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8 금요기도회: 사사기 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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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마무리 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주를 돌아보며 죄와 치열하게 싸운 저희를 위로하여 주시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긍휼을 베푸셔서 다음 한 주는 이보다 더 성장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죄에서 승리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죄가 깊숙히 침투해 있는 세상 속에서 저희는 살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매일 살아갈 때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님을 통해 한 주간 말씀으로 세상에서 승리하는 저희거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가득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10:6-16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사기 10:6–16 NKRV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큰 위로를 얻고 가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사사기 10장으로 11장에서 등장하는 사사 입다가 등장하기 전의 이스라엘 배경에 대해서 말하는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입다를 사사로 세우실 때 이스라엘의 상황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살펴볼텐데요. 특별히 첫째, 우상의 특징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둘째, 이 우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에 대해서 말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떻게 우상을 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오늘 본문은 우상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6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라와 야일 사사를 통해 10장 앞부분에서 이스라엘을 다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께 범죄합니다. 여기서 “다시”라고 번역된 이 말은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기 보다는 이전보다 더 심각하고 추가된 악행을 의미합니다. 사사기에서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사사가 누구입니까? 바로 옷니엘입니다. 3장에서 첫 사사 옷니엘이 등장하는데, 이때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세라, 다른 말로 아스다롯을 숭배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입다 때에는 어떤 신들을 이스라엘이 숭배합니까? 바알과 아스다롯뿐만 아니라 아람의 신들, 모압의 신들, 암몬의 신들, 블레셋의 신들을 여호와를 버리고 섬깁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모든 신들을 숭배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타락이 누적이 되어 이제는 최고조에 이른 총체적인 타락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이번의 타락은 우상의 유명한 선수들이 모두 등판하여 세기의 우상 박람회를 개최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신은 여기에 좋다더라, 이 신은 저기에 좋다더 라며 여기저기서 우상을 끌어들여오게 되었고 결국 우상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저자는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고발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않았음을 지적합니다. 출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 가운데 1계명을 이스라엘이 철저히 묵살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3:29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신명기 33:29 NKRV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행복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물질을 추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야 행복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나안의 모든 신들을 섬기게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지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섬기고 있는 지방의 신들은 사실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압제한 민족들의 신들입니다. 옷니엘은 아람 왕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했고, 에훗은 모압과 암몬에게서, 삼갈은 블레셋에게서, 드보라는 가나안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어느 나라의 우상을 숭배할 때마다 그 나라가 결국 이스라엘을 압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암몬과 블레셋의 신들을 숭배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암몬과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억압을 당하도록 7절에서 넘겨집니다. 우상숭배는 압제와 억압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특징입니다. 내가 행복하고자, 내가 만족을 얻고자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 인간은 섬깁니다. 하지만 내가 우상을 섬기고, 내가 그 신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 우상이 나를 잡아먹고 나는 우상에게 억압받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돈은 우리 생활에 있어서 없으면 안되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노동을 하는 이유도 돈을 벌어 우리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돈을 버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우상이 될 때 엄청난 비극적인 일들이 펼쳐집니다. 남들 부럽지 않게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기만해도 알 수 있습니다. 부자가 죄는 아니지만, 부가 우상이 될 때 그렇게 많은 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하게 되거나, 지금의 재산을 유지하거나 이보다 더 많이 벌어야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아주 아이러니한 모습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돈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돈만 있으면 나는 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부를 쟁취하더라도 부를 더 갈구하게 되고, 결국 내가 그 돈에 잡아먹혀 압제받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우상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놔둘 때 우리는 그것의 종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그 우상을 위해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상숭배가 종살이로 이어질 뿐 아니라, 종살이도 우상숭배로 이어집니다. 