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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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장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들어가며
들어가며
할렐루야!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반가운 마음으로 주위에 있는 분들과 함께 인사해 볼까요?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결단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벌써 3월이 되었습니다. 2024년을 맞이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두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우리가 2월에는 기도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어떤 말씀들을 나누었는지 기억하시죠? 2월이 끝났다고 해서 기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써 기도에 계속해서 힘쓰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부단한 씨름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3월에는 예배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만,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있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또 잘못된 이해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2월에 나눈 기도 때도 너무 중요한 주제였지만, 이번 3월의 예배에 대한 주제도 그와 같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우리가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참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예배에 대한 주제로 한 달간 말씀을 함께 나누며 나아갈 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올바른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배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하여금 우리의 예배가 변화되고, 변화된 예배를 통해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우리의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의 내용
본문의 내용
오늘 우리가 함꼐 보았던 본문의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께서 대화하시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그 대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지는 않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니까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예수님, 제가 보니까 당신이 선지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왜 나왔냐면 그 전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시는 가운데서 그의 상황을 다 파악하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놀라서 “제가 보니까 당신이 선지자네요!”라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해도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해박한 한 명의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사마리아 여인은 20절에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 곧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에 있는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당신들, 곧 유대인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한다.”라고 말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이 물음을 해박하다고 생각하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이야기가 왜 나왔냐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앙관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앙관이 달랐습니다. 시간을 쭉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뉘어지면서 사마리아가 있는 북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결혼을 많이 함으로써 그들의 정체성이 흩어져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 유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게 여겨 못마땅하게 생각했죠.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갖고 있는 신앙관도 달랐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오경만 믿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그 이후에 예언자들이 기록한 예언서들까지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관이 달랐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고대하는 메시야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그 정도의 선지자를 고대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말하는 선지자도 바로 이러한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에 대한 메시야였습니다. 방금도 말씀을 드렸지만 예언서에 기록된 메시야, 곧 이후에 그들에게 다시 오실 메시야를 그들은 믿고,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20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말한 것과 같이 예배 장소에 대한 생각도 달랐다는 것이죠. 유대인들은 구약의 신명기에 기록된 것처럼 예배의 처소가 예루살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여러 번 무너져도 계속해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웁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던 게, 그 말씀 이전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보다 더 전에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았던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에 예배의 처소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절 말씀에서 물은 것과 같이 예배의 처소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21절 말씀에서 대답을 하십니다. 그 대답은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22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 그리고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보았을 때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깔보면서 유대인들이 우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과거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계획에는 예루살렘, 또 유대인들,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이어서 아까 말씀을 보았던 것과 같이 예수님은 예배에 대해서, 예배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23절과 24절을 다같이 한 번 읽어볼까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장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찾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예배자냐?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하십니다. 그럼 어떤 모습이 참된 예배자냐? 바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자가 참된 예배자이며, 그 예배자를 하나님께서 찾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예배자를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갖추어야 할 예배자의 모습이 바로 이러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그 전에,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먼저 돌아보고,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는 니고데모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3장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저번 달에도 기도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나누면서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죠. 하나님의 영이 성령이고, 그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령이 임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겠습니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흉내는 낼 수 있겠죠. 그러나 참되게 예배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고, 그 믿음이 없음으로 하여금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행위를 흉내 낼 수는 있으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자는 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안타깝게도요.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거듭남은 무엇입니까? 아까 니고데모 이야기를 했지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그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이 있어야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이야기했던 안타까운 모습들, 교회는 매일 나오지만 기쁨이 없습니다. 예배의 자리에는 있지만 은혜는 누리지 못합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죠. 습관적인 모습, 형식적인 행위들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어떤 모습이냐면 오늘 본문에 나온 사마리아 사람들, 그리고 유대인들이 논쟁했던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으냐?’의 문제와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보았듯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그게 결코 중요한 게 아닌데,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본질인데, 비본질적인 것에 힘을 쏟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모습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가 어려운 것으로 이어지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신앙생활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고 어렵습니다. 이번 3월 주제인 예배도 마찬가지죠. 아무런 생각 없이,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예배에 임하는 것이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래서 매번 말씀을 드리지만,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임하신 성령을 바라보고,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바라보며 동행함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오늘 말씀과 같이 예배에 임할 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그로부터 오는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이것에 대해서 세 가지로 우리가 보려고 하는데, 그 전에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까 보았던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성령으로 거듭남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이 전제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 이후에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
1)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
먼저는 성령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가운데서 영에 해당 되는 것이 바로 이 성령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즘 많은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서 위험한 모습들이 있습니다. 바로 감정에 치우친 예배입니다.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 감정을 건드리는 메시지들, 이러한 것들로 그럴싸하게 포장을 해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예배들을 보면 많이 볼 수 있고, 또 그런 것을 쫓는 모습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배를 좋아하고, 그것이 나에게 맞는 예배라고 해서 그런 예배만 쫓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그런 예배를 따라가고, 예배를 마쳤을 때 스스로 만족합니다. 눈물도 흘리고 소리 질러 찬양하고,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홀가분하고 최고의 예배라고 자화자찬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누구를 위한 예배입니까? 예배는 결코 나의 유익을 위한 예배가 아닙니다. 내 힘든 상황을 위로 받기 위해서 하는 것, 내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기준을 다 내려놓고, 오직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만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죠.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가, 우리 저번에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눴을 때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나눴잖아요.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그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
2)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
두 번째로는요.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에서 “진리”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서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고,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복음이자 우리가 믿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그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어떻게 되어야 하냐?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가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때, 내 안에 있는 더러움과 연약함을 모두 다 주님께 맡기며 회개와 용서로써 나아가야 합니다. 내 의가 여전히 크고, 내 교만이 여전히 큼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것은 결코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를 바라봄으로써, 그 진리로써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3) 말씀 안에서 드리는 예배
3) 말씀 안에서 드리는 예배
마지막으로는 우리는 말씀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이 영과 진리가 합한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그 말씀 안에서 우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 격려를 주는 이야기, 이런 것으로 채워진 예배의 시간이 아니라, 영과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아까도 말씀 드린 것과 같이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예배가 아니라, 나의 기준이 되고, 세상이 기준이 되는 예배는 결코 예배도 아니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더더욱이나 아닙니다. 우리가 2월에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눴을 때도 기도의 응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 본 것처럼 예배 또한 말씀 안에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리
정리
그래서 오늘 말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이러한 모습으로 드리는 예배자가 하나님이 찾으신 예배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방금 나눴던 세 가지, 첫 번째는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예수님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말씀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찾으십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 24절을 다같이 한 번 볼까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장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4절 말씀 끝에 “예배할지니라”에서 “할지니라”의 원어적인 의미를 보면 “반드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말은 선택적으로 그렇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반드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유익을 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과 아무 마음 없이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를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예배를 드리며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번 한 달, 기대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향한 마음이 있기를 소망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 가운데서도 참된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도전: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모습으로 예배를 드릴 것인지 한 주 동안 계속해서 생각해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