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를 전달한 뵈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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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했던 장소 (23년도 12월 방문미 교제/ 24년 1월 4일 23구역 모임)
로마서 16장 1절-2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여기서 일군으로 번역이 되었지만 원문으로 보면 디아코노스 라고 적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집사라는 뜻입니다.
뵈뵈 여 집사는 겐그레아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뵈뵈 집사의 이름의 뜻은 빛나다, 밝다, 빛을 발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의 뜻대로 뵈뵈집사가 했던 일들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빛나는 일을 한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귀중한 로마서를 맡겼고 그것을 전달하는 임무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로마서를 고린도교회 3개월동안 머무는 동안에 기록하였습니다. 기록한 이유는 사도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방문하여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시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것을 알려 줄려고 하였는데.. 그길이 계속 막혀 있었습니다.
그레서 연약한 뵈뵈집사를 통하여 로마 교회에 전달을 했습니다 .
왜 많은 형제들에게 맡기지 않고 연약한 뵈뵈집사를 택하여 전달하게 했을까요.. 이것은 그만큼 다른 형제들보다 이 뵈뵈집사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뵈뵈 집사님이 고린도교회에서 로마 교회까지 갈려면 얼마나 먼 길을 떠났을까 생각 해보았습니다.
지금은 그냥 차나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되지만 이때는 이러한 교통수단이 없어서 배와 걸어서 갈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
그래서 시간을 보면 배로 약 한달을 가야하고요.. 걸어서 한달.. 두달정도 걸리는 시간입니다.
역사 문헌을 보면 이때 로마 군인들은 55일이 걸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정도로 멀고 힘든길이었습니다.
그녀의 헌신으로 인해 이 로마서가 햇빛을 보게 된것이고 이 로마서로 인해 수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왜 이 로마서를 맡기게 되었을까요? 2절 후반부에 사도 바울 뿐만아니라 여러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보호자는 재정적 후원자.. 돕는자를 뜻합니다. 즉 동력자 역활도 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큰 동력자 였고 일꾼이었기에 그리고 신뢰할만큼 두터운 관계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일군이라면 이렇게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신뢰가 있어야 함을 알수 있습니다.
1.신뢰란? 성실함.
신뢰는 어떻게 쌓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실함입니다.
신뢰가 무엇입니까?
신뢰란 굳게 믿고 의지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뢰가 쌓이려면, 바로 주님이 나에게 맡긴 것들을 성실하게 행했을때. 그리고 묵묵히 했을때 신뢰가 쌓이지 않을까요?
그럼 또한 성실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마음이 솔직하고 맑고 깨끗한 일, 거짓이 없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착실하다, 참되다, 충실하다, 여러가지의 말이 있습니다.
뵈뵈집사님은 모든일을 착실하고, 참되고, 거짓이 없게 행동 했던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큰 일을 맡긴것입니다.
우리도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것이 바로 성실입니다.
직분을 떠나서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바로 성실인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성실해야 일을 맡길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은 성실함이 있으니깐 주님이 이 자리까지 불러주신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곳에 성실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 말씀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여기서의 성실은 또다른 의미입니다. 타밈이라는 원어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완전한, 온전한, 정직한, 완벽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될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당부의 말을 합니다. 나는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를 섬길것이다. 우상은 섬기지 않을것이다. 너희는 어떻게 할래..
이렇게 자신의 다짐을 말하고 물어보는 장면입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어볼수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만 경외하고 성실과 진정으로 섬기겠노라.. 너도 똑같이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래.. 이렇게 물어보는데 여기 앉아 있는 형제자매님은 어떠한 대답을 할수 있습니까?
그리고 신약에는 성실함을 종들에게 상전을 섬길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골로새서 3장 22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이때의 성실의 뜻이 원어로 하플로테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순진, 정직함을 의미합니다.
눈가림한다는말이 있기에 보이면 하고 보이지 않으면 하지 않은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정직하게 모든것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구약과 신약에서 성실의 단어가 나오는 두곳을 찾아 보았는데요.. 성실이라는 것은 정직하게 행한다라는 의미를 다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정직하다는것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나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행한다는 뜻이 될것 같습니니다. 그렇죠..
묵묵히 행하는 것이 있는 반면에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은 행동도 있다는것을 알수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는것이 정직하지 못하는 행동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본성이지 않습니까?
디도서 3장 3절에보면 이것이 바로 순종치 않은 나의 마음인것 같습니다.
