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정말 원하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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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드려진 헌금 위해서 기도 드리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지켜주시고, 은혜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
능력과 믿음의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말씀을 사모하여 주 앞에 나온 우리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시고, 내일을 살아갈 새 힘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오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귀한 예물 드리는 손길들 있습니다.
감사헌금, 일천번제, 00헌금, 00헌금을 올리오니
받으시고, 만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드릴 것이 차고 넘치게 부어 주시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의 지혜로 깨닫게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믿음도 부어주소서.
부족한 종이 말씀을 대언할 때, 나의 연약함은 감추시고
하나님의 지혜만 나타나게 하옵소서.
그렇게 일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말씀 오늘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7~20절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17–20 NKRV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할렐루야~ 우리 앞뒤 옆사람들과 인사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5장 17~20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정말 원하시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인간이 선한 일을 스스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럴 의지 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무엇이 선한 일인지 알려주시고,
구체적으로 그것을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드러내시면서, 우리의 욕망을 폭로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는 성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2가지 성격으로 구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심판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를 불쌍히 여겨 구원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전자는 율법이고, 후자는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스스로 행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하고,
복음은 우리가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무엇일까요?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 것인데,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율법과 복음을 깊이있게 살펴보면
둘 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선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율법도 필요하고, 복음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율법을 잘 지키려고 애쓰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복음을 믿으면
그것이 정말 참된 믿음, 성경이 말하는 구원일까요?
너무도 맞는 말입니다. 99%는 맞는데 1%가 부족해요.
율법과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말씀하고 싶은 것은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라는 것이에요.
인간의 본질이 선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을 잘 지켜서 선을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온전한 선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완전히 다 이루셨고, 이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의 완성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율법도 내가 행하고
복음도 내가 믿는다고 생각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온전한 구원이 아닌 거에요.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결국 율법과 복음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구원의 신뢰 대상을
예수 그리스도로 바꾸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게 하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
결국 나의 모든 의와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어 선을 행하는 모든 과정 또한
내가 나 자신을 만들려 하기 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도록
하나님께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나의 삶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조율하는 삶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의 삶을 조율하기 위해 오신 것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아마 화장실에 붙어있는
기도에 관한 문구를 보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 기도 문구 중에서 이런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설득당하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우리가 말씀대로 살다보면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기도가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삶과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어쩔 수 없는게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욕망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에 고난이 왜 일어납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본질적으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 반대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 삶을 뿌리 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사단의 권세 아래 정복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하면
믿음의 백성들을 사단이 가만두지 않고 공격도 하지만
공격하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모든 원리와 가치관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늘 반대를 선택해야 하고
그 결과를 우리가 받아들이고, 감내 해야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의 고난입니다.
사실 예수님 믿지 않고, 세상의 입맛에 맞게 살아가면
고난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피해가면 그만입니다.
물론, 어떤 이는 예수님 믿지 않는데도
고난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사이클에
지혜롭게 반응하지 못한 무지 때문일 수 있고,
어떤 이는 기본적으로 불성실하여 자기 삶에 무책임으로 인해
고난을 자처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의로움을 자처하여
구원과 관계없는 고난을 당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결론은 우리가 지혜롭고, 성실하여
고난을 당하지 않고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음에도
말씀에 순종함으로 세상에 반하는 의로움 때문에
고난을 스스로 자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나 자신을 극복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곧 나의 욕망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 1:29 NKRV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순종은 고난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요? 예수님이 우리 삶에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나의 전부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참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되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 약속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지는
우리 인간의 의지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고 싶다고 마음 먹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못 지킬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시기 때문에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 무조건 하십니다.
이미 그렇게 이루어 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진리이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렇게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이사야 55:8–11 NKRV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면
순종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촛대를 옮기십니다.
그래서 순종은 사실 나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주도권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비록 내 삶이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고
그 말씀을 내 삶에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삶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칭찬하는
온전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고난도 없습니다.
그래서 순종함으로 받는 고난은
우리에게 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오늘 말씀을 우리가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8복을 말씀하시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라고 말씀하시면서
17절부터 내가 말씀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그리고 너희가 이 말씀대로 행하고 가르치면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될 것이다.
덧붙여서 만약 너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절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결국 정리하면 무슨 얘기입니까?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왔어요.
이것이 곧 복음이고, 구원이고,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너희가 믿고 행하여 얻게 되 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훨씬 더 높은 의다.
