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2024 0305 창34:1-17

날마다 말씀따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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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창세기 34:1–17 (NKRV)
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2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5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8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9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10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11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12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13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14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15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16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17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야곱의 인생은 참 험악한 인생. 나그네길. 인생 자체가 속임수가 가득한 인생. 그의 이름처럼.

이 사건의 배경은?

원래 야곱은 어디를 가고 있었는가? 밧단아람(라반의 집)을 떠나 그의 고향으로 가고 있었음. 드디어 20년만에 외삼촌의 그늘에서 벗어나 벧엘의 하나님. 그곳으로 가고 있음. 그리고 그 중간에 에서를 만나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기적같은 화해를 이룸. 야곱은 매우 기뻐했을 것.
그런데 야곱은 형과의 화해 이후, 그 은혜에 너무 취하고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세겜 땅에 머물고 만다.
세겜이 어디에 있냐면, 하란에서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중앙 산지 지역을 들어오게 되면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그 곳 사람들에게 땅을 매입하고 아예 정착하려고 한다. 아직 벧엘까지, 아직 브엘세바까진 한참 남았다.
하나님께 받았던, 그리고 서원했던, 창세기 28:21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평안히 돌아오게 하면, 창세기 28:22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벧엘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겠다고, 단을 쌓겠다고 서원했었음.
그런데 지금 그 서원은 온데간데 없고, 세겜에 머물려고 하는 야곱을 보게 된다.
창세기 33:20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세겜에서 땅을 사고,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름. 조부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세겜에서 단을 쌓았던 것을 어제 설교를 통해 알게 됨.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 땅에서의 제단을 쌓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 것 같다. 하나님은 거기서 단을 쌓으라고 하신 적이 없으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의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계시기 때문이다. 본인이 서원했던 곳. 도망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곳, 그리고 다시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곳. 왜냐하면 그곳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라반의 그늘, 에서와의 화해 등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 그러한 문제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씩 해결되는 기적을 맛보았지만, 야곱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돌아와야 한다

끝까지 가야 한다. 세겜 땅도 가나안 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을 야곱이 돌아와야 할 곳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다. 벧엘. 하나님의 집. 지난 날 하나님을 만났던 그 장소, 내일 모레 35장을 이야기 할텐데,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 받았던, 자신이 서원했던 그곳으로 돌아와야 하나님은 그가 돌아온 것으로 인정해주신다. 미리 창세기 35:9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벧엘에 갔을 때, 하나님은 밧단아람에서 그제야 돌아왔다고 인정해주시고 복을 주신다.
우리도 그렇다. 이전에 받았던 축복의 약속, 은혜의 자리. 예배의 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단을 쌓고 하나님의 은혜에 축복에 감격했던 그 자리를 잊으면 안 된다. 조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는 세상에 나가서 자기 맘대로 사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돌아와야 할 곳으로 와야 한다. 그곳이 어디인가? 교회이다. 말씀이 있는 곳. 하나님의 축복이 선포되는 곳. 바로 그곳이다.

디나 사건을 통해 - 정결과 부정함

세겜에 안주하고 있을 때, 일이 벌어진다. 세겜의 사람들과 평안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학자들은 상당한 시간을 보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이 일이 벌어지고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 야곱을 제쳐두고 단독으로 판단하여 그 세겜의 아들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딸 디나가 결혼할 나이가 됐고, 전쟁을 치를 수 있을만큼 야곱의 아들들이 장성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당시 가나안 족속들의 낮은 도덕 수준을 생각해 본다면, 젊은 여자가 수치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 쉬운 시대였다. 왜냐하면 사라와 리브가 역시 애굽과 블레셋에서 같은 위기를 당할 뻔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나는 자신의 가족들의 보호가 없이 세겜에 부주의하게 놀러나갔다. 그런데 성경은, 그 일에 대해 이스라엘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문학 상징적인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창세기 34:5–7 “5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야곱이 세겜이 자신의 딸을 더럽혔다 함을 들었다. 여기서 더럽혔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타메라는 단어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제의의식, 즉 제사에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눌 때 사용되던 단어이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이 흠이 없어야 하며, 부정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여기서 이 제의적인 단어, 디나가 부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의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다. 한가지 더는 7절에서 야곱의 아들들, 디나의 오라비들이 이 일을 듣고 분노가 치밀었는데, 그 이유가 명확하게 나오고 있다. 창세기 34:7 “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누구에게?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하면,
얍복강 나루에서 야곱은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된다. 이스라엘. 그리고 처음으로 야곱의 가족, 그 가문을 가리킬 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한 개인, 한 가족에게 발생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선택받은, 선민 이스라엘에게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라비들이 그들에게 난폭한 복수하기 위해 속임수로 할례 문제를 꺼내 든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고, 할례를 통해 정결하게 되었는데,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우리 민족을 더럽혔다는 부정해졌다는 치욕을 당한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디나 사건은 처음에는 도덕적인 윤리적인 죄의 문제에서 제의적인 더럽힘 부정함의 문제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몰은 이 일을 통해 야곱과 그 민족과 협력하여 이 땅 가나안 땅에서 잘 살아보기를 원했으나, 야곱의 아들들은 그것을 단호히 거절한다. 창세기 34:14 “14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신앙은 구별되는 결단을 필요로 한다.

신앙생활 하는 거 어렵다고 이야기할 때 많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영원한 하늘나라 천국 소망을 이야기하는데, 그 영원한 기쁨과 소망을 가지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우리는 왜 어렵다고 말하는가? 가만히 생각해보자. 진짜 어려운 일인가? 신앙생활이?
예수 믿으면서 우리는 어디를 보고 있는가? 벧엘까지 가야하는데, 때로는 세겜에서 안주해버리기도 하고, 세상이 신앙생활 힘들지 하면서 적당히 예수 믿어, 교회에 왜 미쳐있어, 너만 손해야 하는 속삭임에 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이 본문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일까? 야곱의 아들들은 디나 사건을 통해 육적인 더럽힘을 넘어 영적인 더럽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리는 어떠한가?
신앙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타협하려는 여지를 내게 남겨두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민이 된다. 이런 선택을 할까 저런 선택을 할까.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쳤던 것도 그것이다.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하려느냐, 참 하나님이 바알이냐, 여호와냐. 성경을 자세히 보면 계속해서 이 말씀이다. 세상 속에서 복음! 기쁜 소식을 받은 자들의 삶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시고 나의 구원자이심을 날마다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 속에서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교회에 오면, 예수를 생각하면 힘이 나고 회복이 되고 그렇게 된다. 교회만 생각하면 머리 어지럽고 내 믿음은 왜이리 약할까 그런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께서 3주 전에 무슨 설교를 하셨는가? 왜 성령이어야 하는가? 거기에 한 단어 추가. 왜 “꼭” 성령이어야 하는가.
성령충만을 구해야 한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신앙에 있어 결단하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살려 했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고, 날마다 성령을 구하며 성령 충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도록, 오늘도 예수로 살며 예수로 살아지는 오늘 내 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이 새벽 함께 기도하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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