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베드로 (2)
Notes
Transcript
[도입]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996년 2월 3일에 구원받고 경기도 이천교회 부사역자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박민환 형제입니다. 이천교회는 형제 자매님 200명 정도 모여서 교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교육관 건축을 하여서 열심 전도하며 교제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영상집회로 전도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영혼과 인도하는 형제 자매님을 위해서, 이천이 쌀과 도자기로 유명한데요! 쌀이 생각나거나 도자기가 생각이 나면 이천교회를 위해서 기도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건축 후 전국 교회 형제 자매님이 교회에 많이 찾아 주셔서 수련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영혼 건지는 일에 조금 더 힘을 내어서 달려갈려고 합니다.
이천에 연고가 있으신 형제 자매님이 계시다면 교회에 연락하셔서 같이 전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창교회에 오기전에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여러가지를 보았습니다.
고창교회에 저번주에 외국인 특히 필린핀 따갈로그어 성경강연회를 비목사님을 모시고 하셨더라고요!
요즈음은 한국에 외국인분들이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의 지경이 많이 넓어 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전도하다가 그것이 힘들지 않습니까?
지금은 많이 강퍅해지고 말씀 듣자 하면 관심없다고 하고 우리가 전도할때 너무 힘이 들잖아요!
저희 이천도 마찬가지로 전도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외국인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천교회도 첫발을 뛰고 올해 5월에 외국인 선교부를 만들어서 외국인 전도에 힘차게 하고 있습니다.
명절에 외국분들은 명절때 할것 없어서 집회를 개최를 하고요.
그래서 이번에 한분이 말씀을 끝까지 듣고 구원을 받았고 챙기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한국어 학당을 열었습니다. 지금 한지 1달 조금 못되었습니다. 세분의 필리핀 분이 오셔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 토픽이라고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인들 친척을 전도하는 것은 힘이 들어도 외국인 전도는 조금더 마음이 열려 있는것 같습니다.
전도의 지경을 넓혀야 한다는 것을 요즘 세삼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5장 3-8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의 주님과 베드로의 첫 만남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도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여러가지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 계기로 주님을 더 알게 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갈릴리 호수에서 주님이 배푸신 이적을 통해서 여러가지를 알아볼려고 합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갈릴리 호수의 사건은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에는 주님과 동행하는 길에 환란이 있을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은 사건을 중심으로 교훈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 말씀을 능력을 경험한 사람의 길의 모습
누가복음 5장 3-8절까지 읽겠습니다.
이 말씀을 읽었는데 중요한 부분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3절에 시몬의 배라..
4절에 말씀을 마치시고 ..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5절에 말씀에 의지하여
6절에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8절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로소이다.
이렇게 중요한 부분을 읽어 보았습니다.
다시 설명해 드리면.. 지금 시몬의 배.. 즉 베드로의 배에서 누가 설교를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배드로는 자기 배이니깐 3절에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배를 움직여야 한다는말입니다. 시몬의 배이기에게 시몬 베드로가 직접 배를 몰았을 것입니다.
그럼 베드로는 말씀을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배에서 설교를 할때 베드로 성품으로 보았을 때 못마땅 했을것입니다. 왜냐 그물을 씻고 있는 중이거든요.
그물을 씻고 있다는 것은 고기를 다 잡고 다음 고기를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에도 빨리 씻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어디에 못가게 베드로의 배에 올라서서 예수님이 설교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아마 베드로는 예수님이 설교가 빨리 끝나야지 정리하고 집에 갈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입니다. 이곳에 설교의 목적은 베드로를 위한 개인 설교인 것입니다.
