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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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views하나님께서는 종말에 온 땅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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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 새 땅 / 계 21:1~8
새 하늘, 새 땅 / 계 21:1~8
성경은 창조로 시작하여 새 창조로 끝납니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이 온 세상을 만든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세상이 사랑과 공의로 관계 맺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망가지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인간이 중심이 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깨지면서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사랑과 공의는 사라지고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탐욕을 추구하며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책임을 묻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포악함으로 인해 홍수로 온 땅을 심판하셨지만, 노아를 통한 구원 이후에 인간은 또다시 자신과 온 땅을 망가뜨리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망가진 세상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회복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이삭, 야곱, 요셉을 통해 그 이야기는 지속되었고 결국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또 다시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강대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70년 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하나님 나라는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구약성경은 막을 내립니다.
자신들을 구원하고 회복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바로 이 예수님의 오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을 입고 역사 가운데 찾아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 보이셨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처음 창조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생겼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에 이 땅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땅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을 전수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환상으로 본 요한은 그것을 ‘요한 계시록’으로 남겼습니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 바다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처음 하늘과 땅과 바다는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망가졌습니다. 그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모든 깨어진 관계와 그것으로 인한 고통과 아픔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깨지고 망가진 모든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는 신비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만물이 새롭게 되는 은혜와 축복입니다.
요약하자면, 하늘과 땅, 바다를 지으시고 그 안에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성경이야기는 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인간이 주인이 되어버린 인간과 세상의 비참한 모습, 그리고 그런 인간과 세상을 고치시고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실행 이야기로 진행되다가 종말에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종착점인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보았던 하늘과 땅이 아닙니다. 요한은 여기에서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과 이사야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요한이 본 환상은 이사야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새창조의 대상은 일차적으로는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3~4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새로운 하늘과 땅에서 누리게 되는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은 단순히 인간들을 위한 세상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인간만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늘과 땅, 즉 처음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을 때 거기에는 인간과 동물과 생물과 자연 만물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친밀한 인격적 관계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인간의 욕망, 즉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내리고 자신이 왕이 되어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자기중심성이 결국은 그 모든 관계의 단절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런 인간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지속되었고 마침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그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온 땅을 심판하실 때 우리의 죄로 인해 망가지고 깨진 세상은 없어지고 처음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으로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맛보았고, 지금 그것을 기다리고 소망하면서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간다면, 이 땅에서의 생명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우리는 영원히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붙잡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은 사람만 새로워진 땅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하늘도 땅도 새로와졌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새롭게 되었습니다. 모든 관계가 새로워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동물이, 동물과 동물이, 세상과 하나님이 처음 창조의 모습처럼 서로를 해치거나 상하게 하지 않고 서로 돌보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이사야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날이 되면 사자가 양과 함께 누워있으며, 작은 아이들이 독이 가득한 뱀과 두려움 없이 뛰어 놀게 될 것이다.”(사 11:6–8). 이사야서 후반부에서도 회복될 창조계가 등장하는데, 초반부의 표현과 유사한 표현으로 궁극적 창조계를 묘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묘사는 포로 상태로부터 돌아왔던 이스라엘의 회복된 삶의 모습과 더불어 함께 설명되고 있다(사 60–66장). 땅은 소산을 내게 될 것이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삶을 영위하게 될 뿐만 아니라 아이들 역시 영원토록 살게 될 모습을 그리고 있다(사 65:20).
요한계시록 21:5에서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는 말씀이 있는 것을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는 말씀과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는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한다는 말입니다.
2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를 살펴봅시다. 이 단어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 곳을 일컫는 말인데 이사야 52: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사야의 맥락에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다시는 포로 생활로 고난당하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의 임재로 회복되는 때를 약속하는 표현입니다.
요한은 이사야가 보는 비전에 ‘새’를 붙였습니다. 역시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빌린 개념입니다. 이사야 62:1,2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이렇게 새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그 백성과 친밀하게 함께 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된 곳입니다. 끊어진 관계가 회복되어 처음 창조와 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4절 후반부는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는 말씀과 이사야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에스겔 37:27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와 레위기 26:11~12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과 구원받은 사람들 사이의 완전한 교제와 하나 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들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중에 거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에게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최종적인 회복을 예언하는 본문입니다.
