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Notes
Transcript
[기도,서론]
안녕하세요!
구역모임으로 이렇게 모여있는데요
오늘은 저와 함께 희생에 대해서 같이 생각 할려고 합니다.
성경을 찾겠습니다.
[본론]
요한복음 12장 24-26절까지 입니다.
그중에 24~26절까지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주님의 희생
주님이 우리에게 배푸신 희생을 생각하기 전에.
희생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일까요?
희생이란 네이버 단어장을 보면 어떤 사물, 사람을 위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자기의 목숨, 재산 명예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이러한 뜻이 나와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깐 떠오르는 분이 계신가요.
부모님이 먼저 떠오르신분이 계실것이고 예수님이 떠오르신분이 계실것입니다.
먼저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면. 어떠시간요?
감사한 부모님이 떠오르신가요? 아니면 생각만해도 힘든 부모님이 떠오르시나요?
각자가 다르실텐데요.
혹시 각자의 부모님의 손을 본적이 있었나요? 힘들게 일을 하고 오신 부모님의 손을 보신적 있으신가요?
부모님을 생각하면 감사하는 생각이 들죠.. 가끔식 잔소리가 싫지만요..그렇죠..
그러면 우리의 영적인 부모님이신 예수님을 얼마나 생각하며 사십니까?
하루에 한번이라도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에 기도할 때 마다 예수님을 생각을 하면 나의 신앙이 변화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한 능력이 있으신 분이거든요.
우리의 부모님은 댓가 없이 그냥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잖아요.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 주시나요. 아니면 그냥 주시나요? 주님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없으십니다.
그냥 나의 사랑을 알아달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희생은 바로 주님의 희생을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배푸신 희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의 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생각해 보신적 있나요? 주님의 손에 있는 자국을 생각해 보신적이 있냐는 말입니다.
주님 손에 있는 자국은 바로 못 자국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발에는 무슨 자국이 있나요? 주님의 발에는 못 자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쓰셨던 그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옆구리는 창 자국 흉터가 있습니다.
왜 그러한 흉터가 있는것입니까?
그것은 다 나를 위한 흉터 인것입니다. 내게 있어야 흉터들인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있는 자국을 보았을 때.
난 그분의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
요한복은 3장 16절 말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독생자를 마귀에게 넘겨 주신거잖아요. 그리고 우리를 얻은 것입니다
얼마나 값진 희생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길 위해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희생하신것입니다.
내가 대신 짊어져야 할 그 십자가를 나 대신 그 십자가를 지고 가신것입니다. 감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빛을 진 사람 들입니다.
말씀 로마서에 보면 빚진자다 이러한 표현들이 3번 정도 나오는데요.
우리가 빛진 것은 무엇을 빚진것입니까?
복음에 빚진것입니다.
그럼 복음의 빚진자는 어떻게 그것을 갚을수 있을까요.
사도바울은 그래서 이방인에게 목숨을 바쳐서 전도한것입니다.
내가 받은 사랑이 있으니깐. 그것을 돌려줘야 겠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돌려줘야 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마음이 들었을까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내 마음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지만 우리가 희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2.주님에 대한 사랑이 있고, 없는 것의 결론
그중에 제일 대표되는 사람들이 베드로와 유다였을것입니다.
베드로와 유다는 동시대에 같은 것을 경험했고 또한 주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이 들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께 쓰임받는 쪽으로 변해갔고..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는 쪽으로 변해 갔습니다.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2-1 제자 유다의 삶
유다의 삶을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수 있게 해준 것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 옆에서 예수님이 행했던 기적과 이적을 지켜 보았던 자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셨던 그 사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고.
같이 그것을 먹었잖아요
소경의 눈을 뜨게 한것도 지켜 보았고요.
앉은 뱅이를 일으키고 풍랑을 잠잠케 하고, 물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고요.
심지어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도 옆에서 지켜 보았던 자였습니다.
그리고 일단은 가장 가까이에서 스승인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자였습니다.