그 설교의 말씀이 베드로를 움직이게 만든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마음이 움직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은 힘이 있습니다. 우리도 구원을 받을때 말씀으로 구원을 받은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 이 성경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운동력이 있다는 것이 바로 능력이 있다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역사해서 어떠한 능력을 배푸는지 잠깐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를 이루게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하나님게 헌신하도록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위로를 갖게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낙망의 자리에서 일어서도록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난을 견디게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순종하도록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도록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버리고 구별되도록 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그리고 나를 변화시는데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을 나로 하여금으로 바꾸어서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배드로에게 말씀을 전할때 베드로의 마음은 이렇게 되었을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2절 말씀 처럼 마음이 뜨꺼워 졌을것입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질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생명활동이 있다는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 천지 창조를 하실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니깐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고 시편 33장 6절 말씀입니다.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을 불러 내셨을때는 어떻게 불렀습니까? 이 역시 말씀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설교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임을 알수 있습니다.
행 2장 37절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말씀으로 역사하는것입니다.
베드로도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들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뜨거워 졌고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역사하기 시작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일어날려면 가장 중요한것은
히브리서 4장 2절입니다.
저희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중요한것은 이렇게 말씀을 듣는자가 믿어야 한다는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 8절, 9절, 10절,12절
보면 말씀의 힘을 느낄수 있습니다.
믿어야 역사할수 있는것입니다. 베드로는 믿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면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을려면 들어야 합니다. 무엇을 들어야 하냐..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주일, 수요, 구역, 조모임때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조각 설교도 듣지 않습니까? 이 조각 설교를 들었을때 아무렇지도 않습니까? 아니잖아요! 이렇게 살아봐야 겠다라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말씀은 능력이 있기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럴때 그래 결심했어 해봐야 겠다라는 마음으로 한번 해보시는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화합하는것입니다. 그럴때 유익이 있는것입니다.
베드로도 이렇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알고 있는 마리아도 주님의 발 아래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마리아는 어떠한 순종을 하였습니까?
요한복음 12장 3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이렇게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믿게 되니 이러한 마음이 드는것입니다. 이분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일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고 아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돌아가실 것이기에 향유로 몸을 씻겨 들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이 마음이 어떻게 생긴것 입니까? 그것은 말씀의 능력인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요 베드로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변화를 받은것입니다. 이분이 하라는것은 무엇이든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것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던지라고요
베드로는 이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어디가 고기가 잘 잡히고 어디가면 고기가 없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고기가 제일 잡히지 않은 깊은 곳에 던지라고 했을때 베드로의 마음은 무슨소리야 그런 마음의 소리가 이었을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의지 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던졌습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고집 나의 힘을 더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단 한가지 예수님의 말씀만 의지 했던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설교를 듣고 마음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다른 분들과 다르다 이것을 느꼇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8-29절 말씀에 보면
무리를 가르침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말씀의 의지해서 순종하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 순종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기가 찢어질 정도로 잡게 되는 역사를 보게 된것입니다.
그 것을 본 베드로는 다른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고백하게 된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거라고 생각했더 예수의 말을 듣고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많이 잡힌것을 보고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는것입니다. 아 저분은 다르구나. 메시야구나 그렇게 생각한것입니다.
주여나를 떠나소서
그리고 나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소명을 주십니다.
무서워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는 말씀을 하신것입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마가복음 1장17절 말씀인것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왜 이제 후로는 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모든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는데.. 지금바로 너는 사람낚는 어부가 되겠다라고 말하지않고 후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실때 아직 구원이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예수님과 이 성경을 제대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소명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 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언제 제자들이 믿게 되었느냐. 그 답이 요한복음 2장에 있습니다. 22절입니다.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고 그리고 성령님이 임했을때 제자들은 구원받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인 제자들의 사역이 일어나게 된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요
시몬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모든것.. 시몬 베드로에게 모든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생계를 책임지는 이 배와 그물인것입니다. 이 모든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역사하게 되면 추구하는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예전에는 육신의 일을 추구 했다면.. 마리아는 향유를 간직하며 살았다면
주님을 만나고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게 되었고, 마리아는 이 향유는 이 비싼 향유를 아깝게 여기지 않고 그냥 깨어서 주님의 머리와 발에 붓는 놀라운 일을 하게 되는것입니다 .