만약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높지 못하면
천국에 절대 들어가지 못한다. 구원받지 못한다.
이 얘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하는 일이 달랐을 뿐
생각과 신앙의 가치관이 매우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두개파와 반대되는 부류로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늘 같이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의를 예수님께서 지적하는 장면이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합니다.
11절과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복음 18:11 NKRV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누가복음 18:14 NKRV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은 바리새인이 세리와 스스로 비교하며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바리새인은 십일조 및 각종 율법들을 철저히 지켰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회칠한 무덤, 외식하는 자라고 비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의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들의 의는 겉으로만 드러나고
마음이 전혀 달랐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은
그들의 의가 어떠하지를 잘 말해줍니다.
민수기 19:16 NKRV
16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모세 율법상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는
7일 동안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무덤을 눈에 잘 띄게 하여서 접촉하지 못하게 하려고
유대인들은 1년에 한번씩 무덤을 하얗게 회칠합니다.
사진을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사진 - 회칠한 무덤>
이렇게 하얗게 회칠한 무덤은 빛을 받으면 아름답게 빛이 납니다.
그렇지만 무덤 안은 죽은 사람의 살과 뼈가 썩어가는
심히 부패한 곳입니다.
겉으로는 옳게 보이는 듯하지만
안에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바리새인이 이와 같다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그들의 의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의로운지
또 천국에 합당한 자인지 보여주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율법에서
가장 우선되는 행위라는 것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도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서,
이웃 사랑은 내 중심의 이웃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에
율법이 온전한 의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랑의 우선순위가 그들 자신이었기 때문에 율법을 해석할 때
이방인은 사랑의 의무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실 때 절대 이방인을 배제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요나에게 니느웨를 구원하기 원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요나가 먼저 거부하여 도망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늘 나 자신, 우리 유대인이 먼저였기에 온전한 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회심 전에는 이것을 자랑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로는 완전히 가치관이 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의, 은혜의 복음을
죽도록 외치며 전파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율법적으로 선을 행하려는 노력을 등한시 하고
믿음으로 마음으로만 예수님 잘 믿으면 되는 것인가요?
바리새인의 의에서 나타는 문제의 핵심은
그들이 율법을 통해 선을 추구했지만,
동시에 욕망도 채우려 했다는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욕망과
반대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또한 세상의 성공, 명예, 쾌락을 거부합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그들의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자랑함으로 인정받으려 했고,
그것으로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취하여 욕망을 채웠습니다.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율법을 이용했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는
본래 율법이 가진 정신을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율법은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한 의인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이 부분을 전적으로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의를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얻는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감당하신 십자가의 공로로 얻어진 은혜를
우리 밖으로부터 주입받아 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이 의를 얻고, 이 의를 누리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살면서도
주변에 믿음으로 성공한 이들을 계속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기저확률]
성공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성공 신화.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스티브 잡스의 축사 끝 멘트입니다.
“배고픈 채고, 어리석은 채로 머무르세요.”
많은 이들이 감명받고, 도전 의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절대 믿어서는 안되는 엉터리 후기일 뿐입니다.
어떤 이가 건강검진에서 특이 질병의 양성 반응을 받았습니다.
생존율이 낮은 무서운 질병입니다.
진단이 얼마나 정확한지 묻자, 의사는 99% 정확도라고 했습니다.
99% 정확도란 실제로 질병이 있는 100명이 검사를 받으면
99명은 양성반응, 1명은 음성반응이 나옵니다.
반대로 질병이 없는 100명이 검사를 받으면
1명이 양성반응, 99명은 음성반응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검사의 정확도가 99%로 매우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양성반응이 나오면
질병에 걸렸다고 판단하고 실의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낙담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양성 반응을 얻었다 해도, 실제로 질병에 걸렸을 확률은
현저히 낮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특이 질병을 가진 사람들의 수가
10만명 중 100명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9만 9900명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99% 정확도를 보이는 검사를 받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기저확률 표>
실제로 질병이 있는 100명 중에서 99명이 양성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반면에 질병이 없는 9만 9900명 중에서 99%는 음성반응이 나오고
1%는 양성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9만 9900명의 1%는 999명입니다.
즉 10만명 중에서 양성반응이 나온 사람은
99명과 999명을 합한 1098명입니다.
그러면 1098명 중에서 진짜 질병에 걸린 사람은 몇명입니까?
