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이 헌신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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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제목: 즐거이 헌신하니
[기도 및 서론]
안녕하세요!
오늘 밖에 비가 많이 오네요!
비로 인한여 교제에 참석하러 오기 많이 힘드셨을것 같습니다.
오늘 조 모임을 갖는데 교제 전에 말씀을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 앉아 있는 모든 분들이 청년처럼 보이니깐요.
특별히 하계수양회를 맞이 하니간. 청년처럼 우리가 주님앞에 헌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성경을 찾겠습니다.
시편 110편 1~7절 까지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3절은 같이 있도록 하겠습니다.
3절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청년의 때에 가장 많이 듣는 말씀이고 마음에 새기면 좋을 것 같은 말씀입니다.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본론]
우리의 신앙생활이 항상 즐겁고, 그냥 구름위를 떠다니는 같은 기분이 들고, 마냥 좋고 그렇지는 않죠.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디서 합니까? 이 세상에서 하잖아요!
이세상은 누구의 것입니까? 이세상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해 마귀의 것이 되었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마귀와 싸우면서 살아야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싸워야 하고요, 이생의 자랑과 싸워야하고요, 안목의 정욕과 싸우면서 살아야합니다.
특히 하계수양회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수양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나 자신과의 싸움이 또 시작이 되죠. 휴가를 내야 하는데. 낼수 있을까? 수양관에 지내야 하는데 난 잘 지낼수 있을까? 하는 싸움이 내 마음에서 계속 되잖아요. 그런데요. 우리는 어디에 몸과 마음이 있어야 합니까.
당연히 몸도 힘들것을 알고, 휴가도 힘들겠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의 마음은 수양회로 향하고 있잖아요. 그것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요 그렇지요? 왜 그럴까요? 우리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1.시편110편 구조설명
시편 110편을 나누어보면요.
시편 110편은 다위의 시인데요. 메시아 시편입니다.
다윗이 예수님의 초림과 부활 승천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1절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게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 것입니까?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5절 부터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셨던 주님이 일어나실때가 있는 것입니다. 일어나신 주님께서 노하시고 열방을 심판하시는 말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 아닙니까?
그러니깐 1절 주님의 부활과 5절 주님의 재림이 나와 있고 그 중간에 교회시대가 나와 있습니다.
교회시대가 바로 3절인것입니다.
3절 읽어보겠습니다.
교회 시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의 권능에 날에 주님이 강하게 역사하시면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주의 백성이 탄생하고 이들은 더러운 옷 죄의 옷을 벗고 구원의 옷, 의의 겉옷을 입고 주의 백성으로 다시 탄생하는 것입니다.
즐거이 헌신하니 주의 백성이 기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시는 곳에 주의 백성이 탄생하고 그 주의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는 그러한 역사 있을것이라고 지금 시편 110편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신앙생활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을 따른는 삶이 신앙생활이죠. 맞습니다.
사도발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죠. 맞습니다.
말기교전을 잘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죠. 맞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보답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죠 맞습니다.
그런데요 이 시편 110편에서는 신앙생활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즐거이 헌신하니 헌신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것이 헌신이잖아요
정리하면 신앙생활은 주님께 즐거이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 그런 생활이라고 말할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러한 헌신을 할수 있을까? 그 비결이 3절에 나옵니다.
2. 헌신할 수 있는 비결
2-1 나의 주인이 그리스도 임을 안다
- 헌신의 의미 : 주인으로 모신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3절을 보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단어가 무엇이냐면 “주” 라는 단어입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주의 청년들이 주님께 헌신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우리가 모든 것을 주님께 돌려 드리기 위해서는요. 먼저는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할 때 주님께 드릴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는 순간 예수님께서 나의 구세주 일뿐아니라 내 주인이라는 것을 받아 드렸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구원을 받았을 때 죄 사함을 받았을 때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셨고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 찾겠습니다.
사도행전 2:36절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표현보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셨다는 표현이 훨씬 많이 나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나의 구세주이실뿐 아니라 실제로 나의 주인이 되신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을 때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로 넘어가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인식하고 알고 있어야합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있어야지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무엇을 창조 하셨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은 천지 이 우주 만물을 창조 하신분입니다.
그리고 그의 높이가 저 하늘인것입니다.
시 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여호와의 보좌는 어디입니까? 하늘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66장을 보면 이 땅은 나의 발등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창조 하시고 하늘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앉는 의자가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실정도 크신 분입니다. 그런데요 이 모든 것을 누구에게 준것입니까?