누가복음12장34절 말씀처럼 너희 보물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말씀처럼 베드로 마리아는 모두다 보물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었던 것입니다. 하나의 설교가 이렇게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렇게 놀라운 역사를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시몬 베드로의 설교가 나옵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이 글이 고기를 잡는 어부의 말이라고 믿겠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변화를 시켜 주셨습니다.
이사야 32장 8절 말씀에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명하다라는 뜻은 존귀한 자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천한것에서 귀한것을 취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나의 설교가 베드로의 인생을 바꾸게 된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떻습니까? 우리도 같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말씀 전도집회 말씀을 들을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깐 말씀에 이끌려서 계속 말씀을 듣게 되었잖아요. 그러다보니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죄인이고 하나님은 심판자라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나도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되잖아요 나는 죄인입니다. 주님 살려주세요..
그러한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니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잖아요.
그리고 우리에게 소명을 주었습니다.
각자 소명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1장 사랑
갈라디아서 2장 20절
우리가 구원을 받을때 인생이 바뀌게 되었잖아요.
우리도 베드로 처럼 인생이 바뀌게 된것입니다.
누굴을 만났을때 인생이 바뀝니까? 예수님을 만났을때 우리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신 그길을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2 . 예수님과 같이 가는 길에도 환란과 핍박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위해서 동행하는 삶을 살면 어떤 길만 있어야 합니까?
탄탄 대로여야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 4장 35~4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3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먼저 제안을 하십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목적지를 정해 주시고 저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변의 세상 사람들은 목적없이 정처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적이 있더라도 그냥 돈 잘 벌고 잘 사는것을 목적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그리스도인들은 목적이 있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따르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고 있는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라고 어떤 목적의 길을 가라고 말씀하시나요?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걸었던 길은 어떤 길이었나요? 우리를 건지는 길을 가셨던것입니다. 영혼을 건지는 일을 위해서 걸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걷는 그 길을 양 머리가 되어서 인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내가 가장 좋은길을 갈 수 있게 도와 주고 있는것입니다.
내가 그 길을 받아 드리지 않아서 난 양같어서 그릇 행하면서 다니고 있어서 그렇지 주님은 항상 좋은길로 나를 인도 해주십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님도 우리를 평탄한 길로만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위태로운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전도서 7장 14절 말씀을 보면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 좋은 길도 있지만 험난한 길도 있다는것을 알고 신앙생활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정리해보면 주님이 가자고 하시는 곳에 가고, 주님이 머물자 하시는 곳에 머누는 것입니다. 공생애 기간에 제자들이 했던것 처럼요.
우리도 성경에 주님이 여기 있어야 한다. 그러한 곳에 우리가 있으면 되고요. 너는 이러한 것을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하는 생활이 신앙생활인것입니다.
주님과 동고동락하며 주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따르는 삶이 신앙생활인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실 때 아브람 혼자 갈을까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은 혼자 처럼 보이지만 주님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가는 곳은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을 기억시죠 마태복음 1장 23-24절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우리가 구원을 받고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길에는 하나님이 동행하고 있다는것을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4장 36절 말씀에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배는 영혼의 그림자가 됩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그 영혼이라는 배안에 누가 주인이었습니다. 내가 주인 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위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배안에 주인은 누구 있니까? 예수님이 주인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구원받은 사람은 조수로 있는것입니다.
주님이 배안에 계시므로 이 배는 안전한 배가 되는것입니다. 목적지 까지 안전하게 갈수 있는 배가 된것입니다.
영원히 멸망치 않는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요한복음 10장 28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련은 주실 수 있지만 멸망은 없는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7절 말씀에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주님을 배에 모셨는데 광풍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습니까? 배에 물이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차면 어떻게 됩니까?
