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에서 부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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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

사사기 6:11–18 NKRV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사랑합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마블 영화를 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는가? 여러분은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언맨을 좋아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블 영화의 시작이 아이언맨1으로 시작해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블 영화의 3대장이 있다. 천둥의 신 토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캡틴을 좋아한다. 영화 전체 흐름을 보게 되면 의외로 캡틴이 악당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어서 블루스컬이라고 사람들이 말한다. 거두절미하고 내가 왜 캡틴을 좋아하냐면, 그가 처음으로 등장한 퍼스트 어벤져라는 영화에서 아주 마른 체형의 사람이었다. 주인공 스티븐 로져스는 2차 세계대전 때 조국을 위해 군에 입대하려고 했으나, 허약한 몸 체질 때문에 실격 판정을 받는다. 그는 포기를 모르고 계속 도전하다가 우연한 기회로 입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과학자들이 슈퍼솔져를 누구를 선택해야할지 고민하던 중 훈련에 이악물고 임하는 모습에 부대장이 그를 추천하려고 하지만, 과학자들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슈퍼솔져가 되겠냐고 했다. 그때 부대장이 가짜 수류탄을 부대 진영에 던져서 “수류탄이다!”라고 외쳤을 때,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도망가지 바빴지만, 스티븐 로저스는 바로 달려가 수류탄을 자신의 몸으로 덮었다. 수류탄은 당연히 터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스티븐 로저스의 고결함을 인정했다. 그리하여 슈퍼솔져의 실험의 대상이 되었고, 삐쩍 말랐던 몸이 엄청난 근육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캡틴 아메리카로 부르게 되었다.
이처럼 마블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이 영웅이 되어가는 성장의 모습을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마블 영화의 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요즘 마블 영화는 성장의 스토리가 거의 없고 바로 완성된 모습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서 마블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들도 예전의 마블을 그리워하며 점점 인기는 식어지게 되었다.
오늘 말씀은 기드온의 이야기다. 지난 번에 사사 드보라에 대해서 나누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왕이 힘들게 하여 하나님이 드보라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승리로 이끌어 평화를 주셨다. 그러나 먹고 살만 해지니 다시 또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미디안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겨버리신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사람들이 쳐들어 와서 모든 재산들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삶이 힘들었으면, 이전에는 없었던 두 번이나 6, 7절에서 부르짖은 것이다. 보통은 이스라엘이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즉각 사사를 세워서 구워하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 번이나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한 선지자를 보낸다. 선지자는 누구인지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꾸짖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그리고 학대하는 모든 나라들로부터 구원해 주신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사기 6:10 NKRV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스라엘이 얼마나 아모리 사람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으면 그 땅의 신들을 무서워했을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우상들을 섬기게 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의 소리를 가까이 하는가, 집중하는가에 따라서 그에 따른 믿음도 생기기 마련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렇게 이스라엘을 크게 꾸짖으시고 여호와의 사자, 곧 천사를 기드온에게 보내서 그를 부르시는 장면이 등장하게 된 것이 우리가 읽은 본문이다. 여기서 하나님과 기드온이 대화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기드온의 성격을 보게 되면 아주 소심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MBTI가 왠지 ISTP이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하나님과 대화 속에서 기드온의 마음은 아주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여호와의 천사가 12절에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고 말하지만, 기드온은 짜증이 가득한 말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아이고 주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떻게 이렇게나 힘든 상황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현재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조상들이 출애굽할 때는 그렇게나 잘 도와주셨으면서 지금 이스라엘에게 관심도 없고, 버리신 것이 아냐고 따지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겠다는데 기드온이 아주 싸가지가 없이 말대답을 하는 것 같아보인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던 상황이었는지 11절에 자세하게 나타나있다. 기드온의 직종은 밀을 타작하는 사람이다. 밀을 타작하면 어디에서 타작하는가? 보통 시골 집 마당에서 넓게 깔아두고 타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디안 사람들에게 안 들키려고 포도주 틀에서 몰래 타작하는 상황이었다. 타작하다가 들키면 어떻게 되기 때문인가? 바로 미디안 사람들이 싹 가져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가서 실제 포도주 틀을 보니까 깊은 구덩이로 되어 있어서 사람이 숨어서 일하기 딱 좋은 장소이다. 그만큼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디안 사람들의 눈치를 엄청 보며 매일 살았던 것이다.