최초 인간에게 주신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같이 나누자고 해서 만든 존재가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그 아담은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이 모든 것을 누구에게 다시넘겨 주었습니까? 마귀에게 넘겨 주었잖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마귀가 이 세상의 임금이 되었잖아요 아담이 범죄한 이후부터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것이 아니고 누구의 것이 되었습니까. 마귀의 것이 되었고 마귀에게 속아서 종노릇 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갈라디어서 4장 8절 말씀에 보면
그러나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렇게 우리는 마귀에게 속아서 종노릇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한사람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무엇을요 우리의 모든 죄를 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하여 우리가 영원한 속죄를 믿었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죠
그때 그사람은 실제로 하나님의 것이 된것입니다. 마귀편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편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것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내 주인이 예수님이고 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것이다 이것을 명심해야합니다.
그 유월절에 우리 장자가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장자 대신 누가 대신하여 죽었습니까?
양이 대신하여 죽었습니다. 그러니깐 모든 장자는 하나님께 속했다고 말씀하셨고 그 장자를 대신하여 누굴 불렀습니까? 레위인을 부르시고 특별히 구별을 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레위인은 내 것이다.
민수기 8장 14, 18절 말씀을 보면
14.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18.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의 대신으로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다.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취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레위인에게 성막에서 봉사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모습은 정확하게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인것입니다. 우리도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것이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고린도전서 6장 20절에 쓰여져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께서 우리의 몸과 영혼을 실제로 피값을 주고 사신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누구의 것 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그리스도의 것이 된것입니다.
갈라디어서 4장 5절 말씀을 보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를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다고 말씀 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속량이 구속하다라는 뜻인데요 영어로 리뎀션.(redeemtion)입니다.
값을 지불하고 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본래 종이 었습니다. 누구의 종이었습니까?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요 마귀에게서 돈을 주고 사와야 하잖아요. 누구만이 어떠한 분이 나를 사신것입니다. 어떤 것을 지불하고요. 그 예수님이요 예수님이 그 십자가의 형틀에서 온 피를 다흘리시고 나를 사신것입니다. 나를 속량하신것입니다. 그래서 마귀의 종에서 나는 누구의 종이 된것입니까? 예수님의종 하나님의 종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내것이 아니고 나는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이 된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만 데려가실까요?
그것은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왜냐 나는 종이니깐 나의 소유물이 있을 이유가 없는것입니다.
우리의 몸도 주님의 것이고, 우리의 영혼도 사실 주님의 것이고, 나의 모든 재물도 주님의 것이고, 나의 모든 소유도, 재능도, 물질도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내것이냥 쓰면 그것이 바로 교만인것입니다. 내것이냥 그냥 마음대로 쓰면 그것이 바로 월권이고 하나님의 것을 마음대로 쓰는 것이 되는것입니다. 이 마음이 들어야지 우리가 헌신할수 있습니다. 이마음이 드는것이 헌신의 시작인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헌신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나의 것을 주님게 드리는게 아니고요 본래 주님의 것을 주님께 돌려드린다 말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것이 헌신인것입니다.
시편 110편에 계속 나오는 단어가 “주“가 나옵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나의 모든 소유가 주님께 넘어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걸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6절 말씀 찾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이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서 나오는 너희가는 구원받은 성도들 즉 우리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일 뿐만아니라 우리가 주인으로 받아 들인것입니다. 그 안에서 행하되 그 말은 주인으로 모셔라 그 말씀인것입니다.
그런데요 우리는 아주 힘들고 어렵고 신앙생활을 하기에 너무 힘든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마귀의 세력이 너무나 세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왜요 마지막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이 마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더욱더 구원받지 못하게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악을 너무 많이 퍼트려 놨잖아요.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너무 많은 유혹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무서운 것 중 하나 결정장애를 못하게 하잖아요.
구원받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결정하는 것입니다. 나 이제 주님편으로 돌아갈래.
나를 구원하실분은 저 한분밖에는 없으니깐 난 그 쪽을 택하겠어. 그러한 결정을 해야하는데.
너무 이세상이 좋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좋은것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정을 못하잖아요. 우리 신앙생활도 똑같잖아요 신앙생활도 결정을 할때가 많은데.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이 말씀은 귀가 닳도록 들었잖아요 그런데 결정을 하지 못해요. 왜그럴까요? 결정장애가 있기때문인가요? 아니면 마귀를 싸울 힘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헌신할 자신이 없는건가요.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부터 벗어나야합니다.
그리고 또하나 상대주의입니다.
이 말이 무엇이냐면.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절대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이 너무 팽배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만 믿어야 한다, 그리고 구원받은 이후에 주님만 섬겨야 한다 이야기를 하면 싫어 하는 것입니다. 상대주의는 결국 자기 중심 주의로 연결되게 있습니다.
모든 것의 기준이 자기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육신이 배부르고 편리하게 살면 최고라는 사상이 팽배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기도 어렵고 구원받은 이후의 삶도 힘든것입니다. 구원해 주신 것은 감사한데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것입니다. 구원해 주신 것은 고마운데요 이제부터는 간섭하지 말아주실래요.. 이러한 사고가 팽배해 졌다는 사실입니다.
