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으로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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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강대상에 올라가 무릎 꿇고 기도한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사순절 기간입니다. 이 예배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시간 되게 하시고, 예수님께 집중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고난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하시고, 방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를 온전하게 하옵소서. 한 주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 하신 후에 김정미 집사님 대표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성경봉독
요한복음 12:27–36 (NKRV)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1) 사순절 전통

사순절을 보내고 계신데요. 사순절 순례 여정은 우리의 복잡한 여정을 걸어가는 시간입니다.
1세기에는 40시간을 지켰다고 합니다.
3세기에는 6일을 지키게 되었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4세기에는 36일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샤를마뇽대제의 통치시절인
731년에 40일로 전통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세례 준비자들은 40일간 부분적으로 금식을 했습니다. 한 끼를 먹던지, 며칠씩 끊어서 하던지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공부도하고, 사도신경과 니케아신조에 대한 신앙교육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이 사순절은 세례를 받을 사람만 지키던 것이 이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하는 절기가 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이 이간에 고기를 먹지 않는 규율도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러한 전통을 조금은 따르는 것도 사순절을 보내기에 좋은 방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얽매이면 안 되겠지만 고기를 절제하기도 하고요. 일회용품을 자제하고요, 내 편리함을 멈추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쓸 고’, ‘어려울 난’(12:27-30)

‘고난’의 한자어를 보면요. ‘쓸 고’의 ‘어려울 난’입니다. 어려울 ‘난’자의 한자 그림을 보면 ‘진흙 근’과 ‘새 추’자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진흙과 새가 같이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제 견해는 이런데요. 새가 진흙에 빠져있는 상황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가 진흙에 빠져있는 어려울 ‘난’의 상황입니다.
새는 하늘을 날 때 가장 좋아 보입니다. 저도 새를 보면 부러워요.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니까요. 새의 장점은 그거죠.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날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높은 곳에서의 자유함이 있습니다. 아마 새도 땅에 있는 동물과 인간들과 식물들을 보면서 ‘으이그, 땅의 것들’이러면서 하찮게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새처럼 하늘을 난다는 것은 굉장한 강점이고 범접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제가 새의 범접할 수 없는 능력과 무서움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요. 새에게 쫓김을 당해본 적 있으신가요? 그 경험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아마 없으실 거예요. 강아지가 쫓아오는 것은 많이들 경험하셨겠지만 새가 쫓아오는 경험은 못하셨을 거예요. 강아지가 가끔 쫓아올 때가 있습니다. 강아지 산책줄에 묶여 있으면 안전하지만 그래도 갑자기 달려드는 강아지는 무서워요. 그런데 가끔 묶여있지 않은 강아지가 쫓아올 때가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강아지가 쫓아왔던 경험이 있어요.
조금 작은 강아지여서 제가 막 달려서 도망치면 도망갈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달리기가 빠르거든요.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제가 잘 뛰어 다녔는데 강아지가 갑자기 쫓아왔어요. 그래서 무서워서 저도 더 빠르게 집까지 달려갔어요. 한참 뛰어도 잡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아저씨께서 땅을 세게 밟으시면서 강아지에게 ‘워’하시니까 강아지가 멈췄습니다. 다행히 안도하면서 집에 갈 수 있었는데요.
강아지는 어떻게 올 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육지전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라 전략을 짤 수가 있어요. 그런데 새는 영역이 다릅니다. 새는 하늘이고 저는 육지이기 때문에 육군은 공군에게 안 돼죠. 전투기로 공격하면 육군들은 숨는 거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저도 새가 공격해 오니까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길을 가고 있는데 집에 다 왔는데 전선에 있던 새가 갑자기 저를 향해 오더니 ‘꽥꽥’소리른 내면서 따라오는 겁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요. 저를 공격하는거 같아요. 저는 도망가면서 뒤도 한 번 쳐다봤다가 팔로 막으려고도 하고 그랬습니다. 새가 말은 안 해도 그 느낌이 있잖아요. 얘가 나를 공격하는거 같다. 새가 쫓아오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속력에서도 안 되고요. 하늘에서 공격하니까 영역이 다릅니다. 새한테 쫓겨보신 적 없으시죠? 굉장히 공포입니다. 아마 그 새가 새끼를 낳았던지 자신의 영역이었던지 했는데 제가 침범해서 그런것 같습니다.
이렇게 새는 강력합니다. 하늘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새가 땅에 내려오면 어떤가요? 날개를 접고 얇은 두 다리로 뒤뚱뒤뚱 걸어다닐 때는 한없이 약합니다. 힘을 잃습니다. 거기다가 진흙에 빠져있는 새라면 처참한 상황일 것입니다. 새가 진흙에 빠져있는 모습이 ‘어려울 난’의 모습입니다.

