지 않는 병입니다. 이 여인은 무려 12년동안 이런 병을 앓아왔습니다. 치료를 받았지만 몸만 괴로웠고 재산만 탕진했을 뿐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 낫습니다. 왜 나았습니까?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 나은 이야기가 또 나옵니다.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예수님이 게네사렛에 가셨을 때도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 치유를 받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여인이나 병자들이 손을 댄 부위는 겉옷의 네 귀퉁이에 달린 ‘옷단 술’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당시에는 병자가 온전한 자의 옷단 술에 손을 대면 낫는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기에 옷단 술은 그 옷 주인의 영적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시고, 무리 가운데 돌아서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시니 제자들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라고 말이지요. 혈루증 걸린 여인은 “내가 그의 옷에 손만 대어도 구원 받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에 있던 제자들과 다른 무리들은 이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 밀고 있는데 예순임의 옷에 누군가의 손이 닿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 그 일이 뭐 대수로운 일이냐, 예수님이 너무 민감하신 것이 아니냐,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정도로는 능력이 나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점이 바로 여인들과 제자들의 차이요, 예수님이 혈루증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직접 바라보시며 말씀으로 치유하지 않더라도, 나를 직접 만지지 않아도, 그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절대 신뢰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 일 행한 여인을 찾으려고 둘러보십니다. 그러자, 여자는 그 모든 사실을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서 아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녀를 향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축복해 주십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은 이 여인을 가리켜 ‘딸’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그녀가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3장 35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여인이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와 행했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평안히 가라”고 축복하십니다. 이 말은 당시 유대인들이 헤어질때 하는 인사로 볼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를 직역하면 “평안속으로 들어가라”입니다. 12년 동안 그녀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좌절, 체념, 분노,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믿음으로 치유를 받아 하나님의 딸이 된 그녀에게 예수님은 평안을 누리도록 축복하십니다.
이제 혈루증 걸린 여인은 완치를 받았습니다. 완치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가 왕되신 하나님 나라의 가족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그녀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이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불러일으키는 ‘촉매’가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야이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딸에게 손을 얹으면 자기 딸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염치불구하고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하시는 이유는 믿음이 결국 예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발휘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 믿음이 있다면 가능하게 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혈루증 걸린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간것처럼, 야이로가 종이 아닌 자기가 직접 예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린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간절히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잠 언 8장 17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우리의 병도 고쳐주시고, 우리의 걱정 무거운 짐을 맡아 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냥 간절히 찾으면 안됩니다.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