유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여러분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유다가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예레미야 23장 29절 말씀입니다. 찾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타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불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차갑게 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마음이 뜨거워 집니다.
차갑고 냉랭한 마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다보면 그 마음에 열정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석을 부서 뜨리는 쳐서, 부서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아무리 강퍅한 마음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다보면 그 마음이 부드러워 집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후 재림 하신 후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에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 그들은 신앙의 침체기였던것입니다.
그토록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그분이 돌아가셨거든요. 너무 힘든거에요.
모든것을 따 버리고 싶은거에요. 그래서 내려가는 것입니다. 어디로요 엠마오로 내려가는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 나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말을 하셨는데요. 그러자 제자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4장입니다.
13절입니다.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내려가는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대화 중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겠습니다.
32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우리속에 뜨겁지 아니하더냐.
우리가 성경말씀을 들을때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사람.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복음의 말씀 주님의 행하신 일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또한 구원함에 이를 수있는것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의 마음도 뜨거워지고 한때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보자는 그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강퍅했던 마음도 부드러워 졌을것입니다.
왜냐하면요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 찾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칼과 같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 어떤 날보다 예리한 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들이 우리의 마음을 쪼개지 않았습니다. 강퍅했던 마음들을 쪼개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 안에 죄를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괴로웠던 마음을 어떻게 결정했을까요?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것입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주라고 말하지 않았던 유다였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많이 듣고 이적과 기적을 체험했는데 예수님은 항상 선생이었습니다. 주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예수님이 주인이십니까? 아니면 그냥 선생이십니까?
생각해보셔야합니다 .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나는 무엇이 됩니까? 나는 아들이 됩니다. 그렇죠.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않됩니다. 아들인데요.
주님은 우리를 사신것입니다. 무엇을 사셨습니다.
처음 읽었던 말씀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은 제일 사랑하는 독생자를 마귀에게 주고 나를 사신것입니다. 피 값을 주고 사신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팔린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입니까? 종인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로만 생각하고 살면 어떻게 됩니까? 부모님께 하기 싫어요 대들잖아요. 그렇게 하나님께 똑같이 대들고 있는것입니다.
종이면 그럴수 없습니다. 어떻게 대듭니까?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아들로 불렀지만 또한 우리를 피 값을 지불하고 사셨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가 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2-2 제자 베드로는?
그의 반면 베드로는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갈리리 바다 어부였습니다.
배움이 길까요. 짧을까요. 배운 것이 많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성질이 엄청 급했던 사람이 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로 올 때 말고의 귀를 베어버렸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베드로는 예수님이 선생에서 주인으로 바뀐 사람입니다.
얼마나 크게 쓰임받고 순교하셨습니까?
베드로가 집회를 하면 3000명 5000명이 구원받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럼 베드로를 붙잡고 있었던 말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21장입니다.
15절부터 보면
예수님이 계속 베드로에게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세 번이나 물어보십니다.
세 번 부인했으니깐. 주님은 세 번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시는 줄 아십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을것입니다. 왜냐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 그 자신이었잖아요.
베드로의 마음을 아신것입니다. 그런데 왜 물어 보셨을까요?
시인하는 것입니다. 내 입으로 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주님을 모시겠습니다. 내가 죽도록 주님을 사랑하면서 살겠습니다. 그 말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에게 물어 보십니다.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이렇게 물어 보십니다.
그것도 몇 번이요 세 번이나요. 그럼 무엇이라고 대답하실래요.
처음은요 구원받았으니깐 당연히 주님 사랑하죠. 나의 아버지 이니깐 사랑하죠.
그다음 물어 보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저에게 질문을 해봤습니다. 그러니깐 이러한 답이 나오더라고요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잖아요 제가 구원받은게 주님때문인데 당연히 사랑하죠
그런데 또 한번 물어 보니깐요. 당황될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더 생각을 해보니깐 이러한 답을 내릴것같아요.
