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과 파송(막 6:1-13, 270)
매일성경(마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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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전 삼성그룹 회장이었던 이병철 회장님의 고향은 의령입니다. 이병철 회장이 성공한 후 80년대에 고향 발전을 위해서 의령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동네 유지들의 반발로 인해 그 공장 유치가 무산되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 깨끗한 청정지역에 공장을 지으면 환경이 오염되기 때문이었지만, 속내는 자기들보다 더 잘살고 성공한 것이 배가 아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이병철 회장님은 생전에 진주까지는 가도 고향 의령에는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때의 고향 사람들의 배척과 냉대가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의령군이 삼성에 공장을 유치해 달라고 했지만 이미 돌아선 마음을 바꿀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유사한 사례를 봅니다. 5장에서 예수님은 갈릴리 동편과 서편을 오가시며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시고, 열두해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치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더니 이번엔 고향 나사렛으로 가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것을 얻었는가?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의 손으로 이뤄지는 이런 권능들이 어디서 온 것인가?라며 서로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 놀라면서 그 지혜와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뭐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이 한편으로 이해가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비범한 재주를 가진 사람을 보면 “야, 저 사람 저거 어디서 배웠지?”라고 궁금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이어지는 그들의 반응을 한 번 보십시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먼저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 사람’이라고 부르며 매우 깔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모욕적인 언사도 거리낌 없이 하고 내 뱉고 있습니다. 게다가 직업도 들먹입니다. 이 당시 목수라는 직업은 그냥 막노동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이 있으면 목수일도 하다가 없으면 포도원 일꾼도 하다가, 공사판에 잡일도 하는 그런 형편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비유에 노동자들의 일상이 녹아나는 것도 이런 일들을 다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게 다가 아니지요. 예수님의 가족관계까지 들먹이면서 예수님을 얕잡아 봅니다. 종합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내가 너를 잘 아는데, 니가 그럴 능력을 갖춘게 말이 안된다. 그런데 그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배워먹은거야?라고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기껏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아니 자기들 보다 못한 사람이 지혜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질투하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고하기는 커녕, 저 녀석이 어디서 저런것을 배웠을까?라고 궁금해하다가, 자기들은 그런 능력이 없음에 질투하며 깔보고 배척했습니다.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이 이런 능력을 가지는게 말이 안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이런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향사람들의 태도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자기 고향에서는 소수의 병자를 고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권능을 베푸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손해는 고향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환대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했다면 어쩌면 갈릴리의 다른 지역 사람들 보다 훨씬 더 큰 예수님의 기적과 은혜와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고작 목수가, 아비없는 자식이 이런 일을 행할 일 없다는 뿌리깊은 편견과 질투가 결국 예수님을 고향에 오래 있지 못하게하고 내 쫓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 모두는 편견과 선입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전에 제가 만난 어느 분은 보육원출신들에 대한 편견이 있으셨습니다. 항상 문제 있는 아이들로 바라보셔서 가끔씩 저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드셨습니다. 보육원 출신 아이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 대기업에 취업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코 순수하게 그 아이들을 바라보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셨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시골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시골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못살고 불편한 환경에서 산다고 믿습니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중국인이 잘 안씻는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나 인도와 같은 나라들은 미개한 나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에 대해서는 굉장히 우러러보는 성향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사람의 피부색에 따른 편견, 특정 지역에 대한 편견, 여성에 대한 편견, 장애인에 대한 편견,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등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편견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어떨까요?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동등한 기회도 부여받지 못합니다. 대신에 차별을 밥먹듯이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편견은 더 나은 사회를 이루는데 큰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전 한 여성 프로골퍼가 유투브 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20년의 골프 경력을 가진 남자라는 분이 대뜸 끼어들어서 자신이 말한대로 골프 스윙을 하라고 한 영상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여자는 골프를 남자보다 잘 칠리가 없다는 선입견이 작동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요, 선진국일수록 편견에 의한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믿음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은 교회가 하나되는데 있어서 큰 장애물이 됩니다.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교회가 화목하며 하나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을까요? 서울에 가면 승동교회라고 있습니다. 원래 이 곳은 양반들이 주로 모였는데, 천민들이 한 두명씩 모이기 시작하다가 비슷한 수가되었습니다. 결론은요, 양반들이 천민들과 신앙생활 같이 못하겠다고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편견은 우리 신앙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을 내 기준을 가지고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은 교회를 갈라놓고 찢어놓는데 일등공신이 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편견은 결코 사회나 교회에서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만 잔뜩 줄 뿐 어떠한 유익도 없습니다. 공동체를 깨트리는데 일조를 할 뿐 결코 화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편견에 사로잡혀서 잘못된 행동과 평가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고자 할때에,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도 편견을 통해서 억울하게 평가받고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구를 질투나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편견을 통해서 너와 나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넘어서 편견으로 상처받은 영혼들을 따뜻하게 감싸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편견에 사로잡혀 누구를 욕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그 순간은 재미가 있고, 또 마음의 위로를 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행위 자체가 악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도 약하고 소외되는 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오시고, 몸소 그 편견으로 아픔을 겪으셨던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편견으로 아파하는 자들의 힘이 되어주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부족하고 죄많은 우리를 사랑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이 새벽에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예배하기를 기뻐하며 새벽을 깨워 이자리에 나온 사랑하는 성도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여 주시고, 오늘도 차고 넘치는 복과 은혜로 채워 주시옵소서.
오늘 들은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때에 편견과 고정관념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우리보다 능력있고 잘 된 사람들을 질투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보다는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고 인정할 건 인정하게 하여 주셔서, 편견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아픔을 주는 일들을 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 세상은 참으로 편견으로 넘쳐납니다. 피부색을 보고 출신지를 보고 자라난 환경을 보고 태어난 육신을 보고 이 밖에도 수많은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우리 주위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성도들 그런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하여 주시고,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며, 또 편견으로 상처받은 자들의 마음을 깜싸줄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 가운데도 그런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는 눈들이 사라지게 하여 주시고 우리 모두 한 가족임을 인정하며 사랑하며 작은 눈쏙의 티조차도 감싸줄 수 있는 우리 지세포 제일교회 모든 권속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님들과 미래 자립교회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없는 곳에서 신분을 숨겨가며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의 안전을 지켜 주시고, 그들이 그곳에 거주함으로써 복음의 지경이 날마나 확장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드러내놓고 선교할 수 없지만, 주변에 예비된 영혼들을 많이 만나게 하여 주셔서, 그들이 복음을 듣고 회심하며 우상으로 가득찬 그 땅에 씨앗이 되어 복음의 열매를 많이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밖에도 우상이 넘치는 곳에서 복음의 사역을 위해 매진하는 다른 선교사님들도 기억하여 주셔서, 선교사님들의 말씀 선포와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교회의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후원하는 교회 목사님들을 긍휼히 여겨 주셔서, 속히 자립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주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 험한 세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오늘도 조선소에서 일하시는 분들 위험한 일들 겪지 않고 안전하게 하루를 잘 마무리하게 하여 주시고, 바다에서 일하시는 분들 안전하게 조업을 잘 마치고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농사를 준비하는 손길 가운데 올한해 농사를 잘 계획하고 준비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고, 자영업 하시는 분들 가운데 많은 손님들고 좋은 거래처가 많아져서 힘든 가운데도 풍성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중에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의 권세로 속히 나음을 받을 수 있도록 주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