3장 13절에서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압제합니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은 우리의 생각대로라면 이스라엘이 그 나라의 신들을 당연히 미워하고 하나님 편에 설 것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이스라엘은 자신을 압제한 암몬 자손들의 신을 숭배합니다. 이스라엘은 우상들로 인해 고통과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 억압과 문제를 초래한 우상들을 숭배합니다. 바로 우리를 억압한 저 강한 신을 우리가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억압 당한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억압한 신을 섬기기 시작한 것이죠. 돈에 의해 억압받게 되면 돈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돈이 없어서 고통받는다고 생각하며 돈을 더 숭배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상의 특징입니다. 이스라엘은 평화와 행복을 위해 우상을 들입니다. 하지만 평화와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과 압제만이 가득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가나안의 모든 우상들을 들임으로 8절에서 열여덟 해 동안 억압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이스라엘은 자신의 조상들이 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끊지 못하고 오히려 더 많은 우상을 끌어들이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상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과거에 자신의 조상들이 우상에 의해 압제와 억압을 받았다는 것을 알텐데 왜 계속 미련해보일 정도로 우상을 계속해서 숭배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사사기는 계속 반복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사기는 일정한 사이클이 있는 이야기인데요. 먼저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 민족에 의해 압제받아 고통하여 신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울부짖고 하나님은 이를 들으시고 사사를 보내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다시 이스라엘은 범죄하고, 신음하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은 구원하시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옵니다. 이것이 계속 사사기 내내 반복됩니다.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은 끊임없이 우상을 섬기려는 본성을 지닌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상을 섬기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유용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농사에 유용하기 때문에 바알을 찾고, 다산에 유용하기 때문에 아세라를 찾는 것처럼 유용하게 쓰려는 것이 우상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여기저기에서 각종 우리를 유용하게 만들어주는 우상들을 들여온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에게 유용한 존재로 찾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물질적 복을 주시고, 나에게 좋은 직장과 좋은 사람을 주시는 분으로서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받기 위해 우리는 우상과 하나님에게 내가 가진 것들을 내어놓습니다. 이것은 종교입니다. 종교는 명확하게 주고 받는 것이 명확한 기브 앤 테이크의 구조입니다.
시장 경제체제가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것은 매우 익숙합니다. 소비적인 생활은 우리가 기브 앤 테이크의 구조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저는 시장 경제체제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비적 경제생활은 서로 경쟁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이 아주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비적 생활이 인간관계에 들어왔을 때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집 앞에 마트가 있다고 칩시다. 집 앞에 있는 그 마트는 나에게 값이 싸고 좋은 물건들을 판매합니다. 우리는 나에게 이러한 것들을 제공하는 마트와 관계를 맺습니다. 하지만 그 마트의 물건이 비싸지거나 품질이 안 좋아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그 마트가 우리에게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관계를 끊습니다. 이런 소비적 생활이 익숙한 우리가 인간관계를 대할 때 이런 마음과 태도를 취하게 될 때 우리는 나에게 유용한 사람들만 관계를 맺게 됩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에게 좋은 것들만 제공하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주었다면 그에 합당한 결과물이 있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습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주었을 때 결코 손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결코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소비적 인간관계를 취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유용할 때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수단으로서만 삼으려고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들을 끊임없이 들여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유용하지 않으니 과감히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우상들을 들여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코 손해보고 희생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우상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 그리고 우리가 우상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본문이 아닙니다. 우리도 여전히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관계가 아니라 기브 앤 테이크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나의 유용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존재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복해서 지은 죄를 여전히 우리도 짓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 주소이며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우상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를 압제하고 억압하는 이 우상으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계속 우상을 우리 마음에 들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세 번째로, 우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릴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상을 다시 섬기려는 이스라엘을 책망하시고 진노하십니다. 그들을 블레셋 사람과 암몬 자손의 손에 억압 당하도록 내버려두십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고통받게 되고 9절은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암몬 자손으로 인해 곤고가 심해졌음을 말합니다.