나의 주인이시니깐요 내가 주님을 사랑도 하지만 내가 앞으로 주님만을 위해서 주님만 보고 살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도 한번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주님을 너가 사랑하느냐.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을 곰곰이 내 자신에게 답을 내려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도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네가 세 번 부인했지만 주님은 나를 그런 나를 사랑하시는게 너무 고마워서 그 은혜에 보답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요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게 나의 마음에 있잖아요 그러면요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 마음에 주님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이 자리잡고 있냐는 겁니다.
다른것도 있고 주님도 있습니까? 그러면 두 마음을 품는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사랑을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주님을 위해서 살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희생할수 있습니다. 나를 드릴수 있는 것입니다.
2-3 사랑은 명령
그리고요 주님이 먼저 희생하고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입니다.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형제 자매님 간에 사랑하라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지켜도 되 안지켜도 되는 그러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것같이 너희로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서 내어 주면서 까지 사랑이지 않습니까? 그러한 사랑을 하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러한 사랑을 어떻게 할수 있냐고 반문을 하실것입니다.
우리는 할수 없습니다.
2-4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 희생
우리가 그렇게 요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희생을 하라고 말씀 하신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여 준 것은 희생이다 그러니깐 형제 자매님에게도 너희 희생을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 16-18절입니다.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네 우리가 말과 혀로만 형제 자매님 사랑합니다. 그렇게 말로만 하지 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도와줄수 있는 일이 생깁니다. 교회에 오면 옆에 도와 줘야 겠다라는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옆에 말씀을 듣고있는데 졸고 있다 그러면 깨워줘야 겠다 마음이 들때가 있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고 있다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것을 외면하는게 말과 혀로만 사랑하는것입니다. 마음이 생기면 하는게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진짜로 하는것입니다. 생각으로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명심해야합니다. 진짜로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내가 구원의심이 있는 것은 신앙생활을 않하고 있어서 구원의심이 드는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생각만 하고 있는 생활이 반복되면 구원의 대한 의심이 생기고 삶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희생을 보며 우리도 같이 희생을 해야합니다.
우리의 몸으로 희생이라는 것을 해야합니다.
3.우리 몸을 드리는 법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먼저 희생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합니다.
우리의 몸으로 희생을 해야합니다.
로마서 12장 1-2절입니다.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를 산 제사로 드리라 이 말이 우리 몸을 희생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에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인것입니다.
그런데 2절이 우리가 해야 할것입니다.
영적예배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주님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면서 살아야 하는데 2절처럼 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너희는 이세대를 본받지 말라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해라
셋째 분별하도록하라
이렇게 세가지를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세대를 본받지 마라 이것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것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세상 사람들이 친구를 사귀는게 우리와 목적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이 질문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거 아닌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 친구를 사귀는 목적이 위로를 받으려고 사귀는 것입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니깐 사귀는 것입니까? 세상의 친구들은 다 이 목적입니다.
그 친구를 만나면 위로를 받고 나에게 도움이 되니깐 만나는 것이고, 친구로 삼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르죠. 친구로 사귀는 것은 전도할려고 사귀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받을 위로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에게 있잖아요 교회에 있잖아요.
그리고 도움은 누구에게 받나요. 주님에게 받고 교회에서 받잖아요.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합니다.
이세대를 본받지 말아야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듣는 것이 무엇을 가장 많이 듣고 있는지.
내가 보는 것이 가장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마음을 새롭게 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수양회를 갑니다. 전도집회 말씀을 듣는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듣는것입니다.
항상 나의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합니다. 말씀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분별해야합니다.
죄 에대해서 분별해야합니다. 주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양육을 받고 그 말씀대로 살아 보겠다라는 마음으로 우리가 살 때 분별이됩니다.
죄에서 멀어지게 되는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몸을 주님께 드리는 삶이 될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오늘 희생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배푸신 희생.. 사랑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희생에 대해서 형제 자매님에게 배푸는 희생과 그리고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하는 희생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그렇게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