절대 진리, 절대 권위를 부정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싫어 하는 시대가 바로 우리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생활의 변화가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시대는 구세주는 좋아하는데요 주인은 싫어 하는 시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귀에게 완전히 속고 있는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를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우리는 나 자신의 생각을 믿으면 않되고요. 우리가 믿어야할 것은 이 성경인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를 예수를 주로 받았느니 그안에서 행하되 이렇게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말의 뜻을 다 아시잖아요.
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변화가 없을까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베드로전서 3장 15절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를 주인으로 삼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하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2-2 즐거이 헌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시편 110편 3절입니다.
신앙생활을 가리켜서 주님께 주님의 모든 것을 원래 주님의 것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이것이 헌신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때요 내 모든 인생 자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돌려 드려야 하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3절 중간에 즐거이 라는 말씀입니다.
헌신하는 것데 문제는 내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는것인데요 여기 앞에 단어가 있습니다.
즐거이입니다. 즐거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속에 크게 두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 헌신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다는 뜻 아닙니까?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셨고 그런데 누가 즐거이 헌신할 수 있을까요? 즐거이 헌신 한다는 것은 그 표현이 무엇이 들어 있냐면요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누가 정말 자원해서 주님께 즐거이 자기를 바칠수 있을까요?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받칠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그냥 주인이 되신게 아니고요 내가 그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는 주인이 되신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노예에 대해서 나옵니다. 두 종류의 종이 나오는데요
첫 번째 종은 그냥 종이고요, 두 번째 종은요 귀뚫린 종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노예들은 주인을 6년동안 섬기면 7년째가 되면 희년이라고 해서 풀려나는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는 제도가 있습니다. 모두다 자유인의 신분이 될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어떤 종들은 6년째 주인을 섬겨 보니깐요. 이 주인이 너무 좋은거에요. 인품도 좋고 나에게 너무 잘해주고 이 주인은 주인으로써 너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기 싫은거에요 그러면 어떻게 하냐면요 종이 주인에게 말을 합니다. 주인님 저는 떠나지 않겟습니다. 평생 주인님 옆에서 주인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 주인은 그 종을 데려다가 문에 대고 그 귀를 송곳으로 뚫어 버립니다. 송곳을 뚫었다는 것은 이제부터 진짜 너는 나의 종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귀를 뚫었다는 것은 이제 나는 주인의 말만 듣겠다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이때 주인은 얼마나 감동을 받겟습니까? 그 귀 뚫린 종은 평생 주인 곁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 말이 성경 신명기 15장에 나옵니다 .
성경을 찾겠습니다.
16절입니다.
16 종이 만일 너와 네 집을 사랑하므로 너와 동거하기를 좋게 여겨 네게 향하여 내가 주인을 떠나지 아니하겠노라 하거든
17 송곳을 취하여 그의 귀를 문에 대고 뚫으라 그리하면 그가 영영히 네 종이 되리라 네 여종에게도 일례로 할찌니라
그 종은 자유인이 될수 있는 조건이 충분이 되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주인에게 가는 거잖아요.
얼마나 감동하겠습니까?
성경에 왜 이러한 말씀을 기록했을까요? 이것은 정확하게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알려 주는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냥 종이 아닙니다. 무슨 종입니까?
모두다 귀 뚫린 종인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동기는 봉사하는 동기는 품삯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동기는 주님을 향한 사랑인것입니다. 그래서 즐거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귀뚫린 종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형입니다. 한번 생각해볼까요?
우리 모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맞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덯게 죽으셨는지 우리는 다 보았습니다. 맞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손과 발에 그리고 옆구리에 머리가 뚫렸습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왜 주님이 그렇게 뚫리셨을까? 그 의미를 깨달 았을 때 우리의 마음이 뚤려 버린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신것입니까?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셨고 이것을 깨달았을 때 내 마음이 뚤린것입니다. 강퍅했던 얼음이 점점 녹아서 깨진것처럼 나의 마음이 뚤린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머리가 뚤리셨습니다. 손가 발도 뚤렸고요 가슴도 뚤렸잖아요 왜 그러신줄 아십니까? 그냥 피만 흘리고 돌아가셔도 되잖아요 왜 그러신줄 아십니까? 우리를 뚤어 주기 위해서 먼저 뚤리신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바위처럼 단단했습니다. 두꺼운 얼음처럼 아무리 깰려고 해도 깨지지 않은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들어올 공간조차 내어주지 않을정도로 우리는 강퍅하고 완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의 사실이 내 마음가운데 깨달아 질 때 내 마음이 완전이 깨어진 것입니다. 부서진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백이 나왔잖아요 주님이 저를 위해 주으신 것 감사합니다.
