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부 -과실을 많이 맺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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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는 생활

Notes
Transcript

[도입 및 서론] 인사 및 기도

[본론]

그럼 성경을 찾겠습니다.
요한복음 15:3–5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가 열매를 맺힐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교회에 거하는 것, 맞습니다.
그것은 각자 개인이 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하나가 있는데 제가 모두에서 말씀을 드렸죠!
하나가 될때 그것이 열매되어 30배 60배 100배가 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어디서 봅니까? 하계수양회에서 보여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늘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말씀을 가지고 같이 나누어 볼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은 많이 읽었고 들었던 말씀일것입니다. 그렇죠.
오늘은 교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과실을 많이 맺히는 생활. 그것을 중점으로 말씀을 나누어 볼려고 합니다.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열매를 맺고 있나요.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천국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의미는 나의 상급이 저 천국에 쌓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여기에 앉아계신분들 과실을 많이 맺고 싶죠. 지금 맺고 있는 분들은 더 많이 맺고 싶죠
그럴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이라면 과실을 많이 맺고 싶어 하실것입니다.
과실을 많이 맺는다 더 많이 맺는다. 저 천국에 상급이 더 많이 쌓인다.
더욱더 많이 쌓인다 이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거잖아요.
주님을 섬기면서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열매를 맺어가며 사는 삶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잖아요.
그렇죠 저 천국에 있는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열매를 맺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한번더 삶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 했으면 좋겠습니다.

1. 열매 맺는 조건

1-1. 포도나무와 우리의 구원의 은혜

말씀을 살펴 보기 전에요.. 포도나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씀 찾겠습니다.
에스겔 15:1–3 (KRV)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3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포도나무는 지지대가 없으면 혼자서 설 수 없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덩굴처럼 자라기 때문에 건축용 자재로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공예품으로 만들수도 없습니다. 꽃도 아릅답지 않아서 관상수로도 사용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포도나무가 귀한 이유는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포도라는 열매를 맺기 때문에 귀한 나무인것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처럼 이 포도 나무 같이 쓸모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릇을 걸 못으로도 아주 작은 것을 쓸수도 없는 나무인것입니다.
말씀입니다.
디도서 3:3 (KRV)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다 이렇게 행했던 자였습니다.
이렇게 행했던 자였는데 난 지옥에 가더라도 저 밑창 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는데
그런데 주님은 나를 찾아 와 주셨고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맞습니까.
고린도후서 8:9 (KRV) 찾아 보겠습니다.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안다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들은 알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요하신 자였다. 그렇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부요하신 분이였습니까?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네 맞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었습니다. 저 천국이 주님의 것이 었습니다.
그런데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너희를 위하여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어떻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가난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가난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셔서요. 저 천국에 있는 것 보다 나를 사랑하셔서 몸을 희생하셔서 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이 저 천국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실 때 가난함을 입었죠. 그래서 내가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이 부요한 자가 된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말씀 찾겠습니다.
사무엘상 2:8 (KRV)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우리는 가난한 자였죠. 그 가난한 자를 주님은 진토에서 먼지에서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핀빕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려 주셨습니다. 어디까지 올려 주신것입니다. 귀족들과 함게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자 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가난한자가 되시고 나를 저 귀족들과 함께 앉는 위치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 그 위치까지 올려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를 그 위치까지 올려 주신것에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구원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서 매달리신 사건을 믿지 않으신분이 여기에 있다면 내가 믿는 믿음이 다르다면 반듯이 그것을 해결 하셔야 합니다. 주님은 기다려 주시고 계시지만 영원히 기다려 주시지는 않습니다.
주님이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별해주시고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을려면 구원함을 받고 주님께 받은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포도나무는 쓸모가 없지만 열매를 맺기 때문에 귀하듯이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존귀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2. 예수님의 피가 발라져야 합니다.

다시 본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3절을 보면 3절을 보면
요한복음 15:3 (KRV)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이미 깨끗하게 된 사람은 어디에 거하라고 했습니까.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명령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시면요
요한복음 15:4 (KRV)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과실을 맺는게 불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열매를 맺는지 우리가 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전혀 맺힐 수 없는 열매들인데 그 대표적인 열매가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것이 성령의 9가지 열매인데요 이것들이 예수님 안에 있지 아니하면 맺을수 있다고요 없다고요.
네 맺을수 없는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5:8 (KRV)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 것도 빛의 열매입니다.
그 열매도 맺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역자가 되어서 복음에 참여할 수 있는데요.
그 전도의 열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맺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숙된 신앙 안에서 내 말이 의롭게 바뀌어 가는 천하게 바뀌어 가는 그 입술의 열매도 맺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내 안에 기쁨과 즐거움 그런 새로운 힘이 생기는데 그런 힘이 생기는 그런 열매를 맺힐 수 없습니다.
그러니깐 예수님 안에 있지 않음으로 맺힐 수 없는 열매들이 이렇게 너무 많은 것입니다.