이러한 나를 주님은 사랑하십니까? 사랑하지 않습니까?
내가 성실하지 못하니깐! 난 그렇게 할수 없는 사람인것을 다 아는 주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바로 내안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사람이었다는것을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에게 성실한 마음을 달라고 정직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니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우리에게 본래 없었던 성실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는 본래 할수가 없는 존재 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구원받고 내안에 누가 계십니까? 바로 성령님이 내안에 내주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깐! 난 할수 없지만 내가 주님께 능력을 구하고 하면 할수 있을까요? 하지 못하까요? 할수 있는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할수 없음을 잘 알아야합니다. 모든 직분을 할때 너무 잘하기 때문에 이 직분에 세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나는 너무 잘해! 그렇게 생각하는 형제 자매님은 없으실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익숙하다보면 그렇게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생각해야할것이 처음 가졌던 초심인것입니다. 나는 하지 못하지만 나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주님은 분명히 나를 들어서 써주실것이라는 그러한 믿음로 봉사에 임하시면 분명히 은혜와 축복을 경함할수 있으실것입니다. 저또한 전도인의 길을 걸으면서 항상 생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내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성실할게 나의 직분을 수행할수 있게 주님이 능력과 마음을 넣어 주십니다.
그런데 마음은 넣어 주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바로 내가 직접 발로 행해야 하는것입니다.
2.신뢰의 반대-게으름
그런데 나의 게으른 마음 때문에 주님이 넣어주신 마음까지 무뎌지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성실의 반대의 게으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 게으름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게으른지 게으르지 않은 제가 6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해당이 되는 것이 있는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1)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한다.
2)스스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하거나 발휘하기가 싫다.
3)오늘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을 하지않는다.
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 맡은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
5)내가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내가 좋아하는것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6)그냥 몹시 귀찮다. 즉 귀차니즘에 빠져 있다.
혹시 내가 이 6가지 중에 하나라도 포함이 되어 있다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내년에는 이러한 말이나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것입니다.
잠언 22장 13절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길에 사자가 있다라는 다양한 핑계거리를 두고 하지 않은것입니다.
다양한 핑계거리가 무엇이 있을까요! 피곤의 사자.. 좀더 자자 좀도 졸자.. 아! 너무 피곤해.. 일이 너무 많았어.. 오늘 모임이 있는데 쉬어야 겠다. 이러한 피곤의 사자가 올수 있습니다.
그리고 염려의 사자가 옵니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사자가 나에게 올수 있습니다. 정말 옵니다.
정말 바쁠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마음까지 거기에 빼았겨서 나에게 맡겨진 것들까지 빼앗기면 않되는 거잖아요!
토마스 에디슨이 변명중에 가장 어리석고 못난 변명이 시간이 없어서 라는 변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시간이 조금 허락이 될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이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라고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럴때 짧은 시간이지만 최대의 능력을 발휘 할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잠언 12장 27절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게으른 자는 무엇보다도 시작하는 것을 어려워 하기도 하고 시작한것을 끝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어떤한 일을 결심하고 결단하기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사 안일하게 잠자는 것을 좋아합니다.
잠언 6장 9절에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나
누어서 생각만 하고 있는거죠.. 거리에는 사자가 있다고 하고, 내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도 하고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지만 나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눕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23년도는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나 저 또한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계획을 엄청 세웠는데 끝을 맺지 못한 경우가 있었나 생각듭니다.
왜냐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되는것입니다. 우리가 말뿐하는 결단과 결심은 23도에 다 묻어 두고 이제 24년도는 정말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겠습니다.
잠언 14장 23절에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23구역 형제 자매님이 많은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을 압니다. 거기에는 반듯이 상급이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신앙을 돌아볼때 나의 대한 계획과 주님을 위한 삶은 말로만 했다면 거기에는 궁핍만 따른다고 성경은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의 일을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음을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들어봐도 주님의 재림이 확실히 성경에 쓰여져 있고 정말 그것이 이루어 질것 아닙니까!
주님의 재림이 임하시면 그때는 더이상 수고도 더이상 열심을 품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얼마 남지 않았으니깐 우리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하는것이죠.
우리가 게으르지 말아야 할것이 또 있는데요.. 우리가 게으르게 생활하면 주변 형제 자매님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잠언 25장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같이 봉사하는데 누군가의 게으름으로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손해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지 않음으로 주님의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엄청 큰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다고 내가 주님의 일에는 게으르고 나의 일은 게으르지 않다면 이것은 괜찮을까요?