제가 이 남은 생애를 주님을 위해서 살아보겟습니다. 남은 생애는 다시는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저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박하셔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주님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되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뚫어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내 대신해서 뚤리신것입니다. 예수르 ㄹ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뚫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뚫린신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깨달았잖아요 우리는 그냥 종이 아니고요.
귀가 뚫린 종인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냥 주인이 아니고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말씀 찾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한구절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깨달아 질 때 나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리지 않았습니까?
내가 가졌던 생각들이 완전히 바뀌게 되지 않았습니까?
가장 높은 곳에 계셨던 창조주. 제가 서두 찾았던. 말씀중에 하늘에 나의 보좌라 했던 그 하나님께서 그 높은곳에 계셨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가지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누구에게 주신것입니다. 누구에게 줘버린것입니다. 마귀에게 줘버린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게 준것입니다. 사랑하는 독생자보다 더 나를 사랑하니깐요. 그만큼 나를 사랑한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최고로 단순한 방법입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무엇을 열심히 해서 얻는게 아니고요 그냥 오로지 그 사실만 받아드리고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최대의 구출입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영생의길입니다. 영원한 길인것입니다. 끊어지지 않은 영원한 길인것입니다.
이 말씀이 나의 삶과 나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까?
폭포를 연상해볼까요. 작은 폭포에서는 그 밑에 물의 수심이 낮습니다.
하지만 높은 폭포 밑의 물의 수심은 깊습니다. 그리고 바위도 깨어 버립니다. 왜냐 물의 강도가 세지잖아요. 우리의 주님은요 우리의 창조는 어디에 계셨습니까?
욥기 22장 12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녀 보라 별의 높음이 얼마나 높은가
우리의 주님 우리의 창조가 계시는 곳은 높은곳인 하늘에 있지 않습니까? 그 높은 곳에 계시던자가 나를 위해서요 이 낮고 낮은 땅 그리고 짐승의 구유까지 낮아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요 부족한 것이 전혀 없으신분이 부자였던 그 분이요 짐승의 밥통까지 떨어질 때 그 파괴력은 얼마나 쎌까요. 그 파괴력으로 나를 살리신것입니다
나의 마음의 바위를 깨뜨린것입니다.
그 사랑이 나를 뚫어 버리신것입니다.
나 같이 완고하고 나 밖에 몰랐던 사람을 주님이 완전히 바꿔 버렸잖아요.
주님을 십자가에 박은 그 곳은 주님의 몸을 뚫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도 같이 뚤어 버린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척했던 마음이 하나님을 외면했던 나를 주님께서 완전히 바꾸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지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하지 않은거에요.
혹시 억지로 신앙생활을 하신분 계셔요 우리중에 억지로 봉사하고 억지로 헌신하는 사람 여기 있습니까? 우리는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즐거이 헌신할수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힘들게 왜 전도집회 끝나고 수련회를 합니까. 우리가 왜 말씀을 듣고 교제를 해요.
왜 봉사를 합니까? 단 하나이지 않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니깐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니깐 이렇게 이 자리에 있는거 아닙니까?
내가 죄를 버리면서 왜 삽니까? 그것은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주님이 싫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버리면서 사는 거잖아요 주님이 원치 않으니깐요.
신앙생활은 즐거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완전히 바꾸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주인이 된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구원받았을 때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시편 116편 12절 말씀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러한 마음이 드는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그 큰 은혜를 깨달았을 때. 보답하고 싶은거에요.
뭐라도 해 드리고 싶은거에요. 그 마음이 자동으로 올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1871년도에 영국의 탐험가 스탠리가요 아프리카를 방문합니다.
그곳에는요 30년동안 선교하고 있는 리빙스턴 선교사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를 만나게 되는데요 리빙스턴 선교사에게 스탠리가 말을 건냅니다. 선교사님 이제 그만 혼신의 삶을 긑내고 고국을 돌아오세요.. 할만큼 하셨잖아요
그러자 리빙스턴 단호하게 거절을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는 헌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배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저의 보잘 것 없는 보답입니다. 이 리빙스턴 선교사가 그 말을 한지 약 1년이 지나서요 무릎을 꿇은 채 죽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보잘 것 없는 보답인것인입니다.
그래서 즐거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7절 말씀 보겠습니다.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물론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고난을 받으셨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즐기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말릴수 없었던 것입니다 .
요한복음 10장 18절 말씀에 이를 내게서 빼앗는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신앙생활을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정말 신앙생활은 너무너무 즐거운 것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시는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기쁨이 있잖아요 이 기쁨은 세상사람들이 이해 할수 있는 기쁨이 아닙니다.
세상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나요. 답답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리고 삶을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우리는 그 세상사람처럼 사는게 괴롭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은 세상의 것과 차원이 다른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때 우리에게 진정한 웃음을 주신것입니다. 억지로 내는 웃음이 아니고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웃음을 우리에게 주신것입니다. 그런데요 우리에게 웃음이 없어지고 봉사하는게 즐겁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기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활을 돌아봐야 합니다.