잠언 11:30 (KRV)
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우리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것을 통해서 한 영혼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지 아니하면 이것 모두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말라기 3:16 (KRV)에 보면은요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즉 그리스도인 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셨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 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해서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해두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피차에 교제하는 그런 모습이 기념책에 기록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신앙 안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하는 그런 사랑의 교제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여호와 앞에 기록책에 다 기록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열매들은 모두다 내가 천국에 갔을 때 직접 하나님께서 상으로 계산되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니깐요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열매를 잘 맺고 살고 있는지는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서 떨어지고 교제에서 멀어지면 이런 열매를 맺히는 것은 불가능 한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은요
요한복음 15:5 (KRV)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열매 맺는 일을 아무 것도 할수 없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 말씀과 교제를 떠나도요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도 대부분의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돈도 잘 벌수 있고요 인생을 성공할수도 있고,나름대로 육신적인 행복을 누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열매를 맺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불가능 한것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열매를 맺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가장 불행한 것입니다.
그 인생을 낭비하고 헛되게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인것입니다.
그래서 교제에서 떨어진 사람이 되면
요한복음 15:6 (KRV)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진다
이 말라진다 말은 그 표현은 신령한 기쁨을 잃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교제에 떨어지면은 그 구원의 기쁨과 감사도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신령한 기쁨과 즐거움의 열매들을 다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마음에 그리스도인이 당연히 누려야할 그런 감사와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다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사랑을 회복해야 된다고 그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런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 말은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불에 던져 사른다는 것은 마태복음 5:13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렇게 말씀 하고 계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 받지 않은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서 살다보면 그들처럼 살지도 못합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양심의 고통은 있지만 죄 에대한 강한 반발심은 없습니다.
그러니깐 죄를 쉽게 묵인하고 살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신의 기쁨이 어느정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사람은 이제 양심이 더욱더 선한 양심으로 바뀌어서 영혼이 살았기 때문에
죄에 대한 강한 저항감이 생겨 있습니다.
그러니깐 죄를 지을때도 마음의 고통과 거리낌이 훨씬 크도록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틈 바구니에서 살다 보면 마음이 훨씬 괴롭습니다.
죄의 즐거움을 누리지만 고통 더 구원받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크게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깐 훨씬 불행합니다.
그래서 괜히 구원받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2:7 (KRV)
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가서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이라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깐 롯이 아브라함과 같이 있을 때는 마음의 평강과 기쁨이 있었는데 소돔과 고모라성의 육신적으로 좋아서 길을 찾아 갔는데 마음이 어떻습니까.
고통스러워 해요, 의인은 세상 사람과 있으면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성이 불로 심판이 될 때에 겨우 아내도 소금기둥으로 잃어 버리고 두 딸만 데리고 나오게 되잖아요
그 많던 재산도 다 잃어버리고 종들도 다 불로 심판 당했습니다.
불가운데서 얻은 구원과 같다고 했잖아요 마음의 기쁨도 전혀 얻을 수 없고 고통 뿐이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그 모습이 마치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처럼 나타나 있습니다.
불에 던져 사른다는 이 표현들이 롯의 말로를 보면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나면 세상에 떨어지는 것처럼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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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구원받기 이전에 내가 선을 행하고 착한일도 꽤 많이 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천국의 상이 됩니까.
않됩니까? 않됩니다. 왜 않됩니까? 선을 행했는데요.
온전한 선이 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온전한 선이 되려면 예수님의 피가 함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상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런 걸 생각해보면 구원받고 내가 신앙생활가운데 내가 착한 이 라고 선을 행한다고 해서
그것은 무조건 상이 않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구원 받고 교회 안에서 봉사를 하면 다 그것이 상이 될까요,
만약 형제 자매들의 눈치를 봐서 봉사 했고 형제 자매 칭찬 받고 싶어서 봉사 했다면 상이 될까요?
여러분 그것은 상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발려져 있어야 됩니다.
그렇잖아요 예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이 감동했고 정말 그 사랑에 기반해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상과 상관이 없습니다.
마치 구원받기 전에 내 노력 내 의지 네 방식으로 선을 행했던 것처럼
구원받은 후에도 그렇게 살 수 있거든요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상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맺는 열매라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발려 있는 그런 열매들인 것입니다.
주님과 연결되지 않은 것들은 열매가 될 수 없고 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열매 맺는 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어떻게 하면 열매를 맺힐수 있을까요

오늘은 열매 맺는 삶 이니깐 어떻게 하면 이 열매들을 맺을 수 있을까?
그리고 올바른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 있을까?
이것은 신앙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인 것 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우리 요한복음 15장 7절을 보겠습니다. 본문입니다.
요한복음 15:7 (KRV)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두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이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두 번째는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2-1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그럼 우리 첫 번째것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이것은 교회가운데 먼저 붙어 있고 말씀과 교제 가운데 붙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안에 거하는 문제도 조금 더 살펴 보면요 복잡합니다.