99명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양성반응이 나왔을 때,
실제로 내가 질병에 걸릴 확률이 99%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098명 중 99명이 실제 질병에 걸렸다고 한다면
99명 나누기 1098명 곱하기 100을 하면
약 9.01%가 양성 반응 중에서 실제로 질병에 걸렸을 확률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은 99%의 확률로
질병에 걸렸다고 생각할까요?
최초 이 질병이 있을 수 있는 확률이 0.1%로
매우 낮다는 사실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바로 “기저 확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기저확률을 무시하는 오류를
우리 삶에 많이 보게 됩니다.
와튼 경영대의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창조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게으름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보통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도 게으른데, 나도 창조적이겠구나.
그런데 주변에 게으른 사람들을 둘러보십시오.
전혀 창조적이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이것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실제로 극소수라는
기저확률을 무시했기 때문에 범하는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적인 사람의 99%가 게으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체 인구의 창조적인 사람의 비율이 0.1%라면
게으른 사람이 창조적일 활률은 9.01%밖에 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요즘 스토리텔링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스토리는 번뜩이는 영감과 통찰을 주고,
우리의 삶을 보듬어주고,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목하는 스토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에피소드,
병을 고친 이들의 간증, 부자가 된 비법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스토리들은 이미 성공한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경험이 모든 상황에서 가능하다고 믿으며
근거없이 던지는 허무 맹랑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복잡한 세상의 통계적 진실을 보지 않고,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자신감 하나로 밀어부치며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요즘 말로 흔히
꼰대, 라떼는 이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무르세요”
혁신을 위해서라면 과감하게 배고프더라도 위험을 무릎쓰고
남들이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해도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 중의 하나인
스탠퍼드 대학 졸업생들에게는 꼭 필요한 조언입니다.
우리 모두가 꼭 그렇게 해야되는 건 아닙니다.
그들은 가장 똑똑할 뿐 아니라
이미 스탠퍼드 졸업장이라는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말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고프지 않도록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어리석은 의사 결정을 피하고, 서로 협력을 통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공보다 실패와 고난의 스토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성공에 너무 집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
우리가 지켜야 할 의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오늘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의 삶을 세워가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겉으로 보이는 의, 성공을 위해 지키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이루어짐으로
나의 욕망을 절제하고, 내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림 - 성결의 사이클>
그로 인해 고난이 찾아온다면,
종으로 인한 고난이 복인줄 깨닫는 것,
그로 인해 더욱 믿음이 강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삶의 성결입니다.
진짜 성공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도전해야 할 가치를 깨닫는 것.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
이래도 할래?
실패해도 끝까지 나 믿고 따라올 수 있니?
네 힘으로 안될거야. 갈수록 더 힘들어질거야.
그래도 계속 나와 함께 하겠니?
간혹 하나님 믿고 따라가다가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위해 필요하시면 성공시켜 주십니다.
그러면 이왕 하나님 믿는거, 나도 좀 성공시켜주시지.
하나님 너무 서운해요. 왜 저 사람만 성공시켜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더 서운해하셔요.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
정말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성공과 실패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성공했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복인데.
여러분, 세상의 성공이 진짜 복이라면
하나님의 복을 누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세상의 성공은 상대적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100억이 생기면 모두 성공한 것일까요?
아마 200억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50억 가진 사람은
왜 나만 50억 있냐며 억울해 하며 이를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정말 원하시는 것은
나에게는 소망이 없음을 인정하고
나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
하나님이 나의 전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그분의 나라가 내 삶에 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시간 함께 찬양으로 영광돌리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우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 귀하고 소중하다고 우리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연약했을 때,
지금도 여전히 부족할 때 먼저 사랑해주신 주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드리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거룩히 살아갈 힘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믿음을 주시옵소서.
<찬양 - 나의 하나님>
기도제목
1.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2. 나에게 선한 일을 행할 능력과 의지가 없음을 철저히 의지하고, 내 삶의 모든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옵소서.
3. 순종으로 인한 고난이 복인줄 깨닫고, 세상 가치에 마음 빼앗기지 않도록 능력을 주시옵소서
4. 주변에 마음과 육체에 어려움을 당한 이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복음이 필요한 자들에게 우리를 통하여 주님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5. 교호에서 준비하고 있는 전도세미나와 이성미 간증집회를 통하여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6. 각자의 기도제목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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