다윗도 시편 122편 1절에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이러한 고백을 했잖아요. 그런데 나는 어떻습니까.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 할때에 아이고 또 가야 하네..
이러한 고백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이 이제 짐이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한번 돌아보고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즐거이 헌신해야 하는데 그의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즐거이 헌신하는게 아니라 억지로 헌신하고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억지로다도 처음은 헌신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요 어떻게 되나요.
그것마져 포기하게 됩니다.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 신앙의 즐거움이 있나요? 정말 즐겁게 신앙생활, 헌신생활을 하고 있나요.
3. 신앙점검
지금부터는 의 신앙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말라기 1장을 찾겠습니다.
1절-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잠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속에서 이스라엘을 그야말로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셨잖아요.
그래서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즐거이 헌신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헌신했습니다. 그런데요 시간이 지나면서요 어느덧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점점 식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히려 반문합니다. 주님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주님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어요? 점점 시간이 지나니깐 이렇게 변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니깐 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락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처음에는요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게 해드릴수 있을까. 이렇게 해볼까.
이렇게 헌신해볼까. 고민도 하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죠.. 보답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시련과 환란과. 그 어떤 것을 맞닺뜨리고 점점 내안에 죄가 들어오고 점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 가면요. 이렇게 변하잖아요. 하나님 왜 나를 구원해서. 이렇게 힘들길을 걷게 하셔요.. 하나님이 왜요.. 이제 모든 것이 왜라는 말이 나의 입에서 나오게 됩니다.
예전에는 왜라는 말대신에 알겠습니다. 그대로 해볼께요. 그러한 말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이 지나면서요 왜요 왜그래야 하는데요. 그게 최선이에요.. 왜 부정적인 말만 나오는 것일까요.. 주님 나를 어떻게 사랑하였습니다. 나를 사랑하신 것을 보여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이스라엘에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점점 타락해 가는것입니다. 사랑이 식으니깐요.
6절에 보면요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 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데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8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되려보라 그가 너희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6-8절까지 읽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말은 나름 헌신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리니깐요 어떻게 됩니까? 헌신은 하고 있는데 이제그 냥 형식만 남은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즐거이 헌신하고 있는것이아니라 어느덧 억지로 헌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식어 버렸는데 여전히 제사는 드리고 있고 봉사는 하고 있고 그러니깐요 자연스럽게 신앙이 형식화 되어 버린것입니다. 습관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제사를 어떻게 드리냐면요 병든 것 눈먼 것을 드리고 있습니다. 자기가 다 쓰고 남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헌신은 하기는 하는데 즐거이 헌신하는 것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탄신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에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어렇게 말씀하시는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존종하기는 하냐.. 나를 정말 사랑하기는 하냐.. 이렇게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다른 백성도 아니라 어떻게 너희가 나한테 이렇게 할수 있느냐 너희가 정말 나를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의 탄신의 소리가 들리십니까?
우리도요 신앙의 기쁨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이 식어지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형식만 남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누가 그것을 받겠습니다. 아무도 받지 않을것입니다. 더럽다고 내 치실것입니다.
내 마음을 내 신앙을 돌아 보셔야합니다. 나는 어떻게 봉사를 하고 있는지.
그냥 습관처럼. 그냥 어쩔수 없이. 임원이라는 것을 맡겨 주셨기에 억지로라도 해야지 하면서 하고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헌신은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즐겁지 않은 신앙생활은 다 내 의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지를 않습니다.
즐겁게 헌신하는 것에서요 억지로 헌신을 하게 되면요.. 결과적으로 타락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2장 11절입니다.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전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구별되는 삶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급기야 이제는요 그나마 하던 헌신도 하지 않게 됩니다.
말라기 3장 8절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이제는요 그동안 했던 헌신도 하지 않습니다. 헌신의 삶은 찾아 볼수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타락의 길로 가는것입니다.
14절에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나중에는 완전히 신앙을 포기하고 배반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동안 신앙생활을 해보니깐 정말 헛된 것 같아.. 이렇게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슬프게 하는 것 진짜 헛되고 무익하다. 신앙생활은 그 야말로 힘들고 슬픈것이야 그렇게 지금 고백하고 있는것입니다. 결국 신앙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완전히 등지게 되었던 그들의 시발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것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님의 신앙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주님께 즐겁게 헌신하고 있으십니까? 혹시 즐거워 하는것에서 퇴보되어서 억지로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제 그만할려고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우릭 각자가 신앙을 진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5절 말씀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어디서부터 떨어졌는지 생각해보고 돌이켜야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떤지 돌아봐야합니다. 우리의 각자의 삶을 돌아봐야합니다.