그러한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부르시는가? 삿6:12
사사기 6:12 NKRV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큰 용사여’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기드온의 직업은 밀을 재배하는 농부이다. 뛰어난 군인도 아니였고, 대단한 무술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농부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할 능력이 있으니까 미디안 사람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 기드온을 불렀다는 것이다. 기드온은 자신이 이렇게나 평범한 사람이고, 능력도 없고, 자신의 집안 므낫세 지파에서도 제일 약하고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기드온은 아주 직관적으로 자신의 상황과 능력을 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드온이 진짜 큰 용사라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큰 용사로 만들어 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와 약속이 담긴 선포의 메시지인 것이다. 현재 지금 기드온은 능력없는 것이 맞다. 앞으로도 자신의 대단한 능력으로 전쟁에서 이길 것도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이 능력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이 자리 가운데 누가 부르셨는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기도의 자리, 은혜의 자리 가운데로 부르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대학에 가서 졸업을 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게 됐는데, 월급 2-300만원 정도 되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연봉 1억을 주겠다는 회사에 들어가서 취업하는 그런 부르심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다가 갑자기 좋은 기회가 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간 것이기에 어쩌면 노력에 대한 댓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마치 길가다가 어느 한 노숙자에게 삼성의 이재용 회장이 와서 자신의 회사에 일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그러면 노숙자의 반응은 어떻겠는가? ‘자격이 없는 내가 이런 곳에서 일을 하게 되다니..’라고 고백하지 않겠는가?
로마서 5:8–9 NKRV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우리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는 진노의 자녀, 당연히 지옥에 가야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시는가? 의롭다고 여기신다. 의롭다와 의롭게 여기시는 것은 말이 좀 다르다. 이것은 마치 예쁘다와 예쁘게 여기는 것과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예쁘다는 것은 누가봐도 객관적인 것이지만, 예쁘게 여기는 것은 그렇게 여기는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마치 80세 부부가 서로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은 서로 예쁘게 여기는 모습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실 때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정죄하거나, 아니면 나 스스로가 의롭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많다. 실제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의롭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 우리는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님이 의롭게 여기시겠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빚어가겠다는 선포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실패할 때도 있고, 넘어질 때도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결단하다가도 스스로 실망하게 되는 경우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 때 아주 당황스러운 일들을 경험했다. 당시 내가 기숙사 층장이라고 해서 5층을 담당했었다. 그때 많은 민원이 들어온다. 이제 20살이 됐으면 미성년자인가 성인인가? 다 큰 성인이다. 근데 부모님이 전화와서 우리 아이는 잠자는거 예민해서 잘 보살펴줘야하고, 기숙사 룸메랑 안맞아서 힘들다고 당사자가 아닌 부모님이 전화오는 것이다. 이걸보면서 이 사람의 부모님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챙겨줘야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24살이 되어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다. 군대에서 상병이 되었을 때 분대장이 되었다. 군대에서 마치 반장과 같은 역할이다. 그때 소대장님이 한탄하시면서 말씀하는 것이다. 요즘 애들 왜그런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소대장님에게 전화와서 우리 아이 몇 시에 약먹어야 하구요, 선임들이랑 관계 어렵지 않도록 잘 부탁드린다느니, 밥먹을 때 알레르기 어떤게 있는데 꼭 잘 챙겨달라고 엄마들이 전화가 수십통 온다는 것이다. 이건 무슨 군대가 아니라 유치원 같았다.
나는 저 사람들이 부모님을 저렇게나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믿는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의지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어린아이의 마음, 가난한 심령의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아이들은 틈만나면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서 울기 마련이다. 그러나 보통 성인이 되어가면서 더이상 부모님을 찾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날마다 어린아이처럼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오늘 삿6:18
사사기 6:18 NKRV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오늘 기드온도 마찬가지고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를 절대 떠나시지 않으신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엄마 이거 어떻게 해야해요?’, ‘엄마, 도와주세요’, ‘엄마 너무 힘들고 어려워요’ 등등 이처럼 하나님께 아침마다 순간순간마다 기도하는 삶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면서 모든 것을 가장 선한 것으로 이끌어가실 분이라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도 날마다 새벽을 깨워서 기도하셨다. 그 주님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기에 날마다 의지하며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간 것이다. 우리 하나님 멀리 계신 분이 아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이미 함께하시고 계신다. 그러니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이 곧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는 삶인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 밤에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매달리는 삶이 되어져가길 소망한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를 점점 성화시키실 의롭게 만들어가실 주님을 기대하자. 그리하여서 예수님 닮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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