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1장 29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2” / 찬5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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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20220313-온유함으로 답하라)
성경: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들어가기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분명히 교회는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며, 성도는 어두운 세상의 빛임에는 변함이 없는데, 과연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고, 성도들을 외면하는 지경에 이른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의 삶의 내용들을 살펴보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라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시간들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주님의 성품인 온유함’에 대해서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 본문으로
1. 빛의 자녀로 살라.
주님이 교회를 향해 성도들을 향해 기대하시는 바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주님은 성도들에게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선언하십니다.
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빛이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 성도된 도리이며, 의무입니다.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성령님께서 바울을 통해 성도인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주님 안에서 어둠이 아닙니다.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면, 성도인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빛을 발하고, 착한 행실로 나아가며, 빛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제 방향은 정해졌습니다.
빛의 자녀로 행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씩 우리가 드러내야 할 세상 속에서 ‘빛된 모습’은 무엇인지 하나씩 하나씩 찾아 그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온유: 주님의 성품
첫 번째로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제일먼저 온유함을 생각하는 이유는 온유가 주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고린도후서 10:1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 교회용어사전
온유[溫柔, gentleness]
“마음이 부드럽고 행동이 친절함. 마음씨가 따뜻하고 성질이 온화함. 성경에는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는 자세 곧 주께 순종하는 자세로 이웃을 대하는 마음가짐, 혹은 고통이나 억울함 심지어 굴욕에도 내면적으로 부드러운 심령을 견지하고 겸손히 참아내는 고상한 인격을 뜻한다.”
온유의 반대편에는 ‘무례함’, ‘불친절’, ‘조급함’, ‘성난’ 등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가 바로 지금 세상의 모습입니다.
실제로 이 세상은 온통 무례하고 불친절하며, 조급함과 화가 잔뜩 나 있는 모습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성도인 우리가 드러내야 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성품을 닮은 ‘온유함’일 것입니다.
3. 온유함으로 답하라.
그래서 성경은 성도인 우리에게 세상을 향해 온유함으로 나아가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좇는 주의 백성은 마땅히 이 같은 거룩한 품성을 본받아야 합니다.
1) 부르심에 합당하게
온유는 성도로 부르신 모습의 가장 합당한 모습입니다.
에베소서 4:1~3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가장 먼저 ‘겸손과 온유’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온유로 옷 입고
또한 주님을 닮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을 때, 꼭 입어야 하는 성품이 바로 온유함입니다.
골로새서 3:9~10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 성도 부름 받은 우리는 죄 아래 있던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 우리를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은 자처럼 우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을 옷 입어야 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 온유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온유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온유를 따르라 명하십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함을 드러내라고 명하십니다.
디모데전서 6:11~12절을 보면(참고본문 없음)
➝ 하나님의 사람들이 피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따라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온유’입니다.
디도서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 하나님의 사람들은 비방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온유의 옷 입고, 모든 사람에게 나타냅시다”
샘이 한 구명에서 단물과 쓴물을 동시에 낼 수 없듯이, 우리는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야고보서 3:11~13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지금까지 성경에서 드러내고 있는 성도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기대를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주님의 성품인 온유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무례하고 불친절하고 조급하며 분노가 가득한 세상에서 온유함의 빛을 드러냄으로 그들에게 주님의 성품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열심이었습니까?
정작 주님은 우리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기를 바라시는데, 우리는 온통 세상 속에서 잘나가는 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업적과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모습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던 우리의 관심들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려는 부단한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있어야 했는데, 그런 것은 외면하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옛날보다 예배당의 크기를 커지고 더 화려해지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경제적인 풍요는 조금 더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주님의 모습이나 주님의 성품이나 주님의 향기는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성도들이 더 세상적이고, 더 물질적이고, 더 세속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 보다 더 물질 중심의 사고와 겉으로 드러난 외적 모습에 치우쳐 있는지 모릅니다. 주님이 우리를 통해 드러내고 싶으신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내적이고 성품적인데 말입니다.
4. 온유한 자의 복
물론 온유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만만치는 않습니다. 성품의 변화는 절대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겉으로 드러난 성과에 목을 매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대가 분명하다면, 우리의 방향도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도 분명합니다.
더 이상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성도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더 늦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려운 ‘온유함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이런 복을 주십니다.’
1) 온유한 자에게 주님의 도를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 주님의 도를 가르치십니다.
시편 25: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십니다. 온유한 자에게 주님의 도를 가르치십니다. 그렇게 주님의 도를 따를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2)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들에게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시편 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 온유한 자들의 누림은 땅을 차지하고,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은 온유함이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바라고 그것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만, 정작 그 풍성함은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헛된 수고가 정작 이 땅에서의 풍성한 화평을 빼앗기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모세의 온유함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 보다 더했다.’고 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
민수기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 지도자로써 모세가 보여준 것은 탁월한 리더십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대사로써의 카리스마뿐만 아니라,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 더한 온유함을 소유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도 동일하게 세상 사람들보다 더한 온유함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늘 탁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보다 ‘온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례하고 불친절하고 조급한 세상 속에서 ‘온유함’은 성도들에게 최고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온유함을 오직 성도들에게서 오직 교회 안에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늘 길입니다.
찬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