여러분 주일 말씀 듣고 수요일 말씀만 듣고 있는 분들 있잖아요. 뭐 어느 정도 붙어 있느냐.
그것이 제대로 붙어 있는거냐. 그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 정도만 들으면요 제대로 붙어 있다고 실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어느 정도 붙어야지 제대로 붙은건지 오히려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 두가지 조건이 충족이 될 때 너희는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의 응답을 해 주시겠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가지 조건이 만족이 되지 않는다면 내 기도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제대로 붙어 있어야 하고 이조건이 만족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만족될 때 내가 구하는 것을 다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이 말씀은요 쉽게 주님이 나고, 내가 주님이 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주님이 나고 내가 주님이 되는 삶을 살수 있을 까요?
포도나무 비유에서 가지는 어디에 붙어 있으라고 했나요.
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뿌리에서 오는 진액을 빨아 드릴 수 있습니다.
어느날 충성된 종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종을 시험해볼려고 소쿠리를 주었는데 채로 되어 있는 소쿠리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쿠리에 물을 가득 채워놓아라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종은 주인의 말을 듣고 소쿠리에 물을 채워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물을떠서 소쿠리에 담고 했습니다. 그런데요 소쿠리에 물이 찹니까?
절대로 차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종이 열이 받아서 뭐 주인이고 뭐 없어 하고 발로 뻥 찻습니다. 그런데 그 소쿠리가 굴러 가더니 어디에 떨어졌냐면 물을떳던 강으로 떨어진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소쿠리에 물이 가득차게 되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칭찬받았던 이야기 인데요
이것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수 있나요. 우리는 어디에 푹 빠져 있어야 하나요.
네 맞습니다. 강물에 푹 빠져있을 때 소쿠리에 물이 가득차 있는것처럼 우리도 교회에 주님에게 푹빠져있어야 주님에게 뿌리를 박고 있어야지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골로새서 2장 6절 찾겠습니다.
골로새서 2:6 (KRV)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안에서 행하되 그안 그안이 어디죠 예수그리스 안에서 뿌리를 박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뿌리를 어디에 박으라고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뿌리가 어디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나요
경겨에 보면 물가에 심기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17:8 (KRV)
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을 찾겠습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방금읽은 말씀을 보면 우리는 어디에 심기었습니까. 물가에 심기었습니다.
원래 우리는 어디에 심기었던 사람이었습니까?
6절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17:6 (KRV)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우리는 사막에 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광야 간조한곳 광야같이 메마른 곳, 그리고 건건한 땅 소금기가 가득한 땅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의지한 사람들 즉 구원받고 주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심기운 것입니까?
물가에 심겼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말씀을 보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망에 있었죠. 거기서 생명으로 옮기것입니다. 물가로 옮긴것입니다.
물가에 있으면 가물어서 말라서 죽을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걱정이 없죠.. 물이 있는데요.
더위가 올지라도 두러워 아니하죠.
그러니깐 그 잎은 청청 하고, 결실이 그치지 않는 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우리가 있는 곳이요.
비슷한 말씀이 있는데 찾아 보겠습니다.
시편에 보면 어떻게 거해야 하는지 에 대해서 잘 나와 있습니다 .
시편 1편 말씀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3 (KRV)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과실을 맺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심겨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많은 과실을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될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까요?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뿌리를 내리는 것 그 뿌리를 내리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교제에 참석한다.라는 겁니다.
나무가 과실을 많이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기 위해서는 그 뿌리를 넓고 깊게 내려야 됩니다.
뿌리를 넓게 내린다. 많이 내린다. 라는 것은 모든 교제에 참석하는 것을 의미하고
뿌리를 깊게 내린다는 것은 그 안에서 깊은 교제를 나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하셨어요.
우리가 교제 참석할 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참석해야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도 단지 의무감이 아니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정말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형제자매님들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 교제 참석하는 것. 그럴 때 많은 공급을 받게 되는 겁니다.
교제에는 몸만 참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교제 참석하고 그 말씀을 듣고 형제자매님들 사랑할 때
많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겁니다.
늘 교제가운데, 말씀가운데 공급함을 받아야 됩니다.
공급함이 없는 신앙은 금방 넘어지고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 가운데, 교제 가운데 늘 공급받고 계십니까? 공급을 받아야 됩니다.
말씀의 힘. 믿음의 힘, 사랑의 힘. 물론 모든 공급의 시작은 뿌리에서 부터 받게 되는 겁니다.
이 뿌리는 당연히 물가에.. 이 교회에 있어야지 공급을 받는거죠
교제 안에서 있어야죠, 공급을 받게 되면 절로 과실을 맺는 가지가 되는 겁니다.
말씀을 들으면 공급이 되나요? 교제를 참석하면 정말 공급함을 느끼나요? 안된다면 왜 그럴까요?
사모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몸은 와있는데 마음은 집에 있는 무언가에게 있다면,
공급이 되겠어요? 몸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교제 가운데 참석해야 됩니다.
