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지지 않는 들보 / 마 7:4 / 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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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
대표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새벽을 깨워서 예배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우리를 광야로 부르셔서 구원자 예수님을 깊이 알게 해주신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한 주간을 살아오면서 또 다시 구원자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갔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생을 화려하고 멋지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잘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이것들에만 고민하며, 그렇게 성도의 정체성인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세상과 다르게 살아서, 잘나서, 화려해서, 성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성도라고 그렇게 불려졌는데, 그사이 또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그렇게 세상에서 방황하며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몰랐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시작부터 망해버린 초라하기 짝이 없는 우리를 광야로 불러주시고, 그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게 해주시고, 그리하여 세례 요한과 같이 화려한 천국 백성으로 만들어주시는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그리하여서 초라한 인생에 절망하지 않고, 우릴 위해 초라하게 태어나시고, 십자가에서 무능력하게 죽으셨지만, 우릴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를 이루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 찬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 매너리즘에 빠져버리고, 형식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모습들을 발견합니다. 아버지,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앙의 기본기에 집중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한 것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일 말씀을 반복해서 묵상하고, 은혜 나눔을 하고, 성찬을 하며, 율법 완성과 예수 계시 책을 읽으며 그렇게 기본에 충실한, 본질에 충실한 신앙 생활 갖게 하여 주옵소서. 다른 것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이러한 교회에서 같이 하자고 하는 것들로 미래를 준비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우리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김현홍 어린이 수술을 마쳤는데, 이후의 여러 부작용 없이 다시금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가족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현홍이가 평생토록 예수님만을 붙잡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송봉훈 목사님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목사님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모든 절차들이 잘 이루어져서 몸이 회복되고 계속해서 주님을 찬양하는 성도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김재홍 선생님 뇌출혈로 수술 받고 회복중에 있습니다. 다시금 일상생활 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회복시켜주시고, 일으켜세워주시며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김순희 집사님, 매주 목요일마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가 넘쳐서 그 치료를 잘 견디고 이겨낼 수 있도록 주여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주일 전날 토요일입니다. 아버지, 주일날을 준비합니다. 준비할 때 무엇보다도 회개의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주여 우리의 입술을 열어주옵소서. 예수님을 모르는 것에 애통하고 회개하면서 그렇게 주일 전날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우리의 기도를 주관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서론
서론
하나님의 말씀은 7장 4절 마태복음 입니다. 같이 말씀을 두 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음) ///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오신 우리 성도 여러분들을, 초라한 인생에서 화려한 인생으로 살게 하여 주시고, 존귀한 자로 만들어주시는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문신. 몸에다가 그림이나 글 같은 것을 새겨 넣는 것을 말합니다. 문신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공무원이 지나치게 문신을 많이 해서 3개월 정도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러한 징계를 줬다는 기사도 나왔었지요. 문신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해도 된다. 하지 마라. 절대 하지 마라. 인상깊은 댓글도 봤는데, 문신은 해도 되는데, 문신을 하면 평생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님을 증명하고 살아아야 합니다. 이러한 댓글도 보았습니다. 또 어떤 방송인이 결혼을 앞두고 파혼하게 되는 기사가 나왔었는데, 그 상대방이 문신을 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결혼까지 안 가서 다행이다. 잘했다. 이렇게 문신을 했다는 이유로 이러한 평가를 쉽게 내리는 걸 보게 됩니다. 저 또한, 문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하준이가 나이를 먹고, 결혼할 여자를 데려왔는데, 그 여자 분 팔에 용문신이 그려져 있으면,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한 상상을 해봅니다. 그렇게 저는 문신은 하면 안 되는 것. 부정적인 것. 이렇게만 계속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큰 혼란이 저에게 찾아옵니다.
