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 여호와 / 고후 13:13 / 찬송가 202장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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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렇게 새벽을 깨워주셔서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우리의 기도 가운데 조금도 회개의 기도가 나오지 않았음을 발견합니다. 수많은 죄들 가운데 예수님을 모르는 죄가 가장 큰 죄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모르는 것에 회개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우리의 초라함을 투덜거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는 우리 자신의 죄악을 회개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오늘부터 목요일까지 기독교미래연구소에 가는 담임목사님, 이 기간 가운데 필요한 모든 체력과 집중력과 건강을 허락하여 주셔서 조금 더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예수님께 집중하는 기간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하나 되게 하여 주셔서, 온 성도들이 구원자 예수님께 집중하며 회개하며 예수님께 부르짖는 부흥의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연약한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정부와 전공의 의사들과의 갈등이 하루 속히 해결되어서 다시 의료 환경이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이들의 갈등 가운데 환우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여 주시며, 하루 속히 환우들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문제와 갈등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치료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여 봅니다. 주일 예배와 성찬, 말씀은혜나눔과 예수계시 등의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집중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한 것을 하려다가 오히려 헛짓을 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교회에서 함께 하자고 하는 것들에 동참하여 우리 신앙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몇몇 성도들이 적용을 해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진정한 적용은 예수님을 모르는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구원의 성취를 이루신 예수님을 믿는 것인 줄 아오니, 주일 말씀을 다시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깊이 경험하는 진짜 적용을 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3월 새봄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지쳐있는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새힘을 허락하여 주셔서 예수님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입술 가운데 회개의 기도가 나오길 원합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예수를 모르는 성도라고 고백하여 예수를 모르는 것에 애통하면서,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서론

하나님의 말씀은 13장 13절 고린도후서 입니다. 같이 말씀을 두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음) /// 오늘도 이렇게 새벽을 깨워 이 곳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를 이루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 이 시간에는 축도에 대해서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삼위 하나님, 여호와라는 이름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 삼위 하나님을 어떻게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지 다시금 정리하는 시간 가져보려고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한 목사님이 축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축도를 일반적인 축도를 하지 않고, 다른 축도를 하게 된 것이죠. 일반적으로 축도는 13장 13절 고린도후서의 말씀으로 하지요.
2 Corinthians 13:13 NKRV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렇게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목사님은 다르게 축도를 하게 됩니다. 다른 말씀의 본문을 가지고 축도를 해버린 것이죠.
Numbers 6:24–26 NKRV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이렇게 6장 24-26절 민수기 말씀으로 축도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축도를 마치고 끝나고 내려왔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어떤 성도가 찾아와서 약간 항의를 했다는 것이죠. /// 아니 목사님, 왜 제대로 된 축도를 하지 않으십니까? 축도에는 당연히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있는 그 축도를 하셔야지, 왜 다른 축도를 하십니까? 축도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약간 항의도 하면서 살짝 비꼬는 느낌으로 따져물었다는 실화가 있었습니다.
누가 맞는 걸까요? 당연히 목사님의 축도는 전혀 문제가 없는 축도였습니다. 우리 교단 헌법 예배모범 제 8장 폐회에서 축도는 13장 13절 고린도후서로 하는데, 이 본문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고, 또 다른 본문으로도 축도할 수 있다고 나옵니다. 6장 24-26절 민수기 말씀으로도 축도를 할 수 있다고 나오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축도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자 그런데 이 성도의 모습도 사실 이해는 됩니다. 민수기 말씀에서는 여호와라는 단어만 나왔기 때문에, 고린도후서의 말씀과 비교했을 때 뭔가 수준이 낮은 그런 축복으로 들릴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오해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오해를 했다는 것이지요.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에는 삼위 하나님이 다 들어가 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것이죠. 여호와 하나님에는 삼위일체 삼위 하나님 모두가 다 들어있다는 겁니다. 이 부분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오는 이름이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오고 있지요. 3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여호와라고 자신을 소개하여 주십니다. 물론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간략하게 말하면, 여호와라는 뜻에는 내가 너와 반드시 함께 할 것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구약에 나온다고 하나님 아버지, 성부 하나님, 이렇게 오해해선 안 된다는 것이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모두 우리 성도들과 항상 반드시 함께 하여 주시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이 민수기 말씀으로 축도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지나치게 경직된 생각은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듣고, 무조건 구약의 하나님, 성부 하나님 이렇게 생각하는 건 오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오해에는 사도신경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 첫 번째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자 이 문장은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렇게 사도신경을 성부 성자 성령 3 부분으로 나누어서 이해하곤 하는데, 이미 첫 문장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 부분에서 우리는 삼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신 분은 바로 아들 성자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의 의를 우리가 전가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믿을 수 있다는 것. 우리 마음 가운데 믿음이 찾아와서 믿게 되는 것. 여기에는 성령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게 되는 것. 이것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 없이는 결코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사도신경 첫 문장에서도 삼위 하나님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간에 삼위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일단 확실한 건 기계적으로 예를 들어 찬양할 때, 3분의 1은 성부 하나님 찬양하고, 3분의 1은 예수님 찬양하고, 3분의 1은 성령님 찬양하고 이러한 모습은 잘못된 매우 기계적인 인위적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삼위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높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예수님 중심의 삼위일체론을 가질 때 우리는 균형있께 삼위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3분의 1, 3분의 1, 3분의 1이 균형이 아니라, 예수님께 집중할 때, 제대로 삼위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자, 먼저 예수님 없이 구약을 열심히 읽는다고 칩시다. 하나님은 알게 되겠지요. 경건한 사람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유대인처럼 구약 성경은 잘 알아도, 구원은 받지 못하는 것이죠.
또, 성령 하나님께 집중한다고 칩시다. 그리하여 정말 하늘의 언어, 방언이 터지고, 능력이 생기고, 신유, 치료하는 은사가 생기고, 이렇게 엄청난 신비의 능력을 경험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엄청난 능력을 가져도 구원 받지 못합니다. 삼위 하나님은 놀랍게도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고, 성자 예수님은 그렇게 인간의 몸을 입고, 중보자로 이 땅에 성육신 하셨고, 성령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우리에게 믿을 수 있도록 지금도 역사하여 주십니다.
그렇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계적으로 3등분하는 것은 오히려 이단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잘못된 모습이라는 것이죠. 3등분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성자 하나님, 예수님께 집중할 때, 삼위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온전히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올바른 개념을 세우고, 이제 구약에서 왜 예수님 이야기 하냐고 그런 질문은 넣어두시길 바랍니다. 또 왜 성령 하나님은 말하지 않냐고, 넣어두시길 바랍니다. 예수님 이야기 할때 이미 성령께서 역사하신 겁니다. 예수 충만할 때, 이미 그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오늘 하루도 주일 말씀을 다시 묵상하시면서 예수님께 집중하고, 예수 말씀으로 충만하여져서, 삼위 하나님을 온전히 높여드리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 온전히 예수님께 집중하게 하지 못하고, 유대 랍비들처럼 성경 말씀을 지나치게 과하게 해석하는데 힘을 낭비하고, 신비주의자들처럼 성령의 특별한 체험과 능력만을 구하였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에 회개하오니, 우리의 중보자 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께 집중하며 그렇게 삼위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할 수 있도록 주여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이 시간 주여 한 번 부르짖고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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