즐거이 헌신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져 버린다면 억지로 헌신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과연 받으실까요.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주님을 향한 사랑과 구원의 즐거움과 자원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남은 시간 우리가 어떨 때 신앙의 즐거움이 사라지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4. 신앙의 즐거움이 사라지는 이유?
4-1 죄가 들어올 때
내 신앙생활에 즐거움이 사라지는 이유는 죄가 내 마음에 들어오면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
죄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주님께 헌신하겠습니까? 그런 사람 보셨습니까?
왜 죄가 치명적인지 아십니까?
죄는 내게 오는 좋은것들은 다 막아 버립니다.
내 마음에 있는 보석들로 빼앗아 가버립니다.
집에 엄청 좋은것들이 있습니다. 그럼 도둑은 무엇을 가져갈까요. 그 좋을 것을 가져 가지 않을까요.
마귀는 이 죄를 넣어서 우리의 좋은 것을 빼앗아 갈려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은 빼앗지 못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좋은것들을 빼앗아 갈려고 무단히 노력하는것입니다. 그것중하나가 우리에게 죄라는 것을 넣어 주는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넣어 주신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 보석들이 무엇일까요?
주님을 향한 사랑과 교회와 형제 자매님을 향한 사랑들.. 그리고 불신자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 긍휼한 마음들을 다 빼앗아 가버립니다.
한마디로 구원의 즐거움과 자원하는 심령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이 죄 때문에 그것들을 빼앗아 가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2절입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다윗은 죄를 짓기 전에는 주님을 증거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떻게든 전도하기를 원했고 어떻게 해서든지 교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죄가 들어오니깐요 그 마음을 다 막어 버린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막아 버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막아버리고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귀를 막아 버리고 우리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헌신할수 있을까요?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래서 다윗은 철저하게 그 죄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무엘하 1장 성경을 보면
아리따운 아비삭을 첩으로 드렸는데 끝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왜 다윗은 그 죄를 철저하게 버렸을까요?
그 죄의 무서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죄를 짓는 기쁨보다 하나님을 떠나는 슬픔이 더 컷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죄를 버리면 죽을 것 같거든요.
이것이 없으면 못 살 것 같거든요. 그러니깐 포기를 하지 못하는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가지고 살아서 느끼는 기쁨보다 죄를 버리는 기쁨이 훨씬 큽니다.
죄에서 이기면 얼마나 기쁜데요. 그것 많큰 큰 쾌감이 없습니다. 통쾌 합니다. 마귀의 싸움에서 이겼다라는 그 것이 얼마나 기쁜데요.
우리는 그 죄에 대해서 단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욥기 22장 23절입니다.
내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내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내 보배를 진토해 버리고 오비될 금을 강가에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내 보배가 되시며 내게 귀한 은인이 되시리니 이에 내가 전능자를 기뻐하며 하나님께로 얼굴을 될 것이다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전능자가 내 보배가 되십니다. 나의 보석이 되어 주십니다.
나의 구원의 기쁨이 다시 생기게 됩니다.
최고의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26절입니다.
26절입니다 이에 내가 전능자를 기뻐하며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 것이라 죄를 버리면 주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주님을 기뻐하게 됩니다. 주님을 다시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죄를 버렸을 때 얻게 되는 축복인것입니다.
이세상의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은 다 죄인것입니다 .
우리는 그것에 멀어져야 합니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레위 지파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 편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정결케 해야합니다. 스스로 깨끗한 삶을 유지 해야합니다.
자기 죄를 버릴 때 주님이 권능을 받게 되고 주님의 권능을 받은 사람은 즐거히 헌신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경계심을 갖고 대적하고 싸울필요가 있습니다. 죽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주님이 도와 주실것입니다.
4-2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
두 번째 무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짊어지지 말하야 할 것 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짐은 어떤 것인가요?
마태복음 11장 말씀 찾겟습니다. 28-30절입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이 주신 짐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멍에를 주셨는데 분명이 쉽고 가볍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무겁다고 느낄까요.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지니깐 그렇습니다. 마음이 교만하다는 것은 간단합니다.
내 위치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고 있을 때 교만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하고 항상 비교해야 할까요.
나는 하나님 주님과 비교를 해야 하는데 형제 자매님과 비교를 합니다.
그러면 저 형제님 저 자매님은 나보다 더 많은 달란트를 가지고있고 더 잘났어 그러면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떻습니까? 자존감이 떨어지게 되죠.. 왜 나는 저렇게 못할까. 하면서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요 형제 자매님이 보다 내가 잘났다고 인식했을 때 나는 어떻습니까?
마음이 높아지잖아요. 그러면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보이지않습니다. 교만하게되면요.
내 의로 모든 것을 다 할려고 합니다.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데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보면 어떻습니까? 난 항상 낮아 질수 밖엔 없어요.
그렇다고 자존감이 떨어질정도 낮아 집니까? 그것과 다른 낮아 짐이잖아요.