네가 사장인데 직원이 자기 개인적인 일은 알아서 척척 하는데 회사의 일은 대충한다면 다시 계약할때 같이 가고 싶을까요!
우리는 신앙도 밸런스가 맞아야 합니다. 균형있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3.신앙의 밸런스
빌립보서 2장 4절에 각가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21절에 저희가 다 자기의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자기의 일이 있고, 또 주의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일이 있는것입니다.
우리에게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에게도 이 세가지의 일을 맡겨 주신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의 일만 충성했다고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주님의 일만 충성했다고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다른사람들의 일만 돌아 봤다고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아닙니다. 주님은 잠언 4장 2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자기의 일.. 개인적인 일이 될 수 있고, 직장의 일, 학생이라면 학교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잘 해야 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 주님이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다른사람들을 돌보는 일.. 부모님을 돌보는 일, 옆 형제 자매님을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않되는 것을 주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균형인것입니다.
신앙의 밸런스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의 밸런스가 잘 잘힌 사람이 바로 성실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뵈뵈 집사님은 신앙의 밸런스가 잘 잡혀 있는 믿음직 스러운 여 집사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 귀중한 로마서를 이 집사님에게 맡길수 있었고, 로마서 16장 1절에 가장 먼저 소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신앙의 밸런스가 잘 잡혀서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한쪽으로 치우쳐 하고 계십니까? 생각 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신앙의 위인중에 신앙의 밸런스를 잘 갖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입니다.
다니엘 6장 4-5절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80세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공직자 생활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렇죠..
오랜 시간동안 공직자 생활을 했는데...총리들과 방백들이 지금 다니엘을 고소할려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국사에 대해서.. 지금 공직자 업무를 하는 모든것을 가지고 조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랜시간을 고위 공직자 생활을 했으니깐.. 무슨 도덕적으로 업무적으로 비리나 흠이 있을것이라고 생각을 한것입니다.
그런데 조사 해보니깐 어떻습니까?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한것입니다.
자기의 일에 어떠한 사람입니까? 다니엘은 근실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성실한 사람이었다는것입니다.
그런다고 하나님의 일은 소홀히 한 분입니까?
아닙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해야지만 고소를 할수 있다고 한것입니다.
그래서 찾은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만 고소해야지.. 사자굴에 들어갈수 있는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신앙의 균형이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100%는 잘하였고, 그리고 자기의 일도 100%는 잘했던 인물이 바로 다니엘인것입니다.
감독자의 책무에 대해서 디모데 전서 3장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딤전3:2-5)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우리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래서 이세상에 살면서 직장일도 열심히 성실하게 할 의무가 있고, 또한 교제 생활도 충성스럽게 성실하게 할 책무가 있는것입니다. 또한 집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서 성실의 책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것을 다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리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이렇게 우리는 부지런해야 하면 예산을 크게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28)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찐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는 올해의 신앙생활의 예산을 넉넉히 세워야 할것입니다.
어떤 예산을 세워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환란이 있음의 예산, 역경이 있음의 예산, 핍박이 있음에 예산, 고난이 있음의 예산, 각자가 넘기 힘든 예산도 포함해서 넣어야 하는것입니다.
그렇게 세워야지 2024년을 주님을 위해서 더욱더 헌신하고 신앙의 균형을 잡으면서 모든것을 잘 할수 있을 것입니다.
4.결론
우리는 구원을 받고 부터 저 주님 오실날을 기다리면 묵묵히 나아가는 마라톤 선수인것입니다.
나의 신앙의 수준의 맞게 나아가야 할것입니다.
마라톤 경기를 하면 잘뛰는 사람은 잘 뛰면서 가면되고, 그 다음을 잘 뛰는사람은 그 다음으로 나아가면되는 겁니다.
하지만 내가 어느 위치에서 뛰든지 이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토끼와 거북이 처럼 너무 빨리뛰어서 중간에 쉬다가 잠을 자는 것은 하면 않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앞만 보고 뛰어가서 길을 잘못 들거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다른길로 간다면 그것또한 않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천히 걷더라도 묵묵히 주님을 바라보고 저 천성을 바라보고 부게열주 하면서 묵묵히 걸어 갑시다.
마지막은 잠언 22장 29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내가 맡은 모든 직분이 바로 사업이 될수 있습니다. 근실한 한해, 성실한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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