무엇으로 심었습니까?
에베소서 3:17 (KRV) 찾겠습니다.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방금 읽은 말씀을 보면 여러분의 마음에 누가 계십니까.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으로 심었습니까?
네 사랑 가운데서 박힙니다.
그러면 그 터가 굳어 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우리의 뿌리는 박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의 크기를 알아 갈 때 뿌리를 깊게 박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18절-19절 말씀을 보면
에베소서 3:18–19 (KRV)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말씀을 살펴 보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라..
우리가 교회 안에 성도들과.. 옆에 앉아 계신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있을 때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넘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형제 자매님들이 느끼는 주님이 사랑이 넘칩니까.
아니면 점점 사랑이 식어집니까?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사랑을 계속 생각하면서 살아야합니다. 그 십자가에서 나에게 배푸신 사랑을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대단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실때요.. 그거 누가 맞아야 합니까. 내가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대신 맞아 주셨습니다. 그것도 어떻게 맞았는지 생각하면 그냥 저절로 숙연해 집니다.
십자가에서 매달리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죄를 많이 지은 흉학범들이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때릴 때 살살 때리겠습니까? 아닙니다. 죽일려고 때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처형때 채찍으로 때리지 않고 달리면 4일 내지 5일 정도 버틴다고 합니다. 그러면 않되니깐. 채찍으로 때리는 것입니다. 일찍 죽게 하려고요.
그러니깐 얼마나 힘차게 내리 치겠습니까? 상상이 되시나요. 어떤사람은 채찍에 맞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 채찍을 몇대를 맞으셨습니까? 120대를 맞으셨습니다.
그리고요 얼마나 오랜시간 맞았을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채찍은 보통 세줄 네줄 여러줄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끝에 동물의 뼈들이 있잖아요
그럼 한대 때릴때요 그 채찍이 엉키잖아요 그럼 다시 풀어야 되잖아요. 그 시간을 생각하면 꽤 오랜시간 맞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맞을때 연속으로 맞으면 그래도 맞을만 하잖아요. 그런데요 한대 때리고 정리하고 또 때리고 그럼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왜요 얼마나 아픈지 아니깐요. 연속으로 맞으면 사람은 고통을 망각합니다. 아프긴 한데 그래도 맞을만 한다고 말씀드리는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고통을 몸소 다 느낀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 고통 누가 당해야합니까. 내가 당해야합니다.
그런데 누가 당하신 것입니다. 나의 그 죄 때문에 당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그 큰 사랑이 느껴 지십니까?
우리는 주님의 사랑이 식어졌다. 그럼 저 십자가를 생각하시면 느껴집니다. 저절로 느껴집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의 뿌리가 박힌 것입니다. 얼마나 깊을까요. 얼마나 넓게 펼쳐 있을까요.
그런데요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계속 붙잡고 있는데 붙잡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사랑의 넓이 사랑의 길이, 사랑의 높이,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큰지 깨달으면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도 충만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들인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서 사는 삶.
내안에 거하는 삶을 하면 자동으로 열매가 맺혀 지는 것입니다.

2-2 내말이 너희 안에 거하라

두 번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풍성히 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말씀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말씀 충만 상태가 되어야지만 성령 충만으로 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 충만이 되어 있지 않는데 성령 충만을 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하기 위해서는 말씀 충만을 우리는 먼저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암송하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입니다. 성령에 취하려면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먹는자는 영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마시고 나를 먹으라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먹고 마실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말씀이 충만하지 않으면 절대로 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 충만해야합니다. 그 말씀이 가슴속에 가득 차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 23:35 (KRV)말씀 찾겠습니다.
35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항상 술을 생각하는 사람은 술에 깰 때가 되면 술을 찾고, 완전에 술에 의지 하는자 술에 잠긴자, 그 대신에 성령에 충만 되어 있는 그 사람은 성령 속에 즉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교제속에 잠겨 사는 삶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좋아해야합니다. 우리가 복있는 사람은 결국 무엇이냐 성령 충만한 사람인것입니다.
시편 110편 97절 말씀에 보면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주의 법, 성경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말로 성령 충만할수 있는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수 있는 조건을 가진것입니다.
혹시 소설책 읽어보신적이 있으신분 계신가 모르겠네요.
소설책을 읽다가 재미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끝까지 완독을 하잖아요..
공감이 되지않은 것 같은데요. 드라마로 생각을 해보죠.
드라마 1회를 보았는데 이거 흥미가 있고 재미가 있을 것 같아. 그러고 2회를 받는데 역시 재미가 있어..
그런데 그 드라마가 66부작이에요.. 그럼 매일 하는 연속극 이면 매일 봐요 보지 않아요. 만약 보지 못했으면 재방송이라도 보잖아요..
우리 성경책은 66부작입니다. 어떻습니까. 1회를 창세기를 보았는데 재미있습니까. 재미 없습니까.
