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롬 2: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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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롬 2:17-3:8)
<서론>
자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확신과 자부심은 더 없이 큰 은혜이고 복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그에 걸 맞는 삶이 뒤따르지 않으면서 지나친 자부심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와 세상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늘 제목이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가진 자부심그들의 정체성을 말하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에서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칭찬' '찬송'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유다'는, 야곱(이스라엘)의 12아들 중에서 비록 넷째였지만, 그의 후손은 '다윗' '솔로몬'같은 성군을 대표로하는 강력한 이스라엘의 왕가를 이루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을 '유다사람' 유태인(猶太人)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백성(선민)"이라는 지나친 우월감에 빠져 "자신들만은 반드시 구원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다른 이방사람들은 '지옥의 땔감'이라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라는 표현을 통하여, '유대인이라고 자랑하며 거들먹대는 너희 말이야! 너희는 이방인보다 더 악한 죄를 짓고 있어!' 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본론>
1. 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는 않습니까?(2:17-24)
바울이 지적하는 유대인들의 첫 번째 죄는, 「하나님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입니다.
2:17절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한다”(2:17절) 고 말합니다.
율법을 의지하다’는 말은 ‘율법을 신뢰함으로 기대다’는 뜻으로, 「유대인 자신들의 생명과 구원에 대한 기대를 율법의 소유에 의지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자신들의 조상인 모세에게 주셨고, 자신들은 최소 1400년 이상 이 ‘율법으로 살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또한 “하나님을 자랑”하였습니다. 이것은 긍정적 의미에서의 자랑이 아닙니다. 되지 못하는 자랑으로 ‘뽐냈다’는 의미입니다.
이 자랑은 하나님과 그분이 주신 율법을 향한 겸손한 의존과 충성스런 순종이 아닌, 다른 백성에 대한 자만과 교만으로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랑하며" 하나님은 오직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며, 스스로 진리(율법)를 가르치는 교사요 선생이라고 자부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들은 그 가르침의 대상에서 제외시킬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2:17-22).
도둑하지 말라 가르치면서 자신들이 도둑질을 일삼고, 간음하지 말라 말하고 자신들이 간음하고, 우상을 가증히 여기면서 우상숭배에 필요한 물건들을 팔아서 돈을 벌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하나님을 욕(모독)되게 하는 죄"(2:23-24)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훼손하는 신성모독죄에 해당 됩니다.
왜냐하면 나쁜 줄 알면서 죄를 범하고, 입으로만 거룩을 외치표리부동한 행동(종교적 위선)은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쩌면 유대인 못지않은 잘못된 안도감에 심취하여 삐뚤어진 자부심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다닌 지 수십 년이 된 것을 자랑하며, 예배와 설교가 은혜롭고 성경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좋아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을 잘 가르치고 있습니까?
강단에서는 그럴듯하데 설교하면서, 주일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좋은 선생이지만, 가정에서도 또한 훌륭한 아버지이고 어머니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어떻다고 돌을 던지면서도 정작 나에게 있는 문제점은 고치려 하지 않지는 않습니까?
한국 교회가 손가락질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도가 부족해서일까요? 찬양이 덜 뜨거워서인가요? 우리 기독교인들이 말씀을 지키지 않고 불법을 행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교회 다닌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신앙경력이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지키고 따르고자 할 때, 하나님을 겸손히 의지하며 충성스럽게 순종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의 제자라고 자랑스러워하실 줄 믿습니다.
내 스스로 자랑하는 교만 자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믿음 때문에 하나님이 자랑하시는 말씀의 사람종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2. 참된 신자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에서 드러납니다(2:25-29).
두 번째로 유대인들이 간과한 것(죄)은 참된 유대인(참된 신자)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의 또 다른 자긍심은 「할례」였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증표로 준 「」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유대인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리고 할례는 그들이 가지는 자긍심의 가장 큰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외적인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며, 외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내적 유대인이 곧 참 유대인이다'
바울의 논지 이렇습니다. "할례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순종 없는 할례는 무효이지만(2:25), 비록 할례가 없을 지라도 순종하면 할례같이 여겨진다(2:26)."
"진정한 할례는 몸에다 표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이 변화되는 것(2:29)이다"입니다.
신자(그리스도인)는 마음에 할례; 성령 충만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해야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주인으로, 주권자모신 삶실제로 살아 내야합니다.
할례는 형식이순종은 내용입니다. 내용은 빠지고 형식만 남으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 습관적으로 하는 예배, 건성으로 드리는 기도참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심이 없는 순종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렇다고 행위 구원을 강조한다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순종이 무엇입니까?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격하여은혜에 반응하는 성도의 태도입니다.
참된 믿음성경을 조금 안다모태신앙이고 오랫동안 신앙생활 했다고 증명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오는 순종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외적인 형식이나 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25–27).
형식적인 예배나 찬양이 아니라, 예배한대로 찬양한대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적인 모습에 온갖 힘을 다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마음을 보시며, 그 사람의 실제 삶을 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기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29).
성령이 임해야만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변화됩니다.새 마음이 우리를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비판하거나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성령의 사람이 되어 새 마음으로 변화 되면, 성령의 역사는 우리 공동체를 변화 시키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 변화되어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의(정죄)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3:1-8).
세 번째로 유대인들이 범한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신들의 특권을 과신한 나머지 자신들의 불충을 변명하며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정죄)는 변명으로 넘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3장 1절에서 8절은 난해한 구절입니다. 제가 이해한대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유대인들이 받은 "할례"의 유익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신 "말씀을 맡은"(1-2) 특권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특혜를 받았지만 불충했습니다. 그리고 괘변을 늘어놓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어도 오직 하나님은 참되신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시편 51:4의 말씀처럼, '주께서 말씀하실 때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하심이다'라고 하였잖습니까?"(3:3-4)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약속의 신실함은 폐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선민인 우리를 벌주시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궤변은 더 극에 달합니다. 3:7-8절입니다. "내가 거짓말을 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뚜렷하고 풍성하게 나타나고 그분의 영광이 더욱 빛난다면 내가 왜 하나님께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좋은 일이 생기는데 나쁜 일을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3:7-8)
유대인들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억지 주장이고 궤변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하게 드러낸다면, 하나님도 불의한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시지 못할 것이다."(3:5-6)
그리고 8절 끝에서 정확히 밝힙니다. 「너희가 아무리 너희 죄를 정당화 하려고해도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3:8下)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가룟유다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려면 십자가에 못박혀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배신해야하고, 그 역할을 위해 가룟 유다가 희생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죄에 대하여 억지 쓰고 변명하며 아무리 정당화하려고 해도, 그리고 그것이 논리적으로 맞는다하여도, 그것이 '옳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죄 없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달을 때가 있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잘못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죄 짓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흠도 없이 점도 없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항상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변명이나 정당상황화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인정하고 회개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의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원자로 고백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확신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확신과 자부심에 걸맞지 않게 교인이라는 이름만 걸어놓고,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산다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또한 신앙을 겉모습에 찾으려는 위선의 유혹도 뿌리쳐야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고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참된 신자는 겉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변명이나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변명이 아니라,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는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마음의 할례,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마음과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기쁨으로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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