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더럽게 하는것(막7: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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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상매체의 대세는 유튜브입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프로그램 보는 것 보다 유튜브 시청자가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유튜브를 통해 인기 스타가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과거에는 우리 나라에서만 유명했는데, 유튜브에서 유명해지면 세계적인 이름을 떨칠 수가 있고요, 또 왠만한 텔레비전 스타보다 더 많은 수입과 유명세를 얻을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투브 구독자수를 보면 대체로 먹는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제일 앞을 장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만큼, 우리 나라 사람들이 먹는것에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하는데 먹는 방송을 보면서 위로를 삼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기는 비싸서 먹지 못하는 것을 누가 대신 먹어줘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또 전국 방방 곡곡에 있는 맛집을 소개 받아서, 여행때마다 꼭 가보면서 행복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먹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얼마나 먹는 것이 좋은지 일부러 그 식당을 찾아 몇시간씩 차를 타고 가고, 때로는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서 식당을 찾아가는 시대입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보니까, 식재료도 엄청 따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식재료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더 열광합니다. 그런데요, 그런 것들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나라 사람들도 있습니다. 빈곤한 국가에 살아서 다양한 식재료를 얻지 못하고, 형편이 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때로는 종교적인 이유로 그렇지 못하는 나라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이슬람이나 유대 문화권에 가면 돼지고기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먹으면 큰일날것 처럼 이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이슬람 경전인 코란과 구약성경에서 돼지고기 먹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은 술도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그래서 식재료에 술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과연 음식을 가지고 정함과 부정함을 따질 수 있을까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모든 음식물은 깨끗하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당시 부정한 음식을 피하려고 굉장히 애쓰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은 굉장히 파격적으로 들려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이라고 달랐을까요? 손 안씻고 빵 먹는 것쯤은 자기들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모든 음식을 정결하다고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듣기에도 황당함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기도하고 있을때에,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옵니다. 부정한 음식들이 거기에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받아 먹으라고 하시는데도 베드로는 거부합니다. 한두번 거부한게 아닙니다. 그만큼 음식법에 대한 준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뼈속깊이 각인되어 있어서, 모든 음식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결코 제자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음식이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그것은 식도를 통해 우리 소화기관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소화 과정을 거쳐 몸에 흡수가 되고 필요없는 것은 배설이 되므로 우리 육체에만 영향을 줍니다. 즉 마음에 영향은 결코 주지 않으므로 인간 본성을 더럽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애초에 정결법을 유대인들에게 주셨을까요? 애초에 정결법의 의도는 음식을 구별하는 의식을 통해 의식주 곳곳에 침투해 있는 우상의 문화로부터 마음을 지키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오로지 정결함 음식만 골라먹고 부정한 음식을 피하는 것과 같은 의식의 준수에만 몰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기들의 악한 마음들을 감추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인데 애꿎은 음식만 탓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하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 성도 중에 누군가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을 봤다고 합시다. 어떻게 생각할까요? 어~! 저 사람은 술을 먹네, 담배를 피네 그러니까 안되라는 생각들을 우리 너무 쉽게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단언컨데요 술과 담배는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유명한 개혁주의자 신학자 중에 하나인 루이스 벌코프라는 사람은 아주 골초였고, 종교개혁자 루터는 맥주를 아주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라고 권면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몸을 건강하게 잘 관리하기 위해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 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문제라고 합니다. 아무리 정결하게 살아가고, 음식법을 준수하면서 살아가도, 우리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사람은 정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제 살펴본것처럼 종교지도자들은 정결법은 잘 지켰을지 몰라도, 자기들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일반 백성들이 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할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예수님을 보면서 악한 마음을 품고 질투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공적으로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고르반을 통해서 남의 재산을 도둑질 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살인도 저질렀습니다. 음식법을 어기는 자가 부정합니까? 음식법을 지켜도 마음으로 죄를 품고 행하는 자가 부정합니까?
그렇습니다. 음식은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행동이 우리를 더럽힙니다. 우리의 조건이나 연약함이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닙니다.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연약한 자들의 행동을 보고 부정하고 문제 있다고 수군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교만한 생각을 하는 우리 마음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무시하고 깔보고 비방하는 마음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마음을 지키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악은 우리의 마음의 문제이지 다른데 있는 것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솔로몬은 잠언에서 자기 아들에게 권면하면서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연약한 모습을 보면서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순간 누군가를 정죄하려고 하는, 그래서 비방하려고 하는 나의 모습을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오늘도 우리는 자기의 마음을 지킴으로 인하여 부정한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아름다운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런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