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다굼!(막 5:35-43, 찬송가 292장)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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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는 살펴본것처럼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발아래 엎드려 자기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간청하자 예수님은 그의 딸을 고치기 위해 그와 함께 길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열두해동안 혈루증으로 앓아온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긴급한 환자를 고치러 가는 중이셨지만, 그 걸음을 멈추시고 그 여인을 찾으신 후 평안을 빌어 주셨습니다. 그런데요, 이 모습을 바라보는 야이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며 속이 까맣게 타들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 그만 시간좀 지체 하시고, 제발 빨리좀 가시지요!라고 수십 수백번 되뇌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께 치유를 받았지만, 야이로에게 있어서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걸음을 자기 딸에게로 가는 것을 지체하는 방해물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결국 야이로가 염려하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어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야이로의 집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칠수는 있을지 몰라도 죽은 자는 살릴수 없으니 예수님을 더 괴롭히지 말라고 종용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와도 소용이 없으니 괜히 번거롭게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장례 준비나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말을 들을때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그래, 다 끝났으니 예수님께 돌아가시라고 하고 나는 장례 준비나 잘해야겠다라고 생각해 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모든 병을 고치신다고 해도, 죽은 사람을 살리신다는 이야기는 못들었으니 여기까지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본다면 이들의 말은 야이로에게 믿음의 위기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여기서 곁에서 들으셨다는 말은 다르게 번역하면 무시하다, 혹은 들은체도 아니하시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하라”고 격려하십니다. 앞서 예수님은 큰 광풍이 부는 갈릴리 바다에서 배가 침몰 위기에 있을때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꾸짖으신바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한계 상황에 이르게 되면 예수님을 의지하던 믿음도 나약해지기 쉽습니다. 이 때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도 믿음을 약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야이로가 딸의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상황에서도 끝까지 자기를 믿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을때 가졌던 그 믿음을 계속해서 가지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이제 야이로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명백한 현실에 기초한 자기 집 사람들의 말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 같은 예수님의 약속을 믿을 것인가? 오늘 본문에서 야이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갑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격려에 힘입어 끝까지 믿어 보려고 예수님과 동행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소란을 떨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장례식을 하게 되면 전문적으로 곡을 하는 사람들을 고용하여서 슬픈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들으며 야이로는 죽음의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야이로의 믿음에 위기가 닥칩니다. 정말 딸의 죽음이 피부로 와 닿으니 또 믿음이 연약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예수님은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을 향해 소란 피우지 말라고 꾸짖으시며 아이가 죽은게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비웃는 자들을 다 내쫓았습니다. 여기서 내쫓다라는 헬라어는 주로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을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비웃는자들은 귀신들 처럼 쫓겨나게 될 것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믿음 없는 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볼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요, 오늘 본문은 믿음이 없으면 그 능력을 볼 자격이 없음을 이야기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음이 없으면서도 예수님의 능력을 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능력 베푸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의 믿음 없음이 그 역사를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능력을 맛보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믿음 안에 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으로 부터 내쫓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님의 능력을 직접 경험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기 위해 그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소녀를 살리기 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야이로의 간청을 듣고 예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쌌습니다. 그러나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야이로의 집에 도착해서 소녀의 방에 들어갈 때는 곡하던 자들을 다 내쫓고, 세명의 제자와 부모만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소녀가 있는 방으로 가면 갈 수록 동행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동시에 배경도 ‘넓고 공개된 장소에서 야이로의 집 소녀가 누워 있는 방’으로 점점 작고 은밀한 곳으로, 죽음이 지배된 곳으로 좁혀 지고 있습니다.
아이의 방에서 예수님은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은 아람어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이게 쉬운 일일까요? 아니지요. 율법은 시체와의 접촉을 가장 큰 부정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율법에 게의치 않고 그녀의 손을 잡습니다. 생명을 살리는데 있어서 정결법이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시체를 잡아도 부정해 지지 않으시고, 오히려 죽은자를 살려 내셨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즉시 일어나 걸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이 병을 앓은 기간과 야이로의 딸의 나이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야이로의 딸이 태어나던 바로 그 해에 여인은 혈루증을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12년전 야이로는 딸이 태어나 기뻤습니다. 반면에 바로 그해 여인은 혈루증이 시작되어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12년이 흐른뒤 야이로와 여인은 동일하게 예수님을 만나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세상의 원칙중에 제로섬 원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쪽이 행복해지면 다른 한쪽은 불행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요 성공한 기업이 있으면 실패한 기업이 있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이 있으면 낙선한 사람이 있고, 스포츠에서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다는 논리입니다. 사실 오늘 이 사건도 제로섬 원칙이 적용될 뻔 했습니다. 야이로와 혈루증 앓던 여인이 모두 예수님을 만났지만 한 사람은 고침받고 한 사람은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승자와 패자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사역 원칙은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 법칙, 즉 공생의 원리가 기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쪽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기조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성공한 일부만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만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나 실패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아픈자나 건강한 자가 모두 행복한 그런 나라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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