주님이 계시니깐 내가 할수 있음을 더 느끼잖아요. 그러니깐 기쁨이 찾아 오게 되는것입니다.
무거운 짐이요. 그것은요 다 옆에 형제 자매님과 비교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교해야 할 것은 바로 주님인 것입니다. 주님이 나보다 훨씬 무거운 짐을 지셨습니다 .
주님이 무거운 것을 다 지셨으니깐. 내가 질것은요 가벼울수 밖에는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온유해 질수 있는거구요. 겸손해 질수 있는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신앙생활이 기쁜것입니다.
무거운 짐은 내가 스스로 지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절대 누가 주지 않았습니다.
옆에 누구랑 같이 동행하고 있습니까?
옆에 있는 분은 항상 불평 불만만 토하는 분과 있습니까? 아니면 항상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과 있습니까?
이것또한 정리를 해야합니다.
교제에 참석했는데 항상 불평 불만만 토하는 분과 계속 교제를 하면 마음의 짐이 엄청 무거워 집니다.
그런데요. 항상 주님을 찬양하고 어떻게 하든지 전도에 힘쓸려고 노력하고 성도 세운는데 노력하는 분과 같이 있다면 마음이 가벼워 집니다. 이상하죠. 불평 불만을 토하는 분과 있으면 속이 후련해서 마음의 짐이 내려 놓는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무거워 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과 동행하는 분과 교제 하면 마음의 짐이 가벼워 짐을 느낍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것입니다.
우리의 교제의 방향을 생각해 봐야합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교제를 하고 있는지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그리고 내가 말씀 위주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무거운 짐으로 여겨 버립니다.
성경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대접하는 모습이 그려진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면 마르다가 원망을 하죠. 예수님이 마리아 보고 저 지금 음식을 하고 있는데 조금 도아 달라고 하면 않됩니까? 그렇게 이야기 하면 저 같으면 그래 그렇게 하라고 할게.. 그렇게 말할 것 같은데 주님 다르십니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다. 이렇게 말씀하셧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중요한데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마음의 양분이 사라지고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이 없이 봉사를 할 때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마음의 짐처럼 느껴집니다. 가볍지 않습니다.
말씀이 없는 봉사는 엄청 무겁고 버겁기만합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방송실 봉사하면서 그랬습니다. 말씀이 내안에서 점점 사라질떄 주님의 것이 나오질 않고 나의 것이 나오는 것을 너무 많이 경험했습니다.
말씀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있고 봉사가 있는것입니다. 그렇게 해야지 마음의 짐이 가벼워 질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힘을 공급해 주잖아요.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힘을 봉사를 해야하는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없는 것은 나의 힘으로 하니깐 무겁고 힘이 드는것입니다 .
그러니깐 무거워져서 기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바알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싸웠잖아요 이겼잖아요.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힘이 들어서 로뎀나무 밑어서 죽기를 구했잖아요.
그때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습니까? 포도주와 떡을 주셨습니다. 먼저 말씀을 양분으로 채워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차려 주신 밥상인것입니다.
항상 먼저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와 싸울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가 차려준 밥상을 너무 많이 먹고 있어서 하나님이 차려준 밥상을 먹을 때 쯔음 배가 불러서 먹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의 것으로 충분이 먹었을 때 배가 불렀을 때 마귀의 밥상을 먹지도 않을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씀 생활을 생각해봐야합니다.
4-3 마음의 열정이 식을 때
세 번째로 나의 주님을 향한 열정이 식을 때 즐거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35절에 허리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서 있으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리고 하고 있습니다.
허리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허리를 다치면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허리는 아주 중요한것입니다.
우리는 허리를 강하게 하고 주님과 동행해야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허리를 강하게 할수 있을까요? 육신의 허리는 허리 강화 운동을 계속 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허리가 강해져서 힘차게 살수 있습니다. 허리는 또한 허벅지 근육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허벅지가 약한 사람은 허리가 자주 아픔니다 .
우리의 다리가 중요합니다. 다리가 튼튼해야지 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허리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가짐을 잘해야합니다. 마음이 꺽여 버리면 아무것도 할수 없고 일어 설수가 없는것입니다.
우리는 마음가짐을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사도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믿음의 선지자들 모두 핍박을 받을 때 다들 비장한 마음을 가졋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얼마나 비장한 각오의 말입니다 .
마음의 열정이 식는다 죽는것입니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것입니다.
허리를 다치면 아무것도 할수 없듯이
마음이 식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정이 식을 때 선교를 다녀 오지 않습니까? 선교가면 힘이 나서 오지 않습니까?
열정이 다시 일어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계수양회를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도하는 영혼이 없는데 우리는 갑니다. 가서 열정을 느끼고 반성하고 오잖아요.