흥미진지 하지 않나요. 천지창조. 이스라엘 역사이야기 재미있잖아요 거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믿음을 발견하고 너무 재미 있잖아요 달잖아요.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103절에 말씀이 있잖아요.
성경 말씀에 푹 빠져서 살아있는 사람은 주님안에 거하는 사람일까요 마귀안에 거하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성령충만의 상태에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이 내안에 있을 때 우리가 열매를 맺고 자랄수 있는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푹 빠질때 이 말씀이 내 안에 거해서 그 말씀이 올바르게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고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볼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성령의 검이기 때문에 말씀이 없는 가운데 성령께서 능력이 있게 역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16 (KRV)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이 풍성히 거해야 합니다. 많은 것을 알아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이 내안에 가득 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하면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이렇게 우리 안에 거해야 되는데 그렇게 되려면은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구분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안에 거하면 그 결과로 주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서 생활들이 달라집니다.
그 속에 세상 욕심이 가득 들어 있다면 세상 욕심을 따라 살 것이고, 울분으로 가득한 사람은 건들기만 해도 울분이 나올 것입니다.
또한 그 안에 마귀의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은 행동으로 자꾸만 악한 것과 세상의 것이 나올것입니다.
잠언 23장 7절 말씀을 보면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며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말씀이 마음에 충만한 사람은 그 말씀이 나의 삶을 주장하시므로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마음, 주님의 지혜와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습니까. 형제 자매님 안에 무엇이 담겨져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말씀들이 담겨져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까.
우리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먼저 양육을 받아야합니다.
우리가 말씀들을 묵상을 합니다. 지금 이렇게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 묵상일까요.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묵상의 재료를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을 하고 적용을 할 때 비로서
그것이 묵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듣고 아 정말 이제는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그대로 해보는 것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해보는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 (KRV) 말씀을 잠시 보겟습니다. 찾겠습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렇게 행해야 합니다.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 읽다보면 성령을 좇아 행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
이렇게 두가지 두길이 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구원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성령을 좇아 뭐하라고 했나요.
행하라고 했습니다. 영어 번역에 보면 live by the spirit 성령의 의해서 살아가라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그 삶 자체 그 자체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가끔 행하면서 살아라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행하라 한번만 행하라가 아니라 계속 주님오실때까지 행하면서 살아야합니다.
계속해서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말이 있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그렇습니다. 선을 좇아 행하다보면,
소극적인 범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낀다고 않낀다고요.
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지런이 우선 행해야 합니다. 해 봐야 하는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주님의 일이라면 해 보는 것입니다.
성령을 좇아서 행하고 있으면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을 따르면서 살지 않습니다.
한번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바쁘게 지낼 때.. 죄를 지던가요..
다가오는 하계수양회에 봉사하고 있을 때 내 마음으로 죄를 짓던가요.. 아니죠.
우리가 더욱더 기쁘게 봉사를 하고 있는 내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렇죠.
우리가 육체의 욕심에서 멀어지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할때입니다.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실천 해야합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는 열매를 맺히면서 사는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하는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21 (KRV)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서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마귀를 향해서 가는 분들 있나요. 없잖아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향해서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삶이 성령 충만의 상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상태 인것입니다.

3.열매들

이러한 삶이 되었을 때 비로서 우리는 열매들을 맺힐수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열매들을 맺힐수 있을까요.
갈라디아서 5:22–23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9가지 열매들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렇게 9가지 열매들이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19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고 성령은 열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왜 각각 다른 단어를 썼을까?
일과 열매라는 다른 단어를 썼습니다.
일은 직접적인 결과로 생기는 것입니다.
열매는 어떤 행동을 하고 거기에 많은 것들이 추가되어서 생기는 열매입니다
죄는 자기의 결과, 자기가 행한 일로 인해서 직접적으로 생기는 것이고, 성령의 열매는 우리의 적극적인 참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서두에 말씀드렸죠.
다시 말하면 성령의 열매는 내가 직접 해야 되기도 하지만 거기에 예수님의 피가 발라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할려고 하면 이루어 질수 없는 열매입니다.
열매가 그렇잖아요. 열매는 내가 일했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비도 와야 하고, 태양도 비춰야하고 그렇잖아요.
내가 일을 했는데 비가 오지않고, 태양도 비추지 않는다면 그 한해의 농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망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가 할 몫만 한도고 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 아래 도우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9가지 열매들은 결국 하나인것입니다.
육체의 다양한 "일들"들은 복수로 이루어 져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단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육체는 수많은 다양한 일들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낼수 있지만 성령은 한결같은 열매를 맺는 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인격을 나타내고 있는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인격에 나타나는 9가지 특성인것입니다.
혹시 오미자 드셔 보셨어요 오미자 열매는 하나인데 몇가지 맛을 내나요.. 다섯가지 맛을 내는것과 같습니다.
성령의 열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일회적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며, 우리의 삶속에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성령의 9가지의 열매 그중에 몇가지만 알아보겠습니다.
첫번째 사랑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신적인 사랑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 . 이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내 속에 부어지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럼 사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까.
