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본성의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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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문.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악하고 패역하게 창조하셨습니까?
제6문.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을 그렇게 악하고 패역하게 창조하셨습니까?
답: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그리고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의롭고 거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고, 영원한 행복 속에 그분과 함께 살면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답: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그리고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의롭고 거룩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고, 영원한 행복 속에 그분과 함께 살면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찬양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7문. 그렇다면 사람 본성의 부패는 어디서 왔습니까?
제7문. 그렇다면 사람 본성의 부패는 어디서 왔습니까?
답: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저지른 타락과 불순종에서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본성은 너만 오염되어 우리는 모두 죄속에서 잉태되고 태어납니다.
답:우리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가 낙원에서 저지른 타락과 불순종에서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본성은 너만 오염되어 우리는 모두 죄속에서 잉태되고 태어납니다.
제8문.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 오염되어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으며 모든 악으로 기울어져 있습니까?
제8문. 그렇다면 우리는 너무 오염되어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으며 모든 악으로 기울어져 있습니까?
답:정말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답:정말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해설
해설
부패한 사람의 본성
부패한 사람의 본성
우리는 앞서 제5문을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다 지킬 수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본성이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의 조각을 가지고 있으나, 온전하게 선을 행할 수 있을 만큼 거룩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 입니다.
부분적으로는 사랑하나, 하나님과 이웃을 온전하게 사랑하기는 커녕 미워하는 성향에 물들었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사람을 그렇게 악하고 패역하게 창조하셨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이어지는 제6-8문이 의문을 다룹니다.
제4문 하나님의율법이요구하는두가지:하나님사랑,이웃사랑
제5문 사람은하나님의율법을모두지킬수없다.
제6문 하나님이사람을악하게창조하셨기때문에율법을다지킬수없는가?
제7 문 하나님이사람을의롭게창조하셨다면사람본성의부패는어디서왔는가?
제8문 본성이부패한사람은어떠한 선도행할수없는가?
1. 하나님은 사람을 악하게 창조하셨는가?
1. 하나님은 사람을 악하게 창조하셨는가?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4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창1:26 .
본래 인간은 선하고 온전한 상태
하나님과대면하여 대화하는 존재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받은 존재
동산과 거기 거하는 생물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관리하는 선한 청지기의 모습 창1: 28.
생명체의 이름을 지어주는 권한 창1:20.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하나님의 형상”은 의와 거룩함과 지식과 관계가 있다.
내적, 외적 하나님의 특성과 능력을 의미.
자녀가 사소한 외모 뿐만 아니라, 그 재능이나 인품, 습성을 닮음.
흥미로운 사실은 이 때 그 어떤 동물도 아담을 공격하거나 아담이 그 어떤 동물을 두려워서 피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사야서11장의 말씀과 같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곳이 에덴이고 그곳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은 자가 아담이었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인간의 모든 질병과 경제적 빈곤의 시작은 농경문화의 시작에 있다고 말합니다. 농경사회 이전의 인간은 수렵생활을 하였다고 주장하는데, 이 말은 자연이 주는 양식으로 만족하고 살았기에 빈부의 격차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농경사회는 대량생산을 위한 가축의 도입은 수많은 질병이 가축으로 부터 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본래 충족한 자연을 선물하셨지만 인간의 타락은 이 모든 축복을 망가트렸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해설 1 - 청교도 대작 시리즈 (부패의 범위)
부패의 범위
첫째, 모든 사람이 부패했습니다. 자연적 출생을 통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예외 없이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욥 14:4).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성의 실체를 제공한 동정녀 마리아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경건한 부모 슬하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자녀들 역시 부패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은혜가 아닌 자연적으로 출생한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알곡을 심은 자리에서 겨가 나는 것처럼, 할례받은 아버지가 할례받지 않은 자식을 낳는 것입니다.
둘째, 각 사람의 모든 것이 부패했습니다. 원죄로 말미암은 부패는 온 우주에 창궐한 나병입니다. 손톱만한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죄의 부패는 인간 존재 구석구석까지 스며 있습니다.
1. 영혼의 모든 기능이 부패했습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딛 1:15).
(1) 인간의 지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의 지각은 어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부패한 인간의 지각은 사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어둠 자체가 빛인 흑암의 땅입니다 (엡 5:8). 날 때부터 맹인 된 우리는 기적이 없으면 보지 못합니다. 끔찍할 정도로 미련하게 되어 버린 자연인은 신령한 일들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고전 2:14). 자연인은 신령한 일들에는 어리석고 미련한 미친 사람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해설 (2. 인간의 부패성에 대한 도전)
…모든 시대를 통하여 인간의 부패성과 싸워서 확실해진다. 인간들의 진리 반대 운동은 인간의 육체,
곧 인간의 부패성이 성경을 그대로 받지 않고 의심하거나 혹은 과장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렘 17:9)이다.
이 세상주의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고전 1:21),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한다(벧후 3:3–4). 이런 것의 근원은 사탄이다. 사탄은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하나님 말씀을 트집 잡았다(창 3:1–5)
인간은 본성과 지식과 영혼과 생각이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임
2.사람 본성의 부패는 어디서 왔는가?