우리가 동계수련회를 왜 합니까? 마음을 불을 일으키려고 가잖아요. 그래서 새해를 다짐할려고 하잖아요.
이렇게 우리는 열정이 식었을 때 일으킬려 무단히 노력하며 살아야합니다.
열정이 식으면 기쁨이 사라지게 되는것입니다.
그리고 열정이 식어질때면 주님의 은혜를 더욱더 생각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귀뚫린 종입니다.
주님의 뚫린 손과, 발과 옆구리를 보십시오. 우리는 귀 뚫린 종이라는 것을 명심하며 살아야합니다.
4-4 앞에 즐거움을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소망이 사라져서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천국 소망을 잊어버리고 살아서입니다.
우리의 상급을 잊어먹고 살아서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입니다.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극도의 수치를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한번 생각 해볼까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았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아니 공인. 연애인 잘나가는 연애인 옷을 다 벗고 십자가에 매달렸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얼마나 수치스러울까요. 주님은 저 높은 곳에 계신분입니다. 그런데요. 옷을 다 벗고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아이들이 매달리면 옷을 다 벗고 매달리면 덜 수치스럽잖아요.
그런데 어느정도 아는 분이 옷을 다 벗고 매달리면 얼마나 수치스러울까요.
그것을 개의치 아니하셨습니다. 나 때문에 그렇게 매달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참으신것입니다.
참으신이유는요 그 앞에 있는 즐거움 때문에 참으신것입니다.
우리는 때로는요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보는데요. 그것만 보는 것입니다.
그앞에것을 보면 더 즐거운데요. 엄청 즐겁고 기쁜것인데요.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지금 닥쳐있는 상황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서 주님 앞에 서게 될것입니다.
나에게 주실 엄청난 상급이 기다리고 있을것입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잖아요.
우리가 바라볼 세상이 없으면 우리는 얼마나 불쌍한 존재 입니까?
하지만 우리는 앞에서 바라볼 엄청난 것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삶이 힘드세요. 기쁨이 사라지셨나요.
앞에있는 소망을 보세요. 앞에있는 저 천국을 바라 보십시오.
기쁨이 생길것입니다. 삶이 덜 힘들게 될것입니다.
막약에 주님을 위해서 수고 할때마다 나에게 10만원씩 들어온다면. 아니 100만원씩 들어온다면.
기쁠까요. 슬플까요. 당연히 기쁘겠죠.
우리가 볼 앞의 즐거움은 이것과 비교할수 없습니다.
기쁨이 사라지셨습니까. 그러면 앞에 있는 저 천국 소망을 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쁘게 즐거이 헌신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즐거히 헌신하다가 주님앞에 서야합니다.
느헤미야 말씀을 보겠습니다.
11장입니다. 1-2절입니다.
1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그 구분은 다른 성읍에 거하게 하였으며
2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백성들이 위하여 복을 빌었느니라
느헤미야 성경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내용이죠.
그것은 아무것도 없고 힘들고 어렵고 전쟁도 해야하고 아무것도 할수 있는게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레서 성벽이 건축이 되었지만 아무도 거기에 거할려고 하지 않은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제비를 뽑게 한것입니다.
10%는 제비를 뽑아서 예루살렘에 강제로 이주하게 했고요
나머지 90%는 다른 도시에 살도록 하겠다고 한것입니다.
그런데 11장에 보면 예루살렘에 거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 종류가 나오게 됩니다.
첫 번째는 백성의 두목들이 거한것입니다. 그러니깐 지도자들입니다.
정치 지도자들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거했습니다. 아마 이들은 책임감으로 거기에 거했을것입니다.
직분을 맡았으니깐 순종한것입니다.
두 번째는요 제비를 뽑아서 거한 10%는 무리들입니다.
이분들은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비를 뽑았더니 당첨이 되어서 어쩔수 없이 거기에 거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자들이 우리가 되어야지 않을까요.
세 번째 자원하는 자들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살기 원했던 자들입니다.
누굴 축복했습니다. 자원하는 사람들 그 무리들을 축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뭐든지 자원하는 심령을 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즐겁게 헌신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그러한 마음이 필요한것입니다.
주님이 맡기신 일이라면 하겠어요.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겠어요 그러한 마음이 필요한것입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수 있고 우리가 즐거히 헌신할수 있는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결론]
우리는 주님의 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즐거이 헌신하는게 마땅한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즐거이 헌신하는 것을 반드시 회복해야합니다.
본문 말씀 시편 110편입니다.
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즐거이 헌신한다면 하나님은 감동하시고 또 그렇게 헌신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를 나타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머지 않아서 영원한 즐거움 속으로 들어갑니다. 주님을 위해서 즐겁게 헌신할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우리가 정말 주님을 위해서 즐거이 헌신하다가 주님을 앞에 서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고대합니다.
우리 다같이 즐거운 신앙생활을 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