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보러 온 그리스 사람들<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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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방문(12:20-22) 찬송가 311장

오늘은 그리스 사람이 등장합니다. 헬라인이라고 하죠. 헬라인이라고 하는 것은 헬라 문화권에서 온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땅이 아닌 다른 나라 땅에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러 온 사람들입니다. 헬라 문화권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 빌립에게 가서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아마 벳새다는 갈릴리에서도 북쪽이기 때문에 그쪽 인근에 살았던 이방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방인들이 빌립을 알고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에게 소개하고 안드레와 빌립은 예수께로 가서 그 말을 전했습니다.

2) 인자의 영광과 한 알의 밀알(12:23-24)

예수께서는 그 헬라인들을 소개 받으시고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영광을 얻는다는 것은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광의 의미는 죽음에 더 무게를 둔 것 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예수께서 고난 받을 때가 가까웠기 때문이고, 24절에서부터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영광은 죽음과 고난의 의미가 강합니다. 그렇다면 헬라인들이 찾아온 것과 인자의 영광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찾아온 헬라인들에게 왜 이렇게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우주적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11 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거기에는 그리스 사람이나 유대 사람이나, 할례를 받은 사람이나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따로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헬라인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해 차별없이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유대교에서 이방인들은 무시당하고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이방인의 뜰에서만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건물이 아닌 참된 성전이 되신 예수께서 자신을 내어 드림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24절에 자신이 밀알이 되어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말씀은 유대인과 헬라인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이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누구나에게 주어질 영생의 열매입니다. 예수께서 밀알이 되셔서 땅으로 내려와 죽으셨습니다. 그 씨앗의 열매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여겼던 이방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의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미워하는 사람이든 주님은 그 사람을 위해 밀알이 되셨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이든, 외국인 노동자든 그 사람을 위해 밀알이 되셨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밀알이 되셨습니다. 북한 사람을 위해서도 밀알이 되셨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미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많은 열매’라는 말입니다. ‘열매’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사람’을 교회로 나오게 하고, 부흥시키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열매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무엇인가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 사람은 이러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을 데려오거나 많아지는 것이 열매가 아니라 이렇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한 사람의 열매입니다.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 열매가 아니라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 성령님이 임하신 사람의 열매입니다. 열매는 눈에 보이는 결과에 있지 않고 우리의 모습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던 사람이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 모습 그 자체가 성령의 열매를 맺은 모습인 것입니다.
사랑을 할 수 없던 사람이 사랑을 행하는 것, 오래참지 못하던 사람이 성령님의 힘으로 오래 참을 수 있는 것, 기쁨이 없던 사람에게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이 있는 삶, 화평케하지 못하던 사람이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이런 성령의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그리스도를 닮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3)제자들의 섬김(12:25-26)

이제 25-26절을 보면요. 이 전까지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예수께서 가신 밀알의 삶, 십자가의 삶을 따라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고 자기의 생명을 미워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 학생들이 수련회 보고 때 혜윤이가 간증했던 고민과 같습니다. 그 혜윤 학생의 마음을 공감해본다면.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생명까지 바칠 수 있어야 하고 세상에서 잘 되고자 하는 욕심도 버려야 하는 것인데 자신의 삶에서 그러한 결단과 용기까지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활과 환경을 극단적으로 포기하라고는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고자 하고 우리가 돈을 번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인생을 절벽 끝에 세워 놓는다면 우리의 생명조차 아끼지 않는 삶이 예수를 믿는 삶입니다.
초대교회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믿음의 고백은 목숨을 거는 고백이었습니다. 25절에 ‘미워하다’가 나옵니다. ‘미워하다’는 말은 불신자와 신자를 구분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불신자의 특징은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죠.
반면에 신자들의 특징은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영생을 얻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그의 삶을 영생으로 보호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에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버티고 있는 것들, 고집, 자존심, 욕심,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이기려고 하는 것, 하나님의 뜻보다 내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것, 이러한 것이 모두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히 여기십니다. 우리를 들어 영광으로 올리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나 자신을 죽이고, 낮추고 손해보는 삶입니다. 우리가 밀알이 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십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밀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가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게 하시고 한 알의 밀이 되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성령의 열매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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