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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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근심과 작정

사람들은 보통 노아의 방주 사건을 떠올릴때 하나님의 모습 속에서 굉장히 분노하시고, 진노하셔서 세상을 쓸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오해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세상을 쓸어버렸다는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의 아픔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5절 6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사람들의 마음이 계속해서 생각하는 계획이 항상 악한것을 보시고, 사람을 땅에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근심하셨다고 하는데, 이게 원 뜻을 살펴보면 후회하고, 슬퍼하셨다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한번 생각을 해보자구요. 신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후회를 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후회를 하신다라는 표현이 조금 낯설고 하나님의 신적 능력에 대한 의심을 할 수도 있는 부분이란말이죠.
그래서 이 단어를 조사해보니까, 한탄하다라는것이 나함 이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가 쓰여진 성경을 보면 뜻을, 혹은 마음을 돌이키다, 마음을 바꾸다 라는 뜻이 있는거에요.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라는 표현보다는 땅위에 사람을 지은것에 대한 마음을 바꾸시겠다라는 표현을 하신게 맞다고 볼 수 있어요.
아 그렇다면 이게 뭐냐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것에 대해서 마음을 돌이키고 사람을 짓지 않은 상태로 바꾸겠다 라는 뜻이 된단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도 이상함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갈대같이 흔들리고 변하는 하나님 이시냐는 거죠.
우리가 알고있는 하나님은 변하시지 않는 하나님이세요. 대표적으로는 민수기 23 장 19절 말씀이에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이 말씀만 보면 하나님이 후회도 안하시고, 마음을 바꾸시지도 않는 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지금 오늘 본문의 마음을 바꾸신다는 내용과 민수기의 후회가 없으시다. 마음을 바꾸시지 않는다는 내용이 서로 부딪친다는 것이죠.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 포인트 입니다. 무엇이 옳은가?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여러분 한번 답해보세요. 하나님이 변하십니까 변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이신가요? 변하시는 하나님 이신가요?
우리는 오늘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시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게 뭐냐 바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정을 하신 것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해당하는 부분은 언제든지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정은 이런 뜻이 있어요. 일을 어떻게 하기로 결정했다. 즉 결정한 부분은 바뀌지 않는거에요. 지을 작 만들다 작에 약속하다 정을 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기로 약속했다는 뜻이잖아요.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기로 했다 라고 결정한, 즉 약속한 사실은 절대 바뀌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그리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말씀. 그리고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셔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기로 하신 것은 어떤 상황이 와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진노와 심판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뜻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말이죠.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그래서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져 심판을 받고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하나님이 결코 변하지 않는 약속으로 정해놓으신 결정, 즉 하나님의 작정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작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변하시기도 한다고 했던 부분이 어떤것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돌이키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섭리의 영역입니다. 섭리라는 단어를 살펴볼까요? 섭리는요 한자가 뭐냐면 다스릴 섭에 다스릴 리를 사용해요 그러니까 다스린다는 의미죠. 즉 다스린다는 것은 때론 마음을 돌이킬 때도 있다. 라는 얘기를 하는겁니다. 여러분 다스린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다스리다 라는 뜻은 말이죠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서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거에요. 혹은 어지러운 일이나 상태를 수습하여 바로잡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다스린다라는 부분은 때로는 강경한 방법을 사용했다가 때로는 당근을 주기도 했다가 하면서 충분히 바뀔수 있는 부분인 거에요. 국가만 봐도 그 나라의 법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지 알 수 있고, 가정을 살펴보아도,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을 바꾸어 고쳐 먹을때가 있다는 거죠.
가령 예를 들어 우리 아이들의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이렇게 해야한다! 라고 하면 잘 따르고 규칙을 지키는 아이가 있는 반면, 어떤 아이는 그 부분을 굉장히 어려워하고 힘들어 한단말이에요. 그러면 부모는 그 아이의 성향에 맞게 그 규칙을 충분히 변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적용해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심에 있어서 수십번도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세요. 왜? 사랑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다스림도 굉장히 규칙이 정해져 있고 딱딱하겠죠.
하나님께서 섭리의 영역에서 마음을 바꾸시는 유일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그분의 성품때문이에요.
요엘서 2장 13-14절을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호세아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요나 3: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요나 3: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위의 말씀들에 뭐라고 되어있나요?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심지어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어요.