배가 가라 앉게 되잖아요! 이러한 긴급한 상황이 일어난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주님이 가신 길을 걷는다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탄탄 대로만 있는게 아닙니다. 때로는 광풍이 일어 날때도 있습니다.
사망에 음침한 골자기를 다닐지라도.. 시편 23편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망에 음침한 골자기를 걸을때가 있습니다.
눈물 골짜기기로 통행할때가 있습니다.
성경 시편 88편 6-7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 데 두셨사오며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셀라)
우리가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에 음침한 데 있을때가 있는것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사울왕에게 10년이나 쫓겨다닐때가 있잖아요. 눈물골짜기라고 시편기자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길을 갈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럴때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시련은 있지만 멸망은 없다는것을 기억하고 명심해야합니다.
그 시련은 의미 없는 시련이 아닌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 속에서 주어지는 시련 들입니다. 그 시련을 통해서 누구를 더욱 의지하는지 알게 되는것입니다.
다윗은 그러한 시련이 있을때 누굴 더욱더 찾았습니까? 주님을 더욱더 찾았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주님을 더욱더 찾은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나에게 고난과 고통이 찾아옵니까? 우리는 누굴 더욱 의지하면서 나아가고 있습니까? 누굴 의지합니까?
나를 지켜줄 다른이입니까? 아니면 주님입니까? 생각을 해보셔야 합니다.
마가복음 4장 38절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님은 그 광풍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주무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물이 무엇일까요? 배의 뒷쪽 끝부분인것입니다.
보통 배의 고물에는 노가 있었다고 합니다. 방향의 키를 조절하는 곳이죠. 보트를 생각해보면 뒷쪽에 프로펠라가 달려있고 모터가 있어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는곳이 뒷쪽에 있잖아요!
주님은 그곳에 있는것입니다. 지금 광풍이 불고 있고 주님은 그곳에 있는것입니다
배 뒷편에서 주무시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배는 주님이 책임지고 있다는것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끌어 가지는 키를 주님이 지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해볼려고 발버둥 치고 있지 않나요?
그래도 제자들은 주님이라면 해결 해 줄거라는 믿음은 있었습니다. 그러니깐 깨우지요.그리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랑 어떤가요 같나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대처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내가 이렇게 힘든데 주님은 왜 도와 주지 않으셔요. 그렇게 원망섞인 말을 우리는 많이 하지 않나요?
시편 10장 1절에 보면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떄에 숨으시나이까 이렇게 말을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인데 하나님은 아무런 음성이 들리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캄캄할 때. 작은 불빛 하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것조차 보이지 않을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작은 소리도 듣고 있다는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시편 18편 6절 말씀에 환난에서 아뢰니 내 소리를 들으심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침묵하실때가 있는것입니다.
찰스 스탠리는 침묵도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말하면서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있을때 그 죄에서 돌이키지 않을때 주님은 침묵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간절히 부르짖게 할려고 침묵하실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은 나사로를 살리신 부분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응답을 늦게 해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지만 아주 적당한 때를 너무 잘 아십니다. 그래서 늦게 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이 침묵한다고 느끼면 먼저 실망하지 말고 혼란스러워 하지도 말고 의심하지도 말고 분노 하지 말고 또한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상황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로써 이유를 물으시고, 침묵이 하나님이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고 좀더 주님과 가까워 지길 노력하면서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기다릴때 주님이 행하시는 역사를 볼 수 있는것입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환란과 힘든 광풍이 잔잔해 지는 역사를 볼수 있을것입니다.
우리가 시련, 고난을 당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잊지 말아야 할것이 있습니다.
고난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74편에 보면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낮과 밤을 다 주관하십니다.
식물도 낮과 밤이 필요합니다. 신명기 33장 14절보면 태양이 결실케 하고 태음이 자라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모든 짐승에게도 낮과 밤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삶도 낮과 밤이 필요한것입니다.
혹시 지금 인생의 밤이라고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찬송하셔야 합니다.
