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강해10 (베드로전서 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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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기 시작한 때
본문: 베드로전서 4:12-19
베드로전서 4:12–19 (NKRV)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배경연구
저자: 베드로 (내증)
대필: 실루아노 (내증)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벧전 5:12)
장르: 편지
연대: AD 62-63년
“저작 시기는 베드로가 이 편지를 썼느냐에 달려 있다. 베드로 저작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트라야누스(AD 98–117년), 도미티아누스(AD 81–96년),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 또는 티투스(Titus, AD 69–81년) 시대로 이해한다. 그러나 만약 네로의 박해가 시작되었고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경험 한 고통을 예시로 소아시아의 신자들을 격려했다면, 그 박해를 언급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네로의 박 해가 시작되기 전 AD 62–63년경을 저작 시기로 정하려고 한다.”
시대상황: 그리스, 로마, 소아시아 등지 곳곳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난이 따랐을 것이다.
기록장소: 로마
바벨론”이라는 이름은 로마에 대한 별칭이다(계 16:19; 17:5; 18:2를 보라.
독자: 소아시아에 흩어져있는 그리스도인들 (내증)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전1:1,2)
목적: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고통 가운데서도 소망을 지키도록 격려하기 위한 편지
본문연구
묶어서 읽는 이유는 <SBL Greek New testament sentence diagrams> 참고
12-13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이상히 여기지 말고(ξενος)”와 “기뻐하라(χαιρω)”는 명령어를 대조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당할
불 시험을 당연한 것을 넘어 ‘기뻐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14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받는 자를 마치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표현한다.(성령이 그 위에 머묾)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사 11:2)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고난받을 것을 예수님께서 이미 예언하심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10:22)
->구약 인물 다윗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비방을 받음
“주는 주의 종들이 받은 비방을 기억하소서 많은 민족의 비방이 내 품에 있사오니” (시89:50)
15-16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주요 단어: 고난(πάσχω)
의미: to suffer pain—‘pain, suffering, to suffer, to be in pain
사용: 베드로전서에서 16번 사용됨
베드로는 고난의 두 종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고난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고난으로 나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자가 받는 고난이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고난은 악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다.
17절)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하나님의 성전(교회)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되는 것은 구약에도 기록된 내용이다.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겔 9:6)
“보라 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겠거든 하물며 악인과 죄인이리요” (잠 11:31)
18절)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은 멸망의 심판이 아니라 정결하게 하는 심판이다. 말라기 3:1-4와 비슷하다.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19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주요 단어: 의탁하다(παρατίθημι)
의미: to entrust oneself to the care of someone—‘to entrust oneself to, to commit oneself to the care of.’ εἰς χεῖράς σου παρατίθεμαι τὸ πνεῦμά μου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or ‘I give myself into your care’
정리하기
베드로는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베드로는 우리가 받는 고난은 받느냐 vs 안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고난이냐(예수님을 믿음으로 세상에서 받는 조롱과 핍박) vs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고난이냐(극한 방탕으로 달려가는 악 때문에 당하는 고통)의 문제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다면(14절, 16절) 우리는 이상하게 여기거나 두려워할게 아니라 기뻐해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고난이기 때문이고, 둘째, 우리를 더욱 정결하게 만드는 고난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마치 예수님과 동일시 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표현들(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 그 영혼을 창조주께 의탁)을 사용한다. 즉, 베드로는 고난을 잘 이겨내자고 말하는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인에게 더할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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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전이야기:
저는 지난시간 앞선 말씀을 통해 갑옷을 입고 예수님을 따르는 두 가지 원리에 대해 나눴습니다. 첫째는 깨어 기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갑옷을 입은 사랑의 공동체에 속하는 것입니다.
오늘이야기:
도입:
왜 이런것들이 중요할까요? 바로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얘기하는것처럼 우리를 연단하는 불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연단하다’는 단어는 ‘페이라스모스’인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할 때 사용된 ‘시험’이라는 단어와 같습니다. 따라서 이 연단은 우리를 강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 우리를 시험하고 넘어뜨리려는 유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불시험은 누구에게 언제 찾아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찾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가 그의 편지에서 계속 얘기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고난’입니다./베드로는 정말 강력하게 성도들에게 제안합니다. 이분법적인 논리로 얘기하면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사탄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묻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 있으면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려고 불시험을 보낼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사탄의 편에 서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양심을 통해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고난과 사탄이 기뻐하는 고난. 우리는 어떤 고난을 받길 원할까요? 간절히 바라기는 저도 여러분도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전개:
12-13절
베드로는 우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연단하다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을 때 사용된 단어와 동일합니다. 그래서 연단이라는 표현보다는 유혹이 맞을 것 같습니다. 사탄의 불시험이 찾아올 때 이상히 여기지 말고 기뻐하라고 강하게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불시험이 찾아온건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3절 후반부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14절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유혹할 때 많은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 중 베드로는 14절에서 ’치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시대가 ‘명예’를 중시하는 시대라는 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당하는 모든 종류의 불명예가 있을 때에 오히려 우리에게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한글 성경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영광의 영” 앞 부분엔 ‘호티’라는 단어 “왜냐하면”이 들어가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치욕을 당해도 복된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평일에 열심히 일을 하는 크리스찬이 1년에 한 번 쓰는 휴가를 단기선교나 여름성경학교를 섬기는데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멍청하다”고 조롱할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 자녀들은 복음화율이 2-3%대 시대에 살고있죠. 이 어린 자녀들이 반에서 1-2명 남짓한 크리스찬으로 남게 되었을 때 찾아오는 소외감과 따돌림. 그 외에도 참으려 할 때, 사랑하려 할 때, 하나되려 할 때 우리 마음에 울려퍼지는 사탄의 온갖 종류의 조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위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며 보호하시고 칭찬하실 것을 믿습니다.
반전
15-17절
베드로는 15-16절에서 악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고난 받는 것을 감사히 여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악한 일을 하다가도 고난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의 편에서 사탄이 주는 고난을 받느냐, 사탄의 편에서 하나님이 주는 고난을 받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베드로는 이 때 하나님의 편에 서 있을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17절 말씀을 사용합니다. 17절 말씀 앞에도 ‘왜냐하면’이 생략되어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하는 이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하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편지 곳곳에서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암시했는데,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된다는 말씀들은 에스겔 9장과과 잠언 11장에 이미 기록된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하실 때 내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지 밝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겨우 구원을 받는 의인일까요? 아니면 경건하지 못한 사람, 죄인일까요? 베드로는 이 문제를 말하면서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만져보았던 베드로였기에 뛰어난 신앙고백과 자세로 칭찬을 받기도 하지만, 성경에는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은 베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두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때에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말라기 3장의 말씀을 확인하시겠습니다.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하나님의 집에 임하는 심판은 우리를 멸망시키는 심판이 아니라 우리를 깨끗게 하셔서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시는 심판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사자 앞에 설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받는 복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도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의 편에 세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절정:
19절
베드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권면합니다. 이 표현이 익숙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아버지께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표현 말고도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머문다는 표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표현 등등 마치 우리 삶을 예수님과 동일시 여기는 표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할만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 편에 세워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과 동등한 영광으로 우리를 세워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정욕을 꺾어내는 고통스러운 선택들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편에 설 수 없는 죄인을 깨끗하게 하셔서 하나님 편에 세워주셨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리스도와 동등한 아들과 딸로 여겨주셨기 때문인줄 믿습니다. 사탄이 나를 넘어뜨리려고 불시험을 가져온다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내면의 싸움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결단찬송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주의 은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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