제가 구독한 유튜버였는데, 마장골 예인교회 구독 좋아요 하듯이 구독해서 가끔씩 챙겨보는 채널이었습니다. 군대 이야기도 잘 해주고, 재밌기도 하고, 잘 보고 있었는데, 이 사람이 또 문신에 대해서 매우 강도 높게 비판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사람이 코인 사기에 연루되면서 이 사람이 문신한 형님들과 매우 친근하게 지냈다는 정보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앞에서는 문신을 하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했던 사람이 정작 뒤에서는 돈 벌려고, 성공하려고 떼돈 벌려고 문신한 사람들과 아주 가까이서 지냈다는 것이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저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찾아오게 됩니다. 아 나도 이 사람과 똑같구나. 나도 문신을 하지 않았지만, 문신을 싫어하지만, 사실 나도 저들과 똑같은 사람이구나. 나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문신들이 있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제 눈에 있는 들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아이들에게 문신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겠지만, 문신하면 인생이 힘들어진다. 가르치겠지만, 제 자신한테는 아 나도 영적으로 죄악의 문신을 한 죄인이지 이렇게 생각이 들다는 것이죠.
본론
본론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정확히는 율법완성의 가르침에 해당하는 7장에 있는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에게 비판하지 말라 가르치면서, 들보와 티를 비유로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어찌하여 자기 눈에 있는 들보, 거대한 그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왜 형제의 아주 작은 티, 아주 작은 파편, 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정죄하고 있느냐. 그렇게 가르쳐주십니다. 자기 눈에 있는 들보는 못 보면서 왜 형제 눈에 있는 티를 보고 빼려고 하고 있느냐. 그러면서 외식하는 자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자기 들보는 못 보면서 다른 이들의 티를 빼려고 하는 사람을 외식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라고 가르쳐주십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이제 예수님 말씀대로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야겠다. 다른 성도들의 티를 보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멈추고, 일단 나부터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보고 빼야겠다. 이렇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앞에서 말한 문신 이야기처럼 자기 자신을 먼저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지요. 저도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또 반대로 성도님들께 감사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지요. 성도님들이 얼마든지 저의 모습을 보고 쉽게 판단하고 정죄할 수도 있었는데, 참고 기다려주시고, 인내해주시고, 기도해주시는 그러한 성도들의 모습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 내가 자기 자신부터 보고,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야겠다. 이러한 의도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우리 안에 있는 들보는 결코 빠지지 않는 죄악의 들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들보를 뺄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들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여 주셨습니까? 7장의 말씀 역시 예수님으로 해석해야 하는 본문입니다. 7장의 주체 역시 우리가 아니라, 내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죠. / 우리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안에 있는 들보를 뺄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다른 사람의 티를 보면서 비판하고 정죄하는 그러한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자신들의 들보를 못 보고, 세리와 창녀들을 비판했던 것처럼, 우리도 사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으로서 외식하면서 그렇게 남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며 살아갑니다. 자기를 높이며 자기 공로를 자랑하며 살다가 그렇게 지옥에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우리에게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들보도, 어떠한 티도, 어떠한 흠도 정말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비판받고 정죄받을 수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비판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비판받고, 우리가 정죄를 받아서 지옥에 가야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 때문에 십자가에서 초라하게 정죄를 받아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이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주님, 제가 외식하는 자입니다. 주님, 제가 바리새인입니다. 주님, 제가 비판받고 정죄를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주님, 저는 도저히 하늘을 우러러 쳐다볼 수 없는 죄인입니다. 주님, 더러운 저에게서 제발 떠나주소서. 이렇게 고백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기 때문에, 나 때문에 비판받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 자기 자신도 남을 비판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주셨기 때문에, 이제 남을 비판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심령은 부드러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주체를 제대로 설정해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말씀들이 그렇지만, 오늘 본문의 주체를 나로 보아서 해석하면 잘못된 결과가 나옵니다. 윤리와 교훈이라는 지옥 가게 만드는 끔찍한 결과가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주체를 예수님으로 보아서 제대로 해석하면 /// 복음이 나오고, 은혜가 나오고, 회개의 고백이 터지고, 또 자연스럽게 남을 비판하지 않게 되는 열매도 맺어지게 됩니다.
다시 정리하면, 오늘 말씀은 남을 비판하지 않고 살아가는 내가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누가 주체입니까?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들보도, 티도, 흠도 전혀 없으신 예수님이 주체라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게 아니고,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주체로 살아가시는 겁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 때문에, 남을 비판하지 않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 때문에, 비판을 받아도, 공격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예수님을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을 주체로 여기며 살아갔던 그 가장 큰 죄악을 회개하면서 그렇게 주일 전날을 은혜롭게 준비할 수 있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 오늘 예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끝) 모든 예배를 마쳤습니다. 청소하시고, 만나홀에서 맛있는 식사하시고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