은혜찬송이 생각이 납니다. 295장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이찬양이 생각이 납니다.
인생의 밤에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고 의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의 변치 않은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합니다.
우리의 세상은 변합니다.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02편 27절에 주는 여상하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상하다는것은 변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말씀도 변하지 않습니다. 2000년전 성경이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입니다. 변하지 않죠.. 우리는 그래서 더욱더 하나님을 믿을수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밤이라면 무엇이 다시 옵니까. 낮이 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비록 주님은 침묵하시지만 우리에게 낮이 온다는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것을 보여 주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39절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주님은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역사를 하십니다. 풍랑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잔잔해 졌습니다. 주님이 개입하시면 잔잔해 지고 탄탄 대로가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그 타이밍을 모릅니다. 그러니깐 인내하면서 버텨야 하는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고요.
주님은 좁은곳에서 넓은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위태로운 곳에서 평탄한곳으로 이끄십니다.
주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감당한 시험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피할 길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자들이 보게 된것들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 40절에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무엇을 보았습니까? 자신의 믿음이 적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자신의 믿음이 대단하다고 생각 했을수 도 있습니다.
난 이정도의 사람이야.. 우리가 직분을 가지면 이러한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난 이정도 직분을 가진사람이야.
교만이 올라올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환란과 고통.. 고난이 찾아오고 그것이 지나가면 우리의 신앙을 다시 볼수 있는계기가 됩니다.
난 얼마나 보잘것이 없는 존재이고 내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깨닫게 된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겸손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판단하면 않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교해야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주님과 비교를 해야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고 우리의 믿음의 위치를 올바르게 볼수 있는것입니다.
남을 보게 되면 우리의 믿음의 위치를 제대로 볼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명심해야 할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 41절에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의 능력과 신성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체험적으로 더욱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주님을 신뢰할수 있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의 신성을 알게 되었나요?
우리가 전도집회 말씀을 들을때 하나님이 이 우주 만물을 창조 하셨다는것을 알게 될때. 그리고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사건들을 보았을때 아 하나님은 못하시는것 하나도 없는 분이라는것을 깨닫게 되고 그 분을 우러러 볼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그사실을 믿었을때 우리는 더욱더 그분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잊어버리고 살때가 너무 많습니다. 이세상에서 살다보면 잊어버리게 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전도집회 하계수양회. 추계수양회 이 성경강연회 말씀을 꾸준히 들어야 하는것입니다.
우리도 환란과 시련의 시기가 지나갈때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더 뿌리가 깊어지는것을 보게 되는것입니다. 더욱 교회에 붙어 있을려고 노력하게 되잖아요. 주님에게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성장은 언제 이루어 집니까? 밤에 이루어지는것 같습니다. 광풍 환란 역경이 있을때 우리의 믿음의 성장이 한단계 나아가는것같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하나님은 상천 하지의 하나님이신것입니다.
신명기 4장 39절입니다. 위와 하늘과 아래 땅에계시는 하나님.. 어디든지 다 계시는 하나님 이신것입니다.
시편 32편 8절에 우리는 주목하고 계시고 훈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야합니다
명심할것은 주님은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를 주님을 따라갈수 있게 만들어 가시는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 말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환란에 시기에 주님이 침묵하고 계십니까? 기다리십시요. 인내 하십시요! 그러면 주님의 주신 영광을 맛보게 될것입니다.
[결론]
오늘은 갈릴리 바다에서의 베드로와 주님의 만남을 통해 여러가지 사건을 알아보았습니다.
주님은 갈리리 바다에서 행하신것을 우리에게 교훈을 주신것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면 주님의 같이 동행하는길에는 환란과 역경이 있을수 있습니다.
주님이 침묵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주님이 의지하고 주님을 바라보는것임 알고 나아갈때 실제로 생각으로 하는게 아니라 실제로 행했을 때 주님의 역사하심을 볼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