이 예언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이 땅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6:16~18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회복이 마지막 날 완전하게 성취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절에서 구체적으로 그것을 언급합니다. 모든 종류의 환난이 사라지고 절대적인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록을 좀 더 읽어보면, 22:3~5에서 다시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여기에서 다시 저주가 없고(3절), 다시 밤이 없다(5절)는 표현을 봅시다. 옛 세상의 어떠한 악과 위협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을 방해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는 표현도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와 이사야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을 반복합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에서 바울은 이사야 43:18~19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와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라는 예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은 하늘과 땅과 함께 새 창조로 변화될 것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는 계 11:15 말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말에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 혹은 새 창조와 관련된 오해를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다른 본문에서 종말에 대한 묘사가 이 땅이 완전히 멸망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1. 교체가 아니라 갱신
여기에서 ‘새로운’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카이노스’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나타나거나 만들어진 것을 말하기는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질적인 새로움을 말합니다. 이전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 전에 볼 수 없었던 독창적이고 신선한 어떤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시간적으로 최근에 나타난 하늘과 땅이라는 의미보다는 이전 것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하늘과 땅입니다. 만물이 새롭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이전 하늘과 땅을 새것으로 교체한다기보다는 이전 하늘과 땅을 고쳐서 새롭게 하는 것(갱신)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사용하는 표현 중에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다.’는 표현,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과거가 다 없어지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허물이 벗어지고 그리스도를 옷입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는 표현입니다. 교체가 아니라 갱신된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기존의 하늘과 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땅을 덮어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나와 믿은 이후의 나는 동일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보신다는 말이다. 죄와 불의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규정되는 존재로 변화하였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변화가 시작되었고,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회복되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완전히 변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흙으로 무엇을 만들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흙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다 허물어서 그 흙으로 다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오랫 동안 입던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오래된 옷을 수선하여 다시 새 옷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갱신시켜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듯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상도 그렇게 회복시켜나가시며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은 완전히 새로운 하늘과 땅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죄와 불의로 물든 모든 부분을 제거한 후에 만물을 선하고 아름답고 의롭게 다시 만드실 것입니다.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지구를 포기하고 다른 행성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 있는 불의함과 포악함, 모든 인간의 자기중심성과 탐욕을 털어내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2. 제거가 아니라 정화
종말의 날 심판의 이미지로 사용된 ‘불’(욜 2:3; 습 1:18; 말 4:1; 참고. 벧후 3:10) 이미지가 있습니다.
요엘 2:3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스바냐 1:18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말라기 3:2~3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말라기 4: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베드로후서 3:9~13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여기에서 ‘불’이 의미하는 바는 모든 것을 다 태워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을 태워 순수한 본질만 남게 되는 것, 즉 정화하는 것입니다. 불이 태우는 것은 땅에 있는 더러운 죄악들과 그로 인해 망가진 존재들이지 땅 자체가 아닙니다. 온갖 죄와 악의 모습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만 남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뒤덮고 있던 불의와 죄악이 다 태워지고 나면,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다시 온전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말라기 3:2~3이 말하는 바와 같이, 불은 소멸하는 불이 아니라, 깨끗하게 하고 정결하게 하고 순수하게 하는 연단의 불입니다. 그 불을 통과하면 모든 더러운 것들이 제하여지고 순전하고 흠이 없는 깨끗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소멸하는 것은 땅이 아니라,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 죄로 얼룩진 상태입니다.
벧후 3:10 의 “뜨거운 불에 물질이 풀어진다”는 표현이 있는데 여기에서 물질은 고대 세계에서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4대 원소인 물, 바람, 흙, 공기가 세상을 다스리는 정령이라고 믿었던 사고를 반영합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그분의 공의롭고 정의로운 통치를 방해하는 왜곡된 힘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완전히 회복되기 위해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사라지지만 땅과 그 위의 일들은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솜씨 좋은 외과 의사가 온 몸에 퍼진 암세포를 제거하면 거듭나서 건강한 사람으로 회복되듯이 하나님은 죄와 허물로 얼룩진 세상을 수술하여 건강한 세상을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계 22 장은 처음 창조의 에덴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회복된 에덴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지금 여기에서 그것을 드러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모든 생명과 온 땅을 사랑하고 지키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는 석교공동체가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