최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희생의 사랑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독생자를 희생함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다 암송하고 계시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하나뿐이 독생자를 주신것입니다. 나의 죄를 위해서 친히 이 땅에 오신것입니다 .
그래서 그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방식대로 사랑하고 주님이 사랑하신 방식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서로 사랑할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하는 것이 성령을 좇아 행한다는 증거입니다. 열매를 보고 아는것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면 사랑하는 것이 성령이 내안에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전서 1장에 사랑의 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
사랑에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
우리가 집회가 있을때.. 수고를 합니다 .만약 사랑이 없다면 그 수고를 합니까..
우리가 영상집회를 합니다. 사랑이 없다면 수고 스럽게 말씀을 같이 들어줍니까..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때문에 기꺼이 수고를 하는것입니다.
하계수양회를 가면 더욱 그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거기에 계신분들이 덥고 냄새나고 힘든 그 봉사들을 인상 찌뿌려 가면서 하는분 계십니까..
저는 본적이 없습니다. 다들 웃고 있지요.. 그렇기에 더욱더 사랑에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자기희생이 필요한것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사랑이라는 큰 단어로 모든 것이 귀속이 됩니다.
사랑이 있어야지 희락이 있고, 사랑이 있어야지 화평이 있을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랑이 있어야지 이룰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주님이 나를 주장하시는 그러니깐 나는 죽었고 주님이 살아 있으면 무엇이 실천이 되니까? 사랑이 실천이 됩니다.
-희락.기쁨-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희락과 희락이 나를 통해서 열립니다. 희락, 기쁨이죠, 늘 기쁜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이 내 속에 들어가면 우울합니다. 그렇죠. 나를 볼 때 내 자신을 들여다보면 진짜 별 볼품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일을 하실때에는 내가 상상도 못하시는 일을 하시는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내 자신을 그냥 드려다 보면 누굴 보게 되냐면요 주변 잘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럼 자존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고 그냥 내 자신만 봐도 한심스럽잖아요. 가끔식은요.
그런데요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 보면요 항상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기뻐할수 있는 일이 있어야지 기뻐할수 있죠. 이렇게 말할수 있잖아요
그런데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삶이 힘들고 슬프고 어려운 일 당했어도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항상 기뻐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의 삶이 힘이 들고 어렵고 슬픈일을 당했어도 그것은 바로 그 어려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요
나를 연단하기 위함이다.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계획과 섭리가 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미리 기뻐할수 있는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요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를 열심히 했는데요 돌아오는것은요 저 로마시대 차갑고 더럽고 냄새나는 지하 감옥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전도하고 있는데 돌아오는것은요 감옥인것입니다.
매를 엄청 많이 맞고 감옥에 같이 실라와 바울..
나같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를 보았을 때 한심스럽잖아요. 주님을 원망하고 있겠죠.. 주님 저 정말 열심히 했잔하요 너무 하신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절을 읽어 보니 숙연해 졌습니다. 챙피했습니다.
사도바울은요 무엇을 했내면요 찬미를 했습니다. 하나님게 기쁜마음으로 찬송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성령 충만의 상태가 아닐까요. 주님이 있으니깐. 주님이 안에 거하고 있으니깐 이모든 어려움이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을요. 사도바울은요 그렇게 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찬송을 하고 있을 때 간수를 전도하게 되었잖아요
전도의 열매로 또 주님께 기쁨의 찬송을 올릴수 있잖아요.
주님이 내안에 계시고 나를 통해서 역사하실 때 무엇이 이루어 집니까. 전도의 열매가 열리잖아요.
생명이 탄생하잖아요. 얼마나 기쁨입니까. 그리고 나를 충성되어 여겨 주셔서 봉사를 할수 있게 해주시고 주님의 일을 할수 있게 해주는 것 얼마나 대단하 일입니까? 얼마나 기쁜일입니까?
최근에 이천교회가 건축을 했습니다. 전 저를 보았을 때 건축이 이루어 질까.. 과연 그 많은 돈이 헌금이 될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누굴 본것입니까? 나를 보았습니다. 나를 볼때는 절대로 지어질수가 없죠.
하지만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 공사가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시고
공사가 이루어집니다. 척척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이루어질수 없는데.
하지만 주님은 이루어 내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형제 자매님은 나는 기쁨을 느낌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어느 기쁨보다 말로 표현할수 없는 더 큰 기쁨인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주님안에서 살 때 얻어지는 기쁨은 성령의 열매인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통해서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일도 주시고 기쁨도 주시고요. 만약 일만 주시고 같이 하지 않으면 그 일은 기쁨이 될까요. 서두에 말씀을 드렸죠.
그것은 그냥 내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가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봉사 일은 반듯이 기쁨이 수반이 됩니다. 하계수양회의 봉사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나를 희생했는데 사랑도 느끼고 무엇도 느껴요 기쁨도 느끼는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9가지 열매는 하나로 귀속이 됩니다. 예수님의 성품인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우리는 오래참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한국사람들은 오래 참음이 싶지 않습니다. 무엇이든지 빨리 해야지 마음이 편안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오래 참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가끔씩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참아야 합니까. 그렇게 외치면요.