이에 열여덟 해 동안 고통을 받고나서야 이스라엘은 비로소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긴 것이 문제임을 10절에서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며 자신의 범죄를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이전 같았으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바로 보내셔서 구원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전과 상황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에 모든 가나안 우상들을 들여 총체적 타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13절입니다.
사사기 10:11–13 NKRV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너희가 압제받을 때 나에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구원하였음에도 너희는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느냐면서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으시겠다는 두려운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바로 너희 마음대로 섬기길 원한 그 신들을 찾아가서 구원해달라고 말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현대 사회에 맞춰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너가 나를 위해 사는 대신에, 돈을 위해 살기를 원한다면, 돈이 너의 삶을 지배할 것이다. 돈이 너의 마음과 감정을 통제할 것이다. 너가 나를 위해 사는 대신에, 인기를 위해 살기 원한다면, 인기 있는 대중적 주장이 너를 다스리고 통제할 것이다. 너가 나 외에 다른 신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여라. 그 신이 너에게 얼마나 자비를 베푸는지 보자꾸나. 그 신이 너를 얼마나 잘 구하고 인도하고 깨우치는지 보자꾸나.”
바로 이제 자신의 백성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고 보호하지 않겠다는 진노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유일하게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으신 하나님조차 포기하신 것 같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단호한 하나님의 거절 앞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다시 한번 더 고합니다. 15절입니다.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을 대로 무엇이든 자신에게 행하시는 것은 타당한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다시 말해 어떠한 형벌도 달게 받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면 손해보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형벌은 형벌대로 받더라도 제발 구원해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간구가 겉치레 형식으로만 하지 않고 16절에서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없애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실천적인 모습도 함께 보여줍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이신 여러분은 잘 아실 겁니다. 자녀가 큰 죄를 지어서 집을 나가라고 하든지, 니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 안하겠다는 말을 하더라도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은 자녀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알게 하기 위함이지 진짜 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몸소 깨닫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셨다면 16절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1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바로 고통받는 이스라엘 때문에 가슴 아파하십니다. 여기에서 “마음에 근심하시니라”는 더 정확하게 “생명이 짧아졌다”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말 그대로 생명이 짧아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아프도록 느껴지는 표현입니다. 자기 백성이 고통 당함으로 자신의 생명이 짧아질 정도로 아파하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자신의 백성과 자신을 묶으십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의 고통을 공유합니다. 사랑의 관계는 내가 무엇인가를 주니까 상대도 그에 합당한 것을 내놔야 하는 소비적 관계가 아니라, 상대가 무엇인가를 주지 않아도 상대방이 아프면 나도 아픈 관계입니다. 이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 교회를 핍박하는 바울을 향해 예수님은 “니가 핍박하는 예수라”라면서 교회와 예수님은 묶여있는 관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에까지 갑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죄에 버리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대적인 죄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어떻게 하든지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부께서는 성자를 죄에 내버려두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버리시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우상을 버릴 수 있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가 우상에 의해 고통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가장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제발 우상에게서 돌이키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을 소비적 관계로 대하지 않고 나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시지 않게 하기 위해 우상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께로 오십시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도하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에 하나님은 사사 입다를 보내심으로 이스라엘을 구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는 우상으로부터 구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은 주변 이방 민족의 모든 신들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유용하지 않기 때문에 버리고 우상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우상은 행복이 아니라 고통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방 민족으로부터 압제와 억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열여덟 해동안 고통받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은 거절하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과 소비적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이런 연약한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버리심으로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지 않기 위해 우상을 버리게 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우상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이 시대에 우상을 택함으로 고통받지 않고 오직 진정한 행복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가슴을 아프시게 하지 않기 위해 우상을 버리게 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두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모든 신들을 들여오는 아주 끔찍한 죄를 저지릅니다. 하나님은 이런 범죄를 저질러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시는 것 같지만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여전히 우상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상을 이길 힘이 없고 오히려 우상을 섬기려는 우리의 마음을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우리가 세상에서 우상을 능히 이길 힘을 달라고 이 시간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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