요나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섭리는 회개하는 자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는 것은 자비와 은혜와 사랑이라는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이었다는 것이죠. 즉 하나님의 변하지 않으시는 작정의 성품이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그 사랑의 성품은 출애굽기 34:6–7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에 정확히 나와있죠.
그리고 또 반대로,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려고 해도 만약 백성들이 죄를 범하면 선을 행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또 바꾸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나와요.
예레미야 18:10 NKRV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정리해보자면, 오늘 본문6절에 한탄하사 즉 후회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라는 부분이, 마음이 슬퍼서 뜻을 돌이키셨다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이게 하나님의 섭리로 5절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마음으로 죄를 지으니까 결국 뜻을 돌이키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기서 핵심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그것이 섭리의 영역이라는 것이고, 이렇게 뜻을 돌이키게 된데에는 하나님이 진노의 하나님이시고 열받아서 그냥 막 사람들을 쓸어버리려고 하셔서 결정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홍수 사건은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일어난 사건이다 라는 생각은 오해이고, 하나님의 계속된 근심과 마음의 고통의 결과물 이라는 시각에서 홍수사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나함이라는 동사가 구약에서 최소 9번 이상 쓰여지는데 그 부분에서는 정서적인 고통이나 약함을 경험한다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고통하시고 마음을 바꾸신것으로 이해하면 홍수 사건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결국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의 문제.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악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마음으로 고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진노의 하나님이 아니라, 마음에 고통을 느끼고 근심하는 분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왜 고통하시고 근심하시고 속상하시고 마음을 바꾸실 정도로 답답해 하십니까?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을 우리가 살펴보면요, 노아 시대에 사람들과 우리가 별반 다를게 없어요.
더했으면 더 했지 땅과 사람의 악함이 결코 노아의 때와는 덜하지는 않았을 거란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는 심판하시지 않는 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무 다행일까요?
심판은 받지 않지만, 지금도 그 때와 같이 인간의 마음이 악하다면 여전히 하나님은 그 때처럼 고통가운데 있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여전히 한탄하시고 마음에 아픔과 슬픔이 지금도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노아의 한탄하시는 하나님의 아픔과 슬픔은 갈보리 언덕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해주시는 가장 핵심적인 메세지 입니다. 갈보리 언덕의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고 너무나 고통했습니다.
노아가 홍수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에게도 이런 환란이나 대재앙이 닥쳐와도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다면 희망이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시대는 붙잡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너무나 위태롭습니다. 성경의 이야기가 지금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 이스라엘의 환란, 사사시대의 환란, 역대 왕들의 환란,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환란, 그리고 완전한 구원의 길이 열린 지금도 이 시대는 저 앞선 선조들의 시대와 같은 환란에 있습니다.
그런 이 시대가 직면하게 될 것은 대재앙과 심판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의 역사를 통해 깨닫을 수 있습니다. 이는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정할 수 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결코 변하시지 않는 오래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심과 사랑하심 때문에, 여전히 고통하시고 아파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십자가의 도, 구원의 길을 전하고 외치면 재앙을 돌이키고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오늘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십자가를 붙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 지금도 고통하시고 근심하시고, 오래참고 있습니다. 이제는 돌이켜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잘난게 없지만 8절 말씀처럼 노아와 같이 그저 은혜를 입은자들 입니다. 이 세상이 노아의 때 처럼 임박한 대재앙 앞에 놓여있다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물에 잠겨 죽어가는 이들을 지켜 보실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를 붙들고, 예수를 붙들지 못한 자들에게 지금 당장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외쳐야 합니다. 구원이 있음을 알려야 합니다.
요나가 큰성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자 성령의 임재로 모든 죄인들이 돌이켜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였듯,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함을 외쳐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셨듯, 온 세상이 물에 잠겨 심판에 있었지만, 하나님을 붙들었던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셨듯이, 우리가 방주에 올라탄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 사실에 만족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십자가 구원의 도를 지금 당장 우리 이웃과 가족들에게 외쳐 전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겠다고 맹세했습니다. 하나님은 구하고 찾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자 그 앞에 나아오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노아를 구원하셨던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붙들고, 세상의 죄악으로 근심하고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애끓는 심정과 마음을 가지고, 물에 빠져 죽어가는 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해서, 이들을 구원하시고 붙드실 것이라는 그 약속의 말씀을 곧곧에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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