3)밀알

오늘 말씀 앞 부분을 보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나옵니다. 한 알의 밀이 흙 속에 묻히면 열매를 맺습니다. 묻혀야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되셔서 흙 속에 묻히셨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도 하고 싶어서 하신 건 아닙니다. 괴로우셨습니다. 하나님께 그리고 제자들에게 자기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뜻이니까 행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이지만 자신이 한 알의 밀이 되셔서 진흙 속으로 들어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님께 ‘내가 너를 영광스럽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영광을 바랍니다. 그러나 고난 없는 영광을 바랍니다. 34절 말씀처럼 사람들은 구원자라고 하는 예수께서 들림을 당하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들려야 한다’라는 말씀은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구원자가 들리는 사건, 죽는 사건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죽는가, 왜 고난을 받는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4) 영광만을 좋아한다.

이렇게 우리도 영광만을 좋아하고 고난은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피하고 싶어하고요. 꾀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피할 수 있는 유혹들이 참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어야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어두움 속에 빛이 밝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광만을 바라고요. 승리만을 바랍니다. 고난은 겪으려고 하지 않고, 희생하려고 하지 않고, 손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되셔서 진흙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뜻을 행해서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러셨습니다.
‘고난’의 ‘고’자는 ‘쓸 고’입니다. 쓴 풀을 입으로 삼키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요. ‘고진감래’라는 말도 있죠.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 다는 뜻입니다. ‘고’는 삼키는 것입니다. 피하는 것이 아니고요. 삼키는 것입니다. 그저 삼키는 것입니다. 그저 삼키는 것입니다. 땅이 한 알의 밀을 삼키듯이, 삼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고난이 올 때 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피하시고 싶으셨지만 피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내 마음이 심히 괴롭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잔을 거두어 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겠다고 말합니다. 진솔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도 힘드시기 때문에 괴롭다고 고백하십니다. 솔직하게 기도해야 기도가 됩니다.
5) 시편 109
시편 109 편에서도 다윗은 매우 솔직하게 기도합니다. 원수를 향해 저주하며 기도하는데요. 그 내용이 다윗이 맞나 싶을 정도로 민망합니다. 시편 109:9-10 에 보면요.
“그 자식들은 아버지 없는 자식이 되게 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십시오.
그 자식들은 떠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폐허가 된 집에서마저 쫓겨나서 밥을 빌어먹게 하십시오.”
이런 심한 내용이 계속 나옵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러해야 합니다. 힘든 상황 속에 있는데 고상한 기도를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토해내야 합니다. 힘든 것을 그대로 토로해내고, 괴로움을 말하고, 화도내고, 하나님 앞에 원망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있고 난 후에 시편 109 편 중간에 다윗의 마음은 바뀝니다. 자신을 불쌍히 여겨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힘드니 도와달라는 기도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끝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다고까지 고백합니다. 이상하죠. 처음에는 저주를 말하더니, 도움을 요청하고, 감사하다고, 찬양까지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변화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의 변화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걸 쏟아놓고 토로해 놓는 영혼의 치유와 회복입니다.
그리고 이제 110편에 가서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는 내 오른 쪽에 앉아 있어라”, 세상 임금을 쫓아내고 내가 통치하겠다. 이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젊은이들이 모여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오른 쪽에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자신이 죽음의 고난으로 들어가신다고 하셨을 때 하나님은 천둥소리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영광스럽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고난으로 들어가실 때 하나님은 아들을 향해 ‘네가 이미 영광스럽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선택하셨을 때 하나님은 아들에게 영광스럽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은 십자가의 들림을 당하는 고난 속으로 들어가신 일입니다. 사람들이 조롱해도, 사람들이 돌을 던져도, 자신은 아무 죄가 없어도 죽기로 선택하셨습니다.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진흙 속에 묻히시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그러실 필요가 없었는데,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고난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6)예수님이 대신 돌 맞는 그림

그런 그림이 있죠. 한 사람이 길을 가는데 돌 하나가 자신에게 날아와 맞았습니다. 화가 나고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서 앞을 보니까 커다란 예수께서 팔을 벌리고 돌을 다 맞고 계시는 겁니다.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수많은 돌을 맞고 계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튀어서 나에게 날아왔습니다. 우리는 그것 하나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는 수많은 돌을 막아서서 맞고 계십니다. 비난의 말도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다 듣고 계시던 비난의 소리가 우리에게 들릴 뿐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고난을 감당하고 계시고 죽으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진흙 속에 묻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진흙 속에 들어가 묻힐 때에야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십자가에 달릴 때에야 비로소 부활의 아침을 만나게 됩니다.
사순절을 보내는 이 자리에 계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진흙 속에 씨앗으로 묻혀 타인들을 살려내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합니다. 그 고난 속으로 우리도 들어가게 하옵소서. 우리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새 생명을 움트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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