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장 24-37절 “부스러기 은혜” / 찬4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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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본 단락부터 8장 초반까지 예수의 이 방사역이 소개된다. 마가는 이로써 예수가 가져오신 구원을 유대인과 이방인이 풍성히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 구원의 청사진으로 그려낸다.
어제 나누었던 것처럼 유대교에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는 예수의 선언은 커다란 파장을 야기했다. ‘부정과 정결’의 주제는 계속된다. 예수는 이스라엘이 부정하게 여기는 이방 땅으로 옮기신다. 갈릴리 한 ‘집’을 떠나 두로 지방의 한 ‘집’으 로 들어가신다.
마가복음 7: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공생애 동안 예수의 공식적인 사역 무대는 이스라엘이다. 이렇게 이방 지역으로 옮기신 것은 일종의 비공식적 사역이다. 이방 땅 두로로 옮기실 때 예수는 자신의 방문을 최대한 숨기며 한 집에 은밀히 들어 가신다. 그러나 예수의 갈릴리사역 초반부터 다양한 지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이미 두로와 시돈 사람들도 그 그룹에 포함되어 있었다(3:8). “숨길 수 없더라”라는 표현처럼 이미 예수의 소문이 갈릴리를 넘어 이방 땅까지 파다했음을 알 수 있다.
한 여인이 등장하는데 그녀에게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이 있었다. 이것이 여인이 예수를 찾은 결정적 이유다. 이어지는 “헬라인”과 “수로보니게 족속”은 그녀가 철저히 이방인임을 강조한다
마가복음 7:25–26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딸을 사로잡은 "더러운 귀신”은 자주 등장한 표현으로 유대적 관점에서 보면 ‘부정’을 반영한다.
그녀가 “예수의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그 소문은 ‘예수가 누구인가’를 들려주는 자세한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예수가 자신의 절박한 현실을 해결해 줄 유일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발 앞에 엎드린 것이다.
그녀의 돌발 행동에 대한 주변 반응 역시 소개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입술에 초점이 모인다.
마가복음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스라엘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하는 것’과 그 다음 이어지는 “떡”은 메시아가 가져오실 복/구원/은혜이며,그것을 충만히 누리는 것을 ‘배부름’으로 묘사하고 있다. “목자 없는 양”(6:34)들이 배불리 먹고 남는(6:42-43)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보았듯이, 예수는 그런 이스라엘의 우선적 권리를 강조하신다.
이어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신 다. 과하게 직설적인 이 말씀은 성경에서 가장 잔인한 말 중 하나다. 이방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경멸적 인식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주신다.
그런 가혹한 말씀 앞에서도 이 여인의 태도가 반전을 만든다.
마가복음 7: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부스러기”는 상 아래 떨어진 음식물로 개들이 누리는 특권이다.
여인도 예수가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안다. 예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보내신 메시아이므로,그들이 먼저 복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안다. 이스라엘이 우선적으로 받올 복을 취해 자신에게 달라는 것이 아니다.
예수는 ‘그녀의 말’에 주목하신다. 그리고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갔으니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마가복음 7: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말씀은 여인의 믿음에 초점이 있다. 예수의 사역 속에서 무지한 자녀들은 떡 먹기를 거절할 것이고,떡에 권리가 없던 개들은 배불리 먹을 것이다. 본 사건은 향후 펼쳐질 하나님 나라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어우러진 마가복음 독자들은 그 청사진 안에 들어와 함께 배부름을 맛본다.
예수는 의도적으로 이방 지역으로 들어가신다. 거기에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를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풍성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오는 새 창조가 일어나야 한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신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재치 있는 대답에 화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야말로 이방인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잘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