주님은 어떠한 말씀으로 답을 줄까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시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렇게 답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잖아요.
정말 오래 참으시잖아요. 나를위해 오래 참으셨기에 내가 구원받을수 있었잖아요.
하나님이 나를 참으신 것을 생각하면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못참을 것이 없습니다.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것은 점점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요 사람이 악해질까요. 세질까요.. 아닙니다.
더 순해집니다. 어린양이 되어갑니다. 선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려고 하고요, 그리고 이 세상의 자기 소욕에 대해서 절제하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들을 맺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은요.
이것이 내적인 열매입니다.
외적인 열매
그럼 외적인 열매도 맺혀야 되겠죠.
우리는 죄의 열매만 맺히면서 살았잖요. 우리는 구원받고 영생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로마서 6장 21-22절입니다.
21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우리는 죄의 열매를 맺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결국에는 다른사람에게 그 영생의 열매가 열리게 하는 그 영생의 열매.
잠언 11장 30절 말씀 전에 찾아었는데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생명나무이기 때문에 무엇이 열립니까. 영생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불렀을 때.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에게 내가 무엇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깐 다시 말해서 나를 통해서 나의 속성인 성령의 열매와 그리고 나를 통해서 또 무엇을 거두러 오시는 것입니다. 네 나를 통해서 열려진 영생의 열매들을 거두러 오신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어서는 절대로 다른 생명을 다른 열매를 맺힐 수 없는거 잘 알고 계시죠.
요한복음 12장 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이 밀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죽어야지만 무엇이 됩니까. 자라는 것입니다. 나를 벗고 나서 나를 통해서 줄기가 되고 그것을 통해서 열매들을 맺게 되는 거잖아요
이 말은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을 통해서는 열매들이 열릴수가 없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글을 읽은적이 있어서 하나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한 자매가 찾아와 이렇게 고백했다. “저는 그리스도인이 된 지 2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만 아직껏 저를 통해 주님께로 인도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성경 구절도 다 암송했고 반대 의견을 다루는 법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을 구원받는 데까지 오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나의 대답은 그녀를 놀라게 했다. “당신이 열매 없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는 당신의 두 눈이 말라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인지요?” “당신은 지식이 모자라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게 된다면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게 될 것이고 그를 위해 당신의 삶을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이겠죠? “다음 말씀을 놓고 기도해보세요. 시편 126편 6절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그녀는 집에 돌아가 여러 날 기도했다. 그런데 기도하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면서 구원받지 않은 여동생의 모습이 마음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러 번 그녀는 불쌍한 동생에게로 갔다. 여러 번, 여러 번 눈물 어린 눈으로 거절하는 동생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나의 가장 큰 소망은 네가 영생을 얻고 나와 함께 천국에 가는 거야.” 마침내 그들은 저녁 전도 집회에 참석했다.]
나 자신이 죽지 않고는 열매를 맺힐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공부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결국 영생의 열매를 열리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해외 선교를 가잖아요. 해외선교를 가면 느낀점이 무엇입니까.
왜 내가 영혼전도에 대해서 이렇게 부끄러워 했을까? 이러한 생각이 들지 않나요.
내가 한마디를 하면 한명이 오고 두마디를 하면 두명이 오는데 내가 왜 그렇게 한국에서 무엇이 두려워서 전도하지 못했을까? 그러한 생각들이 들잖아요.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황들을 봐서입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가 무엇을 보았을 때 바다에 빠졌습니까?
상황을 보았을 때 바다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전도를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고 전도를 해야합니다. 그럴 때 바다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를 보고 주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전도 하면됩니다.
무슨 유식한 말이 필요합니까? 유창한 1~4일차까지 다 외어서 전도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와보라입니다
사도바울이 주님이 만나고 제일 먼저 하신일이 무엇입니까. 회당에서 전했습니다.
뭐 교육을 받았습니까. 전도집회를 배웠습니까. 훈련을 받아서 전한 것이 아니잖아요. 내가 본바를 증거하신거 잖아요. 내가 본 것을 말한다고 말씀 했습니다.
잠언 21장 28절에 거짓 증인 패망하려니와 확실한 증인의 말은 힘이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본 것 사실입니까. 거짓입니까. 사실이잖아요. 우리는 그것을 보았잖아요.
그러니깐 확실히 전할수 있는거잖아요. 고린도 전서 4장 13절에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믿는 고로 말하였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4장 19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수 없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들은 놀라운 것. 지옥의 운명에서 천국의 운명으로 바뀐 그사실을 믿는데 이것을 전하지 않으면 않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전도하기 너무 어렵죠.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두렵죠. 그럴수록 우리는 담대해야합니다.
