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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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머리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그리스도 한 분 이시고, 그리스도인은 낮은 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은 자기가 높아지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고, 다스리려고 하고,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를 낮추셔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고,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세상과 정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스스로 높이는 것을 죄 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드리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자기가 왕이 되고자 하는 죄입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하와는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 이니라.”(창3:6) 라는 뱀의 유혹에 빠져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이 죄 이며 교만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선악을 분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아담으로부터 시작 된 죄는 모든 인류의 죄의 책임과 오염을 직접 전가 하여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는 사람을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 시켰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욕심의 결과는 엉뚱하게도 스스로를 부정하게 여기는 자기 자신과의 분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져왔고, 이웃과의 분리와 다른 모든 피조물과의 분리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리로부터 사람을 건져내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의 성취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11절 말씀은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 되게 하셨는지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받아 서로 분리되어진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룰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빌립보라는 도시는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이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건너가 처음 도착한 곳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 선교 사역에 든든한 지원군이고 동역자 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있는 동안 빌립보 교회에 심각한 내부적인 문제로 갈등이 생겨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5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을 깊이 생각하여(본 받아)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할까요? 그리고 예수님의 무엇을, 어떻게 본 받아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의 겸손으로 구원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리를 움켜쥐지 않으시고 7절에 자기를 비우셔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고 8절에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복종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 됨을 강탈하려고 범죄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하나님 됨을 포기하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까지 자기를 낮추시고 복종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겸손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하신다면 마땅히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자기의 권리를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는 예수그리스도의 겸손을 본 받는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본 받는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깨지고, 상한 것 들이 회복되어 지고, 갈등과 분열이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놀라운 복음의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 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던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 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없는 불의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종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하나님을 예배 하는 예배자로 우리를 세워 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그 순종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 사 이를 믿는 모든 만물들이 무릎 꿇고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배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서 안식을 누리고 평안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고 예배자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날마다 하나님만 예배하여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속에서 참 안식과 평안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예수님의 순종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를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가운데 살게 하신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주신 예수님의 자기희생입니다. 우리는 이 순종을 본받아 성도의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가 살려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로 사망 선고를 받은 우릴 살리시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희생으로 사랑의 빚진 자가 된 우리도 이 순종을 본 받아 다른 사람을 섬기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26절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자기희생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뭔가 거창한 것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면 뭐든지 해당 됩니다.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 이해하고, 품어 주는 것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을 본 받아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복음의 은혜가 그 삶을 살아가길 다짐하는 우리를 통해 흘러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갈등과 오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됨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고난과 희생을 감내할 각오가 필요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순종을 생각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교회의 하나 됨을 이루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