2.사람 본성의 부패는 어디서 왔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인간은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어두운 역사라 할지라도 배워야 합니다.
나쁜 일과 비겁한 일을 했던 기록 모두 배우지 않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인류에게 가장 슬픈 사건은 바로 선악과를 범했던 우리의 시조 아담의 범죄 입니다.
이 일로 모든 악과 불행이 인간을 점령하게 됩니다.
본래 아담은 여자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성인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교육을 받은적도 땅을 경작해본 경험도 없었지만 살아갈 방법을 알았습니다.
아담의 마음 안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하고 실행할만한 능력을 이미 심어놓으셨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인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대로 살때, 생명이 유지되고 선악을 올바르게 구분하여 선하게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시조에게도 신앙의 시험이 찾아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선악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악은 행한적도 없고 하려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오직 선만을 행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으니, 악도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명의 길을 벗어난 것입니다.
인류 최초의 악의 실행 이었습니다.
죄의 첫 결과
벌거벗음을 깨닫게 되는 현상으로 나타남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몸을 가리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악의 유혹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서 부터 시작 합니다.
창세기 3:6 (KRV)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보이는 것에 현혹되었다
“지혜롭게 할만큼….” 사탄의 말에 동의, 자신의 판단이 하나님의 명령을 앞지르는 순간. 하나님의 경고가 가벼히 들리게 됨.
하나님을 피하게 됨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죄의 최종 결과는 하나님을 피하는 삶, 단절, 쫓겨남.
청소년들이 너무 일찍 술, 담배, 성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장에 나쁜 영향을 주기도 하고 옳지 않은 윤리관과 생활습성을 먼저 알면 선한 삶의 방향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 입니다. 최근에 추적60분에서 한국이 너무 술을 권하는 문화가 심각하다 자신도 모르게 중독된 사회에 대해 지적하는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성인들도 중독 앞에서, 바르지 못한 삶에서 속절 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악은 결국 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점령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은 최종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가는 것을 막습니다. 나중에는 합리화하게 하고 당당하게 하나님을 떠나 살게 만듭니다. 그리고 뱀의 말대로 자신이 하나님이 되게 합니다.
펠라기우스(Pelagius)의 견해
오늘 우리들에게 죄와 사망이 임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의 죄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아담의 범죄는 오늘의 인간들에게 어떠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없고 단지 죄의 선례를 보였다는 의미에서만 그 연관성을 보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아담과 그 이후의 인간들의 나쁜 습성들을 본받아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지, 필연적으로 죄를 짓게 되는(non posse non peccare) 원죄로 인한 부패한 죄성을 가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레고리의 견해
-그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했다.
이 원죄로 인한 부패성을 죄책이라기보다는 연약함이나 질병으로 보았고, 타락으로 인해 자유를 잃은 것이 아니라 의지의 선함만을 잃었다고 했다. 은혜 없이는 어떤 구원이나 공로도 없다고 했다.
알미니우스주의자들(알미니안들)의 인간론
(1)죄론 -아담의 죄로 인한 부패는 대물림되지만 죄책은 전달되지 않는다. 부패는 죄가 아니고 질병이나 연약함이다. 전적부패를 믿는 척하지만 실제로 믿지 않고, 인간은 자유의지, 즉 영적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자기 속에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하나님에게서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다고 함.
반드시 죽을 것이다 vs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결국은 인류에게 던져진 가장 근본적인 싸움은 이것이다.
죄는 가정과 관계를 파괴 한다.
죄는 가정과 관계를 파괴 한다.
“내 뼈중의 뼈” 가 아닌,
창세기 3:12 (KRV)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이 주신 그 여자”가 됩니다.
이 말에는 원망과 책임전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와에 대한 원망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이 말을 하는 아담을 바라보는 하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마치, 곤경 속으로 자신을 밀쳐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달아나는 비겁한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와는 평생을 죄책감과 불신, 그리고 배신감으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런 가정에서 가인이 자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과 아내에 대한 원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처벌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가정은 어뗐을까요?
그나마 하나님께 제사하던 아벨은 형에 손에 죽고
또 이 가정은 어디서 소망을 찾아야 할까요?
이렇듯, 죄의 결과는 참혹합니다.
보여지는 현상만 나열해도 이 정도 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의 상태는 죽음과 절망 자체 였습니다.
인간의 부패는 전적인 타락, 전적인 절망 이었습니다.
3.전적부패
3.전적부패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죄를 당연히 저지르는 본능에 이끌리는 죽어 마땅한 존재들 이었습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조선 건국 과정을 노래한 용비어천가는 세종이 목조 부터 태종에 이르는 여섯 선조의 행적을 칭송한 영웅서사시 입니다. 여기에는 왕들의 그 어떤 과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죄를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선조들이라고 예외로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죄는 소상히 기록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 입니다.
솔로몬의 우상숭배 등등 다른 왕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선하다는 명제를 전적으로 부정합니다.
오히려, 인간의 전적 부패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몇 가지 질문들 (프린트물-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