많은 말을 할려고 하지 마시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의 와보라 전도법으로 전도하면 조금더 접근하기 쉬우실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9절
나의 행한 모든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이 여인이 한 말은 와보라 뿐이 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과 대화속에서 확실히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메시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것입니다. 나의 행한 모든일. 내가 남편이 5섯인걸을 알고 있는 그 분을 만났다고 그러니깐 여러분들도 와보라고 전파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지방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것입니다. 영생의 열매가 맺힌것입니다.
요나는 어떻습니까?
니느웨 성에 가서 전파를 했습니다. 가기 싫었는데 어떻게 갔습니까.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그 먼길을 갔습니다. 800키로나 되는 그 먼 길을 순종하면서 갔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에는 어떻했습니까?
기뻣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말 가기 싫어 했습니다.
그 먼거리를 도착해서 요나는 전파했습니다. 본래 니느웨 성은 3일길인데 하루만 돌면서 전했습니다.
뭐 많은 말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니느웨 성이 홰파 될 것이다. 망하게 될것이냐. 회개해라 돌이켜라 이 말만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뭐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대로만 말을 했습니다.
요나는 전파만 했습니다. 그러니깐 누가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움직일수 있게 도와 주셔서 회개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유창한 언어 현혹되는 말.. 있으면 도움은 될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확실한 한 단어 와보라.
이 단어에 주님이 역사하시면 큰일이 일어나게 될것입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루만이라도 와보라. 전도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가 영생의 열매를 맺혀가는 생활을 할수 있는것입니다.
요한복은 1장 찾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40절. 40절부터 42절입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요 1:40~42)
세례요한이 예수님을“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반복 증거를 했습니다. 그 세례요한의 제자로 있던 안드레하고 또 다른 한사람이 예수님을 좇게 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게 가서 하루 동안 예수님과 같이 거하면서 예수님 말씀을 충분히 들었을것입니다. 그래서 이 안드레가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한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바로 첫 번째 한일이 무엇이었습니까?
40절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요 1:40)
안드레가 가장 최초로 한 일은 자기의 형제 형이죠, 베드로를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베드로라고 지어 주었는데, 과거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시몬을 찾아” 그랬죠 가다가 우연히 만난게 아니라 어디 있는지 전해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자기 형이 있는 위치를 일부러 찾은 것이었습니다. 찾아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그래서 그 기쁜 사실을 전하고 그 자기 형을 예수님께 이끌어 오는 일이 가장 첫 번째 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가장 첫 번째 무엇을 하냐 전도라는 것을 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합니다.
빛의 열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는 빛입니다. 성경에는 빛의 열매를 맺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거짓이 아니라 진실, 악한 것이 아니라 착한 것, 그렇죠, 악한것이아니라 선한 것,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빛의 열매인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영생의 열매입니다. 주님은 이 영생의 열매를 가져가기를 원하시는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면 그것이 구원이죠, 우리를 구원하기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아니라 영광도 주기 원하십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그렇죠 그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한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고 깨닫고 구원을 받아야 겟죠, 뿐만아니라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상이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도 주시기 원하시지만 구원이외 영광도 주시길 원하십니다.
디모데후서 2장 10절입니다. 같이 읽읍시다.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그렇습니다. 구원만 주시려고 하시는게 아니라 영광도 함께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주님의 뜻인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를 구원할 뿐아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통해서 또한 영광도 함께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우리를 떠나신게 아니라 내속에 계시고 나를 의의 길로 인도 하시고 그리고 나로 말미암아 그 빛의 열매 , 열생의 열매, 성령의 열매가 열리도록 그렇게 내안에 함게 사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습니까?
그렇게 질문하면 대답하기가 어렵나요. 나를 사랑하셔서 돌아가셨지 그것을 왜 물어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것입니다. 당연하죠. 사랑하셨으니깐 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거죠 뿐만아니라 내 안에서 함께 살고 싶으셔서 그렇습니다. 그것을 잊어버리면 않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왜요.. 왜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까? 깨듣지 자든지..그러니깐 항상..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살게 하고자,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둘입니다.
나의 죄를 속해주신 속죄 예수님과 그리고 임마누엘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나와 함께 계시다. 라는 성령을 나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와 임마누엘 그리스도인거죠. 그렇죠. 두분다 하나님이신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살게 하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가 내 죄를 위해서 죽으신것입니다. 그렇죠.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열매에 대해서 같이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포도나무 비유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을 주제로 같이 공부해 봤습니다. 열매를 더 맺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고 그 열매들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우리가요 그냥 하루를 살더라도 무작정 살지 말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열매 구나 알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이 성령의 열매, 9가지는 그 열매가 나를 통해서 주님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열리기 원하시고요 나를 통해서 영생의 열매가 전도의 열매가 열리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죄에 벗어나 빛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원하시잖아요.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것은 나를 드리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한 열매이고 이 나무가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이 좋은나무의 뿌리는 강변에 뻗쳐 있고 거기서 맺히는 열매는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들이 맺히는 구나 이것이 오늘 말씀의 전부입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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